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26 - 난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교육 방송은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스벅의 룩 달성이라는 성대한 결말과 함께.
생각한 것보다 뿌듯함이 커서 놀랐다. 교육 과정을 통으로 날려먹은 것 같은 플레이에 숨이 막힐 듯 답답하다가도, 간혹 놀랄만큼 훌륭한 플레이 보여주는 터라 재미가 있더라.
확실히 스승이라는 건 보람이 있는 직책이었다.
방송 화면의 중앙을 당당히 채우고 있는 금색 룩을 바라보며, 나는 곧장 방송을 종료했다.
호스팅 기능을 처음 써봤다. 내 방에서 저걸 지켜보는 것보다 시청자가 많은 스벅의 방송이 더 재밌겠지.
즐겁게 채팅을 치고 있던 시청자들이 잠깐 불을 지피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얼마안가 스벅 방송의 폭주하는 채팅창에 묻힐 것이다.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적절한 방종 타이밍이었다.
방송을 종료한 뒤에도 내겐 할 일이 있었으니.
바로 엘튜브 채널 개설이다.
방송을 제대로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엘튜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무슨 거창한 미래 계획을 설계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단순하게만 생각해봐도, 엘튜브는 안 하는 것이 손해더라. 생방송과 양립이 불가능하기는 커녕 오히려 상호보완적인 느낌이 강하지 않은가.
심지어 엘튜브는 대중성마저 뛰어났다. 나이트폴 엘튜브는 그 규모만큼이나 챙겨보는 고정 구독자 층도 많았다.
내가 만든 채널이 크게 흥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엘튜브를 통해 방송에 유입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어떤 영상을 올릴까인데.
생방송을 통째로 올리는 건 무리였다. 몇 시간짜리 영상을 누가 다 챙겨보겠는가. 트렌드에 따르면, 깔끔하게 편집된 영상을 위주로 올리는 게 맞았다.
그런데 내가 편집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
생소한 일은 이래서 문제였다. 뭔가 한걸음 나아가려 하면 바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문제와 문제의 연속이다. 답안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스벅의 엘튜브가 떠올랐다. 편집된 영상이 참 깔끔했는데. 편집자의 존재는 나에겐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내 한 몸 간수하지도 못하는데 무슨 편집자인가.
일단... 그냥 적당히 잘라서 올리자.
저스틴이 제공하는 다시보기 영상이 그대로 남은 건 다행이었다. 영상을 따로 녹화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첫 영상이 될 테니까 소스도 첫 방송에서 따오는 게 좋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별게 있겠나 싶었다. 영상 자르고 붙이는 것 정도야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는가.
그래서 지금이다.
새벽 3시.
몇 시간 동안 혹사당한 눈이 고통을 호소했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이상한 이물감이 느껴져서 집중이 잘 안됐다.
내 원룸을 가득 채우는 모니터의 불빛이 영상이 흘러감에 따라 반짝거리며 점멸했다.
그걸 볼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그냥 통째로 올릴 걸.
영상은 그냥 자르고 붙이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충 기워서 누더기 꼴이 된 영상을 업로드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나름대로 편집점을 잡는답시고 내 방송을 처음부터 다시보는 과정부터가 문제였다.
화면 속 개소리를 중얼거리는 내 모습은 바라보기가 좀 역하더라. 사실 저게 내 목소리가 맞는지도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가끔은 나도 소름이 돋았다.
그 묘한 오글거림을 극복하면서 편집점을 찾다보면, 이걸 또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그냥 이어 붙였더니 장면이 툭툭 끊기는 부분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부드럽게 연결하는 법을 찾아서 또 삼만 리 길을 돌아간다.
장면이 전환될 때 어떤 효과를 넣으면 좋다고 해서 그걸 알아보느라 또 길어졌다.
어느정도 해결하고 나면, 기왕 만드는 거 시작할 때도 뭔가 인트로를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하나 둘 배워야할 게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다. 편집된 영상을 반복재생을 하다 보면 부족한 게 너무 눈에 보여서 시간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해서 재생한 편집 영상을 그냥 종료해버렸다.
지금 재생하면 뭔가 또 마음에 걸리는 게 생겨서 잠을 설칠 게 분명했다.
편집자를 왜 따로 두는 지 알 것 같다. 편집 기술을 새로 배우면서 매일 생방송과 이 지랄을 겸할 수는 없겠지.
미리 생성해둔 엘튜브 채널에 30분 가량의 편집 영상을 그냥 업로드했다.
예상 업로드 시간이, 저게 완료되는 걸 지켜보고 자는 건 무리일 듯 싶겠더라.
나는 의자를 돌려 바로 침대로 뻗어버렸다.
공간이 협소한 것이 장점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책상에서 뒤돌면 바로 침대라니. 인간이 나태해지기 가장 좋은 구조가 아닐까.
업로드, 업로드... 채널이름을 Nord11로 짓기는 했는데.
내 채널인 걸 사람들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애초에 굳이 내걸 찾아서 보는 사람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수없이 많은 나이트폴 영상이 있을텐데 내 영상을 볼 리가 있나.
설정해야 할 것도 산적해있었다. 저스틴의 방송 채널에서 엘튜브 링크를 연결하는 기능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연동해둬야겠지. 그러고보니 방송과 관련된 배너도 많던데. 그런 것들도 하나 하나 채워넣어야 한다.
아니, 어차피 아무도 안 볼 거 같은데 왜 이리 오랫동안 편집에 시간을 갈아 넣었는지... 아- 모르겠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데. 몰려오는 수마가 복잡한 내 머릿속을 조용히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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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Nord11라는 계정의 채널에 동영상 하나가 업로드된다.
영상이 범람하듯 넘쳐흐르는 엘튜브다. 혜진의 걱정처럼, 찾아보는 사람이 없는 이상 이제 막 개설된 채널의 영상의 조회수는 올라갈 수 없는 법이다.
찾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찾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조회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단 이틀 동안의 방송에서, 노르드의 방송이 끼친 영향력은 혜진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애초에 소문이 퍼져나가는 걸 막을 수 없는 인터넷 방송의 세계다.
스벅의 방송으로 큰 인지도를 얻고, 첫 방송에만 천 명이 넘는 시청자를 기록한 신입 스트리머가 어떻게 유명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심지어 이 초짜 스트리머는 시청자와의 소통을 위한 창구를 단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 다른 스트리머들처럼 통합 커뮤니티를 사용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단 두 번에 불과한 개인방송에서는 시청자들과의 소통도 거의 없이 나이트폴만 주구장창 플레이하지 않았나.
화룡점정은 그 방종 타이밍에 있었다. 화려한 게임 플레이로 방송의 분위기를 한껏 띄워놓고, 시청자와 여운을 함께 즐기기는 커녕 한 순간에 방송을 꺼버리는 그 악랄함.
이 정도면 악질 시청자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일부 시청자는 화를 잔뜩 품어 악질로 변하기 직전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노르드라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머리가 가득 찬 무리들이 중대 단위로 양성되었으니.
새벽에 올라간 노르드의 엘튜브 채널이, 악에 받친 댓글 폭격을 받은 것도 다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이다.
그래, '업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임지선정 방종을 잘하는 여자 1위]
-이 영상도 방종하면서 칼같이 끝나네 ㅅㅂㅋㅋㅋㅋ
-이정도면 아티스트 ㅇㅈ??
-현대예술 다 좆1까 노르드센세 방종이 현대예술이다
-그래서 촉촉이 뭐라 그랬는데?
[여기가 시청자 수천명 내팽개치고 방송을 꺼버린다는 무친련이 사는 곳인가요??]
-어허 선생님한테 할말이 있고 못할말이 있지 ㅉㅉ
-응~ 미친 선생맞아
-그래서 촉촉이 뭐라 그랬는데???
[테에에엥 마망... 마망이 버리고 간 우리들 다 얼어죽었어...]
-시체아가들 끌고다니는 네크로맨서 ㄷㄷㄷ
-사람새끼가 아니긴하네
-다 노르드가 만든거야 책임져야해
-그래서 촉촉이 뭐라 그랬는데?????
[아ㅋㅋ 유입들 시작부터 악질로 양성하는 스트리머가 있네ㅋㅋ 방송키면 딱대라진짜]
-애초에 스벅 방송보고 건너온 새끼들 많아서 악질천진데 ㅋㅋ
-내가볼때 방장이 더 악질임
-그래서 촉촉이 뭐라 그랬는데???????
[여러분들 화내지마시고 센세 슈퍼플레이나 보세요. 17:30~]
-더 화난다 씨발 저러고 바로 방종했잖아
-존나 잘해서 화남
-막판에 채팅창 터진거 보임?? 저게 내 속터지는 모습임
-아 또 생각나네ㅋㅋ 갑자기 화면에 오프라인.. 진짜 방송키기만 해라
-그래서 촉촉이 뭐라 그랬는데?????????
[어떻게 저런 목소리로 쵸코칩 ㅇㅈㄹ을 할 수 있는거죠]
-칙쵹???칙쵹???칙쵹???칙쵹????
-인터넷에 치면 나와 ㅂㅅ아
-어쩌라고 씹련아 ㅋㅋ 방장 입에서 듣고 싶다고
[선생님 방송 키기만 하십쇼 메모장 꽉 채워놨습니다]
-센세 어차피 채팅안보고 무시함
-타격 제로 ㅋㅋㅋ
[지금 방송 안키면 노르드마갤 파서 정예 멤버 모아간다^^]
-응 이미 단톡방 만들어놨어~
-ㄹㅇ임??
-구라지 ㅂㅅ아
-저수지 가동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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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는 새는 더럽게 피곤하다.
피곤을 대가로 먹이를 구할 수 있다면 그건 충분한 교환조건일까. 피로가 누적되어 죽는 게 빠를지 끼니를 걸러 죽는 게 더 빠를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새벽에 자는 사람치고 상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분명 잤는데도 뻑뻑한 느낌이 드는 눈 하며, 뻑적지근한 온 몸은 블쾌함의 결정체다.
...몸이 무겁다. 정말 눈물나게 상쾌한 아침이다.
조금 늦게 잔 정도로 이렇게 컨디션이 망가질 수가 있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환자 수준이다.
오래 자려고 알람도 오후로 맞춰 놨는데. 도대체 이 시간에 문자가 왜 날아온다는 말인가.
<혜민>
오늘 주호랑 언니집 들려도 돼? 물어볼 것도 있고 주호도 언니 얼굴 보고 싶대.
아. 제발.
황급히 날짜를 확인하니 주말이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집에서만 살다보면 시간 감각이 완전히 날아가는 법이다. 평일이랑 주말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냐 싶거든.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은 완곡한 거절의 문자로 이 위기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몸 상태도 그렇고 방송도 문제였다. 고작 이틀 방송했는데 삼일 째에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노를 저어야 할 땐데.
'내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다음에 놀러와.'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띠링-
...무섭게도 답장이 바로 날라왔다.
<혜민>
왜? 어제 방송 잘만 하던데.
예? 이거 호러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