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촤라라라락!
변윤천이 있는 배에서 밧줄이 달린 갈고리 수십 개가 떠올랐다.
전통적인 수적의 싸움대로 배를 붙여서 건너오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휘이이잉. 투두두둑.
도현이 휘두르는 무극지검에 갈고리는 배에 닿지도 못하고 잘려 나갔다.
변윤천의 눈빛이 돌변했다.
단순히 도현이 갈고리에 매달린 밧줄을 끊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배에서 날린 밧줄도 모두 중간에 끊어져서 물속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요소령, 어디에서 제법 검 좀 쓴다는 놈들을 데려온 모양이군. 하지만 초절정 고수 정도가 되지 않고서야 이 쪽수를 이기지는 못한다. 여기는 땅이 아니라 물 위니까!’
수적에게는 수적의 싸움법이 따로 있다.
즉시 변윤천은 다음 작전을 명했다.
“불화살을 쏴라.”
“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미 준비하고 있던 불화살 수백 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황실에서 나온 전이재의 검이 풍압을 일으키며 화살을 날려 버렸다.
옆에 있던 보국장군 주장학 역시 화살을 허공으로 날려 버리며 배를 지켰다.
기름을 잔뜩 머금고 새빨간 불꽃을 태우던 화살은 역으로 변윤천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타다다닥! 타닥!
대부분은 물속에 떨어진 불화살이었지만, 일부는 변윤천이 거느리는 배에 떨어졌다.
불길이 치솟았다.
‘보통 놈들은 아닌 모양이군. 수백 개의 화살을 전부 날려 버리다니, 요소령이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가. 그래 봐야 초절정 고수가 아닌 다음에야 다음 공격을 막아 낼 수는 없다.’
변윤천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당당한 목소리로 외쳤다.
“불을 꺼라. 그리고 즉시 다음 공격으로 들어간다.”
“네!”
변윤천이 타고 있는 가장 큰 배의 좌, 우에는 각각 한 척씩 충돌용 배가 있었다.
선수에 귀하고 값비싼 오목(烏木 - 흑단 나무)을 대고 철판을 뾰족하게 둘러싸서 이 배로 들이받으면 웬만한 배들은 두 동강이 난다.
수적이 사용할 수 있는 최종 공격 수단이니만큼 변윤천이 따로 명령하지 않아도 좌, 우에 있던 배가 한 척씩 거친 물살을 밀어내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촤촤촤촥!
빠른 속도로 요소령에게 접근하는 두 척의 배를 보면서 변윤천은 웃음을 지었다.
여태 이 공격에서 살아남는 놈들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변윤천이 싸늘한 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허공에 두 개의 신형이 떠오는 것이 보였다.
변윤천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끔벅였다.
조금 전에 불화살을 모두 날려 버린 놈들이었다.
그 둘이 허공에서 시작되어 배로 떨어지는 검을 내리쳤다.
콰과과과과광!
두 척의 배가 일검에 세로로 쪼개졌다.
검강을 약 사 장 길이로 늘려서 배를 갈라 버리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수적들은 파양호의 깊은 물살에 빠진 채 허우적거렸다.
워낙에 물살이 센 곳이라 몇몇은 깊은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까지 했다.
변윤천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아직은 괜찮다. 초절정 고수가 아닌 다음에야……. 아니! 이게 아니라! 저놈들 초절정 고수잖아!’
도대체 저런 놈들이 왜 요소령과 같이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갔다.
잠시 얼이 빠져 한눈을 팔고 있던 사이.
변윤천은 느닷없는 서늘한 느낌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젠장! 어느새!”
요소령이 탄 배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처음부터 변윤천이 쓸 법한 작전을 토대로 계략을 짠 것임이 분명한 요소령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수공은 귀재지만 무기류에 약한 요소령과 거리를 벌리고 공격을 하면 필시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은 진작에 간파당했다는 것을.
타닥!
요소령이 변윤천의 배에 올라탔다.
“내가 말했지. 네놈은 대가리가 너무 나쁘다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수백의 수적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잊었느냐.”
“수백의 수적이 우리를 둘러싸? 어디에?”
“뭐?”
잠시 주변을 둘러본 변윤천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그새 다른 배들이 모두 요소령과 같이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 제압당하고 있던 것이다.
눈 몇 번 깜박일 만큼밖에 지나지 않은 찰나의 순간이다.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는 변윤천의 표정을 눈치채고 요소령이 친절하게 답을 알려 주었다.
“초절정 고수 넷에 일류 고수 이십 명이다. 이 정도의 무인이라면 하나의 성도 집어삼킬 수 있는 전력. 너 따위를 위해서 이런 고수들이 와 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초절정 고수가 네 명?!”
요소령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두 명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무공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니까.
사실 변윤천 정도는 요소령 혼자서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다만 이렇게 압도적인 힘을 보여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 슬슬 죽어라. 솔직히 그 못생긴 데다가 대가리 나빠 보이는 상판은 역겨워서 보기 힘들다.”
“나도 장강수로채의 채주. 만만하게 보다가는 큰코다칠 거다.”
스르르릉.
변윤천이 대도를 꺼내어 요소령에게 날리는 순간이었다.
콰직! 촤아아아악!
순식간에 대도를 든 손목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본 변윤천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느새 손목 구멍으로 솟아 나온 요소령의 손가락은 핏줄이며 근육을 뜯어내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파양호를 뒤덮었다.
요소령은 손목에 박힌 손가락을 빼내는 것과 동시에 변윤천의 멱살을 잡았다.
고통과 당황스러움에 멱살이 잡히는 것도 모른 채 끌려들어 온 변윤천의 허연 목이 보이는 순간.
뚜두두두둑!
요소령은 그대로 목을 통째로 물어서 뜯어내 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더럽게 맛없는 살점이네. 퉤!”
입 안 가득 물고 있던 목살을 뱉어 버린 요소령은 피를 뿜어내며 비명을 지르는 변윤천의 배를 수공으로 관통시켰다.
촤아아아악!
피 냄새가 물비린내와 섞여 사방으로 퍼졌다.
제압당해서 꼼짝도 못 하고 있던 수적들은 그 광경을 모두 지켜봤다.
압도적인 무공.
더 할 수 없는 광기.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채주는 오직 요소령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수백의 수적이 벌벌 떨다가 이내 하나씩 무릎을 꿇었다.
“채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채주님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변윤천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충성을 맹세한다면 용서 못 해 줄 것도 없지.”
뜯긴 목과 뻥 뚫린 배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변윤천의 신형을 들어 올린 요소령은 공포에 질린 수적들에게 나직한 목소리를 내었다.
“물고기 밥이 되고 싶으면 이렇게 반항해도 된다.”
“아닙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나 배에 구멍 뚫는 거 좋아하는데, 아쉽게 됐네.”
“히익!”
휘익!
요소령의 손에 의해 변윤천은 파양호로 던져졌다.
풍덩!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장강수로채 채주였던 변윤천의 시신이 붉은 피를 뿜으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금도 피가 쏟아지고 있는데, 거친 파양호의 물살이라면 반 각의 반 각도 안 되어 온몸의 피가 빠져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
그 모습은 반항하는 자의 상징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수적들은 뼈마디까지 공포를 느끼며 마음속 깊이 충성을 맹세했다.
“변윤천이 있던 수채로 안내해라.”
“네.”
요소령은 장강으로 돌아온 이후 한 번도 파양호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기에 빠른 속도로 배를 몰았다.
항주의 공자가 동정호를 조사하면서 반드시 파양호도 조사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로 다시 장강수로채의 주인이 된 요소령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파양호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 * *
변윤천의 수채로 가는 길.
도현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일부러 닦지 않는 요소령에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식인의 요소령이라고 불리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보니 실제로 사람을 물어뜯는 걸 주저하지 않던데, 소문대로 사람 고기를 먹기도 합니까?”
“안 먹어. 그냥 공포심을 주기 위해서 몇 번 목을 물어뜯은 게 과장되어 퍼진 소문이다.”
“역시 사람 고기는 일절 드시지 않는군요. 왠지 그럴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게 가끔…… 실수로 삼켜…….”
요소령이 난감하다는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사실 굉장히 비리고 맛이 없다는 말도 하려고 했는데 도현과 소초련의 얼굴을 보니 잘못 말하면 전부 토할 것 같은 얼굴이기에 입을 다물었다.
요소령 밑에서 변윤천과 오래 행동을 해 왔던 임우도는 실제로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봤었기에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았다.
새로이 충성을 맹세한 임우도가 토할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다 왔습니다. 저기입니다.”
“제법 잘 지은 수채군.”
뒤에는 빽빽한 수풀과 나무가 들어선 산이 버티고 있고, 물 위에는 안개가 적당히 끼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법한 위치에 지어진 수채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요소령의 얼굴에는 의문이 빛이 가득해졌다.
“저게 뭐지?”
“변윤천의 명령을 받아서 짓기는 했지만, 사실 용도는 모릅니다.”
잘못 대답했다가는 목이 물어뜯길 것 같아서 임우도는 고개를 움츠린 채 대답했다.
눈앞의 광경은 요소령과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기이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길이가 일백여 장에, 넓이가 사십여 장.
두께가 반 장 정도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이 물 위에 지어져 있었다.
아마도 수천 그루의 나무를 잘라서 몇 겹으로 대어 만든 것일 터다.
워낙에 큰 공간인지라 멀리에서 봤을 때는 물 위에 지어진 것인지도 몰라봤다.
그냥 물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뭔가 이 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유 없이 물 위에 이런 공간을 만들 리가 없지 않으냐.”
“변윤천이 갑자기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거금이 들어갔는데 그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임우도, 너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너희 둘은 가장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가?”
“그게, 당연히 물어봤습죠. 헌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에게까지 이유를 숨겼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가는 공간.
수적에게 왜 이러한 것이 필요한 것일까.
‘공자가 찾으라는 것이 이것인지도.’
요소령은 전이재와 이십 명의 일류 고수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항주로 가는 물길의 끝까지 간다. 너희는 변윤천을 따르던 자들을 무릎 꿇리고 이 구조물에 대한 것을 알아내거라.”
“알겠습니다.”
“혹여 말을 듣지 않는 놈들이 있으면 가죽을 벗기고 산 채 꼬챙이에 꿰어 전시하고.”
“네.”
배에서 전이재와 일류 고수들이 내리자 요소령은 다시 배를 몰아 항주를 향했다.
항주로 가는 물길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태어나서 이렇게나 기괴하고 불길한 느낌은 처음이라 요소령은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었다.
* * *
살문도에서 다시 수련을 시작한 지 열흘.
천일영은 신선의 검법인 제천백삼십검(劑千白三十劍)을 모두 익혔다.
이 무공은 일백삼십 초식 안에 세상의 모든 검법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그 때문에 천일영이 만든 검법인 소오비천(㔅悟飛天)과 섞어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뿐인가.
천마삼검(天魔三劍)과도 초식을 연결할 수 있고, 남궁세가의 검술이나 무당파의 검법과도 일맥상통했다.
제천백삼십검을 익혔다는 것은, 천일영이 세상의 모든 검법을 깨우쳤다는 것을 뜻했다.
과거 무진이 종남파에 처음 왔을 때, 종남의 무공을 알고 있는 이유였다.
그만큼 대단한 신선의 무공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현기천이 보기에도 천일영은 무섭도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하은월을 상대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
이유는 단 하나.
경지의 벽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한들, 전혀 성격이 다른 마교의 무공이 신선의 무공과 섞여 새로운 경지를 열 수는 없음인가.’
한탄이 흘러나왔다.
생사경의 경지로 가는 길이 안 보였다.
“후우.”
천일영은 수련하던 제천백삼십검의 마지막 초식을 갈무리하고, 설화여월과 화하여월을 검집에 꽂았다.
검법을 비롯하여 신선의 무공은 대부분 배웠다.
그로 인해 몇 가지의 길이 보였다.
이제부터 그것을 해 볼 생각이었던 천일영은 가부좌를 했다.
스르륵.
중단전으로 선기를 모았다.
맑고 투명하며 깨끗한 기운이 몸을 정화하고 독기를 배출시켰다.
하단전으로는 원래부터 천일영이 사용하던 기운을 모았다.
꼭 양이나 음의 기운일 필요는 없었다.
이 두 가지의 기운을 합쳐서 하나로 만든다.
천일영의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문제는 어디에서 기운을 합치는가다.
열렸다가 닫힌 상단전에서 기운이 섞여 몸 전체로 뻗어 나가는 게 맞다.
하지만 상단전은 지금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선기를 처음 받아들였을 때부터 천일영은 생각하고 있었다.
몸 전체가 상단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현기천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