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262화 (263/270)

262화

서무길은 천일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을 전부 말했습니다. 약속대로 살려 주십시오.”

“그런 약속을 했었지.”

서무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천마는 한번 한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으니까.

파바바밧.

하지만 약속 따위 상관도 없다는 듯, 천일영은 손가락을 들어 서무길의 혈도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기도와 단전도 부숴 버렸다.

퍼억!

“아아아아악!”

서무길은 순식간에 온몸이 꿰뚫린 채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천일영을 향해서 간절하고 비굴하기까지 한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살려 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크흐흑.”

“살려 준다. 약속은 지킨다.”

“그런데 어째서…….”

“서하린의 등에 상처가 많더군.”

“그건…….”

“게다가 내 조카와 여동생에게 손을 대려고 했지?”

“천마님의 조카와 여동생인지 모…… 몰랐습니다!”

서무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서무길의 간절한 표정과는 달리 천일영의 얼굴은 점점 굳어 갔다.

“아이에게 손을 대는 것도 모자라서 구하러 가는 하린이의 등에 칼질까지 했나? 또한 더는 검을 들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의 몸에 수없는 검을 날렸다. 그러고도 네놈이 무인이더냐! 절대로 너만큼은 용서 못 한다.”

“크윽!”

스으으윽.

천일영은 서무길의 몸에서 뽑아낸 독 중에서 일부를 다시 그의 몸으로 돌렸다.

독이 몸에 들어오자 미칠 듯한 고통이 서무길을 덮쳤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고통에 절로 비명이 터졌다.

“끄아아아악!”

“제법 고통스럽겠지.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독을 넣었으니까. 하지만 독 때문이 아니라 고통이 네 목숨을 천천히 갉아 먹을 것이다.”

“크으으윽. 제…… 제발!”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 끝도 없이 계속되지.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백유화의 곁에 서 있는 애영과 화영에게 천일영이 말했다.

“하루에 물 한 잔. 삼 일에 죽 한 그릇. 그것만 주면서 배고픔과 고통 속에서 살도록 해라. 죽으면 다시 살려내서 몇십 년 동안 고통 속에 발버둥 치도록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그런 것은 저희 전문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천일영은 몸을 돌려서 서무길이 자해하지 못하도록 턱뼈를 부숴 버렸다.

빠악!

으적!

“커허허헉.”

턱뼈는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으깨져 날아갔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천일영은 서무길의 손가락을 전부 부러트리고 다리뼈도 박살 내 버렸다.

뚜두두둑. 뚜둑.

“끄아아아아악!”

천일영은 애영과 화영에게 두 번째 명을 내렸다.

“손가락이 나으면 다시 부러트려라. 그리고 다리뼈도 마찬가지다. 시끄럽게 굴면 혓바닥을 반으로 갈라 버려라.”

“네, 혓바닥은 지금 처리하지요.”

“최소 이십 년. 그동안은 절대 죽게 해서는 안 된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스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애영과 화영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뿐으로 끝날까.

죽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해 줄 생각이었다.

천일영은 서무길과 눈을 마주하며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약속대로 살려 줬다.”

“크으으으윽! 차라리…… 주…… 죽여 주십시오…… 끄아아아악!”

“오래오래 살아라. 네가 한 짓을 되뇌면서.”

“끄아아악!”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는 비명을 뒤로한 채 천일영은 밖으로 나오면서 생각했다.

서무길에게 최고의 고통을 주는 것은 바로 서하린의 독이다.

타는 듯한 통증과 온몸이 마비될 정도의 고통이 쉬지 않고 엄습한다.

‘결국 저놈을 최종적으로 죽이는 것은 너다, 하린아.’

천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남궁무애와 백유화에게 말했다.

“나는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

“천마신교로 가시는 것 아닙니까? 같이 가시지요.”

백유화가 말하자 남궁무애도 앞으로 나섰다.

“나도 간다. 오랜만에 천마신교를 다시 한번 종속시키지.”

“다들 같은 생각이었나. 그렇다면 따라와라.”

그때였다.

등 뒤에서 울먹이는 목소리지만, 날카로움이 배어 있는 음성이 들려왔다.

금채홍의 목소리였다.

“저도 가요. 무조건 따라갈 거예요. 저를 데리고 가지 않으시면 평생 원망할 거예요.”

“따라오거라. 이제부터 천마신교에서 하린이에게 손을 댄 놈들을 전부 죽여 버린다.”

“네.”

천일영과 백유화, 남궁무애와 금채홍은 그 순간 마음을 먹었다.

서하린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을 멸살해 버리겠다고.

그것이 설마 천마신교 전체라 할지라도.

모든 세상이 손가락질한다 해도 절대 멈출 생각이 없었다.

* * *

천일영은 남궁무애와 백유화, 그리고 금채홍과 함께 귀천명의 천마신교 정문 앞에 섰다.

항주에서 이곳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반 시진.

서하린이 쓰던 검 수월여낙(水月曞掿)을 허리에 찬 천일영이 정문으로 다가갔다.

과거 무명암살대에 있다가 정문을 지키는 직책을 받은 강환수가 천일영을 가로막았다.

“너는 누구냐. 허락도 없이 천마신교의 정문으로 당당히 오다니, 간이 부었구나.”

“환수야,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있었느냐.”

“오랜만? 잠깐! 이 목소리는!”

강환수의 손이 벌벌 떨렸다.

천일영이 극마의 경지였을 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처음 만나는 것이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 잊으랴.

이 표정.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

강환수는 즉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천마님을 뵙습니다. 돌아가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역시 살아 계셨군요.”

“잠시 떠나 있었다.”

“즉시 정문을 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괜찮다. 내가 열겠다.”

천일영은 십오 장의 높이에 이르는 천마신교의 정문에 손바닥을 조용히 댔다.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손을 올렸을 뿐인데 거대한 문 전체가 가루가 되어 터져 나갔다.

그뿐인가.

지축을 뒤흔드는 진동에 강환수는 절정 고수임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이 무슨!’

엄청난 신위에 강환수는 놀라면서도 이내 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바로 천마님이시다!’

강환수는 정문을 지나는 천일영의 뒤에 따라붙었다.

“따르겠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구나. 너는 지금 천마신교의 본문에 있는 마왕들에게 전서구를 날려라.”

“마왕에게 말입니까? 뭐라고 적어서 날리면 되겠습니까.”

“한마디만 적으면 된다. 내가 돌아왔다고.”

천일영이 수월여낙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무섭고 서늘한 느낌을 주어 강환수는 오금이 저리는 가운데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바로 이것이 천마님이었으니까.

그동안 그토록 따르고 싶었던 진짜 천마님이었다.

* * *

천마신교의 본문으로 강환수가 보낸 전서구가 도착하고 일각도 안 되었는데 마왕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흑뇌마왕 마염지가 새파래진 얼굴로 말했다.

“천일영 그놈이 돌아왔다니! 인제 와서 무슨 이유로 돌아왔다는 말입니까. 설마 도현과 소초련에게 손을 댔다고? 아니면 서하린에게 자객을 보냈다고? 겨우 그런 이유로 돌아올 리가 없을 텐데! 그딴 사소한 일로 돌아올 리가 없는데 왜!”

“그것도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전서구보다 빨리 올 수 있는 탈마의 경지인데 왜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이것은 선전 포고입니다.”

사독마왕 갈현평이 침음을 삼키며 마염지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천검마왕 목천향은 오히려 웃음을 지었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새로이 천마가 되신 패범휘께서 천일영과 같은 탈마의 경지이십니다. 게다가 우리도 혈천회를 통해서 탈제명부음을 익히고 수많은 영혼을 먹어 치웠습니다. 천일영 따위 걱정할 것이 못 됩니다.”

목천향의 말에 패범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천마신교의 이만 명의 병력이 있고, 마왕들은 지금 당장 무림맹을 무릎 꿇릴 수 있는 실력이다. 무엇이 걱정인가. 천일영은 이만 명의 병력을 뚫기도 전에 죽는다.”

“하아아. 지금 당장 모든 병력을 모으겠습니다.”

마염지가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분명 천마인 패범휘의 말대로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래도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가.

‘천일영이다. 그 머리 좋은 그놈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돌아올 리가.’

마음속 한편에 불현듯 불길한 느낌이 퍼져나갔다.

마염지는 급히 패범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마님, 무명암살대 놈들부터 먹어 치우는 것이 어떻습니까. 천일영은 분명 무명암살대 놈들부터 자신의 수하로 되돌릴 것입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어차피 먹어 치우려던 놈들이다. 바로 놈들을 불러들여라.”

“네.”

마염지가 뛰어나갔다.

그는 수하들을 시켜 무명암살대를 불러들이라는 전서구를 날리라고 명을 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퍼엉!

커다란 소리와 함께 창밖에 거대한 섬광이 드리워졌다.

마염지는 그것을 보는 순간 이를 뿌득 갈았다.

분명 저것은 무명암살대가 쓰는 신호탄.

그것이 천마신교의 본문 안에서 터졌다.

신호탄이 의미하는 것이 어떤 뜻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천마와 마왕들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것이 분명했기에 마염지는 고함을 질렀다.

“지금 당장 십만대산으로 이만 명의 병력을 모두 집결시켜라!”

부들거리며 떨리는 손과 함께 마염지의 눈에서 핏발이 터졌다.

불길한 느낌이 맞아 가고 있었다.

* * *

천일영의 곁으로 한 사람씩 모여들었다.

천마신교의 본문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십만대산에 검은색 무복을 입은 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강환수가 입을 열었다.

“전서구를 두 개 날렸습니다. 하나는 천마신교 본문에 있는 무명암살대에게 즉시 모이라는 신호탄을 쏘라고 했습니다.”

“예전처럼 하나를 시키면 둘을 알아서 하는구나.”

“과찬이십니다.”

무명암살대의 대원들은 빠르게 모여들었다.

사사삭! 사삭!

소리도 없이 한 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수풀 속에서.

산 위에서.

과거 천일영이 가르친 그대로였다.

그들은 강환수에게 설명을 듣고 천일영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천 명의 무인들이 천일영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남궁무애와 백유화, 그리고 금채홍은 그 모습을 보며 묵묵히 걸었다.

감탄이 나올 만큼 잘 훈련된 자들이었지만 그것을 입에 담는 사람은 없었다.

다름 아닌 천일영 본인이 직접 가르친 자들이었다.

네 시진이 넘도록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걷고 있던 중에 마지막으로 달려온 무명암살대의 대원이 고개를 숙였다.

“오는 길에 확인했습니다. 십만대산의 끝자락. 천마신교의 본문에서 오십 리 떨어진 곳에 병력 이만 명이 모였습니다.”

“수고했다.”

“충.”

별도의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정찰까지 모두 마치고 온 무명암살대의 대원이 빠짐없이 모였다.

천일영은 천 명의 무명암살대 대원에게 말했다.

“살고 싶은 자들은 빠져도 좋다. 자유를 찾고 싶으면 그리해도 된다. 따르고 싶은 자들만 같이 간다.”

“…….”

천 명의 무명암살대 중에서 몸을 일으키는 자들은 없었다.

서로 어찌할까 눈치를 보는 자들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고개만 숙인 채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무명암살대에서 과거 9대대의 조장을 했던 천진문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저희의 목숨은 천마님의 것입니다. 마음대로 쓰십시오.”

그가 말하자 다른 천 명도 동시에 같은 목소리를 냈다.

“마음대로 쓰십시오.”

십만대산의 산자락에 천 명의 목소리가 울렸다.

천일영은 다시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그 순간 등 뒤에 있던 무명암살대 천 명이 각기의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정찰과 지형의 관찰.

그리고 적의 동향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그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었다.

곁에 있던 강환수도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천일영이 남궁무애와 백유화, 그리고 금채홍에게 말했다.

“이만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정도에 겁을 먹지는 않겠지?”

“조금 실망이네. 사만 명은 있어야 한번 해 볼 만할 텐데.”

남궁무애가 대답하자 백유화가 연이어 말했다.

“한 사람당 오천 명인가요? 별거 없네요.”

“하린 언니의 무덤에 놈들의 목을 바치겠어요.”

확신에 찬 금채홍의 대답까지 들은 천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이만 명이 모이도록 천천히 가는 것이다. 한 번에 처리하도록 하지.”

“모조리 죽이는 것 맞죠?”

백유화의 질문에 딱히 대답하지 않는 천일영이었다.

이만 명을 죽인다고 해서 서하린이 좋아한다면 얼마든지 그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천일영은 굳은 얼굴로 걸음을 재촉했다.

천마신교는 서하린의 고향이었다.

그녀의 고향에 뿌려지는 피는 배신과 음모로 속이 시커먼 자들이면 될 뿐.

다만 모여 있는 이만 명이 그런 사람들이라면.

눈앞의 어둠에만 홀려 자신의 의지도 없이 꼭두각시처럼 명령만 따르는 자들이라면.

‘마음껏 베어 버리도록 하지.’

천일영은 수월여낙을 꽉 쥐며 살기가 번들거리는 혈광을 띄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