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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7 - 모래성 (7/243)



〈 7화 〉7 - 모래성

미래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괴로움을 동반한다.

막상 두려워하던 미래는 현재가 되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 가고는 하지만.


내 학습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걸  번이나 경험하고도 좀처럼 걱정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계획적인 삶을 통해 다가올 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해결할  있다고 말하더라.


내가 듣기에도 꽤나 혹할만한 말이었다.

하루 하루를 계획한 대로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규칙적인 일상이 만들어질 것 아닌가.

정착된 일상은 하루라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게 만든다.

학창 시절의 내가 다음 날에도 학교에 나갈 것을 확신하는 것처럼.
군인 시절의 내가 다음 날에도 작업을 하며 좆 빠지게 구를 것을 예상하는 것처럼.

다가올 날의 일부라도 예정되어 있다면 확실히 막연한 불안과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 때 계획적인 삶을 추구했다.


계획을 짜기 위해선 먼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내 삶에서 가장 우선 시 되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계획표에서 가장 먼저 채워지는 시간은 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먹고, 자고, 싸는 시간들.

그 다음에서야 해야할 일을 채워 넣는다. 여기서부터가 진정한 고뇌의 시작이다.
인생 계획을 짠다는데 시간표에 아무거나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머리를 쥐어 짜 내 훗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한 땀 한  생산적인 일들을 때려 박는다.

그런 식으로 계획표를 작성하고 나면, 정말 이대로 살아가면 초인이 될 것 같은 철인의 스케줄이 완성된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  쓰레기같은 계획표.


작심삼일이라도 가면 다행이다. 통렬한 실패 끝에, 나는 그제서야 휴식 시간을 틈틈이 박은 수정본을 제작한다.

그건 나름대로 지킬만 했다. 이건 꽤나 오랫동안 지켰던  같다.


그럼 그렇게 계획표를 철저히 따르는 삶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앴냐하면.

나는, 전혀 아니었다고 대답하리라.

애초에 미래를 생각한 생산적인 일들이란 게 뭔가. 일단 도움이  법한 공부를 닥치는 대로 수행해도, 거기엔 끝이랄  없었다. 대체 얼마나 더 공부해야 미래를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건지.



내가 만든 계획이란, 무언가를 축적하거나 남긴다기 보단 무한히 쳐들어오는 적군을 틀어막는 일종의 디펜스 게임에 가까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계획적인 삶이란 되려 남아 있던 여유를 빼앗아 가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뒤로 내가 만든 계획은 전부 모래성이었다.

나름대로의 설계와 고민을 하며 쌓았으되, 흘러오는 바닷물에 미련 없이 허물어뜨려도 괜찮은.

어차피 계획이란  지키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에 불과하지.



...왜 갑자기 계획에 대해 이리도 일장연설을 하는가하면, 내가 방금 200만원 상당의 조립식 컴퓨터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내 모래성 계획에 따르면, 컴퓨터에  정도의 투자는 충분히  만 했다.


물에 쓸려가? 그런 건 물이 들어올 때나 걱정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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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원래 무언가를 기다릴 때 시간은 무척이나 더디게 흐른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기다림을 싫어했다. 내가 약속을 싫어하는 여러 이유 중에는 상대를 기다려야 하는 그 기나긴 시간이 싫다는 점이 꽤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드물게 기다림이 기껍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치킨을 기다리는 시간이나. 간절히 원하는 물건이 담긴 택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랬다.

기대감과 설렘으로 부푼 마음이 기다림의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메꿔 주기 때문이겠지.

무엇을 숨기랴. 컴퓨터의 도착을 기다리는 이틀은 내게 있어 꽤나 가슴 설레는 시간이었다.

덧붙이자면 절실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간절했다.

하루의 끼니를 챙겨 먹고, 더러운 곳이 보이면 청소하고, 입을 옷이 없으면 빨래방에 가고, 간간히 편의점이나 마트에 들리는  단순한 일상.

몸이 바뀐 이후로 내 하루의 일과는 이토록 단순했다.

이 단순한 일과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조용한 원룸에서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차오르는 것이다.


잡념은 같은 잡념을 먹이 삼아 새끼를 친다.
내 머릿속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고로, 나는 그렇게 몸집을 키운 생각이 순전히 부정적인 확신으로만 가득찰 것을 알았다.


모르겠다. 현대인은 진단해보면 다들 정신질환 하나 둘 쯤은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의 정신은 따지고 보면 뿌리에서부터 문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 같은데. 당연히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게임을 즐기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불안이고 걱정이고 하는 하등 부질 없는 것들은 게임을 하다 보면 모두 날아가버리기 마련이다.

달려드는 적의 목을 베고, 부수고, 찌르다보면 잡념으로 가득 찬 머리도 조금씩 깨끗하게 맑아진다.
내가 보기엔 그것도 열반에 이르는  가지 방법이었다.


아무튼, 지금 나는 마치 갑작스레 천애고아가 된 것처럼 세상에 혼자 남겨진 꼴이었다.

아마 혜진양의 가족들은 멀쩡히 살아있겠지만.
생전 처음 본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두꺼운 낯짝은 나에게 없었다.

내 기묘한 처지를 하소연할 누군가는 커녕, 시시콜콜한 문자를 받아줄 친구 하나도 없다.


지난 며칠 간 나와 대화한 상대가 편의점 알바와 PC방 급식친구들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어쩐지 내심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다.

아마 혼자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풀어오를 부정한 생각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고로.
다소 충동적이었던 내 컴퓨터 구매는, 나름대로 절실한 이유를 담고 있었다고도 말할  있겠다.


띵동-

도어벨 소리에 펄떡 반응하는  마치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몸뚱아리는 포장된 박스를 방 가운데로 옮기는 일에도 꽤나 애를 쓰게 만들었다.

...너무 무거워서 쌀 포대인 줄 알았다.

컴퓨터의 성능은 사실 무조건적인 타협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어느정도의 성능을 넘어가면 컴퓨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마련이다.


나는 한정된 자본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자고로 가성비를 따질려면 깐깐함과 성실함을 두루 갖춰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왜 200만원 상당의 거금이 빠졌냐하면, 내가 참지 못하고 새로운 모니터를 하나 사 버렸기 때문이다.

  듀얼 모니터의 맛을 알아버린 이상 싱글로 돌아갈 수는 없지.

그리고, 나는 차마 혜진양의 60프레임 모니터로 게임을 즐길 자신이 없었다.


그건 타협할  있는 부분이 아니야.



간만에 컴퓨터를 세팅하는 탓에, 시간이 좀 걸려 한참을 먼지 속에서 뒹굴었으나.

워낙 무료했던지라 그런 고생도 나름 즐겁더라.

혜진양의 컴퓨터는 하드디스크만 떼어내서 한 쪽으로 치워두었다.

아마 저건 중고업체가 아니라 고철처리장에 가져가야 받아줄 거다.


이윽고 대망의 부팅 시간이다.

컴퓨터가 오길 기다리는 시간동안, 심심함을 견딜 수 없던 나는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이나 돌아다녔다.

주된 방문처는 원래 자주 이용하던 커뮤니티들과 나이트폴 위키였다.

변한 것 천지인 나이트폴과 달리 커뮤니티는 정말 변한 게 없더라.

그러니까 한결같이 병신들뿐이었다.


 친구들의 뇌 없는 타이핑을 보고 있자면, 괜한 잡생각들도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이다.

물론 오래보고 있으면 뇌도 가벼워지니까 자제할 건 해야한다.

아무튼 이틀 간 커뮤니티를 눈팅한 바에 따르면, 나이트폴은  생각보다 더 대중적인 게임으로 변한 모양이다.

본래 좆망겜답게 하루에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가던 나이트폴 커뮤니티는 이쯤되면 환골탈태한 수준이었다.

한창 시즌이 진행중인 프로리그 이야기와 함께.
일부 랭크에 대한 원색적인 비하의 말, 토론을 가장한 일방적인 방패충 비난에 내 가슴이 다 훈훈해지더라.


이쯤되면 확실히 국민 게임이라고도 할  했다.


이토록 커뮤니티가 활발하니,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나이트폴로 향하더라.

글쎄, 해보고 싶은 다른 게임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이트폴이 망하지 않고 번영한 세계선이라니. 단언컨대 이쪽 세계의 유일한 장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 때 그 짜릿한 손맛때문에 내가 얼마나 나이트폴을 사랑했던가.

이 몸에 게임적 재능이 충만하다는 사실도 이미 알아버린 터라.
지금은... 일단 예전에는 꿈만 꾸던 '킹'을 찍어보는 게 좋겠다.

내 마음은 이미 전장으로 출발한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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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새끼 진짜 뭐야아아아아악!"


[양학(내가당함)]
[병신 양학하러 왔다면서 비숍에서 썰리고 있네 ㅋㅋㅋㅋ]
[아니 근데 이건 상대도 양학러아님? 방금 공격모션 페이크  번을 준거냐]
[억쉴ㄴ]
[응~ 그냥 비숍이야~ 요즘 비숍들 저정도는 다해~]
[섹]
[상대 츠바이 좆간지네 내가 쓰면 존나느린 호구무기던데]
[쟤가 팀 다 죽이고 다닌다]
[스]
[쓰벅 못하는건 그렇다쳐도 저새끼 무조건 스머프*임 전적봐라 진짜 미친새낀데]
*스머프: 부계정으로 초보를 학살하는, 양학러를 이르는 말
[미친새끼는 쓰좆 쉴드치는 너였고]


화면 밖으로 흘러나오는 비명소리를 시작으로, 채팅창은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스트리머로 활동 중인 스벅이 '삐숍 양학달린다'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시작한 것도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다.


본래 이미지가 중요한 인터넷 방송계에서 초보자를 학살하는 양학 행위는 방송 수명을 갉아먹는 양날의 검이었으나.

스벅의 게임 실력이 높게 쳐봐야 룩에서 그치는 관계로, 양학이라는 방제는 사실상 방송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양념에 불과했다.

그래도 오늘은 게임이 잘 풀리는 편이었다.
나이트폴에서 간지의 상징인 쌍검을 들었다.  컨텐츠를 위해 조작도 더럽게 어려운 쌍검을 뒤에서 몰래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연습은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시작하고  두판은 진짜 양학에 나선 상위 랭크 유저처럼 비숍들들 잘 썰어 넘겼다.

평소에는 방송인을 패는 낙으로 사는 것 같은 시청자들이 틱틱대면서도 은근슬쩍 모여들었다.
평일 오후의 시청자가 6천명이면, 흥한 컨텐츠라고 말할 수 있을 터.

상태창은 스벅 자신의 트롤 같은 전적을 노골적으로 노출하고 있었다.


2킬 12데스 3어시

[와 21킬 2데스 ㄷㄷ 역시 갓 벅]
[쓰벜ㅋㅋㅋㅋ 벌레새끼ㅋㅋㅋㅋ]
[이 게임 원래 흑백화면인가요?]
[나]
[재호야... 여기까진가보다 그만 추해지자]
[락]
[쌍검 좆도 못하면서 들때부터 알아봄ㅋ]
[역시 진리는 투 핸디다]
[나]
[락]
[쓰좆아 못하면 겸허히 방패들자]

시청자와 치고 박고 싸우는 게 일상인 스벅이었으나, 연이어 죽은 탓에  분간 회색화면을 보고 있는 지금은 그로써도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씹...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가 존나 잘하는데'

당연하게도 스벅이 처음부터 양학방송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양학이 불가능한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시즌 최고티어는 룩3이었으나, 비숍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방제를 저렇게 설정한 이유는 어그로와 동시에 방송의 컨텐츠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극명한 탓에 소위 '충' 소리를 듣는 쌍검으로 비숍 랭크전을 뛴다는 것.

이기면 양학러 컨셉을 살리고, 지면 평소처럼 시청자들에게 얻어맞으며 재미를 주면 그만이었다.

다만 이렇게 압도적인 학살을 당하는 건... 그로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Nord11' 21/1/8

이게 다  괴물 탓이다.

나이트폴 3대 로망 무기라 불리는 츠바이핸더를 들고 마치 양떼를 도륙하듯  쉽게 인간을 도살한다.

여전히 빛 바랜 스벅의 화면에서 또 한 명의 목이 날아간다.

12데스를 꼴아박은 스벅의 화려한 전적도, 거의 저 광전사가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평소같으면 비숍에서 양학이나 하는 할 짓 없는 새끼라고 실컷 욕설을 퍼부었을 스벅이지만.

포위된 상태로 피를 흠뻑 뒤집어 쓴 광전사의 모습은 말 많은 스벅의 입 마저 다물게 만들었다.


'아무리봐도 일반인은 아닌 거 같은데... 씨발, 프로들은 슈퍼계정 받아서 위에서 시작하는 거 아니야? 저런 괴물이 밑에서부터 뭐하는 거야.'

뭔가 트집을 잡고자, 시청자들 몰래 광전사의 전적을 검색해본 스벅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Nord11 랭크전, 17전 17승 0패.

누가봐도 확연한 스머프임에도 스벅은 쉽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저게 프로 선수의 부캐라면, 욕을 했을 때의 책임은 온전히 스벅의 몫이었다.

무슨 멘트를 칠지 망설이던 스벅이 마침 부활했을 때.

스폰 위치까지 찾아와, 그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스벅의 캐릭터를 바라보는 광전사를 바라보며.

스벅은 굳이 멘트를 칠 필요가 없었다.

마음 속 진실된 심정으로 비명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악!! 미친 괴물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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