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243화 (244/270)

243화

우르르르르.

정문을 지키던 무인이 두들겨 맞자, 소림사의 무인들이 뛰쳐나왔다.

와르르르르.

무인의 비명이 울려 퍼지자, 소림사를 찾았던 신자들이 사방으로 퍼져 도망갔다.

천일영은 웃음을 지었다.

‘영악한 녀석. 일부러 소란을 일으켜서 절을 찾은 사람들을 쫓아 버렸구나.’

하여간에 나쁜 짓으로는 중원에서 백유화를 따라잡을 사람은 없다.

최고 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한 천일영과 남궁무애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제부터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될 일이었다.

쿵. 쿵.

“끄아아악!”

백유화는 일부러 소란을 더욱 일으키며 날뛰었다.

곧 그녀의 주변으로 사십 명의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원으로 둥글게 감싸인 가운데에 홀로 남은 백유화가 말했다.

“고작 이 숫자로 나를 말릴 수 있겠어? 그냥 태사명진을 데리고 오지?”

“어허! 감히 방장님의 존함을 입에 담다니 무엄하구나. 게다가 사혈련의 무인이 어찌 정파인 소림사에서 소란을 떠는 것이냐.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아! 맞다. 나 사혈련 때려치웠는데. 그나저나 태사명진은 상판에 금칠을 했나. 만나기 더럽게 힘드네. 그냥 내가 뚫고 들어갈게.”

“막아라! 정신 나간 계집이지만 무공 실력은 얕잡아 볼 수 없는 경지다. 모두 조심하거라.”

“예!”

사십여 명의 무인들이 선천나한십팔수(先天羅漢十八手)의 이 초식 선장추운세(仙掌推雲勢)의 자세를 취했다.

백유화는 짝다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데 그냥 강선을 꺼내?

‘아니지. 잘못하면 사지를 잘라 버릴 수도 있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안 돼서 힘 조절이 아직은 힘들다. 사람 살리러 와서 죽이면 무슨 망신이야.’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니.

길이 이십 치 정도의 얇은 나뭇가지 하나가 보였다.

백유화는 그것을 집어 들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이거면 되겠네.”

“나뭇가지?”

백유화는 천일영이 즐겨하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얇은 검강을 나뭇가지에 둘렀다.

초절정 고수일 때는 되지 않았던 것을 화경이 되면서부터 연습하여 얼마 전에 성공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소림사의 무인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니, 조금 아까 조심하라고 한 말은 취소다. 그냥 미친년이다.”

“흐응? 반 각 후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모두 저 여자를 붙잡아라! 소림사에서 소란을 피우면 어찌 되는지 똑똑히 그 몸에 새겨 주어라!”

“예!”

사십여 명의 무인이 일제히 백유화에게 달려들었다.

언뜻 보기에 두서없고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 합을 맞춰 수련해 온 사람들.

시차를 두었기에 언뜻 산만해 보일 뿐이지 실상은 정교한 공격이었다.

백유화는 그들의 움직임을 단번에 간파했다.

피비비빗! 푸욱! 푸부북!

제자리에서 딱 한 걸음씩만 옮기며 휘두르는 나뭇가지에 소림사의 무인들이 토혈을 시작했다.

백유화는 치사하게도 급소 중의 급소만 찌르고 있었다.

상대가 권을 날리면, 먼저 나뭇가지로 손가락 틈을 파고들어 손바닥의 급소를 찌르고.

또한 장권을 날리면 손바닥의 급소를 한 번에 다섯 군데씩 나뭇가지로 찍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공격.

하지만 처음 공격으로 덤벼들었던 열 명의 무인은 바닥을 짚고 피를 토했다.

“쿠에에엑! 손바닥을 찔렸는데 왜 토혈이…… 우웁. 우웨애애액!”

“끄아아아악! 손가락 틈 사이를 찔렸는데 왜 눈이 안 보이는 거야! 우웨애애액!”

“어딜 찌른 거야! 왜 다리가 안 움직여. 왜 입에서 피가 나오는 거고!”

내장이 뒤틀리고 오장육부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본 다른 무인들의 얼굴색이 파래졌다.

의원들이 침을 놓는 혈과 급소를 저렇게 찌르다니.

‘뭐지? 겨우 나뭇가지로 저게 가능한 일인가?’

무인 대부분은 이류 무인과 일류 고수.

소림사에서 적게는 십 년.

많게는 이십 년씩 수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허무하게 쓰러졌다.

상황이 심각해 보이자, 남은 삼십여 명의 무인 중에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남자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이름은 무준.

나이 마흔일곱에 절정 고수인 소림의 고수였다.

그가 말했다.

“백유화라고 했나.”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가 실수한 모양이군. 조금만 기다려라. 방장님에게 네가 찾는다고 전하마.”

무준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초고수라는 것을 알아봤으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물론 고개를 숙인 진실은 조금 달랐다.

시간을 끌어서 소림사의 최고수들이 모두 나오면 금방 정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거짓으로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싫은데? 이 새끼들이 곱게 살살 다뤄 줬더니 머리를 굴려? 야! 나쁜 짓, 치사한 짓이라면 내가 중원 제일이거든? 그런 사람 앞에서 이것들이 약을 팔아!”

“뭐라고…… 크헉!”

후욱!

분명 눈앞에 있던 여인이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눈앞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빠악!

여인이 휘두른 나뭇가지가 다리에 맞는 순간 선명하게 느껴졌다.

다리뼈가 가루가 되는 것을.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시끄러워. 다리가 부서진 정도로 이렇게 고함을 지를 줄 알았으면 차라리 목구멍을 뚫어 버릴 걸 그랬어.”

살벌한 협박에 삼십여 명의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꿀꺽.

침이 넘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의 악귀 같은 여자가 환한 웃음을 짓는 것이 그들의 눈에 보였다.

쓸데없이 작고 귀여운 이가 드러나고, 그 입에서 섬뜩한 말이 튀어나왔다.

“다음은 너희지?”

“히익!”

빠악! 뻐억! 뿌드드득. 촤아아악!

반 각이 채 되지 않아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바닥을 기었다.

팔과 다리가 모두 부러진 채 피를 토했다.

이 모든 것을 나뭇가지 하나로 했다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고통에 찬 신음과 비명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곧 일백 명의 무인이 뛰쳐나와 백유화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소림사의 승려들이 지켜야 할 열 가지 계율을 관리하는 십계십승 중 한 명인 명일도 있었다.

그는 나이 육십사 세의 초절정 고수.

흰 수염을 늘어트린 채 주변을 둘러보던 명일이 말했다.

“쯧쯧, 이런 여인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다니. 어찌 이렇게 무능할 수가…… 꽤애애애액!”

말도 끝마치지 못하고 명일이 날아갔다.

나뭇가지로 가슴을 찔린 채 신형이 밀려서 10장 길이까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하얀 거품을 입에 물고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까지 했다.

“……!?”

순간 일백 명의 무인들이 문답무용으로 백유화에게 덤벼들었다.

명일이 단 한 수에 날아갔을 정도면 한 명씩 덤벼 봐야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일제히 백유화와 맞부딪히는 순간.

“다들 그만두지 못하느냐! 이게 무슨 소란이란 말이냐!”

거대한 노성이 소림사를 뒤덮었다.

백유화가 고개를 돌려보니 소림사의 방장 태사명진이 그를 호위하는 팔대호원(八大護院)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심하게 다친 무인들을 보면서 한숨을 흘리던 그는 나뭇가지를 들고 싱긋 웃고 있는 백유화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질끈 감았다.

“너였냐, 이 망할 놈아.”

“영감탱을 만나러 왔는데 안 들여보내 줘서 말이야.”

“하아. 전갈을 넣으면 되지, 어째서 이 난리를 피운 것이냐.”

“태사명진을 만나러 왔다니까 나 같은 건 만날 수 없다던데?”

그때였다.

팔대호원의 감원(監院 - 팔대호원의 우두머리) 명법이 호통을 쳤다.

“방장님께 감히 그 무슨 언동이란 말이냐! 고개를 숙이고 인사부터 올리지 못할까!”

“갈! 내가 손님하고 이야기하는데 어찌 끼어드는 것이냐!”

“네? 그게 아니라…….”

“이 멍청한 놈들! 이 여자는 중원 십육 대 고수인 백유화다! 네놈들이 함부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그리도 이야기했건만!”

“주…… 중원 십육 대 고수!”

명법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태사명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잉, 망할 놈들 같으니라고.

말은 더럽게 안 들어 처먹어요, 하여간에.

빙긋 웃으며 야비한 표정을 짓는 작은 체구의 여인을 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백유화와는 악연이었다.

태사명진은 과거 백유화와 여러 번 맞붙었다.

도합 열 번 정도 붙었고, 결과는 모두 무승부였다.

실력이 비슷한 탓에 한 번 붙을 때마다 서로 다치기도 많이 다쳤다.

최소한 중상이었다.

그 때문에 열한 번째부터인가는 만나도 서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한번은 도적에게 당한 마을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워낙에 거대한 도적 집단이어서 백유화와 같이 행동했었다.

태사명진은 의협심으로.

백유화는 돈 때문이었다.

둘이서 천 명이 넘는 거대한 도적 집단을 탈탈 털었다.

죄다 현청에 넘기고 현상금도 제법 두둑하게 나눠 가졌다.

물론 천 명 중에서 삼백 명은 고깃덩어리만 건네줬지만.

백유화의 짓이었다.

그 이후로는 가끔 길 가다 만나면 밥도 먹고 하는 사이가 됐다.

‘내가 이 망할 녀석 때문에 술을 배웠지. 하도 강제로 먹이는 바람에 한잔 마셔 봤는데 의외로 잘 맞아서 몰래 마시곤 했다.’

나름 이 까탈스러운 여자는 자신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후.

정파인 태사명진이 사혈련의 인간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면 안 좋을 일을 겪을 거라며, 백유화가 먼저 아는 척을 안 하기 시작했을 때는 제법 서운하기도 했었다.

‘발길을 돌렸던 여인이 지금에서야 나타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뭔가 큰일이 생긴 것이라고 태사명진은 직감했다.

“급한 일이냐.”

“응, 아마 슬슬 나타나지 않을까? 안 나타나면 다행이고.”

“나타나다니? 누가 말이냐?”

그때였다.

하얗게 내리쬐고 있는 태양에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 드리워지는 느낌이 들어 태사명진은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질릴 만큼이나 어두운 기운이 뒤섞인 것.

사악한 기운이었다.

남자 두 명이 검을 뽑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한 남자가 태사명진과 백유화를 번갈아 보며 이를 드러냈다.

“고맙군. 직접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다니 말이야. 소림사 안에서 너를 잡자니 무인들이 워낙에 많은 터라 우리도 조금 망설이고 있었거든.”

어둠과 함께 울리는 목소리.

정파도 아니고 천마신교도 아니며 사혈련의 기운은 더더욱 아닌.

뭔가 습한 지하에서 피어오르는 곰팡내 같은 기분 나쁜 기운을 느끼는 순간 태사명진이 소리쳤다.

“모두 피해라! 놈들은 초고수다!”

“소용없는 짓이다. 증인은 모두 제거할 거니까. 오늘로 소림사는 중원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될 거다.”

쿠우우우웅.

그들의 기운이 소림사를 뒤덮어 갔다.

그들의 기운만으로도 태사명진의 곁에 서 있던 무인 중에서 이류 무인들은 입을 막고 쓰러졌다.

강한 사기와 중압감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끔찍하고 서늘하기 짝이 없는 기운에 태사명진 역시 떨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백보신권(百步神拳)의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태사명진의 앞에 나선 백유화가 강선을 뽑아 들었다.

“유화야, 저놈들 때문에 찾아온 것이냐. 너와 같이 싸우는 것은 오랜만이구나.”

“저놈들 때문에 온 것은 맞지만, 같이 싸우는 건 안 돼.”

“그렇다면 왜 강선을 뽑는 것이냐.”

“나는 너를 지키러 온 것뿐. 저놈들의 상대는 다른 분들이 하실 거다.”

“다른 분?”

백유화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둠을 내뿜는 남자 두 명이 태사명진을 향해 돌진해 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날아왔다.

쐐애애애액!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신형을 날린 두 사람의 검이 태사명진과 백유화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바로 코앞에서 햇빛을 반사하는 검날.

죽음이 바로 앞이었다.

팔 한 번, 다리 한 번을 움직여 보지도 못하는 허무한 죽음이다.

순간.

카아아아아앙!

남자 한 명과 여인 하나가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어둠을 뿌리는 검을 막아 냈다.

쿠와와왕!

그저 검을 받아 내기만 했을 뿐인데 돌풍과도 같이 바람이 소림사의 무인들을 덮쳐 왔다.

밀려나는 신형을 가까스로 잡은 태사명진이 남자와 여인의 신형을 바라보는 순간.

촤아아아아악!

어둠을 뿌리던 두 명의 남자들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한 명은 잘린 머리가 날아가고.

또 한 명은 몸통이 세로 방향으로 딱 절반이 갈라졌다.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는 것과 동시에, 태사명진의 얼굴도 피로 적혀졌다.

“이…… 이게 무슨……!”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방금 검을 들고 덤벼들던 사람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런데 단 일검.

있는지도 몰랐던 두 사람이 단칼에 초고수를 죽였다.

태사명진의 떨리는 입술이 떨어졌다.

“고…… 고맙소. 백유화와 함께 이 노승의 생명을 살려 주시다니. 그대의 존함을 여쭤도 되겠소?”

“천일영이다.”

“……!”

태사명진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천일영이라니.

천마신교에서 죽었다고 발표한 망자가 어째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하나 더 드는 생각.

‘천마가 정파를 왜 도와?’

태사명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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