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249화 (250/270)

249화

촤아아악!

황궁으로 들어서는 여섯 개의 문 가운데 정문에 해당하는 오문(午門)을 지키는 병사들의 목이 날아갔다.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져 내린 목의 숫자는 서른 개.

천지제의 맏형 역할을 하는 부항윤이 피가 떨어지는 검을 들고 천지제를 바라봤다.

그는 맏형의 역할을 하는 만큼 실력도 천지제 중에서 가장 뛰어났기에 이번 일에서도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었고, 실패하면 앞으로 혈천회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차분한 목소리로 다짐을 받듯 천지제에게 말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황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도 없다. 살생부(殺生簿)에 적힌 사람들만 빠르게 죽이고 나온다.”

“천지제 다섯 명으로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아무리 천지제 중에서도 실력이 좋은 사람만 모였다 해도 안 된다. 살생부에 적힌 인물만 해도 수십 명인데 황궁은 건물이 980채고 방이 8,707개다. 하룻밤 새에 금군과 고수들을 상대하면서 그 많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다.”

“알겠습니다. 천지제 다섯 중에서 세 명은 황궁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둘은 퇴궐하여 집으로 돌아간 관리들을 제거하겠습니다.”

조상백이 말하자 부항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는 꼭 죽여라. 황태자를 죽이면 뒤를 이을 만한 황자를 죽여라. 대부분의 황자는 각 성으로 내보내져 생을 마감하지만 나이가 어려 이곳에 있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크크큭. 황실의 씨를 멸하려는 것이군요. 명대로 하겠습니다.”

촤좌좌좍!

부항윤을 남기고 나머지 넷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스윽.

마지막으로 남은 부항윤도 살생부를 들어 올렸다.

그곳엔 꼭 죽여야 하는 인물의 이름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정1품 태사 설대섭. 요즘 업무가 밀려서 퇴궐을 못 한다고 했던가. 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놈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분명 그는 외조(外朝)의 태화전(太和殿)에 있을 터다.

천지제 중에서 막내에 해당하는 송두홍은 내정(內廷)의 동서 6궁으로 갔다.

황태자가 거하는 곳이었다.

‘송두홍은 막내지만 실력은 나 다음으로 좋다. 황태자는 그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또한 가능하다면, 서 6궁의 서쪽에 거처가 있는 황태후와 황태자비까지 죽여 버리면 더 좋고.’

훅.

소리를 내지 않고 신형을 날리는 부항윤의 눈길에 곳곳을 지키는 무인과 금군의 모습이 보였다.

나무와 황궁의 기와를 오가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였지만, 어째서인지 기묘한 느낌이 가슴 한곳을 파고들었다.

‘뭐지? 황실의 간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던 것보다 경계가 더 삼엄한데?’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황궁을 지킨다고 했는데 오늘은 다섯 명이 뭉쳐 다니고 있다.

게다가 겨우 삼 장 거리만 벌린 채 한 조씩 이동하면서 개미 한 마리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감시했다.

순간.

기와 위를 달리며 지상을 유심히 바라보던 부항윤은 서늘한 느낌에 흠칫하며 경공을 멈췄다.

‘황궁의 지붕에까지 감시하는 사람이 올라와 있다고?’

방심하고 있다가 하마터면 황궁을 지키는 무인과 눈이 마주칠 뻔해서 급히 몸을 숙였다.

구름이 밤하늘을 잔뜩 가린 날이기에 다행이었다.

부항윤은 어둠의 기운을 조용히 펼쳤다.

달빛조차 구름에 갇힌 날이니만큼 어둠에 동화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황궁의 지붕 위라 할지라도 방심하지 않고 기감을 펼치며 조용히 태화전으로 향했다.

그는 지붕에서 소리 없이 태화전의 작은 창문 하나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아직 일하는 중이군.’

불빛이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방 앞으로 간 부항윤은 기운을 귀로 집중했다.

방 안에서 나는 소리가 빠짐없이 그에게로 전달됐다.

“태사 어르신, 감숙성 난주(蘭州)에서 올라온 지원 요청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잠시 그대로 두게나. 난주에 지원을 해준 지 육 개월밖에 되지 않았네. 달라는 대로 지원을 계속하면 언제까지고 자립하지 못할 테니 다른 자생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네.”

태사라는 말이 귓가에 박혔다.

부항윤은 즉시 문을 열었다.

드르륵.

거칠게 열린 방 안에 있던 이십여 명의 관리가 낯선 사람의 등장에 일제히 하던 일을 멈췄다.

스릉.

두꺼운 종이 뭉치를 들고 있던 남자가 검날 보자마자 큰 목소리를 냈다.

“네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 커헉!”

“입을 열라고 허락한 기억은 없다.”

투툭.

관리의 목이 떨어졌다.

부항윤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이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다.

철컹!

들고 있는 검날이 살짝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방 안에 있는 기관 장치가 돌아가는 충격 때문에 떨린 것으로 생각한 부항윤이 고개를 돌렸다.

스르르릉.

방 안에 있던 벽이 돌아가면서 커다란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에서 열 명의 무인이 검을 뽑으며 나왔다.

“만년한철을 사용해 기감에 잡히지 않도록 만든 방인가.”

“감히 태사 어르신의 집무실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불경한 놈을 처리하기 위한 방이다.”

황실의 무공을 배운 초절정 고수 한 명과 절정 고수 아홉이 검을 들어 올렸다.

과연 황실이니만큼 초고수가 넘쳐흐를 정도로 많았다.

그 누구라도 등골이 서늘할 만큼 많은 고수를 앞두고 부항윤은 비웃음을 지었다.

“마치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행동이군.”

“그것은 네놈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저 죽기만 하면 될 뿐.”

“초절정 고수 하나에 절정 고수 아홉이라. 꽤 얕보인 모양이구나.”

후우우웅!

정적으로 가득 찬 방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공기가 갈라지는 고음의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기도 전.

카아아앙!

“커헉.”

“끄헉!”

초절정 고수부터 절정 고수까지 단 일검에 잘려 나갔다.

촤아아아악!

검붉은 피가 벽에 튀었다.

쌓인 서류도 젖어 들어가며 무너져 내렸다.

정1품 태사 설대섭은 자신의 뒤로 사람들을 물리고 앞으로 나섰다.

“나 하나면 되지 않나. 내 목숨만 거두고 나머지는 살려 주게.”

“꼴에 태사라고 밑에 놈들을 걱정하는 건가.”

“죄 없는 사람들을 죽게 둘 수는 없는 법이네.”

“벌레가 벌레를 걱정하다니 구역질이 나는군. 어차피 혈천회가 세상을 지배하면 죽을 놈들이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날이 조금 앞당겨진다 해서 서운하다고 하지는 말아라.”

“……!”

서걱. 쩌걱. 촤아아아악!

부항윤의 검날이 허공을 가르며 등불의 빛을 반사했다.

“커헉!”

태사의 육신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의 눈에는 수하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촤아아아악!

딱 한 명을 제외한 이십여 명의 관리가 사지를 절단당한 채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죽음을 맞이한 태사의 눈길이 원통한 듯 그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관리의 갈라진 몸통에서 장기가 쏟아져 나오는 끔찍한 광경.

그러나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아직 죽음을 인식하지 못했는지 목이 잘렸지만, 눈을 끔뻑이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도 움직이고 눈알을 굴리던 잘린 육신들은 이내 서서히 죽음이라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부항윤은 검으로 등불을 쳤다.

화르르륵.

쌓인 서류 더미에 불이 붙었다.

때를 같이하여 내정의 동서 6궁이 있는 방향에서도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아마도 송두홍이 황태자를 죽인 듯했다.

부항윤은 지금까지 살려 두고 있는, 딱 한 사람의 관리에게 다가갔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아니, 황실의 관리가 입는 옷이라서 그런지 제법 좋은 천으로 만들었다 싶어서.”

“그…… 그게 무슨 말……?!”

뚜두두둑.

부항윤의 손길이 거칠게 치솟아 관리의 목뼈를 으스러트렸다.

“커억!”

부항윤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재빨리 벗고 관리가 입던 관복으로 갈아입었다.

불길이 치솟은 방 안을 빠져나가 밖으로 나오니 이미 동 6궁의 경인궁(景仁宮)에서도 시뻘건 화염이 올라왔다.

세 번째 불길이었다.

‘순조롭군. 하지만 어쩐지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대비하고 있었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설마 그놈이 또…….’

잠시 천일영의 이름을 머리에 떠올렸던 부항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그놈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실을 공격하는 것을 어찌 예측할까.

화르르륵.

불길이 치솟아 태화전을 집어삼켰다.

급히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부항윤은 그들 틈에 섞여 들었다.

황궁에 사는 사람들이 수만 명이고, 관리들만 수천 명이다.

이 혼란이라면 관리의 옷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들킬 일은 없다.

‘정1품 태사는 죽였다. 나머지 정1품인 좌, 우 도독(都督)과 태부(太傅), 태보(太保), 종인부(宗人府)의 종령(宗令), 종정(宗正), 종인(宗人)까지 죽이려면 바쁘겠군.’

부항윤은 불길이 치솟는 사이로 외조의 중화전(中和殿)과 보화전(保和殿)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대명국의 세 번째 황제 영락제(永樂帝)가 만든 자금성(紫禁城)은 밤새 화염에 휩싸였고, 북경도 관리들의 집이 모두 전소될 정도로 화마에 집어삼켜졌다.

자금성의 삼 할이 잿더미가 되었다.

북경의 시내도 이 할이 불탔다.

곳곳에서 화염이 치솟고 시신이 타오르는 냄새가 역하게 풍겼으니, 자금성과 북경은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되었다.

* * *

“이런 미친놈!”

무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종남파에 온 천일영에게 지르는 고함이었다.

닭 다리를 입에 물고 술을 들이켜던 무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혈천회의 천자 놈과 붙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건만, 그새를 못 참고 죽도록 싸워?”

“그렇게 되었습니다.”

무진이 인상을 팍 구기며 술잔을 내려놓고는 병째 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크허. 천자 놈과 싸운 것도 모자라서 몸에 번개를 떨어트리고 양과 음의 기운을 섞기까지 했다고? 혈도를 거의 다 태우고 기도를 망가트리면서?”

“이기려면 그 방법뿐이었습니다.”

“이런 미친놈!”

상단전을 열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무진이 눈을 흘기며 천일영을 노려봤다.

살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게 기적이다.

“무식한 것도 정도가 있지.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먼. 그런데, 이 노인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의 일을 보고하자고 온 것은 아닐 테고.”

“무공이 정체되었습니다. 앞으로 나갈 길이 보이는 듯하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도움을 받아 볼까 하여 찾아왔습니다.”

“흐음, 혈천회의 천자 놈과 싸워서 살아 돌아올 정도면 무재는 인정해야겠지. 허나 탈마의 경지에 올랐으니 생사경과는 거리가 먼 몸. 마공의 끝이 탈마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무진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 사십이 되기도 전에 탈마의 경지에 올랐으면 말이 좋아 무재가 뛰어난 것이지, 실상은 천재라는 말도 아까울 지경이었으니까.

한동안 생각에 잠기며 술을 홀짝거리던 무진이 이내 천장을 바라보며 침음을 삼켰다.

“음……. 이런 일이라면 친구 놈에게 부탁하는 게 나을 것 같구먼. 나는 그냥 무공을 깨우치는 체질이라 원리를 설명하거나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잘 못 하지.”

“친구분이라 하심은 무진 어르신을 살리기 위해서 영약을 구하러 다녔다는 분 말입니까.”

“맞네. 그놈도 혈천회와의 싸움에서 나와 함께 지상에 남아 버린 신선 놈이지. 그라면 천마의 무공에 대해서 뭔가 실마리를 찾아 줄 것 같은데.”

탁!

무진이 자신의 무릎을 때리며 웃음을 지었다.

꿍꿍이가 가득한 얼굴.

천일영도 웃음을 지었다.

“혈천회가 그분에게 걸어 놓은 금제를 풀어 달라는 것이군요.”

“하하하. 역시 천마는 머리가 좋구먼. 그놈의 금제를 풀어 주면 내 친히 자네의 무공을 봐달라고 간청해 주지.”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언제 오시는지요.”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갔었는데 오늘쯤 올 거다.”

또 한 명의 신선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무진의 방문이 열리며 또 한 명의 신선이 때마침 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흐음? 자네가 왜 여기에?”

“어르신? 어르신이야말로 어째서 여기에 계시는 것입니까? 설마?”

당황하는 눈길이 서로 교차했다.

무진이 재미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둘이 아는 사이야?”

“이런 인연이…….”

천일영과 또 한 명의 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은 넓으면서도 좁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