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25 - 등잔 밑에 이상한 게 있어
쓰레기벅벅 님이 1,000원 후원!
<선생님... 그냥 한 대만 맞아주십쇼... 우리 스벅이 웁니다...>
챙!
다시 한 번.
완벽한 타이밍임을 알리는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그 소리에 맞춰 스벅의 자세가 무너진다.
몇 번째인지 모를, 훌륭한 패링이었다.
"이번에는 너무 과했어요. 타이밍 어긋나게 한다고 페이크 모션을 섞는 건 좋은데, 스태미나도 생각하면서 해야 합니다. 조금만 익숙한 사람이면 스태미나 총량 정도는 다 계산합니다. 공격자가 먼저 조급해지면 어떡해요. 마지막에 급해져서 공격할 게 뻔히 보이잖아요."
"선생님. 대체 어떤 룩이 페이크 모션 보면서 스태 계산까지 하나요..."
엄살을 부린다.
상위 랭크를 노린다면, 동티어 최고 실력 정도를 감안하고 연습하는 게 당연할 텐데.
스벅은 엘튜브를 보면 열몇 시간을 연달아 방송한 적이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고작 한 시간의 훈련으로 엄살이 너무 심했다.
흠.
그래도 교육에는 당근이 꼭 필요하다고 하니까.
"좀 쉬고 하실까요?"
"네, 네! 아이고,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마이크 너머로, 투다닥 하고 멀어지는 스벅의 발소리가 들린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까 갑자기 심술이 난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있지 않은가. 조금은 더 집중해도 좋을 것 같은데.
나는 내 방송 채팅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르드좌는 인간의 마음을 모른다]
[스벅이 불쌍해보일수도 있구나]
[차라리 뒤지고 말지 한시간 동안 패링만 당한다? 나같으면 자살함 ㅅㄱ]
[피도 눈물도 없는 노르드좌도 좋아]
[스파르타도 이 교육을 보고 경기를 일으킵니다]
[선생님 기준점이 전교1등이면 학생이 기죽어서 어떻게 따라가나요]
[응~선생 본인이 1등출신이라 그런거 몰라~]
내 시청자들도 대부분 스벅을 동정하는 모양새였다.
왜지.
내가 누군가에게 공감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닐 줄 알았는데, 내 방송 시청자들이 저런 태도를 보이자 뭔가 강한 반발심이 생겼다.
그렇게 어려운 요구를 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쩌겠는가. 내 생각이 어떻든,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고개를 젓는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원래 내 가드를 뚫고 유효타를 성공시킬 때까지 훈련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이제 계획을 조금 바꿔야겠다.
바로 랭크 게임으로 돌입하자.
선공권의 중요성과 검방 운영의 기초는 알려주었으니 세부적인 건 실전을 통해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훌륭한 교육자라면 학생에게 맞춰 커리큘럼을 수정하는 유연함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터.
지금은 선생인 내가 노력할 때였다.
"지금!"
방패를 들고 있던 스벅의 왼팔이 다가오는 둔기를 완벽히 튕겨내는데 성공한다.
자세가 무너진 상대를 향해, 스벅은 빠르게 검을 내질렀다.
과정과는 별개로 성공적인 마무리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조금은 어설픈 감이 있는 과정이었다. 공격을 이어나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전에 쌍검을 했을 때처럼 뇌를 비우고 공격을 연타해서는 안 됐다. 페이크를 섞을 때마다 상대방의 카운터를 의식하면서 머리를 굴려야만 한다.
방금은 궁지에 몰린 상대가 조급하게 공격을 시도한 것이 다행이었다. 묵묵히 방어를 굳혔다면,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건 스벅 자신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에는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었는데. 언제부터 자신이 과정까지 신경을 썼던가.
다 선생님 때문... 덕분이었다.
"공격이 너무 툭툭 끊겨요."
"아, 방금 한 번 죽었다. 상대가 룩이었으면 지금 죽었어요."
"다시 지렁이가 되고 있어요."
"척수는 좋은데 뇌는 조금."
"반응속도 원툴."
"허접."
뒤로 갈수록 순전히 악질이 아닌가.
일방적인 비난의 뒤에 덧붙이는 논리적인 지적 때문에 뭐라고 말도 못하겠다.
더러워서라도 승급을 하던가 해야지...
피드백은 게임이 끝나고, 노르드의 방송을 통해 진행되었다.
나이트폴의 특성 상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는 즉각적인 개입이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따라서, 스벅은 랭크 게임을 하는 내내 보이지 않는 노르드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의식하며 긴장된 상태로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플레이를 보며 스스로 반성하게 된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방금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 하나 하나를 다시 보며 지적 받는 건 생각보다 가혹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걸 바라보는 스승의 눈이 높다면 더더욱.
노르드의 혹독한 지적과는 별개로, 스벅의 랭크 게임은 꽤나 훌륭한 전적으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총 4판을 진행해서 3승 1패. 승률을 물론이거니와 지는 게임도 스벅의 전적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스벅은 지금 커다란 역체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저번에도 그랬다. 노르드라는 인간과 몇 시간동안 스파링을 하고 나면, 비숍 유저들의 공격은 너무 단순해보이는 효과가 있다.
과장을 좀 보태면 느리게 보이기까지 했다. 패링 원툴이라는 비난을 받던 운영으로도 연승을 한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스벅의 스승은 단호하기 그지없더라.
바라보는 기준이 달랐다. 비숍1 구간인 지금은 어떻게 승리하든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노르드는 언제나 더 높은 랭크를 기준해서 스벅의 플레이를 판단했다.
거기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정말 간혹가다가 던져주는 당근 하나에 그만 마음을 풀고 마는 것이다.
"손만 적응하면 퀸 까지 보셔도 될 거에요."
저런 누가봐도 입발린 한마디에.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참 절묘했다.
"바로 다음 게임 돌리시죠."
혹독한 교육을 견딜 수 있을 만큼.
###
학교가 일찍 끝난 지금.
주호는 빌드를 카피하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송을 보면서 빌드를 따는 중이었다. 프로도 아니고 스트리머 스벅의 방송을 보면서.
스벅이 누구인가. 쓰벅, 쓰좆, 쓰벌, 웨폰마스터(비숍) 등 수많은 멸칭으로 불리는 스트리머였다.
주로 나이트폴 고랭크 유저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즐겨보는 주호가 유일하게 시청하는 비숍 방송인이기도 했다.
아무튼 방송의 순수한 재미로는 알아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주호도 스벅의 방송을 보면서 빌드를 카피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래. 말을 다시 하자. 스벅의 빌드를 카피한다기 보다 노르드라는 유저의 공략을 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리라.
나이트폴의 빌드는 그저 카피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모두들 유명한 프로 선수의 빌드를 따라했겠지.
빌드의 핵심은 주요 특성과 장비에 걸맞는 운영에 있었다.
빌드를 카피하는 과정에서 대강 훑는 정도로 실전에서의 운영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이트폴의 고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유명한 빌드에는 항상 게임 운영에 대한 공략과 팁이 따라 붙었다. 그러나 이론을 실전에서 구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나이트폴에서 빌드라는 건 카피에서 시작해 수많은 실전을 거듭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지금 스벅의 방송은, 검방이라는 빌드를 완성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종의 교보재에 가까웠다.
빌드의 완성도는 스벅의 전적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룩으로 향하는 승급전의 두 번째 게임이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대로 가면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스벅의 룩 복귀는 성공적으로 완료되겠지.
주호가 방송을 보던 중 황급히 나이트폴을 실행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무리 스스로를 즐겜러라고 말하고 다니는 주호였지만, 시즌 내내 비숍 2와 3을 왔다갔다하는 건 그로써도 내심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나이트폴에 인생을 꼬라박은 웬수들이 주호에게 삐숍이라 손가락질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만년 비숍으로 유명한 스벅도 룩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빌드라면, 자신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절실함이 담긴 이유였다.
똑똑-
"어, 왜!"
"저녁시간이야. 아주머니가 밥 먹으래."
왜 하필 이럴 때만 밥 시간이 오는지.
공부를 할 때는 절대 터치가 없는데, 왜 항상 게임에 집중하려하면 방해가 들어올까.
"좀만 이따가 간다 그래."
철컥.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방문이 열린다.
주호의 쌍둥이 남매는 동생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것을, 굳이 자신의 멱살을 쥐고 같이 내려가려 하는 건 왜일까.
"너 저번에도 그러더니 몇 분을... 어? 그거 나이트폴이야?"
"응. 금방 끝나. 이번엔 진짜 몇 분 안 걸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주호는 지금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르드의 피드백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사람은 목소리도 너무 좋단 말이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가끔 소름이 돋았다.
그러기를 잠시. 이상하게도 혜민은 떠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금방 끝난다니까."
"아냐. 나도 좀 궁금해서. 저번에 언니가 하는 것도 재밌어 보였단 말이야."
"누나? 누나가 뭔 나이트폴이야."
주호는 누이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미간을 찌푸린 혜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너 또 내말 안 듣고 넘어갔지?"
"아니, 게임할 때 그러면 내가 어떻게 들어... 누나가 나이트폴을 했다고?"
혜민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주호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집 나간 언니를 만나고 와서 꽤나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뭔가.
하기야 제 누나가 집에만 박혀 있을 때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동생이었다. 지금에 와서 언니의 이야기를 한들 특별한 관심을 보일 리가 없겠지.
"저번에 언니 집 갔다 왔다고 했잖아. 그때 언니가 나이트폴 하는 거 봤어. 엄청 잘하던데."
주호는 순간 방송도 잊고 한쪽 이어폰을 귀에서 빼냈다.
내가 잘 들은게 맞나. 뭐, 누나네 집에 가서 누나가 나이트폴 하는 걸 봤다고? 그것도 잘 했다고?
사람은 각자 수용할 수 있는 사실의 한계치라는 게 있는 법이다. 주호의 입장에서 방금 혜민이 내뱉은 말은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었다.
저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백번 양보해서 누나가 나이트폴을 했다고 치자.
주호의 기억에서 혜진은 방 안에 쳐박힌 채 만화나 보며 주절거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도 어쩌다 한 번 정도는 유명한 게임을 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집 밖으로 뛰쳐 나간 것도 어떻게 보면 굉장한 예외였으니까.
그러나 잘 했다는 건 논외의 문제다.
혜민이 나이트폴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종종 심심하다고 주호의 방에 들러서 주호가 나이트폴을 플레이하는 걸 바라보며 훈수도 두곤 하던 게 혜민이었다.
초보자가 무기를 휘적거리는 걸 보고 '잘한다'고 표현하지는 않을 거란 소리였다.
"누나 닉네임이 뭔데? 못 믿겠는데."
그러니, 주호가 볼 때 자신이 가지는 의문은 매우 타당했던 것이다.
"어? 응... 노드. 영어로 엔오알디 써서 노드. 진짜 잘했다니까?"
주호의 귀에 꽂혀 있던 왼쪽 이어폰에서, 여전히 감미롭게만 들리는 노르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호는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