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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64화 (265/270)

264화

이제는 마염지보다 더 다급해진 목천향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서 경계하던 무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길래! 무명암살대를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게! 이미 늦은 듯합니다.”

“늦었다니요!”

목천향이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자.

이미 성벽 아래를 타고 붉은색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명암살대는 대부분이 일류 고수와 이류 무인으로 결성된 집단. 절정 고수가 조장을 해 온 곳이다.

그런데 고작 삼류 무인들이 경계를 서고 순찰을 하는데 당해 낼 리가.

투툭. 투두두두둑.

성벽에서 무명암살대의 손에 처리된 삼류 무인들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허망하게 성벽이 점령당하는데도 기관 장치는 작동되지 않았다.

이미 상당수가 해체당해 버린 탓이다.

마왕들은 그것을 지켜보면서도 상황을 판단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문에 있는 이십여 개의 기관 장치가 해체되는 소리에 이어서 바로 굉음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기관 장치가 해체되자마자!”

“철로 만든 문과 두께가 이 장에 이르는 성벽이 터져서 날아간다고?”

굉음과 함께 충격으로 전각이 울리는 것을 버텨 낸 마염지가 뚫어지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바라봤다.

유유히 걸어 들어오는 신형 한 명.

그 호리호리한 몸을 보며 마염지는 입을 쩍 벌렸다.

“여자?”

분명 천일영 곁에 있는 여인 셋을 보기는 했었다.

그런데 천일영도 아닌 여인이 왜 이런 무공의 신위를?

때마침 고개를 든 남궁무애의 눈이 마염지와 마주쳤다.

“백 년 전보다 좀 튼튼해지기는 했는데 여전히 형편없네. 현경의 경지에 든 사람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게다가 뻔히 보여. 좁은 성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각개 격파하려고 했지?”

스윽.

남궁무애는 싸늘한 표정으로 마염지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흉내를 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이제 죽음만 남았다는 표시였다.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의 싸늘한 표정에 드러나는 분노를 알아차린 마염지는 벌벌 떨었다.

마왕의 체통도 소용없이 손발이 떨려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털썩.

모든 것을 파훼할 듯한 남궁무애의 서늘한 얼굴을 보며 오금이 저려 주저앉았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건드린 것이지?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것에 손을 대어 버린 것인가.’

마염지는 주저앉은 채 급히 남궁무애로부터 눈길을 돌려 버렸다.

눈빛만으로도 죽을 것만 같았다.

* * *

각개 격파는 불가능해졌다.

이미 성문으로부터 족히 사, 오 장은 되는 길이의 성벽이 무너졌다.

그뿐인가.

넓은 길이 뚫렸는데 아무도 본문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성문을 날려 버린 여인을 빼고는.

병법으로써 할 수 있는 방법이 더는 없었다.

그것이 마염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절망이 그를 감싸게 했다.

무혈입성(無血入城).

천일영이 여기까지 오는 데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정확히는 무혈입성이라기보다는 긁힌 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게 들어왔다는 것이 마왕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그때였다.

천검마왕의 수하 최태룡이 방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각 가문의 무인 이천오백 명이 집결했습니다.”

“하아! 때를 맞췄구나. 정말로 다행이다.”

마염지는 절로 나오는 한숨에 안도의 기운이 섞이는 것을 느꼈다.

겨우 천일영이 본문으로 들어오기 전에 진형이 갖춰진 모양이었다.

각 가문에서 거느리는 무인은 천일영의 등 뒤에 있는 이만 명과는 달랐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집중적으로 무공 수련을 한 것뿐만 아니라 진법의 훈련도 철저히 받은 자들이었다.

또한 대부분이 일류 고수와 이류 무인으로 구성이 돼 있어서 무명암살대와 붙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전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혈천회에서 가르쳐 준 특별한 무공을 모두가 익혔다.

천검마왕 목천향이 그의 검 암룡칠검(暗龍㓼劍)을 들어 올렸다.

“제가 직접 나가지요.”

“천검마왕님이 직접 나가시다니 정말로 든든합니다.”

마염지가 추켜세우는 소리에 목천향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탈제명부음의 무공은 초절정 고수인 자신을 극마 이상의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생각이 통했는지 사독마왕 갈현평도 앞으로 나섰다.

“같이 가지. 새로운 독을 만들었으니 시험하기에는 딱 좋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독마왕님이 독으로 천일영과 같이 온 사람들을 막아 주십시오.”

“천검마왕께서 그동안 천일영을 상대하면 되겠군. 전체적인 진형은 흑뇌마왕 마염지께 부탁드리지.”

마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탈마입니다. 시간 끌지 말고 단번에 처리해야 합니다.”

“계획을 말해 보시지요.”

빠르게 설명이 시작되자, 갈현평과 목천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확실히 이길 수 있는 한 수였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수하들의 희생은 계획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신경 쓸 것도 없었다.

망설일 것이 없는 그들은 즉시 대답했다.

“합시다.”

갈현평과 목천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목천향이 이천오백의 무인 중에서 자신의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천검 진형 이십오 식 중에서 세 번째 진형인 추형진(錐形陣)을 취하라!”

“네!”

천검 가문의 무인 천 명이 백 명씩 나눠서 열 개의 쐐기형 진형을 만들었다.

갈현평이 뒤를 이어 사독 가문의 무인들에게 명령했다.

“천검 가문의 뒤로 위곡진을 만들어라.”

“네!”

빠르게 무인이 움직이고 난 후 마염지는 진법의 형태가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천 명이 만든 열 개의 추형진으로 이루어진 진법의 뒤로 다른 천 명이 둥글게 감싸는 형태가 되었다.

마염지는 자신이 거느리는 무인 오백 명에게 말했다.

“각 이백오십 명씩 나눠 양옆으로 위직진을 만들어라.”

“네!”

완전한 진형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훈련받은 대로 그들은 눈 세 번 깜박일 시간 만에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것은 언뜻 보기에 공격과 방어가 모두 가능한 진형인 것처럼 보였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정상적인 진형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던 남궁무애가 혀를 찼다.

“쯧. 무슨 짓을 하나 하고 보고 있었더니만.”

“수하들을 전부 다 죽이려는 생각인가. 하지만 상관없다. 하린이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자들로부터 명령을 받는 놈조차 모두 멸살한다.”

어느새 남궁무애의 옆으로 다가온 천일영이 계략을 준비하는 마염지를 보며 말했다.

“독에 대한 대비는 괜찮은 것이냐.”

“나는 괜찮아. 채홍이와 유화에게 피하라고 했어? 무명암살대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최종적으로는 사독마왕이 독을 뿌릴 테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천일영은 위에서부터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다.

천마신교의 총본산 가장 위층.

천마의 방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지고 있었다.

패범휘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실력을 가늠하고 있을 터다.

‘정신이 혼미해져 사지 분간 못 했던 전 천마조차도 수하가 위험하면 가장 앞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거늘. 패범휘 너만큼은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이때 마염지로부터 큰 목소리가 터졌다.

“천검 가문은 진형을 유지한 채 일제히 공격하라!”

“네!”

쐐기형은 일방적인 공격의 진형이지만, 오직 이 진형만으로 공격하는 병법은 없었다.

주변에 방어를 위한 진형이 같이 움직인다.

이것이 제대로 된 전체적인 진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천일영과 남궁무애의 앞으로 거침없이 다가왔다.

천일영과 거친 기세의 천검 가문의 무인들이 부딪히려는 순간.

마염지의 두 번째 명령이 떨어졌다.

“탈제명부음 폭화(暴化)를 시행하라!”

“네!”

천 명의 무인들은 일제히 단전 깊은 곳에서 순식간에 기운을 뽑아냈다.

이것은 영혼을 빨아들여 사용하는 탈제명부음과는 엄연히 달랐다.

자신의 선천진기를 태워서 순간적으로 기운을 뽑아내는 것.

이류 무인이 내공 일 갑자, 일류 고수가 내공 이 갑자를 뽑아낸다.

육십 년 치의 내공이 몸속에서 꿈틀거리니 무인들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각도 채 되지 못해서 죽을 운명인 것도 모르고.

하지만 마염지는 냉혹한 표정으로 세 번째 명령을 내렸다.

“탈제명부음 연이운식(聯移運式)을 실행하라!”

백 명씩 열 개로 쪼개진 천 명의 무인은 서로의 어깨를 잡고 기운을 옮기기 시작했다.

스으으윽!

뒤에서 쐐기 진형의 앞으로 기운이 점점 옮겨지며 강대해지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을 통하는 동안 기운의 손실이 있기는 해도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구십구 명이 기운을 나눠 주고,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일백 갑자에 이르는 내공을 일시적으로 얻게 된다.

이를 위한 쐐기형의 진형이었다.

쿠우우우웅!

가장 앞서 있는 무인이 기운을 받자 땅이 갈라지고 성벽이 흔들렸다.

마염지의 눈빛이 이겼다는 확신으로 물들었다.

“죽여라!”

기운을 받은 열 명의 무인들이 천일영과 남궁무애를 향해 튀어 나갔다.

그들은 장권으로 일백 갑자의 내공을 때려 박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지축이 흔들리는 거대한 충격과 함께 흙먼지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심지어 흙먼지조차 사람의 살을 베어 낼 만큼 강하게 밀려났으니.

슈아아아악!

주변을 가득 메웠던 흙먼지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 순간.

마염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이런 미친!”

천일영은 단지 손바닥 하나로 그 모든 힘을 받아 내고 있었다.

총 일백 갑자의 내공을 몸에 담았던 열 명의 무인들이 강대한 기운을 사용한 대가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쿨럭! 쿠액!”

마염지의 낯빛이 새파래졌다.

일백 갑자의 기운을 담은 열 명의 무인들의 장권이 천일영에게 닿지도 못했다.

얇은 막 같은 것이 천일영과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선기로 만들어 낸 금강강기.

이것을 밖으로 펼쳐서 탈제명부음의 힘을 막아 낸 천일영이 말했다.

“기이한 내공법이구나. 혈천회에서 이런 것까지 배워야만 했나?”

“어…… 어찌 혈천회를 아는…….”

왜 저놈이 혈천회를 알지?

하지만 마염지는 말을 하던 중에 입을 다물었다.

천일영이 혈천회를 어찌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믿었던 탈제명부음 연이운식이 실패했다.

“젠장! 흑뇌 가문의 무인들은 모두 탈제명부음 폭화를 하고 일제히 공격하라! 이미 폭화의 기운을 쓰고 있는 천검 가문의 무인들은 추형진을 유지한 채 틈을 파고들어라!”

“네!”

열 명이 빠진 구백구십 명은 쐐기형 진형을 유지한 채 천일영과 남궁무애의 정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양옆에서 위직진의 진형을 유지하고 있는 오백 명의 무인도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마염지는 진형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명령을 내리는 가운데 생각했다.

‘일 갑자의 내공이면 절정 고수의 수준이다. 이 갑자라면 초절정 고수의 내공이다. 이런 무인이 일천오백 명. 제아무리 탈마라고 해도 당해 낼 리가 없다!’

비록 천검 가문의 무인은 앞으로 일각밖에는 살지 못하고, 자신이 거느린 무인도 이각 후에는 모두 죽을 테지만.

“위직진의 진형을 위곡진으로 바꾸며 둥글게 감싸라! 쐐기형 진형은 일제히 덤비지 말고 세 개씩 들어가라!”

“네!”

진법이야말로 한참을 강대한 적을 상대로 이기는 방법이다.

제아무리 절대 고수라고 해도.

순간.

세 개의 추형진으로 천일영의 정면으로 향했는데.

쿠우우웅!

촤아아아악!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이백구십칠 명의 목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겨우 검을 휘두를 뿐인데 저런 충격음이 나는가!’

그때 마염지의 눈에 천일영의 검이 선명하게 보였다.

거칠게 무인들의 목을 날려 버리는 검은 분명 독천마왕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

‘저 검을 왜 천일영이? 설마 서하린이 죽은 것인가! 그래서 복수하려고 이곳에 온 것인 모양이군. 겨우 그딴 년 하나 죽었다고! 그 무른 성격이 너를 죽게 할 것이다.’

책사이자 병법가인 마염지는 문득 천일영의 성격을 떠올리고, 내공이 일 갑자에서 이 갑자에 이르는 무인이 일검에 죽고 있는 상황에서도 더욱 거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위곡진의 무인들은 더욱 압박하라! 그리고 또 다른 쐐기형의 무인들은 일제히 공격하라!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네!”

마염지는 명령을 내리는 순간 갈현평을 바라보았다.

이제 얼마 후면 선천진기가 모두 타 버려서 죽게 될 무인들.

이들이 죽기 전에 천일영의 무른 성격을 찌른다.

마염지는 갈현평에게 눈짓을 했다.

그리고 이내 뜻을 알아들은 갈현평이 광기가 서린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천일영의 무른 성격을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마염지뿐만이 아니라 갈현평도 똑같이 하는 생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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