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27 -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 줘 (27/243)



〈 27화 〉27 -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 줘

도대체 왜 그래.

나는 잘못한 거 없다고.

죄의식이라는 건 정말 기묘하게 작용한다. 양심의 문제일까.

어느 누군가는 바닥에 쓰레기 하나만 떨어뜨려도 죄책감을 느끼는 반면, 다른 누구는 사람을 때리는 일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양심의 문제란 곧 염치의 문제이기도 했다. 스스로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부끄러움을 느낄  있는지.
그럼 나는 지금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건가.

염치가 없는 종자랑은 상종도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죄의식의 근본을 파고 들기란 이리도 어렵다. 그건 합리적인 영역이 아니다. 법률을 들이밀어 죄를 묻는 행위는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묘한 죄책감은 대체 무엇일까.

혜민의 문자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방송을 한다는  무슨 죄일 리는 없겠지. 그런데 들키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숨기다 들킨 것처럼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묘한 감정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나는 혜진의 공백을 실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 이 죄의식이 혜진의  자리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하고.

때로 인간은 자신이 행한 일이 아님에도 죄책감을 갖고는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내가 혜진을 내쫓은 것도 아닌데. 대체 왜.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  모르겠어서 침대에 누워있기를 몇 분.

잡아떼는 것도 추하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냥 포기해버렸다.

올 테면 오라지.

그러고서는 혜진과 혜민, 그리고 이제 처음 마주할 주호에 대한 상념에 빠지는 것이다.

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사실 정체성에 확신을 가진다는 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혜진인가, 태진인가. 굳이 따지자면 태진이면서 혜진인 혼종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서 나를 태진으로 봐 주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나는 혜진일 수밖에 없었다.

혜진. 혜진의 기억이 없는 혜진. 온전하지 않은 반쪽짜리 혜진이다.

피가 이어진다고 전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함께 살아온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가.

머리 한 켠에서는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기억상실증 환자가 떠올랐다. 그런 걸 보면 기억을 잃었다고 모든 인간관계가 사라지는 것 같지는 않던데.

훼손되었을 관계를 수복하기 위해 먼저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지.

내 경우를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피로에 쩔어 무거운 몸 만큼이나 머리도 생각의 무게로 짓눌렸다.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들. 내겐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문제들이 하나  쌓이다 보면 결국 그 막막함에 질려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가 막힌 악순환이다.

그냥 이대로 늘어져서, 혜민이 오기를 기다리면 어떨까.

내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나를 혜진으로 바라볼텐데.

잠이 부족한 것만으로 사람은 이리도 무기력해지는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바지를 끌어올리는 것도 귀찮았다. 왜 바지는 젖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축축한 바지, 축축한 바지?


아.

생리, 씨발.

###

"건물이 많아서 꽤 복잡하네. 처음 오면 좀 헤매겠는데?"
"주변에 오피스텔이 많아서 그래."

혜진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혜민은 자연스럽게 처음 언니의 원룸으로 향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불규칙적으로 솟아난 건물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골목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물 밖으로 뛰쳐나간 자신의 언니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 혹시 아무도 모르게 고독사로 치닫고 있지는 않을지.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아닐지.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있던 탓이다.

혜민은 스스로가 걱정이 많은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언니에 대한 것만 예외였다.

실제로 제 언니의 생활을 직접 목도하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지 않았나. 물론 그녀가 걱정하던 방향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답장 왔어? 저기 피자라도 사갈까."
"됐어. 속이 좀  좋은 모양이야. 죽 같은 걸로 골라야 될 것 같은데."

지금은,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저번에 말한 '다른 일'이라는 게 방송이었을까. 혜민은 지금 자신의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방송 한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속상함? 서운함?

가족끼리 비밀을 밝힐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대에 함께 누워 잠에 들던 시간이 떠올라 마음을 헝클어뜨리는 것이다.

그 정도는 말해줄 수도 있었잖아, 라고.

혜민이 인터넷에서 혜진의 흔적을 찾는  밤을 새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지난 밤, 혜민은 언니의 지난 방송  개를 빠짐없이 시청했다.

다시보기를 하는 와중 엘튜브에 올라온 편집영상까지. 모두 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쓰고 행세한다고들 하지만. 방송을 통해 드러난 언니의 모습이 너무나 생소해서, 혜민의 심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본인을 상대할 때보다 방송에서의 모습이 훨씬 편한 것처럼 보여서.

혜민은 참지 못하고 일주일만의 재방문을 결심해버렸다.

주호의 존재는 좋은 구실이었다. 어색할 게 뻔하다며 손사래치던 지난 번의 외출과는 달리, 언니의 방송을 알게 된 주호는 혜민의 제안을 반기는 낌새였다.

방송을 보고 궁금한 점이 많아 보였다. 혜민으로써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그녀가 나이트폴을 플레이하지는 않았지만, 엘튜브 구독자가 무려 50만에 달하는 유저와 합방을 하는 언니의 모습이라니. 충격을 받을 법도 했다.

게다가, 주호는 '노르드'가 언니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도 못하고 방송을 보고 있지 않았나.

혜민이 언니의 닉네임을 말하자 뇌가 멈춘 듯 반응하지 못하던 주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곧 쏟아낼 호기심이 많을 터였다.
혜민 자신이 그렇듯이.

띵동- 띵동-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중간에 죽을 사기 위해 방향을 틀었는데도 그랬다.

애초에 자는 주호를 깨울 정도로 출발에 서둘렀기 때문일 것이다. 혜민은 어젯밤부터 계속 이 현관문을 떠올렸다.

철컥-

"어... 일찍 왔네?"

금방, 혜진이 문을 열었다.

혜민은 일주일만에 만난 언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술기운이 남아있던 지난 날의 얼굴과는 또 달랐다.

혜진의 머리에는 옅은 물기가 남아있었다.

초인종 소리에 일어났던 그 때와는 달리 방금 씻고 나온 모양이다.

앞머리를 뒤로 넘겨 훤히 들어난 얼굴이 심할 정도로 새하얗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인데, 지금은 파리하다고 느낄 정도로 창백했다.  자리잡고 있던 다크서클은 한층 더 짙어져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명백한 병자의 안색이다.

몸이 안 좋다고 말한 혜진의 말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혜민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질문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자리엔 죄책감과 미안함이 남았다.

잠깐 입술을 깨물었던 혜민이 입을 열었다.

"언니, 많이 안 좋아? 미안... 방해 안 할테니까 일단 누워있자."
"응? 아냐아냐. 그냥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었어."

정상이 아닌  확실해 보이는데.

혜민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주호는  손에 죽이 담긴 봉투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피붙이의 격변한 모습에 충격을 받기라도 한 모양이다.

매번  안에 박혀있던 언니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드문 주호였다. 혜민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이 영 낯설게 느껴졌겠지.

"아직 밥 안 먹었지? 몸 안 좋다고 그래서 죽 사왔어. 일단 들어가서 먹자."
"아, 뭐 사올 필요 없는데. 헤. 어여 들어와."
"...언니 어제도  마셨어?"
"응? 뭔 술. 그냥 좀 정신이 없어서 그래."

묘하게 동공의 초점이 안 맞는다.

저번에는 말할 때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던 것 같은데.

혜민은 혜진의 이마로 손을 뻗었다.

"열 나잖아."
"열? 방금 샤워하고 나와서 그래. 뜨순 물로 했거든. 그래서..."
"주호야. 언니 눕히는 것 좀 도와줘."
"아, 응."

혜민과 주호가 혜진의 양 옆으로 가서 팔을 붙잡았다. 안 그래도 비좁은 원룸의 현관이다. 혜진의 왼팔을 부축한 주호는 거의 벽과 밀착한 상태였다.

연행당하다시피 침대로 끌려가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혜진이 몸을 비트는 게 느껴졌다.

그 조그마한 발버둥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혜민과 주호가 연민을 느낄 정도였다.


"난  좀 데울게."

주호가 말했다.

혜진은 베개를 등받이 삼아 침대에 얌전히 앉았다. 몇 번인가 전혀 아프지 않다고 웅얼거리다, 혜민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주눅이 든 것 같았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혜진의 긴 머리카락은 여전히 물기에 젖어있었다.

"머리는  말리고 나와야지."
"아니, 너희가 일찍 와서 그렇지... 나도 손이 있고 발이 있는데..."

혜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민은 화장실로 향했다. 드라이기를 가지고 나올 생각이었다.





나는 지금 실시간으로 무기력함을 맛보는 중이었다.

 처진 신체는 탈력감에 젖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토록 물리적인 무력함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양 쪽에서 부축해오는 팔은 미동도 하지 않더라.

샤워를 할 때도 물이 너무 차갑게 느껴져 온도를 한껏 올린 상태로 씻었다. 사실 머리를 말릴 시간은 있었다. 그냥 드라이기를 들어올리는 것조차 피곤해서 생략한 것뿐이었다.

신체에 퍼지는 무기력감이 그대로 정신까지 번지는 듯 했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이리도 애 같은 취급을 받는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힘 없이 처진 몸은 도움의 손길을 선뜻 환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웅-

따듯한 열기가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간다. 어느새 드라이기를 가져온 혜민의 손길이었다.

자연스럽게 긴 머리를 타고 내려가는 덕분에 뜨거움을 느낄 일도 없이 편안했다. 능숙한 솜씨였다.

"머릿결이 조금 상한 거 같은데... 언니 관리하고 있는 거 맞아?"
"으응..."
"언니?"

평소에도 말리기 귀찮다는 이유로 젖은 머리카락에 수건만 두르고 나오곤 했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머리가 엉키는 탓에 감을 때는 열심히였다.

그러나 무슨 관리라는 걸 하겠나. 하루에 한 번 씻으면 그게 관리 아니냐고.

나는 그낭 못 들은 척 입을 닫았다.

"머리 말리는 데 오래 걸려?  다 데웠는데."
"아냐. 거의  말라서 금방 끝나."

뭐든지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자취 생활을 겪다가, 누군가 그걸 대신해준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상상 이상으로 편했다. 잠시 이 둘이 원룸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낄 정도로.

아프다는 이유로 상전 대우를 받는 걸 보면, 그래도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처음만난 동생도 있다는 건 차치하고서.



주호는 키가 컸다. 어림 잡아도 180은 넘을 것 같았다. 얼굴에는 묘하게 앳된 느낌이 남아 있는 것이 마치 학생 신분임을 티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대학에 가면 여자 꽤나 울릴만한 상이다.

...뭔가 젊은 친구 얼굴을 품평하는 노인네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선을 돌렸다.

주호가 펼친  탁자에 죽이 담인 플라스틱 용기가 올라왔다. 고소한 냄새가 방을 가득 채운다. 닭죽인가 보네. 인삼처럼 보이는 건더기가 표면에 올라온 것이 눈에 띈다.

나에겐 커다란 호사였다.

"언니, 먹기 싫어도 먹어야 돼."
"...응.  먹을게. 너흰 안 먹어?"
"우린 집에서 먹고 왔어."

적막이  안을 감쌌다.

조용한 원룸에는 내가 식기를 움직이는 소리만 옅게 퍼졌다. 혜민과 주호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는  느껴졌다.

괜히 존재하지도 않는 TV를 찾는다. 그런 거라도 있었으면 나를 쳐다볼 일은 없었을 텐데. 다같이 밥을 먹으면 모를까, 무리에 껴서 혼자만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제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줘.

"저기, 그렇게 쳐다보면 조금 불편한데..."

 말에 주호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시선을 돌렸다. 아주 개념에  친구였다. 내 안에서 주호의 평판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혜민은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 눈초리. 언젠가  번은 꿈에서 나오리라.

내가 잘 먹는지 반드시 확인하려는 모양이다. 난 눈물을 삼키며 내키지 않는 죽을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죽이니까 이렇게 쳐먹어도 소화는 되겠지. 만약 안 된다면 그건 정신적인 문제 때문일 것이다.

"어제 편집하느라 늦게 잤어?"

컥.

죽도 목에 걸릴 수가 있구나.

사실 목에 걸린 건 죽이 아니라 내 정신머리였다.

혜민은 분명 기습의 대가가 될 재능이 있었다. 나이트폴을 시켜보면 무지 잘할 것 같은데.

무슨, 맥락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나.

"언니 방송하는 거 봤어. 나랑 주호가 궁금한 게 많이 생겼거든. 그래서 말인데..."

황급히 물을 삼키는 내 옆에서 혜민은 계속 말을 이었다.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동생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떠올라 숨이  막혔다.

"대답해 줄  있지?"


무서운 년, 무서운 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