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물론 안과 혜가 하오문의 세하월을 통해서 온 중원으로 빠르게 퍼지도록 한 것이었다.
내용은 단 하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무리가 소림사의 방장 태사명진과 사천당문의 당강용, 그리고 모용세가의 모세룡에게 살수를 보냈다.
맹주 후보에 오른 사람들을 죽이려 한 것인데 태사명진과 당강용은 살수를 죽였다.
그러나 반대로 모세룡은 죽을 만큼 당했다.
심지어 모용세가는 괴멸 직전까지 몰렸다는 것이었다.
그 소문은 무림은 물론, 중원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살수가 감히 무림맹의 맹주 후보를 죽이려 했다는 사건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있었으니.
태사명진과 당강용은 살수를 물리쳤지만, 모세룡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무림 문파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개중에는 하오문에 거금을 주고 정보를 산 사람도 있었고, 힘이 있다는 무림 문파는 소림사와 사천당문이 있는 성도에 사람을 보내기까지 했다.
정보를 사거나 직접 알아본 바에 의하면 사천당문이 있는 성도는 밤새도록 신호탄이 올라가며 어두운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혔다고 했다.
성도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뿐인가.
사천당문 안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수백의 무인이 쏟아져 나와 밤새도록 성도를 뒤졌다는 증언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이것은 천일영이 일부러 신호탄을 밤새 쏘라고 했고, 계략대로 당강용이 싸우는 소리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천당문의 무인들은 있지도 않은 살수를 찾기 위해서 밤새도록 성도를 누비고 다니기도 했다.
증인은 수천, 수만 명에 달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보란 듯이 사천당문의 앞에 한 개의 목이 걸렸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시신 두 구도 전시됐다.
살수를 처리했다는 표식이었다.
소림사도 마찬가지였다.
싸움이 일어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소림사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모두 정문에서 일어난 해괴한 사건에 대해서 증언했다.
정문을 지키는 소림사의 무인이 맞기도 했고, 또한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말들이 수없이 나왔다.
심지어 태사명진이 살수를 상대로 엄청난 무공을 보였다는 증언도 제법 나왔다.
이것은 하오문의 사람들이 잠복해 있다가, 있지도 않은 정보를 계획적으로 흘린 것이었다.
천하제일명찰(天下第壹名剎)이지만, 소림사의 정문에도 드물게 목 두 개가 걸려 있었다.
하나는 반으로 갈라진 끔찍한 광경이었고, 소문과 일치하기도 했다.
그 광경이 더욱 빠르게 소문을 퍼트렸다.
거기까지 확인한 무림 문파는 각 성에 있는 지회를 통해 모용세가의 상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무림 문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땅이 갈라지고 전각과 장원은 모조리 부서져 있었다.
폐허나 다름없었다.
살수가 얼마만큼의 신위를 가지고 있었는지 한눈에 보여 주는 척도가 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림사의 태사명진과 사천당문을 이끄는 당강용과는 달리 모세룡은 만날 수조차 없었고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모두 초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림사와 사천당문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에 무림 문파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암살자 사건으로부터 칠 일 후.
무림맹의 계면법비별관(系勉法備別館)에 모인 무림 문파의 장문인과 문주들은 흐르는 소문의 진위를 알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알아볼 만큼 알아봤지만, 본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탓이다.
오늘은 무림맹의 맹주를 뽑는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중간 지지율을 점검하는 날.
당연히 소림사의 방장 태사명진과 사천당문의 당강용도 출석한다.
모용세가의 모세룡도 그 누구보다 이 자리에 참석하고 싶겠지만.
“흐음, 그가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모세룡을 만나 보지는 못했으나, 소문으로는 상처가 심히 중하다고 들었는데. 지금 사경을 헤맨다고 하던가.”
“맹주가 선출되지 못하도록 사악한 무리가 암살을 시도하다니 말세입니다. 모용세가가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것을 그냥 좌시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하고요.”
무당파 장문인 명선은 청성파 장문인 호윤의 말에 속으로 혀를 찼다.
‘말이 좋아 사악한 무리지, 그의 관심은 실상 모용세가가 패했다는 것에 있구먼.’
오대세가인데도 살수에게 당했다는 것 자체가 수치라는 말이다.
‘좌시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패배한 모용세가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악한 무리를 말하는 것인지를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것에는 절로 한탄이 흘러나왔다.
비단 청성파 장문인 호윤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의 대부분이 비슷한 반응이었다.
드르르륵.
그때 계면법비별관의 문이 열리자 백여 명에 달하는 무림 문파의 문주와 장문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소림사의 방장 태사명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신위를 알기 힘들 정도로 초고수인 살수를 처리했다는 소문이 만든 위광(威光)이 뿜어지는 광경은, 무림에서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풍모가 더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사천당문의 문주 당강용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역시 태사명진과 같은 위광과 함께 여유 있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두 맹주 후보의 등장으로 계면법비별관은 쥐새끼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소문이란 것이, 두 사람의 관록을 다른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끌어올렸다.
조용한 별관의 안에서 명선이 태사명진과 당강용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오지 않은 분은 모용세가의 문주뿐인 듯합니다. 오래 기다리기도 힘든 일이니, 회의를 시작하지요.”
“그럽시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자 사건이 어찌 된 것인지 빨리 알고 싶어서 눈을 반짝였다.
그때였다.
드르르륵.
더는 열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별관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장문인과 문주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모용세가의 총관인 모용자환.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는 그의 간절한 얼굴을 보며 태사명진이 말했다.
“모용세가를 대표해서 오신 것입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주님께서 몸이 조금 좋지 않으셔서 대리로 왔습니다.”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모용자환이 모세룡 앞으로 지정된 자리에 앉자, 잠시 흐름이 끊어진 회의를 잇기 위해 웃음을 띤 얼굴로 명선이 말했다.
“이 자리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맹주 선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오늘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분이 실질적으로 맹주가 되는 날이지요. 모두 의견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무당의 장문인이신 명선께 한 말씀 드립니다. 저희 모용세가의 모세룡 문주님께서 몸이 아픈 관계로 참석을 못 하셨으니 회의를 다음으로 미뤄 주시길 요청하는 바입니다.”
모용자환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오자 별관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화산파의 장문인 천백도사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곤란한 말이오. 중원 전체에 퍼져 있는 무림 문파의 장문인과 문주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는 쉽지 않은 일. 이곳까지 한 달에 걸쳐 오신 분도 계시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픈 분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여 맹주가 될 기회를 빼앗긴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지 않습니까. 저희 모용세가는 그동안 무림맹에 큰 공헌을 하였고, 그에 따라 이 정도를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허허……. 공헌이라. 좋소이다. 허나 하나 묻고 싶은데 모용세가의 문주께서는 병이 난 것이오? 아니면 움직이지 못할 만큼 당한 것이오?”
“아무리 화산파의 장문인이시라 해도 그 말씀은 너무 심하십니다!”
탕!
모용자환이 시뻘게진 얼굴로 탁자를 내리쳤다.
하지만 그 행동은 오히려 별관에 모인 문주와 장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행동이 되었다.
곤륜파의 욕쟁이 장문인 청유원이 입을 열었다.
“저희도 궁금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소림사의 방장이신 태사명진과 사천당문의 문주 당강용께 여쭙니다. 살수가 맹주 후보를 노리고 암살하려 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사실이오.”
태사명진이 대답하고 당강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우리가 살수라고 부르기는 하나 무공의 신위가 끝을 모를 지경이었소. 초절정 고수의 끝자락 정도의 실력으로, 무림에 그런 초고수가 이름을 알리지 않고 살수로 활동한다는 것에 놀랐소이다. 소림사의 정문으로 대낮에 당당히 찾아왔을 정도니.”
“허허, 그렇다면 그 초고수를 상대로 태사명진과 당강용께서는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이번에는 태사명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당강용이 대답했다.
“새벽에 살수 세 명이 침상을 덮쳤지요. 사천당문의 방비를 뚫고 들어올 정도의 초고수였는데 마침 새로 개발한 독으로 두 놈을 처리하고, 남은 한 놈은 도망가는 것을 찾아서 처리했습니다.”
“새로운 독이라니요? 사천당문의 독은 강력하기로 유명한데 또 다른 것을 개발하신 모양입니다.”
“현경에 도달한 무인도 죽이는 독입니다. 만독불침인 무인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지요.”
“……!”
물론 거짓말이다.
만드는 족족 실패했다.
하지만 별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침을 삼켰다.
당강용의 말은 그 스스로가 중원 오십 대 고수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한마디였다.
‘이래서는 당강용이 중원 십육 대 고수가 되고 모세룡이 오히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문주와 장문인들이 모용자환을 바라보았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모용자환은 식은땀을 흘렸다.
“저희 모용세가에 찾아온 살수도 처리가 되었습니다. 문주께서는 그 과정에서 조금 다치셔서 거동이 불편하실 뿐입니다. 살수를 처리하지 못했다면 문주께서 살아 계실 리가 있겠습니까.”
“흐음, 다른 분들은 모두 멀쩡한데 모용세가의 문주만 다쳤다니…….”
천백도사의 혼잣말 비슷한 중얼거림에 모용자환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반론을 펼치기 위해서 다시 한번 큰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 청유원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모용세가에서 살수를 처리하셨다 했는데 어찌하여 그 목을 정문에 걸지 않으셨습니까?”
“모용세가의 건물이 일부 무너질 정도로 살수가 초고수인데 저희 문주이신 모세룡께서 시신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 놓으시는 바람에…….”
“그렇습니까. 허나 사천당문은 살수가 다시는 덤비지 못하도록 베어 버린 목과 함께 뭉개진 시신을 정문에 놓지 않았던가요. 소림사도 반으로 잘린 시신을 걸어 놓았고요. 그러한데 모용세가만…….”
이 정도라면 모용자환도 알 수 있었다.
무림맹에 모인 사람들이 모용세가의 위세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젠장, 문주는 사경을 헤매고 모용세가는 괴멸 상태다. 정문에 걸 시신은커녕 살수 놈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 어쩌라는 말이냐!’
그래도 모용자환은 포기할 수 없었다.
모용세가가 괴멸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모세룡은 맹주가 되어야 했다.
무림맹 맹주의 위세와 돈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시신을 거는 것이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모용세가의 문주께서는 중원 십육 대 고수이고, 살수 따위에게 당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시는 말씀은 잘 알겠소. 모용세가의 문주께서 살수를 물리치셨다는 말은 믿어 보도록 하겠소이다. 게다가 모용세가가 무림맹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하시니 무엇이 문제겠소.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둘 것이고, 문주께서 이 자리에 안 계셔도 모두가 모용세가의 공헌을 기억할 것이니, 회의를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오.”
“……!”
명선의 무거운 목소리가 울리자 다들 모용자환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그리고 한 사람씩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을 종이에 적어서 커다란 나무함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장문인과 문주들은 자신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큰 고민이 없었는지 나무함은 금세 차오르기 시작했고, 불과 이 각 정도의 시간 만에 의견이 모였다.
명선이 몇몇 사람과 함께 종이에 적힌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무림맹의 사람 하나가 그것을 기록했다.
다시 이 각이 흘렀다.
명선이 말했다.
“모든 종이가 다 나왔소이다. 소림사의 방장 태사명진께서 35표. 사천당문의 당강용께서 35표가 나오셨소. 그리고 모용세가의 모세룡께서는…….”
“몇 표가 나오셨습니까?”
모용자환이 다급하게 묻자 명선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이것 참. 0표이오.”
“뭐…… 뭐라고요! 0표? 말도 안 됩니다!”
타앙!
모용자환이 탁자를 거칠게 때리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명선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은 냉정했다.
“장문인과 문주들이 자리에 계시니 다시 투표해도 되오. 허나 그때에도 같은 결과가 나오면 어찌하시겠소? 다시 한번 창피를 당하시겠소?”
“크윽. 아…… 아닙니다. 제가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흥분한 모양입니다.”
“이해하오. 0표라면 누구나 흥분을 하지 않겠소.”
킥킥.
여기저기에서 작은 웃음이 터졌다.
모용자환은 결국 의자에 주저앉듯 신형을 기울였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모용자환은 생각했었다.
모용세가의 최대 수치는 이번에 살수에게 당한 사건이라고.
그러나 아니었다.
씻을 수 없는 수치는 바로 이곳에서.
수십의 무림 문파가 모두 듣는 가운데 외쳐진 것이었다.
모용세가는 무림맹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0표를 받은 곳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