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3 - 적응은 고난과도 같다 (3/243)



〈 3화 〉3 - 적응은 고난과도 같다

시간은 빠르다.



시간의 상대성을 가장 쉽게 직감하는 방법은 그냥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다.
대충 어디 앉아서 '그땐 그랬지...'하는, 늙은이들이  법한 말이나 읊으면서 과거를 되짚는다.


그럼 지나보낸 일련의 시간들이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지면서,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는... 그런거지.



그러니까 내가 새로운 몸뚱이에 들어온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는 말이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은 너무나 많이 사용되어 이제는 식상할 지경이지만, 아무튼 간에 무슨 환경이든 적응이 되기는 되는 모양이다.


하기야 안 되면 어쩌겠는가. 뒤지지도 못 하면서.


다만 적응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적응이라는 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더라.

적응이란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방법의 차이는 있겠으나 적응의 본질이라는  그렇다.

그게 어떻게 자연스럽게 되겠는가. 모든 적응의 과정에는 응당 존재의 고뇌와 노력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그 변화라는  커다라면  더욱 더.

여기에 굳이... 내가 겪은 변화가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에 대해서 서술할 필요는 없겠지.


요는 내 적응의 과정에 나의 머리털 빠질 정도의 고뇌와 노력이 있었다, 그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적응의 과정 속에 있었다. 그것도 한복판에.



띡-


"봉투 필요하신가요?"
"아, 네."

사람의 시선이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노골적이다.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말하라는 웃어른의 말씀을 단순히 꼰대 틀딱의 두서 없는 잔소리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특히 한 사람이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반드시 그 시선에 대응해줄 필요가 있다.

예의 때문이 아니다.
눈을 보고 있으면, 보이잖아. 상대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당연히 대놓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방황하다, 끝내 내 흉부로 향하는  훤히 보였다.


남성이라는 같은 종 출신으로써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글쎄...  생소한 눈초리는 쉽게 적응할만한 것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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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손에 들린 봉투가 무거웠다.

이번이 내 첫 번째 외출인 것은 아니다.

원래도 집 밖을 꺼리던 내 성격과, 신변의 급격한 변화가 초래한 외출기피현상 덕에 최대한 외출을 삼가하려고 하기는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기왕 나가서 할 일이 있다면 최대한 많은 일을 수행하자는 다짐 아래에.


불과 며칠 전에 시행된 외출은, 준비 단계부터 기나긴 여정에 가까웠다.


외출에 필요한 옷을 고르는 데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건 축복이었다.
본래 무난한 스타일의 옷을 선호했는지, 적어도 내가 착의를 위해 마음을 굳게 먹어야하는 난이도의 옷은 없었다.


속옷은... 뭐 생각보다야 입을만 하더라. 그런걸로 호들갑 떨기엔 먹어치운 밥그릇이 아깝기도 하고.


아무튼 나름대로 각오까지 하고 출발한 내 여정은 은행에서 시작해 마트에서 끝났다.

 과정에서 내가 겪은 크고 작은 고난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지만.


말했듯이 지나간 시간은 과거가 되어 축적될 뿐이다.



그때 느꼈던 충격들은 기억 속에서 스펀지가 되어, 내가 아직 겪지 못한 새로운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지.


뭐든  번쯤 해보면 좋다는 말도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여자로  번 변해봐라.  번째부터는 그 충격이 덜하지 않겠는가. 하하.

...재미없는 농담이다.



외출도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운 법이다. 하물며 집 앞 편의점 정도야 별다른 준비도 하지 않고 나올 수 있지.

-라고 생각해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이번의 패착이었다.


편의점 알바의 눈초리를 의식하기 전에는 짐작도 못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꽤나 선정적으로 비춰지는 모양이다.

글쎄, 자동차 유리창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면 가슴팍에 새겨진 영어 탓에 흉부가 강조되는 것 같기도하고...

사실 외출에 앞서 옷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는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했다.

까놓고 노출을 좀 하면 어떤가.


식상하게 표현하자면 그래. 닳는 것도 아니고.


이제와 새삼스럽게 옷차림을 점검하는 까닭은, 나를 향한 노골적인 시선이 생각보다 더 신경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그런 시선은 남자였을 당시의 나는  한 번도 받아볼 일이 없었다.

관심을 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에 무뎌진 건지,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았으니 관심 받을 일이 사라진 건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를 보면, 인간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는 존재인가 보다.


...뭐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긴 했다.  또한 적응의 과정에서 생기는 고난이겠지.


괜스레 바닥에 끌리는 슬리퍼를 걷어 차듯 앞으로 걸었다.

 것도 없는데 무겁기 짝이  편의점 산 봉투가 다리에 부딪혀 매우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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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온 뒤 새롭게 일상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내 하루 끼니는 자연스럽게 두 끼로 고정되었다.


보통 오후 열 두시가 넘는 시간에 먹는 점심으로 한 끼.


이후 자연스럽게 배가 출출해지는 오후 여섯시나 일곱시 무렵에 먹는 저녁으로 두 끼.

뭐, 사실 이건 내 원래 식습관과 다를 바가 없다. 그야 수면시간도 비슷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루  끼의 식사는 내가 생각한 일인 가구의 적정량이다.


건강을 헤치지 않을 정도의 에너지는 제공하면서, 하루 세 끼를 차려야하는 귀찮음을 덜어내는.

아주 합리적인 식습관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점심의 한 끼가 라면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은 꽤나 마이너스였으나...
 상황에서 건강까지 챙기기에는 내가 너무 나태했다.

바뀐 몸은 외관상에서 드러나는 것 그대로, 확실히 연비가 좋았다.

하루 두 끼만 먹으면 배고플 일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식욕이 잘 생기지 않아서 식사시간에도 입이 짧았다.


마르다 못해 여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팔다리와 허리를 보면, 납득이 가기는 했다.
억지로라도 식사량을 늘려야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으니.



아무튼 의식주가 별다른 지장없이 원활히 수급된다는 점은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안심을 주는 법이다.

나는 적어도 한 순간에 길바닥에 내려 앉아, 하루 한 끼의 식사를 걱정해야할 처지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내 생각보다는 훨씬  풍족한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정신을 어느 정도 추스린 다음 내가 첫 번째로 조사한 일은 바로 재정상태였다.


당연한 일이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일에 돈이 안 들어가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당장 수중에 돈이 없다면 나는 원래의 몸은 커녕, 하루를 넘기는  먼저 걱정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고민도 배가 부른 다음에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계좌조회는 간단했다. 그야 명의도용도 아니고, 본질이 어떻든 내가 '이혜진' 본인인 건 자명한 사실이지 않은가.

수중에 카드도 있으니 더 고민할 거리도 없었다. 있는 두 장의 카드가 동일한 은행이었으니.


예상 밖으로, 계좌에는 천만원 가량의 금액이 들어있었다.

얄궂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위로가 되더라. 돈은 여기서도 특효약이었다.


스물 둘의, 사회 초년생이라고 하기에도 어린 나이에 어떻게 천만원을 모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알아본 바로는 지금 거주하는 오피스텔도 상당한 거금이었다.

스스로 모았다고 보기는 힘드니 아마 부모로부터 받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었다.
당장에 먹고  문제가 없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했다. 돈은 원래 있다가도 없는 것이다.

그 출처를 모른다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알아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천만원이면 혼자 산다는 전제 하에 꽤나 큰 금액이다. 나는 그것으로 의미  시간적 여유를 얻은 셈이다.


복잡하기 짝이 없던 머리가, 돈을 본 이후에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하는 꼴에 어이가 없긴 하더라.

하기야 만약 통장 잔고가 천만원이 아니라 천원이었다면, 나는 정신을 추스리기도 전에 황급히 알바부터 구했을 터다.

그렇게 보면 자금의 여유는 굉장한 축복이겠지.

그런고로.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태해졌다.

아니, 조금의 변명을 하자.
나태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경험해볼 수 없는 엄청난 일을 겪은 마당에, 내가  상황을 정리하고 적응하느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을 소모했겠느냐 이 말이다.


인간은 언제나 바짝 긴장한 상태로는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다. 자연 생태계가 그러하듯, 긴장이 있으면 이완의 과정이 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앞서 '나태'라 언급한 것은, 한껏 긴장되었던 정신이 풀어지면서 오는 이완상태라고 정정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에 가까울 것이다.

매번 긴장을 유지하는 인간은 오래 살지 못한다.

문장 사이에 쉼표가 길다란 문장의 압박감을 완화하는 것처럼, 고속도로 중간의 졸음쉼터가 운전자의 사고를 예방하는 것처럼.

나의 이 행위는 인간 삶의 긴장을 완화하는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그래서 뭐하냐고?


아니, 게임 좀 하겠다고.

왜, 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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