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242화 (243/270)

242화

‘분명 피바람이 불 줄 알았는데! 누구 하나 죽을 줄 알았는데! 뭐지? 이 담백한 분위기는?’

백유화와 금채홍이 눈을 끔뻑이며 서로를 마주 본 지 일각쯤 되었다.

도무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눈으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답이 나오지 않자, 이내 한숨을 토해 냈다.

“후하. 도무지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두 사람이 바닷가에서 매빙화홍주를 삼십 병이나 마시고 돌아왔지. 그런데 살기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아니, 둘이 서로 베고 부러트리고 죽도록 싸워야 할 일 아닌가? 서로 원수잖아!”

“유화 언니! 그것도 그거지만 설마 두 분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된 것은 아닌지……. 그……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잖아요.”

안절부절못하는 금채홍의 모습에 백유화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이구. 겨우 한다는 걱정이 그거냐. 뭐 내가 보기에 두 사람 사이에서 색기는 흐르지는 않는다. 그냥 영락없이 친한 친구 같아 보이지 않냐. 그런데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어? 왜 안 싸우지? 피가 튀고 팔이 날아가야 하는데. 하악. 하악.”

밤사이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는 백유화에게 남궁무애가 잘 방을 마련해 달라고 하고, 천일영은 의실로 들어가서 잠이 들었다.

남궁무애도 방에 들어서자 금세 잠이 든 것 같았다.

그것이 어제 인시(寅時)쯤에 있었던 일인데.

공자님은 무공으로 술기운을 날리지 않고 매빙화홍주의 매화 향을 풍기며 잠이 든 것도 모자라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눈을 뜨지 않고 있다.

남궁무애 역시 아직도 잠을 자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다.

잠이 든 사이에 서로 목을 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백유화와 금채홍은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아침이 지나서 오후가 될 때까지 뜬눈으로 지켜보았지만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함만이 흘렀다.

결국 백유화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안 죽여! 공자님이 저 여자의 팔을 베고! 몸통을 가르고! 다리를 분질러야지. 이 무슨 평화스러운 분위기란 말이야! 당하기 전에 해치우라는 말을 모르시는 건가.”

“모든 사람이 너처럼 살인귀인 게 아니다.”

“엑?”

꾸웅!

어느새인가 천일영이 잠에서 깨어 백유화의 머리에 내공이 가득 실린 꿀밤을 때렸다.

“끄아아아아악. 아파요. 아픕니다.”

“한참 기분 좋게 잘 자고 있는데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서야.”

“아니! 어떻게 지천번회의 주인이 있는데 편안하게 잠을 주무시는 겁니까. 끄아아아악! 아파!”

“서로 검을 겨눌 일은 없을 테니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말아라.”

“하으으윽. 하지만 공자님, 저 여인을 어찌 믿습니까. 하루빨리 목을 치고 사지를 찢어야지요.”

“응? 나를 찢고 목을 벤다고?”

“끄악!”

남궁무애가 모습을 드러내자 백유화가 사색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화경의 경지에 올랐어도 현경에 오른 지 백 년이 넘은 사람을 어찌 상대한단 말인가.

순수한 괴물 그 자체이거늘.

그때 금채홍이 급히 남궁무애를 가로막았다.

“그냥 하는 말이에요. 진짜로 목을 베고 사지를 찢으라는 게 아니라…….”

“알아, 채홍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나 아무 짓도 안 해.”

“네, 가은 언…… 아니, 무애 할머니.”

꾸웅!

이번에는 남궁무애가 내공을 가득 담아 금채홍의 머리로 꿀밤을 날렸다.

“할머니라고?”

“꺄으으으으윽. 어째서! 백사십칠 세이신데! 할머니 맞는데!”

“나도 나더러 할망구라고 부를 때가 있기는 한데, 너희는 그러면 안 돼.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럼 뭐라고 불러욧! 까으으으윽.”

“그냥 가은 언니라고 불러. 할머니는 절대로 금. 지. 야. 알겠지? 다시 한번 할머니라고 부르면 평생 느껴 보지 못한 공포와 절망을 느끼게 될 거야.”

“네! 끄아아아아악.”

백유화와 금채홍이 바닥을 구르는 것을 지켜보던 천일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둘이 쌍으로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 귀엽기는 한데.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아무튼 남궁무애라는 이름도 금지고 그냥 평소처럼 남가은으로 대하면 된다.”

“알겠…… 어요. 하흐흐흑. 아파!”

제법 세게 때렸으니 꽤 아플 터다.

천일영이 백유화의 머리에 손을 얹어 통증을 가라앉혀 주고, 남궁무애도 금채홍의 고통을 거뒀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맹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에게 천일영이 웃음을 지었다.

“밥 먹으러 가자. 죽다 살았더니 배가 몹시 고프구나.”

“알겠습니다. 그런데 공자님.”

“왜 그러느냐.”

“앞으로는 그렇게 다쳐서 돌아오시면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무슨 심정으로 공자님을 지켜봤는지 아십니까. 정말로 공자님께서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시느냔 말입니다.”

“미안하구나. 앞으로는 다치지 않도록 노력해 보마.”

백유화와 금채홍의 눈에서 눈물이 투두둑 떨어졌다.

이제야 긴장이 풀려서 내리는 눈물이었다.

한참을 훌쩍거리며 우는 둘을 천일영은 한참이나 내버려 두었다.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고 말로는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이번에는 겨우 하은월을 막을 수 있었지만.’

다음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은월에게 심장이 없었다.

또한 운 좋게 송여악에게 음양의 기운이 있었고, 남궁무애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다시 한번 하은월을 만나게 되면 무조건 죽게 될 터.

그리하면 이 바보들이 얼마나 울까 하는 생각이 들자, 천일영은 입술을 꾹 깨물고 잠시 눈을 감았다.

천마신교를 처음 나왔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천일영은 별유천지로 갈 때까지 계속 입술을 깨물었다.

* * *

몇 개의 등불만이 겨우 어둠을 쫓아내는 어두운 방.

노송하는 정신을 잃은 하은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망함과 허탈함이 교차하는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채.

그녀의 한숨이 방 안을 울렸다.

‘차도가 보이지 않는구나. 천자께서 심장만 있었다면 금세 몸을 일으켰을 터인데.’

그동안 의원들은 극양의 기운과 극음의 기운을 가진 자를 통해서 타들어 간 혈도와 기도를 살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기운은 기도에 고이기만 하고 혈도에 스며들지 못했다.

오히려 심장이 없어서 신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엉뚱하게 기운은 심장이 있던 자리에 고여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극양과 극음의 기운이 스며들어 심장을 대신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천자께서 눈을 뜨기에는 어림도 없을 만큼이다. 결국 이 정도로는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명줄만 늘리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는 천자가 눈을 뜨고 스스로 몸을 고쳐야만 하는데.’

문제는 영혼으로 심장을 대신하는 방법은 오직 천자만 아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영혼으로 심장을 대신하는 방법이 알려지면, 반대로 그 방법을 이용해서 영혼을 거두는 것도 가능하기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충복인 자신에게도 말이다.

노송하는 결국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쯤이면 천지제의 두 명이 소림의 방장 태사명진을 죽일 것입니다. 그가 죽으면 모세룡이 무림맹의 맹주가 될 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반드시 심장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돌아올 리 없는 대답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결국 노송하가 의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의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린 듯 혈천회의 총관 방태륜이 노송하에게 다가왔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총관께서 그렇게 다급한 표정을 짓는 경우는 드문데 어찌 된 연유로 그러십니까?”

“사천당문의 당강용이 맹주 후보에 올랐다. 헌데 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구나.”

“당강용?”

노송하의 입술이 비틀렸다.

“놈을 지지하는 놈들의 수가 어찌 됩니까.”

“개방은 압도적으로 소림사 방장 태사명진을 지지했는데 갑자기 당강용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화산파도 당강용을 전폭 지지한다고 공표했다.”

천량도사와 도철용이 뒤에서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을 모르는 노송하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당장 천자님을 살려야만 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영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다른 곳은요? 개방과 화산파 정도만 지지한다면 큰 문제는 안 될 겁니다.”

“사천당문과 협력 관계인 종남파는 당연히 첫 번째로 지지하고 나섰고, 그동안 해독을 하는 데 엄청난 금액을 사천당문에 지급해 왔던 무림 문파의 상당수가 당강용에게 돌아섰다.”

“해독에 큰 비용을 냈던 무림 문파가 왜 당강용을 지지하나요?”

“당강용이 선포했다. 자신이 무림맹의 맹주가 된다면 해독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무료로 하겠다고.”

“젠장! 이 개 같은 놈의 새끼!”

노송하가 주먹을 꽉 쥔 채 부들거리며 온몸을 떨었다.

남궁천이 과거 사천당문을 내치고 십 년간 무림맹과 연관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약재를 독점한 사천당문이 아니면 해독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간단한 독의 해독은 금화 다섯 냥. 목숨이 위중한 경우나 희귀한 독의 해독에는 금화 삼십 냥을 주는 조건으로 무림맹은 사천당문을 다시 받아들였다.’

해독의 비용이 엄청나게 오른 탓에 그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수십에 달하는 무림 문파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사천당문에 거금을 내 왔다.

‘그런데 그것을 무료로 해 준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해마다 금화를 수백 냥이나 아끼게 되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을 리가.

특히나 돈이 별로 없는 중소 문파는 더욱 그렇다.

“총관님, 모세룡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소림의 태사명진이 사 할. 사천당문의 당강용이 사 할이다.”

“그렇다면 모세룡은 겨우 이 할…….”

절망적인 숫자다.

노송하가 입을 악물고 말했다.

“천지제 중에서 셋을 당강용에게 보내시지요. 태사명진과 당강용이 동시에 죽으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할 것이나 천자님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뿐입니다.”

“너무 억지 같아 보이기는 하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총관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저는 천자님을 살릴 방도를 찾아야 하니.”

“알았다.”

노송하가 의원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자, 총관 방태륜도 천지제를 부르기 위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생각하기를.

노송하는 지금 천자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정확한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말이다.

‘천지제를 꼭 태사명진과 당강용에게만 보낼 필요는 없지. 모세룡에게도 보낸다. 다만 암살자에게 태사명진과 당강용은 죽고, 모세룡이 되레 암살자를 죽이는 거로 꾸미면 그 무위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이리하면 맹주 자리는 따 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전서구를 보내서 모세룡와 미리 계략을 짜야 한다.

앞으로 칠 일.

그 안에 모세룡을 맹주로 만들기 위해서, 방태륜은 모용세가 안에서 죽을 암살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 * *

타다다닷.

천일영은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백유화를 안고 남궁무애와 함께 하남성의 소림사를 향하고 있었다.

안과 혜에게서 받은 전서구 때문이었다.

‘당강용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대로라면 태사명진이나 당강용이 무림맹 맹주가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당강용이 치고 올라온 것이 문제다.’

혈천회에서 모세룡을 움직이고 있다는 심증은 있었다.

그 때문에 당강용을 맹주 후보에 올린 것인데 이래서는 당장에 맹주가 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모세룡과 천천히 격차를 좁히면서 자연스럽게 지지율을 높여야 했는데 맹주 후보에 오른 지 며칠이나 됐다고 모세룡을 바닥으로 보내 버리다니. 이래서는 당장 태사명진부터 죽게 생겼군. 다음은 당강용 본인일 테고.’

타탁.

숭산(嵩山)의 소림사 정문 앞에 도착한 천일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소림사로 들어가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늘어서 있었다.

단순한 구파일방만이 아닌 중원 천하제일명찰(天下第壹名剎)로 불릴 만큼이나 유명한 절이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 또한 그만큼 많은 탓이다.

“곤란하구나. 이 많은 사람 안에서 태사명진을 죽이러 온 놈들을 찾을 수 있을지.”

“공자님의 기감으로도 안 됩니까?”

백유화가 되묻자 천일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들은 화경과 현경의 중간쯤이다. 기척을 죽이는 데는 특화된 놈들이기도 하고. 유화 너도 극도태마신공 책 사건 때 알아차리지 못해서 죽을 뻔하지 않았더냐.”

“수천 명의 인파에 숨어 있다면 확실히 찾기 힘들겠군요.”

“태사명진을 끌어내고 시선을 분산시킬 방법이 있으면 좋겠군.”

“흐음, 그런 거라면 제가 전문이지요.”

백유화가 손가락 마디를 풀며 정문을 지키는 무인에게로 다가갔다.

영락없이 파락호 같은 모습으로 짝다리를 짚으며 침을 일단 ‘퉤’ 뱉고.

다짜고짜 큰 목소리를 냈다.

“야, 방장 태사명진을 만나러 왔다. 빨리 데리고 나와.”

“뭐라? 이것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그따위 말을 함부로 하느냐! 방장님께서는 너 같은 미친년을 만나실 만큼 한가하지 않다.”

“사혈련의 백유화가 찾아왔다고 전해.”

“사…… 사혈련?!”

쿠웅.

백유화의 몸에서 사기가 터졌다.

새파랗게 질린 무인이 다른 무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큰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에 얼어붙듯 입을 다물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보다는 이게 훨씬 효과가 좋아.”

“뭐…… 뭐라고? 그게 무슨 말…….”

“뭐긴. 부르는 소리보다 맞는 소리가 반응이 더 빠르다는 말이지.”

퍼어어억!

백유화의 장권이 무인을 일격으로 때려눕혔다.

연이어 곧이어 쓰러진 무인 위에 올라가서 밟기 시작하기까지.

“아아악!”

“소리 좋네. 더 소리 질러. 그래야 있는 놈 없는 놈 다 뛰쳐나오지.”

“사람 살려!”

“아직 조금 목소리가 작은데?”

쿵!

내공을 가득 실은 발이 무인의 등 위로 떨어져 내렸다.

“끄아아악!”

“입 밖으로 오장육부랑 내장을 전부 토해 내게 하기 전에 더 큰 소리를 지르란 말이다. 꺄하하하하학!”

백유화가 무인의 몸에서 계속 뛰었다.

천일영과 남궁무애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위에서 널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난생처음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백유화는 그만큼이나 높이 올라 뛰고 있었고, 두세 번만 더 뛰면 정말로 내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희귀한 광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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