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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24 -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24/243)



〈 24화 〉24 -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교육자.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인가.

나도 한때는 선생님이 꿈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남을 가르친다는 건 뿌듯함을 넘어서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그게 남을 돕는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봉사의 기쁨이든, 상대적 우월감에서 오는 정신적 만족감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재밌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나이트폴 교육 방송이라는 컨텐츠는 내게 꽤나 적절한 소재였다.

퀸이라는 랭크는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오래된 망겜 경력으로 다져진 내 게임 지식은 교육 방송에 적합한 밑바탕이었다.


게임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컨셉을 유지하면 초보 방송인으로써 멘트를 고르는 어려움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터.

여러모로 묘안이 아닐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방송에 대한 구상이 둥둥 떠다닌다.

 언제나 실행보다는 구상을 하는 과정을 좋아했다.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딪히기 이전, 머릿속 공상이야말로 무한한 상상력이 꿈틀거리는 단계였으니까.

물론 대부분의 망상이 폐기 처분 당하기는 했다. 그래도 내겐 그 과정마저 일종의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침대에서 뒹굴면서 방송을 구상하고 있던 때였다.


조용해야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제는 조금 익숙한, 베타코드 메세지를 알리는 신호였다.

스벅:선생님 방송하신거 다시보기로 봤습니다! 너무 재밌더라고요@@ 괜찮으시면 다음에 합방 한번 같이하실래요?? 일정은 편하신대로 잡으셔도 됩니다!

합방.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 비좁은 인맥은 애초부터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럼 게임을 같이 하는 건가?

삐숍에 불과한 스벅의 나이트폴 실력을 고려하면 아마 랭크 게임 듀오는 아닐 것이다.

저번과 같은 교육 방송의 느낌이지 않을까.

납득이 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벅의 방송에서도 굉장히 반응이 좋았었지. 방송인으로써 성공한 컨텐츠를 계속 기획하는 태도는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엘튜브 조회수는 돈으로 직결됐으니.

내 차후 방송 컨셉을 교육으로 잡는다면, 이건 나에게도 굉장히 좋은 기회가 아닐까.

나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


Nord:아직 삐숍이신가요

스벅:ㅎㅎ;; 룩(진)이라고 해주실래요?

Nord:삐숍이잖아요

스벅:...네

Nord:룩까지 올라가는 교육방송 컨셉으로 같이 하면 어떨까요?

스벅:오!! 너무 좋습니다. 방송은 언제 할까요?

Nord:오늘이요.




그러니까, 스벅이 느닷없이 평소보다 늦게 방송을 키겠다는 공지를 올린 것도  갑작스런 선생의 발언 때문이었던 것이다.

정규방송 시간보다 두 시간은 더 늦게 출석한 스트리머.

그것도 그 주체가 화재전문(화제가 아니다) 스트리머인 스벅이다.

채팅창에서 발생할 화재의 규모는, 사실 안 보고도 뻔했다.

스벅의 머리는 시작부터 어지러웠다.

"자, 여러분. 진정들 하시고. 제가 아무 이유도 없이 늦었겠습니까? 저도 다 이유가 있어서..."

-쓰벅쓰벌럼 님이 1,000원 후원!
<와 요즘세상엔 지각을 하고 그냥 입을 놀리는 쓰트리머가 있네ㅋㅋ 응~ 방송 끝날 때까지 불태울거야>

후원에 호응하는 채팅창의 반응이, 아주 그냥 뜨겁기 그지없더라.

갑작스럽게 잡혀 버린 합방을 준비하느라 할애한 귀중한 두 시간이었거늘.

무지몽매한 시청자들이 이를 알아줄리는 없는 것이다.

스벅은 목구멍에 걸린 변명을 그대로 집어 삼켰다. 어차피 한 번 불타기 시작한 채팅창은 어줍잖은 변명으로는 진화되지 않을 터.

지금은 소방수를 부를 타이밍이었다.

다행인건, 그 소방수가 특급 에이스라는 점이겠지.


"오늘의 깜짝 게스트! 저를 룩으로 다시 복귀 시켜주실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노르드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시 뵙네요."

[아 ㅋㅋ; 진작 말을하지]
[극]
[방송의신 스벅 찬양해]
[락]
[사람이 늦을수도 있지 ㅉㅉ]
[눈나ㅏㅏ기다렸어ㅓㅓㅓ]
[이새끼들 태세전환 속도보소]

인터넷 여론이란 건 이리도 쉽게 뒤집힐 수 있는 것이다.

스벅은 헛웃음이 나왔다.

안 그래도 스벅이 방송을 위해 운영하는 카페가 어제부터 노르드에 대한 이야기로 난리였다.

인기글 목록을 가득 채운 글에는 모두 그녀의 방송 클립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벅으로써도 그걸 안 보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무런 맥락 없이 주절거리던 초코칩 이야기부터, 소름을 유발하는 수준 높은 전투 이후의... 엇박자 방종까지.

그 방종 타이밍에는 시청자 불 붙이기가 특기인 스벅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꽤나  태우더라.

노르드가 방송했던 시간이 꽤나 이른 시간이라, 그녀의 방송은 방송이 진행 중이던 당시보다 끝난 이후에 더 큰 화제가 됐다.

갑작스런 방종으로 흥분한 시청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불을 옮겨 붙이던 탓도 있으리라.

아무튼 방송인 스벅이 볼 때, 지금 노르드와의 합방은 정말 최적의 타이밍이라 할  했다.

당일 세운 합방 계획을 다소 무리하면서까지 받아들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방송이 성공적으로 흥한다면, 스벅뿐 아니라 이제  방송을 시작한 노르드에게도 큰 도움이 될 터.

 중요도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정말 비밀리에 성사된 합방입니다. 어디로 흘러 나갈까 봐 방송에서 얼마나 말조심을 했는지 몰라요."

-용산역내리면뒤짐 님이 1,000원 후원!
<말조심? 말조심한다는 새끼가 저격한테 채팅으로 쌍욕을 쳐박고 정지를 당하나 ㄷㄷ>

저 애새끼 목소리, 들을 때마다 차단하고 싶다.

"자! 노르드님이 저를 룩까지 올려주신다고 합니다."

[명의도 이런 명의가 없네요.]
[그냥 선생님이 아니라 의사선생님이셨네]
[스벅이 룩ㅋㅋㅋㅋㅋ 옆집 개는 퀸갈듯]
[그래도 요즘 검방하면서 연승중인데;;]
[5연승을 했으면 10연패. 그게 스벅이다]
[그냥 센세 플레이 관전이나해라ㅋ]

샌드백 역할이 익숙한 스벅에게 채팅창의 강도는 방송이 얼마나 흥하는 지를 판단하는 척도와 같았다.

이 정도면 훌륭한 편이었다.

"지금 랭크가 어디시죠?"
"요번에 연승 좀 타서 비숍1이에요. 50점이라 금방 올릴 겁니다."
"그럼 룩3까지는 가셔야죠."


...강수를 둔다.

방송 초보라 그런 걸까. 저런 말을 함부로 흘려선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선언하지도 않은 '켠김에 왕까지' 느낌으로 분위기가 흘러갈 수 있다.

시즌 최고 랭크가 룩3인 자신이 비숍1에서 룩3까지 켠왕을 한다고? 이건 무슨 지옥행 열차란 말인가.

이미 채팅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노르드도 지금 방송을 하고 있는 상태이지 않나. 어떻게 저런 무리수를 두는 걸까.

스벅의 속은 타들어 가는듯했다.

"아,하하... 선생님 방송키셨나요?"
"네. 방금 켰어요."
"그럼 시작할까요?

"일단 일대일로 기본 구도부터 알려드릴게요. 랭크 겜은 그 다음에 들어가죠."
"...그거 저번처럼 저만 죽어나가는  아니죠?"
"그게 좋으신가요?"
"아뇨아뇨아뇨."

생각해둔 것처럼 자연스러운 제안이다.

정말 갑작스레 시작됐던 첫 만남 때도 그랬다. 노르드라는 유저는 확실히 나이트폴에 대한 독자적인 영역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자신이 없었다면 교육방송이라는 컨텐츠를 제안할 수도 없었겠지.

스벅 자신만 하더라도 기괴하다고 생각한 노르드의 교육 방법을 통해 얻어간 게 있지 않았나.

한 번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노르드좌팬클럽22호 님이 1,000원 후원!
<와  얼마나 뒤져나갈지 기대가되네요 놀드좌 파이팅!>

저걸 왜 내 방송에 쏘냐고.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평원.

스벅에게는 트라우마 같은 경험이 있는 곳이다. 당장  노을진 수평선 건너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며 다가오는 광전사의 모습이 아직도 훤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의 교육일까?

저번처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죽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으나,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단 죽으면서 쾌락을 느끼는 이상성애는 없었으니까.

스벅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다가오는 노르드의 캐릭터는 광전사와 거리가 멀었다.

방어를 조금 포기한대신 최대한의 기동성을 확보한 중갑 세팅이다. 좌수의 타원형 방패와 더불어 우수의 비교적 짧은 검이 돋보인다.

꽤나 전형적인 형태의 검방 빌드. 스벅이 사용하는 장비와 정확히 일치했다.

"오! 미러전인가요?"
"네. 일반적인 검방 전투 방식부터 알려드릴려고요."
"아, 그럼 저번처럼 바로...?"
"살려는 드릴게요."


전투가 시작되고.

이전의 교육을 기억해, 최대한 상대를 관찰하며 패링을 노리던 스벅은 금새 대가리가 깨졌다.

말한대로 배려를 하는 건지 죽이지는 않았다. 목에 칼을 들이미는 걸로 데스 카운트를 대신했을 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지켜보는 자세를 취하니 패링은 커녕 방패만 처절하게 두드려 맞았다.

이전의 대검과는 느낌이 아예 달랐다. 기동이 자유롭고 공격이 빠른 한손검은 중간 중간 페이크를 섞는 것만으로도 스벅의 패링 타이밍을 완전히 집어 삼켰다.

눈을 감고 패링을 시도했다가 그게 허초면 어쩌나. 그대로 죽은 목숨이 될 게 뻔했다.

분명 랭크 게임에서는 가벼운 무기를 상대로도 패링을 쉽게 잡아낼 수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차이란 말인가.

다섯  정도 연이어 스벅의 목에 칼을 대었던 노르드는 그제서야 검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지렁이식 무지성 패링 검방이네요."
"...네? 지...렁이요?"
"반응속도는 좋잖아요. 밟으면 바로 꿈틀대니까."

안 보고도 채팅창의 반응이 예상 가는 건 왜일까.

말문이 막힌 스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노르드는 말을 덧붙였다.

"검방은 선공권을 내주고 받아치는 운영을 하면 안돼요. 페이크 모션 이해도가 낮은 비숍이니까 반응속도로 대처가 가능한 겁니다. 원래 선공권을 내준 상태로는 패링 심리전을 이길 수가 없어요."

스벅은 기대도 하지 않던 상세한 설명이었다. 이전 교육에서 별다른 말도 없이 대검만 휘두르던 무식한 광전사는 어디로 가고, 이지적인 여성 기사가 나타났는지.

예상치 못한 논리정연한 설명에 머리가 띵 했다.

"그럼 무조건 공격을 먼저 해야 하나요?"

노르드는 검을 땅에 박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선공권을 잡고 몰아치는 게 좋아요. 그러다가 상대가 못참고 달려들면 그때 패링하면서 킬각을 잡는거죠. 이게 이상적인 검방 운영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운영하려면 공격권을 잡았을 때 완급 조절하는 법을 알아야 해요. 무작정 공격만 하다가는 역으로 패링을 당하거나 카운터에 직격 당해서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은 여전히 땅에 박힌 상태였다. 말을 마친 노르드의 캐릭터가 슬며시 움직여 옆으로 비껴 섰다.

"그러니까 이번엔 공격해보세요. 저는 패링만 노릴 테니까, 최대한 심리전을 거는 식으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스벅은 어정쩡하게 무기를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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