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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66화 (267/270)

266화

깊게 베인 얼굴에서 피가 튀자 패범휘는 인상을 구겼다.

탈제명부음으로 상처는 금세 나을 테지만, 천마의 얼굴에 상처가 난다는 것은 실력이 모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감히 이런 모멸감을 주다니!’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분노가 뒤섞이며 패범휘가 검을 뽑는 순간.

촤아아아악!

사선으로 베인 얼굴의 반대로, 또 다른 사선의 깊은 상처가 생겼다.

마치 흉(凶) 자 같은 모양으로 베인 상처가 얼굴을 가득 메우자 패범휘는 그제야 눈치챘다.

“네놈! 일부러 얼굴에 상처를 내는 것이냐.”

“너에게는 이런 얼굴이 어울린다.”

쿠우웅!

패범휘가 혈도에 자리 잡은 영혼을 태우며 끌어 올리는 내공이 오십 갑자를 넘어 육십 갑자가 되고, 이내 칠십 갑자에 도달하여 천일영의 목을 향해서 검을 날렸다.

쿠궁. 쿠구구구궁.

검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내는 충격음이 천마신교 본문을 뒤흔들었다.

자신 있는 얼굴로 검날을 날린 채 천일영을 집요하게 노리던 패범휘는 내공을 더더욱 끌어 올렸다.

‘내공 칠십 갑자로 공격하는데!’

공격이 통하기는커녕 천일영이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순간.

피비비빗.

촤아아악.

수십 개의 상처가 자신의 몸에 그어지는 것을 본 패범휘의 얼굴이 돌변했다.

“겨우 이따위 실력이었나. 이런 주제에 잘도 하린이에게 손을 대었군. 됐다. 이제 볼 만큼 봤다.”

“천일영! 네놈이!”

악에 받친 패범휘가 고함을 지르며 내공을 더욱 끌어 올리려는데.

콰아아아아앙!

눈치를 채지도 못하는 사이 자신의 가슴팍에 느껴지는 거대한 충격에 패범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분명 내공에서 압도해야 하는데, 방금 맞은 장권은 그것을 한참 상회하는 것이었다.

‘자전탄기가 이렇게 허망하게 부서지다니!’

패범휘의 신형이 일직선으로 허공에서 땅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쿠우우웅.

“커헉!”

“탈마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대단해진 줄 알았는데 예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구나. 역시 너는 높은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땅바닥을 기는 정도가 딱 어울리는구나.”

입에서 피가 터지는 와중에도 패범휘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슈우우욱.

방금 맞은 장권 때문인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에서는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너무 커다란 충격을 받아서 느끼지 못했는데 갈비뼈가 전부 부러져서 몸이 치료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패범휘는 급히 가문의 보검인 환악패검(漶鍔敗劍)을 날렸다.

하지만 천일영이 더 빨랐다.

패범휘는 천일영의 검이 날아오는 것도 느끼지 못했으니.

촤아아악!

몸의 한가운데를 머리부터 사타구니가 있는 곳까지 깨끗하게 베여 나갔다.

살이 벌어지고 피가 튀었다.

“크아아아악!”

“하린이가 몸의 가운데를 길게 베였지. 많이 고통스러웠을 거다.”

“네놈!”

촤아아악!

다음은 팔꿈치부터 손까지 딱 반으로 갈라져 나갔다.

“끄아아악!”

“아직 멀었다. 하린이의 고통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다시 한번 흰 연기가 뿜어지며 몸이 아물기 시작하자, 천일영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파앙!

빠르게 튀어 나간 신형이 장권을 때려 박듯 패범휘의 가슴 위로 날아갔다.

그리고 심장이 있는 곳에 손이 맞닿는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흘렀다.

“반혼귀천(反魂歸天).”

투두두두둑!

거대한 선기와 함께 청명한 기운이 순식간에 패범휘의 몸을 장악하고, 온몸이 비틀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이내 혈도에 강제로 잡혀 있는 영혼이 하나씩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슈아아아악!

육신이 없는 영혼은 자신들이 가고 싶은 대로 마음껏 패범휘의 몸을 통과하여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

스으으윽.

영혼들이 바로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자신의 몸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보고는 천일영은 고개를 툭 떨궜다.

마치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미련은 모두 내가 떠맡으마. 그러니 편한 마음으로 떠나라.”

영혼은 천일영의 말을 알아들은 듯 두세 번 천일영의 곁을 돌며 머물다가 하나씩 하늘을 향했다.

초월경에 이르게 되어 영혼을 해방할 방도가 보이자 천일영이 만든 반혼귀천은 오직 탈제명부음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데는 사용할 방도가 없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해방된 영혼을 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고개가 끄덕여졌다.

반혼귀천을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천 개의 영혼이 빙글빙글 돌며 하늘로 올라가는 동안, 처절한 비명이 옆에서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악!”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이 제법 괴롭나 보군.”

패범휘는 강제로 뒤틀린 혈도에서 영혼이 빠져나가자, 몸을 비틀며 괴성을 질렀다.

천일영은 서하린의 검 수월여낙을 들어 올려 비명을 지르는 패범휘의 얼굴에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서어어억!

죄인의 낙인인 듯.

혹은 천마의 자격이 없다는 증표인 듯.

거친 상처에서 흐르는 붉은 피가 얼굴을 뒤덮자, 패범휘는 정신을 차리고 강제로 비틀린 혈도를 되돌리며 몸을 일으켰다.

“크윽!”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네놈은 이제부터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야 하니까.”

“천일영! 네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어째서 탈제명부음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냐! 분명 네놈은 같은 탈제명부음을 사용하는 하은월에게 죽었어야 할 터인데!”

천일영이 천마신교로 돌아왔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분명 죽었어야 하는 사람이 살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천일영은 패범휘가 궁금해하는 것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곧 죽을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

“놈!”

악에 받친 패범휘가 환악패검을 날렸다.

탈제명부음이 없어도 탈마의 경지다.

하지만.

땡그랑!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환악패검의 울림이 패범휘의 이마에 식은땀을 흐르게 했다.

‘어째서? 왜 검이 땅에 있지?’

고개를 돌려 환악패검을 보던 패범휘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검 손잡이에 자신의 손이 있었으니까.

조금 전 탈제명부음으로 갈라졌다가 붙은 손을 내뻗었다.

“……?!”

그러나 잡히지 않는 검.

패범휘는 자신의 손을 보며 침을 삼켰다.

어느새 나았던 손은 다시 팔꿈치부터 손바닥까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촤아아악!

피가 터져 나왔다.

놀란 눈으로 패범휘가 천일영을 바라보는 순간.

싸늘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파고들었다.

“바닥을 기지 않고 언제까지 서 있을 것인가.”

“뭐라고……?”

순간 패범휘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무릎 아래가 사선으로 베어져 신형이 기울어 쓰러진 것이었다.

“커헉! 네놈, 무슨 짓을!”

“말은 됐다.”

콰지지지직!

패범휘의 등으로 검이 내리쳐졌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온 힘을 다해서 자전탄기로 몸을 둘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검날은 가차 없이 등을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악! 쓰러진 사람의 등을 공격하다니! 무인의 수치가 아니냐!”

“하린이가 당한 것을 그대로 돌려줄 뿐이다.”

패범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집요하게 천일영이 공격하는 곳은 아마도 서하린이 다친 곳인가?’

서하린이 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끝도 죽음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패범휘가 천일영을 향해 비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잠깐! 내가 잘못했다. 서하린을 죽게 만든 것은 사과하마. 천마신교의 천마로서 내 잘못을 공표할 테니 이제 그만하거라!”

“목숨을 구걸하다니, 그것이야말로 네 말대로 무인의 수치가 아니더냐.”

“무인의 수치가 아니다. 잘못된 것을 되돌리려는 것뿐이다.”

“하린이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뭐?!”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소중히 지키다 죽었다. 너 따위보다 훨씬 천마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그 아이였다.”

“……!”

콰지지지직!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천일영의 손길에는 자비라고는 없었다.

“끄아아아아악!”

패범휘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고통에 찬 비명은 이내 신음으로 바뀌었고.

이후로는 흐느낌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천일영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서하린이 받은 고통에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천일영은 패범휘의 몸에서 피와 살을 계속해서 뽑아냈다.

퍽! 퍽! 퍼버벅! 촤아아악!

섬뜩한 소리가 천마신교의 본문 안을 메웠다.

* * *

목천향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단 한 수조차 통하지 않았다.

아니, 검 끝 한 번을 여인에게 스치지도 못했다.

탈제명부음으로 내공을 끌어 올려도 소용없었고, 천검 가문의 검술은 보이는 즉시 파훼당했다.

하지만 그 정도뿐이라면 억울하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터다.

여인은 혈도를 하나씩 찔러 들어오며 영혼을 해방했다.

그것도 혈도를 따라 영혼이 움직이는 길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정해진 순서대로 몸을 찌르는 것 같았다.

부서진 혈도는 언제나 보아 오던 흰색의 연기를 뿜어내지 않은 채 고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목천향은 혈도의 수대로 온몸에 365개의 구멍이 뚫린 채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흐르는 피가 웅덩이를 만들고, 그 위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헉. 헉. 네년은 뭐냐. 어째서 천마신교의 마왕인 나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이냐.”

“나? 내 이름은 남궁무애. 백 년 전에 천마신교를 종속시켰던 여자야.”

“현경에 오른 그 남궁무애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단 말인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몸이라.”

남궁무애의 말에 목천향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몸이라니?

‘생사경의 경지에 든 것인가? 현경이라면 오래 살기는 해도 죽을 텐데. 환골탈태를 겪었다 해도 저 외모는 너무 젊다.’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박살 나고 혈도도 존재하지 않는 몸이 되었는데도 궁금증이 들어 목천향이 입을 열려고 할 때.

갑자기 남궁무애가 얼굴을 들이밀며 웃음을 지었다.

“천검마왕이라고 했지? 너 대단하네. 검을 섞기 전엔 몰랐는데 진짜 대단해.”

“크하핫. 대단하다?”

무인으로서 인정해 준다는 말이다.

비록 졌지만, 목천향은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으로 웃음을 지었다.

남궁무애도 패배했지만 시원스럽게 웃음을 짓는 목천향을 따라 미소를 지었다.

“응, 대단해. 어떻게 이따위 실력으로 마왕을 한 거야? 너 진짜 천마신교에서 대단한 사람 맞아? 이런 실력으로 뒤에서 공자 뒤통수칠 궁리만 했다니 믿기지 않네.”

“뭐…… 뭐라고? 네년! 감히 그따위 말을!”

“솔직히 하린이하고 너하고 맞붙었으면 하린이가 이겼어. 같은 마왕인데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이야.”

처참할 정도로 모멸에 가득한 눈빛을 한 채 목천향을 바라보던 남궁무애가 고개를 돌렸다.

쓰레기는 아무리 봐야 쓰레기일 뿐인 듯한 표정이다.

새로이 돌린 시선 끝에 걸린 것은 백유화와 금채홍.

그 둘도 이미 갈현평과 마염지를 처참하게 땅을 기도록 만들고 있었다.

마염지는 손가락이 잘려 나간 채 땅을 뒹굴었고, 갈현평은 강선으로 온몸의 혈도가 뚫린 채 피를 토했다.

하지만 남궁무애는 그 장면을 담담히 지켜볼 뿐이었다.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진정한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다.

* * *

다음 날.

뜻밖에도 마염지와 목천향, 그리고 갈현평과 패범휘는 천일영에게 패배한 이후에도 죽음을 면한 채 숨을 쉬고 있었다.

“크윽!”

“헉. 헉. 주…… 죽여 줘.”

네 명의 마왕은 가죽이 전부 벗겨져 속살이 드러난 채로 나무 기둥에 묶여서 거친 숨을 토했다.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는 속살은 바람이 불기만 해도 미칠 듯이 아팠고, 나뭇잎이 떨어져 닿을 때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큰 고통을 줬다.

그런데 지금.

피 냄새가 불러들였는지 각종 육식 곤충이 몸에 달라붙어 몸속을 파고들었고, 심지어는 새까지 날아와서 살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아아아악. 이 개 놈의 새끼들아! 나는 천마란 말이다. 어서 이것을 풀지 못할까!”

고통에 찬 비명이 가득 울려 퍼지는데도.

심지어 마왕과 천마였던 사람들이 소리치는데도 천마신교의 사람들은 무심하게 그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경멸에 가득 찬 눈빛이 심장을 꿰뚫듯 스쳐 지나가고, 그것은 진정한 천마가 돌아와서 천마신교를 파먹던 죄악을 처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천일영은 어젯밤 천마신교의 천마로 돌아왔다.

정식으로 천마신교를 통해 중원에 공표되었고, 이 소식은 중원을 발칵 뒤집었다.

죽었다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마왕과 새롭게 천마가 되었던 패범휘가 중원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천마신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천인공노할 만큼의 큰 사건이었다.

그러니 기둥에 묶여 있는 네 명의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없었다.

겨우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고통을 참고 있는 패범휘의 흐린 시선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인 것은 팔 하나가 개미 떼에 파먹혔을 때쯤이었다.

“많이 고통스러운가.”

“누…… 누구냐…….”

“천마인 천일영이다.”

“크윽! 개X끼. 뭐냐. 비웃으러 온 것이냐.”

“벌을 주려고 온 것이다.”

“벌? 지금 받는 이것이 벌이 아니냐.”

“겨우 이 정도로 벌?”

천일영의 말끝에 숨은 뜻이 무엇인지 패범휘는 금방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벌.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잠시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르는 순간.

패범휘의 미칠 듯한 비명이 천마신교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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