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6 - 재능충
나는 원래 재능충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재능충'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재능을 부정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걸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경쟁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그 어떤 분야에서든 재능을 실감할 수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나와 똑같이 먹고 싸고 놀기밖에 안 한 것 같은 친구가 시험에서 나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성적을 받는다던가.
음악공부를 하지도 않던 사람이, 십 년간 음악을 전공한 사람도 헷갈리는 음계를 단 번에 짚어낸다던가, 하는.
예시를 찾으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재능충을 싫어하는 이유는, 재능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단어가 과도하게 남발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세상은 넓고 기인은 많았으니.
이 세상에 재능충이 차고 넘칠만도 했으나...
이런 일에는 언제나 어디에 기준점을 두느냐가 중요했다.
기준점을 너무 낮추면,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잘난 사람들은 전부 재능충이 되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타인의 잘남은 모두 재능의 덕분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어찌보면 뒤처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노골적인 정신승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로남불에도 정도가 있는 법.
노력으로 모든 게 커버된다는 꼰대스러운 말에 역겨움을 느낀다면, 그 반대의 경우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야 옳지 않겠는가.
이런 내 나름대로의 개똥철학에 따라.
나는 재능충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다 내 안에서 들끓는 시기와 질투를 사그라뜨리기 위함이었다.
타인의 재능에 눈이 멀어 열등감에 휩쌓였던 때가 얼마나 길었던가.
뒤집어본 현실에는 재능 있는 녀석들보다 피 땀 흘려가며 원하는 걸 간신히 얻어낸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들에게 재능충이라는 프레임은 불명예스러운 칭호였겠지.
그런고로, 내가 재능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의 괴물들 뿐이었다.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그 드물디 드문 환상 속의 재능충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 혜진양은, 아니.
정확히 말해 혜진양의 몸뚱아리는, 진정한 의미의 재능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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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에서 휘둘러오는 도끼창의 날이 매섭게 빛났다. 막아낼 수는 있으나 그랬다간 우측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창병에게 구멍이 뚫리겠지.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한 걸음 몸을 빼내고 적의 진입각을 저지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묘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고로.
나는 일말의 주저없이, 오른쪽에서 나를 주시하는 창병에게 돌진한다.
정신나간 짓이다.
특유의 빠른 찌르기가 장기인 창에게 선공권을 헌납하면서, 장병기인 할버드에게 무방비한 후방을 노출하는.
한마디로 나 죽여주쇼나 다름이 없다.
궁지에 몰린 사냥감의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했을까. 달려가는 나에게 무서운 속도로 창이 쇄도한다.
이전같았으면 반응하기도 힘들었을 창병의 찌르기가... 지금은 예측하지 않아도 훤히 보였다.
나는 엉성하게 내민 대검으로 자연스럽게 패링을 시도한다.
대검의 칼날과 맞닿아 창이 튕겨져 나가는 찰나의 순간, 적 창병 유저가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 모니터 너머로 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패링(Parrying)이 무엇인가.
상대방의 공격을 읽고, 정확한 타이밍에 정해진 커맨드를 입력함으로써 공격을 튕겨내는 일종의 카운터다.
눈 앞에서 적의 칼이 오고 가는 나이트폴에서는 당연히 중시되는 테크닉일진데.
나를 공격한 창병이 저토록 당황한 까닭은... 대검을 든 나에게서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지금 시도해서 성공한 것처럼, 나이트폴에서는 어떤 무기들 들고 있건 패링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연하다시피 패링은 방패를 든 유저들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방패나 단검 정도를 제외하면 패링의 판정이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무기가 크거나 무거울수록 이는 더 심해졌다. 내 캐릭터가 들고 있는 투핸디드 소드나 도끼창 쯤 되면, 패링은 사실상 없는 기술 취급을 받는다.
상대의 공격이 내 무기와 접촉하는 그 찰나의 시간. 그 미묘한 타이밍을 어떻게 급박한 전투 속에서 잡아낼 수 있겠는가.
거기다 패링에 성공하면 적의 자세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방패와 다르게, 무기를 이용한 패링은 그렇게 큰 메리트도 없었다.
반면 무기로 패링을 시도하다 실패하면 빗겨내지 못한 적의 칼날이 그대로 치명적인 상처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말 그대로, 초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의 무의미한 도박이다.
그러나 이는 다르게 말하면... 성공할 자신이 있다면 리스크가 없다는 뜻이지 않은가.
튕겨나간 창을 수습하느라 무방비한 창병의 가슴으로.
광전사의 무자비한 차징이 포탄처럼 때려박힌다.
쾅-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적을 마무리하기 전, 뒤에서 다가오는 살벌한 기척을 감지하고 바로 몸을 뒤튼다.
당연하다시피 머리를 겨냥하고 내려찍는 도끼창의 일격을 대검으로 막아낸다.
후방에 방치한 창병이 몸을 추스리기 전에 도끼창을 죽여야겠지.
딱 보기에도 방어기제가 부족한 저 야만인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두 수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선공권을 뺐기지 않기 위해 다급히 움직이는 도끼창의 모습이, 내겐 너무 굼떠 보였다.
나는 대검을 앞으로 찌르는 모션을 취한 채 대쉬했다.
나아가면서 좌측으로 살짝 방향을 비튼 탓에, 도끼창의 날카로운 창날은 허리춤을 찢으며 지나갈 뿐이다.
피해를 받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동된 버서커 특성이 내 움직임에 속도를 더하고.
내 대검은 마치 작살처럼 적의 복부를 꿰뚫는다.
정확히 배를 관통한 대검을 비틀며 뽑아내자, 내장과 함께 힘을 잃은 신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사냥의 전율에 몸을 떨기에는 아직 이르다.
나는 곧장 뒤에 남겨둔, 겁 먹은 사냥감을 마무리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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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아, 시원하다.
몸이 좀 심하게 찌부둥한 탓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샌 것 같다.
하기야 간만의 PC방, 아니. 간만도 아니지.
몸이 바뀐 이후로 처음으로 방문한 PC방이다. 소싯적에야 열 시간도 스무 시간도 PC방 의자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을 수 있었지.
초보자의 몸에는 무리가 갈 법도 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했던 것 같다.
처음엔 내가 알던 나이트폴과 많이 달라서, 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막상 본 게임에 들어가니 더 극적으로 변한 건 게임이 아니라 내 몸뚱이였다.
매우 생소한 감각이었다.
적이 몸을 움찔하는 찰나의 순간에 그걸 포착한다. 인지의 영역은 말도 안 되게 넓어져 멀리 떨어진 적의 움직임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훤히 보였다.
커뮤니티에서 '킹' 랭크 유저들이 보여주는 말도 안되는 반응속도에 대해 떠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이 악물고 그건 반응이 아니라 예측이라고 받아쳤었것만.
당시의 나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퀸 랭크를 어렵게 찍으면서 게임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확신이 생겼었기 때문이다.
나이트폴의 전투는 예측으로 시작해 예측으로 끝난다는.
...아무래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모양이다.
사람의 몸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경험을 그 누가 해봤겠는가.
'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나이트폴과, 혜진의 시선에서 바라본 나이트폴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었으니.
이건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극명한 차이인 셈이다.
"저... 실례지만 혹시 연습생이신가요?"
뭔 소리야.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무슨...
교복을 입은 대 여섯 명의 파릇파릇한 청소년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예?"
"와, 누나 왜 이렇게 잘해요? 저 투핸 그렇게 쓰는 사람 처음봤는데. 패링 일부러 쓰는 거 맞죠? 무슨 삑을 한 번도 안 내시던데. 그거 무기 특성 뭐 쓰시는거에요?"
"저 아이디 전적보니까 부캐신 것 같은데, 혹시 본캐 아이디 알려주실 수 있나요? 본캐 킹 맞죠? 저 칼고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프로 데뷔하시면 무조건 응원할게요!"
"야, 칼고는 뭔 그딴 양학러랑 비교를 해. 칼고가 투 핸디로 저렇게 하는거 봤음? 걔는 본캐 퀸에서 막혀서 비숍들 양학이나 하고 다니더만."
"지랄, 똥기사새끼가 누굴 평가하냐. 이 누나도 부캐니까 따지고 보면 양학인 건 똑같지."
"아니 씨발, 그래서 좆고 새끼 양검 패링 할 줄은 암? 절대 못하죠? 양학 원툴 좆방충 좆고견 컷!"
그냥... 그냥 정신이 혼미했다.
이게 대한민국 급식의 파괴력인가?
프로 연습생 운운하는 걸 보니, 아마 내가 나이트폴을 플레이하는 걸 뒤에서 지켜본 모양이다.
눈치를 보니 관람객은 이들 뿐만이 아닌 것 같다. 내 시야를 가로막는 급식들의 너머로, 이쪽으로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관중들의 관심이 느껴졌다.
PC방에서 남의 게임 훔쳐보는 일이야 과거에도 종종 있었으나... 이 정도로 관심을 끌만한 일이었나?
그보다 이렇게 사람이 모일 때까지 나는 왜 눈치를 채지 못한 건지, 이 몸뚱아리는 집중력 마저 남다른걸까.
무슨 동물원의 공작새라도 된 기분이다.
"저, 저 연습생 아니에요."
질문을 던진 선두의 두 사람 조차, 고등학생 특유의 의미 없는 말싸움에 가담한 탓에.
나는 일단 상황을 정리하고자 입을 열었다.
"아니, 진짜요? 스카우터들은 다 뭐한데요? 저는 이번에 혜성에서 여성 프로팀 창단한다길래 거긴 줄 알았는데."
"누나 그럼 레전 가실래요? 우리 팀이 순위는 좀 낮아도 복지가 진짜 레전드인데"
"우리 팀은 무슨 씹... 복지 레전드는 무슨 요양원이냐? 순위 좆 박아 놓고 복지만 좋으면 뭐 해. 그리고 니가 코치냐? 뭔데 스카웃을 하고 있냐."
"근데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예쁘시네. 누나 진짜 프로 안 하세요? 저 여자 중에 누나처럼 하는 사람 처음 봤는데."
"레알 여자 BJ들 죄다 남자들끼고 버스만 타고 있더만. 존나 못하는 년이 대방패 들고 사리면서 비숍 찍는데 보면서 모친출타한 줄."
"넌 그냥 좀 닥쳐봐."
급식들의 주둥아리는 멈출 줄을 모른다.
이미 내 존재는 일종의 소재에 불과했다.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중간부터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들을 수준이었다.
내게 PC방은 대부분의 경우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는데.
아포칼립스가 바로 이런 것일까?
내 앞에 펼쳐진 난장판은, 십 분이 넘는 소란 끝에 PC방 아르바이트의 중재로 중단되었다.
훌륭하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게 어딘가. 거의 정신이 출타하려 하는 와중이었다. 나는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다.
고등학생들의 무변별적 질문도 당혹스러웠지만.
나이트폴의 친추 요청같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요청들을 쳐내는 것도 큰 일이었다.
나이트폴을 하면서 느꼈던 흥분은 이미 가라앉은 지 오래다. 방구석에 익숙한 내게 급식들 다수의 밀착 포위는 생각보다도 더 큰 압박이었다.
PC방 이용은 당분간 자제하는 편이 좋겠다.
...컴퓨터를 하나 사는 편이 좋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