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5 - 이 구역의 미친년 (5/243)



〈 5화 〉5 - 이 구역의 미친년

나는 게임에 있어 절대 편식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가리는 장르도 없이 그냥 재밌으면 했다. 학창 시절에는 한창 리듬게임에 재미를 들려 오락실을 들락거렸으며, 슈팅 게임과 격투 게임도 제법 오래 붙잡고 있더랬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턴제 게임이나 퍼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밌으면 장땡이라는 표어 아래, 다소 난잡해보일 수 있을 만큼  취향은 광범위했다.

모두가 좆망겜이라 취급하던 게임도 꽤나 오래 파고들었던 걸 보면 대중적인 취향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었으나...
아무렴 어떤가. 취향에 기준점을 정해두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냥 해보고 재밌으면 되는 거지.




그러나 나도 사람인 이상,  넓은 취향 속에서도 선호하는 스타일의 게임이 있었으니.

나는 사람 죽이는 게임에 미치도록 환장했던 것이다.


###


상대는 방어를 굳건히 하고 있다.  몸을 두른 풀 플레이트 아머와 인간의 신체를 모두 가릴 정도로 거대한 대방패는 그야말로 작은 성벽과 같았다.


나이트폴을 플레이하면 꽤나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겁쟁이들이다. 우수에 대방패를 들고, 방어에 치중하다 좌수의 철퇴로 카운터를 노리는 간잽이들.


일명 거북이들이다.

베어넘기기에는 너무 단단해 내가 싫어하는 족속들이었으나...


껍질 채로 짓뭉개면  타격감이 남다른 벌레이기도 했다.

커다란 방패를 시야의 가림막 삼아 주변을 맴돈다. 신체 전체를 커버하는 방패는 든든한 방호구였으나 시야의 대부분을 차단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를 보호하는 두터운 투구와 함께라면, 상대방의 시야는 이미 극히 한정된 상태일 터다.

그대로 몸을 움직여 방패 정면으로 차징을 넣는다.

굳건한 방패는 당연히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풀 무장으로 세팅한 만큼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특성을 선택했으리라.

거북이를 정면에서 찍어누르기 위해선 방어를 극단적으로 포기한 공격 세팅을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런 세팅은 공수의 밸런스를 추구하는, 이성적인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머리를 쓸 차례다.


단순히 몸을 밀어넣는 차징으로 무너질 상대가 아니었으니.
간단히 차징을 받아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좌수의 철퇴가 날아오리라.

파공성을 그리며 다가오는 철퇴의 일격을 피해 우측으로 몸을 틀었다.
나도 중갑을 입고 있는 만큼 움직임이 재빠르지 않다. 완벽한 회피에 실패한 캐릭터는 우측 허리춤에 철퇴의 일격을 얻어 맞는다.


그러나, 잠깐의 움직임이 상대방의 타점을 빗나가게 했으므로.
나에게 가해진 타격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나이트폴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단순할 뿐이라면 나이트폴이 어떻게 e스포츠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조금만 움직여도  끝이 부딪히고 갑옷이 충돌하는 지근거리의 전투에서,  게임의 조작은 사용자에 따라 지극히 세분화된다.

캐릭터가 화려한 스킬을 구사하며 싸우는 게임은 아니었으나.


변태같은 성정을 가진 제작자는... 도저히 활용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별의별 모션들을 모조리 쑤셔넣은 것이다.


 때문에 단순해보이는 나이트폴의 전투는, 유저가 언제 어떤 움직임을 활용하냐에 따라서 극적으로 뒤바뀐 결과를 만들어낸다.


철퇴가 날아올  예상해 선입력해둔 조작이 먹혀들었다.
철퇴의 피해를 미미하게 흘려넘긴 나는,  이어 거북이의 정면에서 거대한 양손검을 크게 들어올렸다.


검을 휘두른다기 보다 장작을 내리치는 것에 가까운 모션이다.


동작이 느린 상대가 아니라면 절대 하지 않을 극단적인 강공격이다.
가뜩이나 주도권을 날린 거북이는 이를 피해내지 못할 테고.


당연히 막기 위해 대방패를 들어올릴 것이다.


예상대로 상대는 방패를 올리고 몸을 웅크리는 가드 자세를 취한다.
이대로 검을 내리칠 필요는 없다. 나는 바로 모션을 캔슬했다.

방어적인 측면에서 무결점으로 보이는 대방패 세팅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몸에 철 덩어리를 두른 거북이는, 그 둔해빠진 속도에 더해서 스태미나의 재생이 치명적으로 느렸다.


나이트폴은 걷는 행위를 제외한 모든 동작에 스태미나를 요구하는 고로.


거북이를 사냥하는 과정은, 스태미나를 계속 갉아먹는 작업과도 동일하다.


예측했던 대검의 공격이 오지 않자 당황하며 가드를 푸는 상대에게 다시 몸을 밀어붙인다.


스스로가 사냥감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해도 이미 늦었다.

도주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게 불가능한 거북이는, 사냥감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첫 번째의 카운터를 반드시 유효타로 집어 넣었어야 했다.

그걸 실패한 지금.


상대는 주어지는 하나의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방적인 선택지만을 강요하는 내 움직임에 거북이의 스태미나가 모두 소모되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이윽고 방패를 든 사냥감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망설임없이 대검을 내려친다.

자세를 무너뜨리는 일격으로 넘어진 상대방을 항해 최후의 길로틴이 내려오고.

나는 화면 너머 사방으로 비산하는 핏줄기를 바라보며, 손등을 타고 흐르는 짜릿함에 전율하는 것이다.

아, 이게 게임이지.





###



현우는 말을 잃었다.


뭐?  절단되어 나가 떨어질 뉴비?

그가 걱정하던 여성은, 호기심으로 나이트폴을 처음 시작한 순진무구한 유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들어오는 뉴비의 사지를 절단해버리는... 정반대 타입의 고인물이었던 것이다.



신규 계정으로 캐릭터를 제작하는 것 치고는 망설임이 없길래 조금 기대감이 생기기는 했다.


그러나 현우가 기대했던 장면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나이트폴은 게임 시스템 상 랭크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미칠듯한 무기 숙련도와 게임 이해도를 가진, 소위 고인물들이 넘치는 게임이다.

단순히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쉽게 느는 게임도 아니었다.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순간적인 상황판단의 중요성은 물론이거니와, 게임의 주가 되는 6 대 6 섬멸전은 맵에 따른 전략적 판단도 필요했다.

어느 정도 게임에 익숙해지고 필수적인 기술을 익히고 나면 대다수의 유저들이 속한 나이트(knight) 랭크에 들어설 수 있긴 했다.



그러나 그 위의 랭크는 별천지의 세상이다.


커뮤니티에서 어떤 유저가 쏟아낸 불평을 빌리자면, 그래.
'재능충 새끼들'의 영역이었나.


그러다보니 랭크를 올리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트 유저들은 대개  시즌이고 나이트에서 머무는 게 기본이었다.


승급이 막혀버린 기사들이 어디서 재미를 찾겠는가.


랭크전에서는 같은 나이트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기사들도 뉴비존에서는 날뛰는  마리의 맹수였으니.

확장팩마다 유입들도 대거 유입되겠다, 나이트폴에는 부캐를 키우는 기존 유저들이 꽤나 많았던 것이다.



혜진이 능숙하게 캐릭터를 만들 때만 해도 그녀도 랭크의 수라장에 지친 한 명의 나이트일거라 생각했다.

현우만 해도 나이트를 벗어나 비숍에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그 과정에 지쳐서 만들었던 부캐만 해도 세 개는 된다.

혜진이 그런 유저라면, 거기에 대한 공감대로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 되겠다는... 희망찬 미래가 현우의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혜진이 게임을 시작하고, 튜토리얼을 무시한  일반 섬멸전을 시작한 순간.


현우가 그린 미래는 깨끗하게 저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그건 하나의 인간 믹서기였다.


뭉치면 꽤나 기사를 번거롭게 만드는 NPC 병사 무리가 무더기로 쓸려나간다.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딜레이가  대검의 횡공격으로 병사 세 명을 베어넘긴 직후, 자연스럽게 틀어진 몸으로 측면에서 다가오는 검을 흘려낸다.

머리로 향하는 궁병의 치명적인 화살을 빗겨내고 검을 회수한 후.


발차기로 적 유저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회수한 대검으로 일격을 날리는  까지.

일련의 동작이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보기에난 단순하지만 나이트폴 유저인 현우는 방금 혜진의 움직임에 얼마나 많은 조작이 필요했는지를 이해했다.


...키보드를 빠르게 오가는 혜진의 손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방금 상황에서도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았는지  흔한 연타 한 번 없다.

압도적이었다. 혜진이 휘두르는 커다란 대검은 다가오는 적을 보이는 족족 두동강냈다.
이쯤되면 게임의 장르가 뒤바뀐 느낌이다.


신규 생성 유저들이 만나는, 소위 뉴비 매칭이기 때문에 이리도 압도적인 것일까?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확장팩이 반년도 더 지난 상황이다. 지금쯤 뉴비존에 있는 유저는 대부분 부캐를 육성하는 인간들일 게 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름 나이트폴의 중상위권 유저라 자부하는 현우가 보기에도, 혜진이 보여주는 컨트롤은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던 것이다.




균형을 뭉개는 인간 도살자가 하나 있으니 게임의 구도가 오래 지속될 리가 없다.
20분만에 게임  판을 마친 혜진이 싱겁다는  앉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폈다.


동시에, 드문 여성 유저의 나이트폴 플레이를 관람한 주변인들로부터 조용한 탄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씨바... 존나 잘하네. 저거 여자 프로팀 선수 아니야?"

"저런 선수가 있었으면 내가 모를리가."

이 기묘한 광경에 시선을 뺐긴 건 현우만이 아니었는지.
같이 일하는 알바 동료부터 시작해, 조용해야할 낮 시간의 PC방이 묘하게 들뜬 느낌이다.



몇 차례의 대규모 패치 이후 나이트폴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드문 국민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현장감 넘치는 전투의 짜릿함에 빠져버린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파고들수록 끝이 없는 조작의 난이도와, 게임 내내 긴장을 풀기 힘든 특성은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지치게 만드는 탓에.

나이트폴은 직접 게임을 즐기는 유저보다, e스포츠나 인터넷 방송을 통해 간접적으로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소위 천상계라 불리는 '킹' 랭크의 플레이어들이 보여주는 나이트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컨텐츠에 가까웠다.

프로 선수들과 무기를 맞대고 승리하는 것만으로 네임드가 된 유저가 있을 정도다.
전문적으로 상위권 랭크게임을 옵저빙하는 사람도 있을 법 했다.

아무튼, 갑자기 PC방에 등장한 의문의 여성이 보여주는 플레이가 마치 왕들의 리그를 연상시켰으니.

나이트폴에 환장하는  남성들의 심장이 빨라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대낮의 PC방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아는지 모르는지, 기지개를  혜진은 자연스럽게 다음 게임 매칭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