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 - 상식인은 없다
나는 정상인이다.
아니, 그렇게 편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내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고 있다거나, 혹은 스스로를 정상인이라고 우기면서 내심 자신만의 개성을 갈구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는 범주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도 한 때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세상 그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구별되는 나 자신의 고유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믿었던 때가.
철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언어의 뉘앙스에서도 묻어 나오겠지만, 지금 나는 나 자신이 일반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 사실에 어떤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원래 대부분의 인간은 정상인이요 일반인이니까.
이 자명한 명제를 두고 자신이 소수의 '특별한' 사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평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애초에 정상인이란 무엇인가. 이건 일종의 개념이고 범주이며 사회의 일반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 중 대다수가 '정상', 혹은 '보통', 또 다른 말로는 '일반'에 속한다.
순서를 바꿔서 그 대다수의 사람들이 있기에 앞서 나열한 정상인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겠지.
아니. 그딴 순서가 무슨 소용인가. 나는 여기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오래된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나는 사회 일반 다수의 범주에 속하는 정상인이며 그 사실에 한 줌의 불평도 가지고 있지 않던 정상인이었다.
그랬었다.
나는 다시 거울을 바라본다.
인간은 거울이 없다면 스스로의 얼굴조차 인식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이미 거울이라는 외부의 매개를 통해 한 차례는 왜곡된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본래 얼굴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안타까운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거울 속에는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성이 서있다.
핏기가 없다. 길을 걸어가면 열에 한 둘,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면 병원이나 가보라고 말을 걸어올 것 같았다.
창백하게 흰 피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생머리와 대비되어 더 하얗게 느껴졌다.
가지런하게 이마를 가린 앞머리에서 내려오면, 고양이 눈처럼 크게 찢어진 눈이 인상적이다.
올라간 눈초리 탓인지 사람에게 우호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좀 사나웠다.
눈 밑에는 그림자처럼 작은 음영이 드리운다. 하루를 꼬박 지새운 것처럼 다크서클이 짙다.
창백한 피부 탓인지, 혹은 반대로 짙은 다크서클이 흰 피부를 더욱 더 창백하게 질리게 만들었는지.
학교 대신 병원에나 들락거려야 할 것 같은 인상을 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예뻤다.
그래,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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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추스리려고 마음먹는 것 만으로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런게 됐다면 그 많은 정신병이니 스트레스니 하는 문제들이 왜 생겼겠는가.
그러나 의외로 또, 정신이 인식할 수 있는 통증 내지는 압력의 한계치는 정해져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어찌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자포자기의 상태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자가 되었다.
그것도 정체모를 누군가가.
공허한 머리는 이 와중에도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다.
적어도 인간 사이즈의 바퀴가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할까.
인간 자아에 대한 물음은 온갖 창작물에서 소재로 활용되고는 한다.
'나'라고 하는 주체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인간이 경험하고 축적한 기억이 자아를 구성하는가?
예컨대 기억을 저장하는 뇌를 그대로 다른 사람의 육체에 이식했을 때, 기억이 온전하다는 것 만으로 '나'는 유지되는가?
더 나아가면 아예 기억을 이식하는 전제를 생각할 수도 있다.
기억이 '나'를 구성하는 핵심이라면.
또 뇌에 있는 기억을 데이터의 형태로 온전히 복제하는게 가능하다면. 그 무한히 복사할 수 있는 데이터 조각들로 무한한 '나'를 만들 수 있는게 아닌가.
그러니 결국 자아는 기억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애초에 인간에게있어 가장 중요한 신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현실에 뿌리뻗은 자신의 육체야말로 자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근간 중 하나가 아닌가.
그렇다면 기억만 남은채 다른 몸뚱아리에 기어들어온 '나'는 이제 무엇인가?
...혼자 있을 때 생각이 길어지는 건 내 안좋은 버릇 중 하나였다.
사실은 나도 정답이 없는 질문임을 알고 있었다.
집은 크지 않았다. 좁은 방과는 별개로 비교적 높은 천장이 인상적이다.
침대가 놓인 장소로부터 현관까지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원룸이다.
혼자사는걸 감안하더라도 방안의 풍경이 꽤나 살풍경했다.
싱글 사이즈의 침대와 그 맞은 편에 위치한 책상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가구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여자를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여자로 생각하지 않아도 지나치게 사람 냄새가 부족한 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사는 집에서 묻어나와야 할 생활의 흔적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띄는 건 싱크대 옆 수납장 위에 올려둔 나무젓가락과, 대충 던져둔 것 같은 중국집 배달책자...
지나치게 깨끗하고 삭막한 원룸의 풍경을 생각하면 아마 이사온 지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이야기다. 뭐라고 불러야할까.
...원주민? 그런것보다는 차라리 집주인이라고 부르는게 낫겠다.
나에게는 이 영문모를 상황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때문에 나는 무슨 셜록이라도 된 것 처럼 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깨어날 꿈이 아니라면 살 궁리는 해야할테니.
다행히 어렵지않게 지갑과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다. 지갑에는 신분증과 카드 두 장 뿐이다. 현금은 단 한 장도 없다.
이름은 이혜진. 나이는 올해로 스물 둘이다. 민증 뒷편에는 덧붙인 주소지가 있었다. 서울시 성북구...
다행히도 핸드폰은 따로 잠겨있지 않았다.
비교적 최신형 모델에 가까운 스마트폰은 현재 시각이 오후 열두시임을 알려왔다.
날짜는 그대로다. 기왕 이렇게 된거 시간까지 꼬아버리지, 괜히 허탈한 한숨이 나왔다.
익숙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UI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부터 찾아봐야할지 막막함이 앞선다.
현실성없는 상황에 직격한 이후로 드디어 뭔가 진전을 보인 상황이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니 일의 순서를 정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우선...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내 휴대폰 번호였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소리 이후...]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나는 내심, 핸드폰 너머로 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대했다.
그게 나와 똑같은 기억을 가진 또 다른 '나'이건, 아니면 내 몸을 차지한 이혜진이라는 알 수 없는 인간이건.
아니면 아예 정체를 모를 제 3자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난 그저 이 난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타개할 희미한 단서를 찾기를 바랬다.
그런건 없었다.
"네, 혹시 최순정씨 핸드폰 맞나요?"
[전화 잘못 거신거 같아요.]
...아무도 없었다.
내 좁디좁은 인맥을 전부 확인했음에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그마저도 친구 몇은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전화를 하지도 못했다.
상황은 내 예상보다 더 심각한 모양이다. 그저 모르는 사람의 몸에 들어왔을 뿐인 일이 아닌건지.
아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소화하기 힘든 상황인데.
막막한 심정으로 집주인의 전화번호부를 펼쳤다.
연락처(5)
1
2
4
돼지
꾀꼬리
뭐지? 무슨 코드명인가?
혹시 이 사람 간첩인가?
단서는 커녕 머리만 더 복잡해지는 연락처 목록이다.
애칭으로 사람을 등록하는 경우가 드문 건 아니었지만 이건 좀 과했다. 누가 숫자로 사람을 저장해두냐는 말이다.
연락처에 저장된 의미불명의 이름들과 전화를 한 기록들이 간간히 남아있는 걸 보면, 적어도 일단 연락이 가능한 사람들인건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숫자들은 높은 확률로 가족들이리라.
문자 메시지 함은 스팸문자로 가득했다. 목록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득차서 윗 부분이 넘쳐 흐른 골목길의 쓰레기통을 보는 것 같았다. 연락처에 있던 사람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요즘 시대에 문자는 별로 사용할 일이 없으니, 깔끔한 성격이면 사용하지 않는 연락처를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락처가 단 다섯명에 불과한 것도, 문자 목록에 광고문자만 가득한 것도 이해가 될 법하다.
현실은 추리 게임처럼 필요할 때마다 단서를 던져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선에서 타인과 연락을 하는 기능을 가진 유명한 어플은 없었다.
그것만이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휑하게 허전하고 삭막한 원룸의 풍경처럼 스마트폰 속도 황량했다. 기본 어플을 제외하면 애초에 설치된 어플이 몇 안 된다.
인터넷에 들어가도 아무런 기록이 없다. 비정상적으로 깨끗했다. 주기적으로 사용기록을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요즘 세상에 핸드폰만큼 사람 속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도구가 뭐가 있겠느냐만은.
적어도 이혜진이라는 인간은 그 범주에는 속하지 않는 모양이다.
핸드폰을 침대에 내려두었다.
가장 큰 단서라고 생각한 건 사실 꽝이었다.
머리가 멍하게 울리는 가운데,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침대와 마주하듯 위치한 책상이었다.
사실 있는 게 없다보니 눈이 움직일 곳도 정해져 있다.
책상에는 그 흔한 책 한 권도 없이, 컴퓨터 하나 뿐이다.
그러니까 저게 내 마지막 단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