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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10 - 커밍아웃 (10/243)



〈 10화 〉10 - 커밍아웃

수십 번 같은 사람에게 도륙나다 보면, 없던 정도 생겨나는 것일까.

스벅은 노드가 갑작스레 건낸 제안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복합적인 반가움이었다.

더 이상 머리를 쥐어짜며 자신의 사인이 담긴 데스노트를 집필한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 첫 번째요,
계속 죽어나가는 과정에서 Nord11라는 플레이어 자체에 관심이 생긴 게  번째 이유였다.

지금은 비숍 따리에 불과하지만 스벅은 나이트폴 유저를 바라보는 스스로의 눈이 상당히 예리하다고 생각했다.
프로리그 창단부터 지금까지 그 역사를 함께했던 눈이니 자신감을 가질 법도 했다.

아무튼 그의 눈으로 봤을 때, 눈 앞에 있는 광전사의 실력은 절대 룩이나 퀸에서 그칠 수준의 레벨이 아니었다.
농담처럼 받아들인 킹(예정)이란 발언이 사실 눈속임이 아닐까하고 생각할 정도로.

스벅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이트폴을 사랑하는 유저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의 초고수와 인연을 갖게 된다는 것은 언제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방송인이라는 신분으로 꽤나 넓은 인맥을 가질  있었으나... 이번은 순전히 우연으로 맺어진 인연이 아닌가.

답지 않게 우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단어를 좋아하는 스벅이다.
'우연히 만나서 가르침을 받은 나이트폴 초고수'라. 방송인으로서의 스벅과 게이머로서의 스벅 모두가 환장할만한 타이틀이다.

쓰던 채팅을 모두 지우고 당장 긍정의 채팅을 보낸 스벅이,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베타코드 초대를 보냈다.

[큰거온다]
[센세 들어오자마자 쓰벅 목소리 듣고 나갈예정]
[스벅님 정도면 목소리 좋은편아닌가요]
[간신 쳐내 좀]
[오늘 방송 개꿀잼이네 노드좌 들어오면 교육강도 더 쎄질듯ㅋㅋㅋㅋ]
[근데 마이크없는게 ㄹㅇ이었음? 왜 핸드폰으로들어오냐]
[어허 고장나셨겠지]
[센세 아직도 얘 방송하는거모름?]
[게임중귓말 차단이라 메세지 못받는듯]
[근데 니가 그걸 어케아냐]
[아 뿔 싸]
[아뿔싸 ㅇㅈㄹ ㅋㅋㅋㅋㅋㅋㅋ]


'저 새끼는 일단 밴하자.'

스벅 정도로 규모가 큰 대기업 방송인에게 분탕충들이 모이는 경우는 아주 흔했다.

애초에 랭크게임을 돌릴 때에도 저격러들을 만나는 게 일상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플레이어의 절반 이상이 스벅을 아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비를 해도 완전히 막을 순 없으니 스벅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그런 관심들이 방송인으로써 유명해졌다는 긍정적인 지표이긴 했으나.

가끔씩은 방송인이 아닌 평범한 유저로써 게임을 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노드의 존재가 특별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스벅이 처음 말을 건 순간부터 지금까지, 노드가 보여준 모습은 스벅이라는 스트리머의 존재를 아예 모르는 사람의 반응과 같았다.

스벅이 저격을 해놓고 티를 내지 않으려는 악질들을 발각해낸  얼마나 많은가. 노드의 반응이 연기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덕분에 방송의 재미도 크게 올라갔다. 스트리머고 뭐고 노드에게 스벅은 처발려 놓고 교육을 원하는 별종A에 불과했다. 그 탓에 수십 번 죽어나가긴 했으나, 결국 그런 것들이 방송의 재미가 아닌가.

'어떻게든 꼬드겨서 귓말 차단하게 만들 수는 없나...'

띠링-

음성채팅방에 들어가 노드가 귓말을 차단하게 만들 자연스러운 방법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를 몇 분.

유저의 입장을 알리는 알람음과 함께, 노드가 베타코드 음성채널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노드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 아."

?

"아... 노드가 아니라 노르드라고 불러주세요."

[?]
[?????]
[???씨발 여자였ㅇ므??]
[ㄴㅇㄱ 상상도못한정체]
[???? 아니 여자라고??]
[목소리 ㅗㅜㅑ 미쳤다 노드좌]
[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노드눈나...나죽어...]
[씨발련들아 노드좌가 아니라 노르드좌라 불러라]
[헤으응...노르드눈나 애기저수 밥줘 응애]
[아니 츠바이들고 스벅 사지절던하시던분이 여자라고????]
[오늘부터 노르드좌 팬클럽1호 수장은 나 이민식이다]
[방심하지마라 수많은 넷카마들의 존재를 잊지마라]
[귀없냐? 저게어케 남자]
[저정도면 남자여도 오케이임]
[ㅗㅜㅑ눈나 나죽어]

그건, 스벅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어떻게 온라인상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예상할 수 있겠냐만은.
유저의 플레이 성향이나 채팅으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라는 게 있는 법이다.

스벅이 그린 노드의 이미지는 선이 굵은 남자의 모습이었다.

짧고 간결한 채팅과, 매우 공격적이면서도 망설임이 없는 플레이. 교육을 시작하자마자 실전으로 들어가 학생을 죽여대는 노드를 보면 다른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이미지는 상상에 불과한 법이었으나.

이건 너무... 너무 큰 반전이지 않은가.

"아, 아! 노르드님. 이... 이렇게 부르면 될까요?"
"네."

다시 들어도 확실한 여성의 목소리다.

그것도 듣기 좋은 미성이었다. 목이 조금 잠긴 것인지 발성에 힘이 없었으나, 기본이 되는 목소리가 워낙 좋은 탓에 끝 발음이 흐려지는 것조차 매력적으러 들렸다.

스벅은 슬쩍 채팅창을 쳐다봤다.

생각한대로 채팅창은 폭발한  오래였다.
여성 게스트는 커녕 나이트폴의 여성 병사만 봐도 반응하는 채팅창이다. 랭크가 최소 퀸으로 추정되는 플레이어가 알고 보니 여성, 그것도 미성의 여성이다?

어떤 반응이 터져나올지는  보고도 뻔했다.

완전히 폭발해버린 채팅창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되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스벅의 놀람과는 별개로, 아무튼 방송적으로는 말도 안 되게 대박이 터져나온 상황이었다.

'우연히 만난 비숍 양학 초고수가 알고 보니 마성의 여성이었던 건에 대하여.'

흠, 어그로 제목으로도 몹시 훌륭했다.

이토록 귀한 경험을 언제 또 하겠는가.
스벅의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찢어진다.

안 그래도 여성 유저가 턱 없이 부족한 게임이다. 상위 랭크로 올라가면 남녀의 성비를 따지는 게 우스워질 지경이었다. 스벅이 알기로 '킹' 랭크까지 올라간 여성유저는 아예 없었다.

그나마 퀸 랭크에나 조금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함께하는 여성이 나이트폴 최고의 여성 유저일수도 있지 않나.

일단 지금은 방송을 위해서라도 거리감을 좁힐 때였다.

"근데 노드라고 읽어도 되지 않나요?"
"안 돼요. 노드는 약해 보이잖아요."

[노르드좌피셜)노드는 약해 보여]
[ㅋㅋㅋㅋㅋ정상은 아니네]
[사람 가르쳐준다고 계속 죽이는 사람이 정상이겠냐?]
[앞으로 노드라 부르는 새끼들 나 이민식이 처단한다]
[헤으응...노르드눈나...나죽어...]
[목소리ㅗㅜㅑ]
[눈나 목소리가 너무야해요]
[섹드립좀 밴해라]
[아니 근데 존나잘해서 ㄹㅇ 킹인줄 알았는데 여자였네]
[지금 킹 중에 여자 없잖아]
[노르드좌가 있잖아]
[왕이될 여자 ㄷㄷㄷㄷ]

"이제 사후보고는 마이크로 하시면 돼요."
"사후보고요? 아, 사후... 크흠. 이게 말로 할라니까 조금 어색하네요."

<이분 노르드좌 여자인거 아니까  갑자기 스윗남행세하죠 개역겹네요>

천원짜리 도네이션에 반응해 열렬히 호응하는 채팅들이 신경에 거슬렸으나, 지금은 거기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노르드의 등장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탓에 저번 죽음의 원인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날아갔기 때문이다.

"하하. 베코 기다리는 동안 까먹어버렸네요. 하하하..."

침묵이 너무 무거웠다.

필요한 채팅만을 보내던 노르드는 실제로도 꽤나 과묵한 성격인 모양이다.
망각을 웃음으로 무마하려던 스벅이 무안하게도,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무안함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던 스벅이 포착한 건 화면 속에서 대검을 들어올리는 노르드의 모습이었다.

"아니 선생님, 선생님! 이러지 마시고 말로, 말로 하실 수도 있잖아요!"
"안 돼요."
"아, 왜요! 저도 이제 그만 죽고 싶다구요!"
"말로 하면 약해 보이잖아요."

다가오는 광전사의 모습에 기겁하듯 비명을 지르는 스벅의 목소리가 안타깝지도 않은지.
노르드의 대검에는 여전히 자비가 없었다.

스벅은 곧 서른 여덟 번째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내지르는 비명이, 방송용인지 아닌지는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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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가르친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그만큼의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더라. 내게 학생은  명에 불과했는데도 이리저리 생각할 게 많았다.

그런걸 보면 수십 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학창 시절 스승의 고충은 충분히 짐작할만 했다. 그것도 한창 지랄맞을 사춘기의 학생들인데 말이지.

아무튼 내가 우연찮게 받아들인 학생은 그래도 제법 의욕이 있는 학생인 것처럼 보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는 생각에 꽤 강도 높은 교육을 했는데도  불평 없이 따라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중간부터는 마이크를 사용했다. 여성 유저임이 드러나는 게 뭔가 찝찝했지만 채팅을 계속 치기가 너무 불편했다.
뭐,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교육의 요점은 나이트폴 전투의 기본을 몸에 때려 박는 것이었다.

사실 가르쳐줄 건 차고 넘쳤다. 룩 까지만 올라가도 알아야 할 기본적인 규칙이 얼마나 많은가.
전투  자주 사용되는 공격, 수비 페이크는 정말 일부분에 불과했다. 애초에 전투에 들어가기 전 구도를 만드는 작업부터 심리전의 시작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실전부터 들어간 이유는, 그런 이론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비숍 구간에서 투닥거리는 유저들이 자주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잔기술을 시도하는데, 그건 말 그대로 동 티어의 고만고만한 상대에게나 통하는 헛짓이다.

랭크를 올라가기 위해선 본인의 빌드로 일종의 자연체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나이트폴에서 교과서적인 공격과 수비 자세는 참고를 위한 교본일 뿐이었다.
상위 랭크의 유저들은 그렇게 기본적인 자세를 취하면 단숨에 파훼하고 잡아먹는다. 그러다보니, 다른 게임에서는 효율적인 정형화된 패턴이 나이트폴에서는 자충수에 가까웠다.

이건 공략이나 동영상 따위를 보고 올라온 비숍들이 룩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랭크게임에서 만난 스벅도 그런 부류의 플레이어였다. 서투른 쌍검 조작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본 기수식부터 공격을 이어나가는 패턴까지 너무 단순해서 파훼하기가 쉬웠다.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모든 무기를 사용해왔다는 모양인데... 본인의 패턴도 정립하지 못한 주제에 올 웨폰 유저가 된다는 건 사실상 비숍에서 영원히 머물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그래서 죽였다.

스스로가 단단하다고 믿었던 전투방식이 정면에서 모조리 박살나면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리고 더 죽였다. 계속 죽였다. 그냥 죽이기만 하면 멘탈만 나가니까 죽은 이유에 대해 물어보는 게 핵심 포인트다.

수십  처참하게 죽으면서 왜 죽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움직임이 전부 읽혔다는 걸 깨닫고 근본부터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성공이다.

실제로 세 시간에 걸친 교육의 끝자락에서 스벅은 나를 상대로 꽤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 무기 이해도가 부족하고 패턴이 틀에 박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피지컬은 꽤나 좋은 편으로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또 죽였다. 자만심은 원래 도움이 안 되니까.

스벅을 가르쳐줄 시간에 랭크 게임을 계속 돌렸다면 오늘 안에 룩 까지 도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나에게 후회는 없었다. 원래 좋은 일을 하면 뿌듯한 마음이 생긴다고들 하지 않은가. 거기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안정감은 사람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비록 음성채팅이었으나 오랜만에 사람과 길게 대화를 나눈 것도 좋았다. 몸이 바뀐 뒤로 사람이 많은 곳이 굉장히 꺼려졌으나, 이렇게 조금씩 개선해 간다면
그것도 조금씩 나아질 지도 모른다.


나는 여러모로 만족감에 차 눈을 감았다.

오늘은 어쩌면, 처음으로 편한 잠을 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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