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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51화 (252/270)

251화

수련을 앞두고 현기천과 함께 객잔에 들어선 천일영은 눈앞의 광경에 고개를 기울였다.

‘황태자가 죽을상을 하고 있고, 그것을 혜령이가 위로해 주고 있어? 이건 또 무슨…….’

예랑에게 엉덩이를 물어뜯겨 앉지도 못한 채 서 있는 황태자가 혜령을 안아 들고 있고, 혜령은 황태자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천일영은 즉시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남의 조카를 안고 뭐 하는 것이냐.”

“아니…… 내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모양인지 이 아이가 와서는 위로해 주더구나.”

“혜령이가?”

황태자와 혜령이 서로 마주 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삼촌, 이 오빠야가 슬픈 일이 있나 봐요. 그래서 힘내라고 말해 주고 있었어요. 또 오빠야가 저번에 내 손을 때리고 나쁜 말을 한 것에 대해서도 미안하고 말해 줬어요. 그래서 저도 예랑이 엉덩이를 물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기특하구나. 잘했다, 혜령아.”

“에헤헤. 삼촌하고 오빠야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으니까 저는 갈게요. 훈장님께서 내주신 숙제도 해야 하고요. 오빠야는 나중에 같이 놀아요.”

“하하하.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놀아 달라는 것이냐. 하지만 못 놀아 줄 것도 없지. 나중에 보자꾸나.”

“네! ‘꼭’이에요.”

황태자의 품에 안겨 있던 혜령이 집을 향해서 쪼르르 달려갔다.

곁에 있던 예랑도 황태자를 흘끔 보고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혜령의 뒤를 따랐다.

황태자는 예랑과 눈이 마주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맛있는 건가. 저놈, 내 엉덩이를 보고 갔다.”

“전에도 그냥 물기만 했을 뿐 살점을 뜯어내지는 않았다. 방금 입맛을 다신 건 예랑이 일부러 협박하고 간 거다. 헌데 너는 왜 죽을상을 하는 것이냐.”

“다름이 아니라 그대의 말대로 되었다. 황실에서 전서구가 왔는데 자금성의 삼 할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나도 그대가 저 늑대를 시켜 엉덩이를 물어뜯지 않았으면 북경으로 갔다가 죽었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어쨌든 황제와 황태후, 그리고 황태자비는 무사하지 않으냐.”

“그것을 그대가 어찌 아는가?”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 해서 대비하라고 황제께 전서구를 보냈었다. 서 6궁에 있는 황태후와 황태자비도 거처에 있지 말고 모두 황제의 곁에 있으라고 했지.”

“그럼 어마마마가 무사하신 게 그대의 덕분이라는 것인가!”

황태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자신도 급히 전서구를 날렸지만, 황제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인지 상세한 대처에 대해서는 편지에 쓰지 못했다.

‘황태자의 거처에서 내 대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죽었다. 황자의 거처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어마마마와 할마마마의 대역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으니, 그것까지 이 사람이 미리 준비시킨 것인가.’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황실의 사람들까지 죽지 않도록 해 줬다.

황태자는 황제를 제외하고는 절대 숙이지 않는 고개를 천일영 앞에서 조아렸다.

“고맙다. 평생에 걸친다 해도 못 갚을 만큼의 은혜를 입었다.”

“별거 아닌 일일 뿐, 네가 고개를 숙일 만한 일이 아니다. 겨우 편지 한 장 쓴 것뿐인데 이런 인사를 받아도 곤란하구나.”

“그 편지가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분들을 지켰다.”

천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이가 어려서 사리의 구별이 어설플 뿐 인품은 문제가 없다.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 대명국은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밥이라도 같이 먹지.”

“그러지. 은혜도 꼭 갚겠다.”

천일영은 연무장을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다가.

그 순간 문득 그 자리에 고정된 듯 섰다.

양미간이 찌푸려졌다.

조금 전의 광경이 머릿속에 떠오른 탓이었다.

‘잠깐, 아까 혜령이와 황태자가 너무 친해 보였는데?’

뭔가 기묘한 불안함이 가슴을 쿡쿡 찔렀다.

혜령이 아직 여섯 살이기는 하다.

‘하지만 황실에서는 육십이 넘은 황제가 열 살짜리 첩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정치적인 목적이 대부분이고 황제도 아이에 불과한 첩에게 손을 대지는 않지. 하지만 황태자는 나이가 아직 스물도 안 되었지?’

황태자와 혜령은 고작 열 살 조금 넘는 차이가 나는 나이다.

십 년 후에는 어찌 될지 모를 일.

게다가 다름 아닌 천일영 그 자신이 문제다.

황실에서 자신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후일 혜령에게 첩으로 황태자와 연을 이어 주자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혜령과 황태자가 친해지면 더욱 가능성이 커지지. 황태자가 직접 혜령을 간택할 수도 있으니.’

첩이 아니라 정실로 받아들인다 해도 싫은 일이다.

수많은 중상모략과 온갖 추악한 인간의 감정이 뒤엉키는 황실에 혜령을 던져 넣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천일영은 등을 돌려 황태자를 바라봤다.

“이번 일로 인해서 너를 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느꼈겠지. 이제 스스로 몸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몸을 지키는 것이라면 황실의 무공을 배운 것이 있다. 권법과 검술을 할 줄 안다.”

“그래 봐야 삼류 무인도 못 되지. 따라와라.”

천일영이 황태자의 뒷덜미를 잡았다.

“놔라! 어딜 가는 거냐.”

“중원 최고의 무인이 있는 곳이다. 그 사람에게 무공을 가르치라고 할 것이다.”

“어? 잠깐! 나는 배운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가르쳐 준다고 할 때 따라와라. 예랑을 불러서 물라고 하기 전에.”

“헙!”

어지간히 무서웠는지 황태자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마치 남궁무애가 울음을 터트리는 백유화를 끌고 가는 모습처럼, 천일영도 황태자를 끌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아예 혜령의 근처에 있는 시간조차 모조리 압수다. 이래서 황실하고 엮이는 게 싫었는데.’

혜령은 똑똑한 아이니만큼 황태자와 놀고 싶어도 수련을 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천일영은 황태자에게 무공 수련이라는 지옥문(地獄門)을 활짝 열어 줬다.

* * *

“울지 마! 이놈아!”

오랜만에 만난 건청이 눈물을 글썽이며 슬금슬금 다가오자, 현기천은 과거 객잔을 팔고 떠날 때와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하여간에 사내놈이 눈물은 많아서.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고.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난감해하던 현기천이지만, 건청이 내미는 손은 거절하지 않고 맞잡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보고 싶었던 놈이다.

“오랜만이구나.”

“뵙고 싶었습니다. 전에 주인 어르신께 은혜를 입었는데 갚기도 전에 훌쩍 떠나신 것이 마음에 걸렸었습니다.”

“하여간에 착해 빠진 놈.”

건청과 인사를 나누면서 현기천은 산 중턱에 만들어진 연무장의 모습에 제법 놀란 눈치를 보였다.

그 작은 객잔이 화려하게 변모한 것도 놀라웠는데.

‘산 중턱에 지어진 그럴듯한 집이며, 무공의 수련에 적절한 연무장까지 잘 만들어 놨구나.’

하지만 지금 사용하는 연무장만으로는 이제 부족해질 터다.

신선의 무공을 배우다 보면 아무리 훌륭한 연무장이라고 해도 금세 부서지고 날아가 버린다.

천일영은 그 때문에 황제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항주의 앞바다에 있는 일천사백 개의 섬 중에서 하나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허가를 요청한 것이다.

섬의 이름은 살문도(殺刎島).

그 이름대로 어부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는 불길한 곳이자, 길이가 오십 리에 폭이 사십 리에 달하는 커다란 섬이다.

무공의 수련으로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천일영이 모두에게 말했다.

“사용 허가가 나오면 모두가 섬으로 이동해서 수련한다.”

“공자님! 지금도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이제는 섬에 갇혀서 수련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다들 연무장이 무너져 내릴까 봐 적당히 힘을 쓰고 있지 않으냐.”

“그건 그런데……. 크윽, 망할 놈의 혈천회 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빨리 전부 죽여 버려야겠어.”

백유화가 이를 뽀득 갈았다.

덩치만큼이나 작은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귀엽게 울렸다.

“나도 오늘부터 너희와 같이 수련을 한다. 그러니 너무 불만을 품지는 말아라.”

“공자님이 수련을요?”

천일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곁에서 죽상을 하는 젊은 남자를 소개했다.

“인사하거라. 옆에 있는 사람은 황태자다. 대명국의 다음 황제가 될 분이지.”

“꺄하하하학! 공자님, 무슨 농담을 그렇게 재미있게 하십니까. 이런 놈이 황태자라니요. 아하하하하. 게다가 다음 황제? 꺌꺌꺌꺌…… 배 아파 죽겠네……. 하하…… 하……. 진짜예요?”

“진짜다.”

“아…… 망했네.”

황태자가 죽일 듯이 노려보자 백유화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고 자진해서 수련에 들어갔다.

매일 수련하기 싫다고 죽도록 도망 다녔는데.

‘아무리 백유화라고 해도 황제가 될 사람과 척지는 짓은 하려 들지 않겠지.’

천일영은 황태자를 남궁무애에게 건넸다.

“무공의 기초부터 부탁한다.”

“맡겨 줘. 황태자라면 자신의 몸을 지키는 무공 위주로 가르칠까?”

“아니, 완전히 처음부터 정석대로 가르치는 게 좋겠다. 황실의 무공도 훌륭하지만, 남궁세가의 무공만은 못하니까.”

“알았어. 그럼 혹독하게 가르치도록 하지.”

강제로 무공을 배우게 된 황태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눈길로 천일영과 남궁무애를 바라봤다.

근심과 걱정으로 한가득한 황태자에게 남궁무애는 상냥하고 친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안 죽어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몰골을 보니 죽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어머? 지금 스승인 저에게 반말하신 거예요? 무공 이전에 예절부터 배우셔야 하겠는데요?”

스르릉.

화극여월을 뽑으며 다시 한번 상큼한 웃음을 남궁무애가 지어 보이자, 황태자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가 아니라 알았습니다…….”

“말귀를 빨리 알아들으시는 분이시네요. 그럼 상으로 연무장을 백 바퀴 뛰는 것부터 시작할게요.”

“헉! 역시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

스르르릉.

“알겠습니다. 뛰겠습니다.”

황태자가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다.

‘나중에 두고 보자.’라는 말을 언뜻 한 것도 같았지만 남궁무애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중에는 두고 보는 게 아니라 감사하다고 말할 테니까.

서하린과 금채홍을 비롯하여 백유화와 천량도사, 도철용과 차경철이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감히 황태자에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남가은은 무서울 게 없는 건가?’

서하린은 몸서리를 쳤다.

확실히 남가은은 정파의 무공을 배운 사람이지만, 천마신교의 무공과 마공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무서운 사람이 무공을 가르치고 있기는 했어도 서하린의 얼굴에는 웃음이 지어졌다.

공자님과 함께 수련을 하게 되니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짓는 웃음이었다.

천일영은 황태자를 혜령으로부터 격리한 것을 확인하고는 현기천과 함께 연무장의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현기천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신선오계청금법(神仙悟界淸昑法). 신선 중에서도 팔선만이 사용하는 내공심법이네. 이것을 깨우친 자는 내공의 마름이 없고, 또한 천하에 모든 선기를 받아들이게 되니 그 어떠한 내공심법도 따를 수 없는 경지일세. 태고의 신선께서 만든 것이지.”

“선기를 받아들인다고 함은 태고의 신선이 피를 나눠 준 사람과 같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비슷하네. 다만 이것을 배우는 데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일세. 팔선 중에서도 제일이라는 나조차도 일 년이 지나고야 겨우 이치를 이해했지. 천마께서는 한번 본 무공을 모두 이해하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했으니, 삼 개월에 걸쳐서 깨달음을 얻어 보세.”

가부좌하고 앉은 현기천이 눈을 감고 조용히 내공심법을 시작했다.

시범을 보이기 위함이다.

호흡을 시작하자 산에서 흐르는 선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고, 그의 몸에서 내공이 순환되기 시작했다.

내공은 도교의 문파가 연마하는 것보다도 맑고 투명했으며, 주변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착각까지 들 정도의 청명함으로 가득했다.

그뿐일까.

청명함 속에는 천지를 부수며 바다를 가를 만큼이나 강한 예기가 깃들어 있었다.

‘이것을 천마가 빨리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데 큰일이구먼. 마공을 익혔던 사람이니 결이 전혀 다른 내공심법을 깨닫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꼬.’

깨우치는 데 일 년이 걸렸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식음을 전폐한 채 꼬박 매달렸다.

“후우.”

단전과 중단전 깊숙한 곳에서 내공을 갈무리한 현기천이 기운을 토하며 눈을 떴다.

“이제부터 내공심법의 이치를 가르칠 테니 잘 따라…… 응?”

현기천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 무슨 괴물 같은 인간인지.

‘한번 봤을 뿐인데 벌써 내공심법을 사용한다고? 그것도 완벽하게?’

천일영은 이미 눈을 감은 채 현기천과 똑같은 내공심법으로 선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도 안 차는 광경이다.

‘아니…… 그렇게 한 번에 따라 해 버리면 내가 뭐가 되는가. 일 년이 아니라 한 주일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걸!’

현기천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천마라고 하는 이 인간은 천재 중에서도 특출난 천재인, 아주 짜증 나는 부류라는 것을.

진짜 재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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