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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67화 (268/270)

267화

그 누가 천일영이 무르다고 했는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입을 다물어 버리게 할 만큼이나 잔혹한 일이었다.

촤아아악!

목이 떨어져 나갔다.

피가 뿜어지는 시신의 뒤로 새로운 사람이 끌려 나왔다.

“사…… 살려 주세요!”

“천마를 능멸하고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죄다. 가족과 삼대가 멸살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을.”

“제발…… 커억!”

서거거걱.

또 하나의 목이 떨어졌다.

패범휘를 포함한 마왕 가문의 식솔들과 친척들은 포박당한 채 목이 잘려 나갔다.

“크아아아악! 천일영, 네놈!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잔학한 놈아! 어찌 이런 일을 하는 것이냐!”

나무 기둥에 묶인 네 명의 마왕들은 절규를 토했다.

그의 가족들이, 그들이 보는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었으니까.

피눈물을 흘리면서 그 광경을 모조리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싶어도 가죽을 벗겨 낼 때 눈꺼풀까지 모조리 잘라 버리는 바람에 뜬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근육을 모조리 끊어 버린 바람에 강제로 볼 수밖에 없었다.

차례대로 친척들이 죽은 이후, 패범휘의 아들 패왕각이 끌려 나왔다.

패범휘가 눈이 반쯤 돌아간 채 부르짖었다.

“아들아! 아들아! 천일영! 제발 내 아들만큼은! 제발!”

“아버님!”

촤아아악!

툭.

이야기를 나눌 만큼의 시간도 허용하지 않았다.

패범휘는 잘린 아들의 목을 바라보며 정신이 나갔다.

그것은 다른 마왕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잔혹한 처형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삼대를 비롯한 마왕들과 연관이 있는 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총 일천삼백여 명.

그중에서 천일영은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차경철의 가족은 제외했다.

‘그 녀석을 데려오지 않은 것은 이것 때문이었지.’

패범휘와 친척 관계인 차경철에게 이 모든 것은 지나치게 잔혹한 일이었다.

아마도 차경철은 이 일을 예상하였을 것이다.

알면서도 말리지 않고 묵묵히 있었던 그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분명 미칠 것 같은 심경이었을 텐데 그놈은 따라오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천일영은 고개를 가로젓고 천 명이 넘게 쌓인 시신을 바라봤다.

이 시신들은 마왕들이 벌레에 뜯어 먹히고, 굶어서 죽을 때까지 그들 앞에 그대로 둘 것이었다.

사람들은 잔혹하다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역시 나는 무르구나. 처음 천마신교에 왔을 때는 모조리 전부 다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존재해서는 안 될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만 명의 무인들을 보았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죄라고는 명령에 따른 것밖에 없는 사람들.

과거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천마신교를 떠났을 때를 생각하니 차마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천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드는 후회가 천일영의 가슴을 찔렀다.

‘내가 처음 천마가 되었을 때 이랬어야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랬다면 하린이도 살았을 테고, 독천마왕 서가흔도 죽지 않았겠지. 그때 마왕들을 모두 죽였으면 그들의 가족까지 죽이는 일도 없었을 텐데.’

결국은 과거의 무른 마음이 모든 것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천일영은 역시 이만 명의 무인들과 천마신교 자체를 없애 버리지 않은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을 병력으로 사용해서 혈천회를 상대한다든지.

혹은 천마신교의 힘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이룬다든지.

그런 것은 관심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

천마신교에서 사는 사람은 십만 명이 넘는다.

그저 그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아무리 무르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 * *

천일영이 다시 천마의 자리에 오른 지도 열흘이 지났고,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천마가 된 직후 천일영이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각 마왕 가문의 재산에 관련된 것이었다.

아예 항주에 있는 천룡상단의 안하주와 몇몇을 데리고 와서 재산을 조사시켰다.

안하주는 천일영이 과거 천마였던 것과 다시금 천마가 됐다는 것에 두어 번 기절했었다.

전에 천일영이 듣는 앞에서 천마가 나쁜 놈이라는 둥,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말했는데.

거기에 눈만 마주치면 찢어 죽이는 패악 무도한 놈이라고 했는데.

천마신교로 와서 천마를 직접 보니 기절하지 않을 리가.

이후로는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일했지만, 한동안 천일영과 눈이 마주치면 동공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곤 했다.

그녀가 죽을까 봐 죽도록 애써 준 만큼 결과는 빨리 나왔다.

예상대로 거액을 빼돌려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캐도 캐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액이 드러나자 안하주는 매일같이 백 번쯤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천마신교의 돈인지라 전 천마 패범휘와 다른 마왕들이 착복한 금액을 공표하고, 그 돈을 모두 천마신교의 교도들을 위해 쓰겠다고 약속했다.

안하주가 정신없이 돈을 찾는 동안 천일영도 제법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황실과 무림맹하고 연락하고 조율하는 일에 골치가 아팠었다.

황제에게는 천마신교의 천마가 다시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소림사의 방장인 태사명진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오늘 황제로부터 전서구가 날아왔기에 천일영은 불편한 마음으로 편지를 펼쳤다.

자신이 천마가 되면 그동안 황실과 엮인 인연이 기묘하게 뒤틀어질 것을 걱정했는데.

[다시 천마가 된 것에 대해서 황실은 대외적으로 축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니, 혈천회와 큰 싸움을 앞두고 힘을 되찾은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신하들을 따돌리고 몰래 한번 놀러 가겠다. 좋은 술을 가지고 가마.]

영 엉뚱한 편지가 와 버렸다.

천일영이 황제가 보낸 편지를 옆으로 던지고 몸을 일으키자, 백유화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자님, 정말로 소림사와 상의한 것을 발표하실 것입니까?”

“너는 반대하느냐?”

“반대하는 건 아닌데 지나치게 파격적입니다. 그동안 천마신교가 해 왔던 일에 정반대되는 일이 아닙니까.”

곁에 있던 안하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의 일은 제가 무림에 대해서 잘 모르니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이것도 발표하실 것입니까? 이 발표는 중원을 모두 뒤집을 것입니다.”

“이 일의 중심에 하주 네가 있다. 그러니 맡은바 열심히 해 보라.”

“제 밑에 백 명쯤 넣어 주세요. 천룡상단의 일에 이 일까지 더하면 저는 거의 쉬지도 못할 정도가 됩니다.”

“사람은 필요한 만큼 뽑거라. 백 명이 아니라 오백 명이라도 괜찮다.”

“하아, 천마님은 역시 통이 크시네요. 아주 멋지신 분이에요.”

일부러 밝은 체하며 죽을까 봐 아부성 발언을 하는 안하주였지만, 그와는 대조되는 긴장감은 여전히 방 안을 감돌았다.

그만큼 발표하려는 내용은 큰 사건이라 할 만큼의 일이었다.

하지만 천일영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끝에 마음을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발표해라.”

“알겠습니다.”

그날 천마신교에서 공표한 내용은 무림과 중원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의 무림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원 전체가 사실인지 확인하느라 뒤집혔을 정도였다.

그 내용은 이러했으니.

[천마신교는 무림 삼 대 세력으로서 독자적인 활동을 해 왔으나, 지금부터는 적대심을 버리고 무림맹에 소속된 일부 문파와 협력을 한다. 그 첫 번째 대상으로 소림사를 비롯하여 사천당문, 그리고 종남파와 협력하여 무림의 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폐쇄적이었던 천마신교를 조금씩 개방하여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자유로운 거래를 위해 그동안 특정 상단에만 주었던 특혜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천마신교와 거래할 것을 허락한다.]

천일영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면에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당장은 패범휘를 비롯하여 마왕들이 천마신교를 엉망으로 운영한 탓에 재정이 쪼들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실제로 천마신교의 무인들에게 줄 급여조차도 빠듯했다.

또한 마왕들이 운영하던 상단도 부패의 온상이 되어 버린 탓에 새로운 거래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이것은 천일영이 고작 일 년하고 반 정도 자리를 비운 동안 만에 망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무림맹의 일부 문파와 손을 잡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혈천회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사혈련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장 천마신교에 혈천회가 활개 치고 있었고, 무림맹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혈련만 혈천회와 상관이 없을 리가.’

사귀진과 유향설로부터 보름에 한 번 오는 전서구에서도 수상한 행적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연합하는 것이 가장 상책.

‘이것을 장기로 치면 장군이겠지. 과연 혈천회에서 어떤 수를 두어 피해 낼지 궁금하군.’

장기에는 규칙이 있다.

정해진 길을 따라서 수를 두어야만 한다.

그런데 연이어서 장군을 당하고 피할 길이 없어지면 상대는 어찌할까.

‘그 즉시 장기판을 뒤집어 버리지.’

그것이 혈천회가 할 행동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천일영은 다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 * *

일주일 후.

천일영은 천마신교의 본문을 나서서 밖으로 나왔다.

본문을 둘러싸고 천마신교 무인들이 사는 집과 커다란 시장, 그리고 곳곳에 설치된 시설들은 항주의 시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과거 무명암살대의 단주로 있었던 때에도 자주 걷던 곳이니만큼 예전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까.

천일영은 단골로 삼던 객잔으로 갈까 하던 차에 문득 길에서 파는 먹거리를 보고는 그 앞에 섰다.

양고기를 꼬치로 만들어서 파는 곳과 만두를 파는 가게들에서 제법 좋은 냄새가 났기에 발길을 붙잡힌 까닭이었다.

“양꼬치 하나 주겠는가.”

“히익! 처…… 천마님!”

“뭘 그리 놀라는가.”

전과는 다르게 뭔가를 공표할 때면 직접 나와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또 자주 대로와 골목까지 다니다 보니 천마신교에 있는 사람치고 이제는 천일영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게 되었다.

그럼에도 양꼬치 가게를 하는 사람은 천일영의 실물을 막상 코앞에서 보자 손을 벌벌 떨었다.

옆에서 가게 주인을 돕고 있는 어린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되었을까.

아이는 떨면서 너무 긴장한 탓인지 양고기를 급하게 뒤집다가 불씨를 날려 천일영의 옷에 구멍을 뚫고 말았다.

타다닥.

불씨가 옷에 구멍을 만드는 소리에, 아이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엎드렸다.

“처…… 천마님! 살려 주십시오. 제가 그만 옷에 구멍을!”

“이 녀석!”

“이힉!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천일영은 아이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몸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아이가 자지러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겨우 옷에 구멍 난 것 가지고 왜 이리 호들갑이냐.”

“어…… 어…….”

아이가 말도 못 잇고 눈물만 뚝뚝 흘리자 천일영은 그만 장난기가 동해 버렸다.

“내가 너를 잡아먹기라도 하겠느냐. 응? 가만히 보니 조금 맛있게 생기긴 했는데?”

“끄아아악!”

“어디를 먹어 줄까? 팔? 다리? 아니면 머리?”

“으아아앙. 그…… 그럼 팔로 해 주세요. 끄허허헝.”

“다 먹어도 되느냐?”

“하…… 한 입만 드셔 주시면 안 돼요? 맛이 없어서 한 입이면 충분하실 거예요. 으허허허헝.”

“하하하. 이 녀석, 정말로 재미있구나.”

천일영이 아이를 꼭 안고 이마에 장난스럽게 뽀뽀하고는 내려 주었다.

“놀려서 미안하구나. 옷은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아라.”

“으허헝. 정말요?”

“천마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믿어 보아라.”

“가…… 감사합니다. 훌쩍.”

양꼬치 가게 주인도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천일영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해가 뜬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아이가 학당에 있을 시간이 아닌가?”

“아…… 저희같이 천한 사람들은 아이를 학당에 보내지 못합니다.”

“학당의 수는 충분한데 아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고…… 패범휘가 천마가 되었을 때 학당의 상당수를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같은 자들에게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아서…….”

“학당 문제는 내가 해결해 보지. 그리고 천마신교를 개방하고 나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었는지 궁금하군.”

양꼬치 가게의 주인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지만, 상단에서는 제법 찾아옵니다.”

“다행이군. 양꼬치는 얼마인가.”

“아이고! 돈은 됐습니다. 천마님께 돈을 받으면 천벌을 받습니다! 게다가 옷에 구멍도 냈는데요.”

천일영은 은자 세 개를 올렸다.

한 가족이 일 년 정도 먹고살 만큼의 돈이었다.

“양꼬치 열 개만 포장해 주고, 세 개는 따로 들고 갈 테니 준비해 주게.”

“너무 많이 주셨습니다. 철전 스무 냥도 안 되는데 은자를 이렇게나 주시다니요.”

“다음 달부터 아이가 학당에 가게 될 테니 돈이 필요할 거다. 그리고 귀여운 녀석이니 옷도 좋은 거로 해 주고, 가지고 싶어 하는 걸 사 주거라.”

“천마님…….”

양꼬치 가게 주인이 눈물을 글썽일 때 천일영의 등 뒤로 고개 세 개가 불쑥 튀어 올랐다.

남궁무애와 백유화가 배시시 웃음을 짓고 금채홍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혼자 드시는 거예요? 맛있어 보이는데요.”

“너희들이 올 줄 알고 세 개는 미리 준비해 놨다.”

“저기에서 포장하는 건요?”

“친구에게 줄 선물이구나.”

“아……. 저희도 같이 가도 돼요? 저희도 하린 언니의 아버지에게 인사드리고 싶어요.”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으니 괜찮겠지.”

천일영은 양꼬치 가게의 주인 뒤에 숨어서 눈만 내밀고 있는 아이와 인사를 하고 독천마왕 서가흔의 무덤을 향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찾아가는 친구.

천일영은 그에게 사죄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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