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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화 〉28 - 사실 불이 난 건 저기였어 (28/243)



〈 28화 〉28 - 사실 불이 난 건 저기였어

"...그래서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다?"
"응, 응. 아무도 안  것 같아서... 하다가 잘 되면 말하려고 그랬지."


왜 나는 변명을 하고 있나.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잘못한 일은 없잖아. 독립까지한  큰 성인이 혼자서 무슨 일을 시작하든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컴컴하게 가라앉은 혜민의 눈초리를 홀로 감당하며 나는 한 없이 작아졌다.

이 자매의 사이에선 비밀을 만드는 것조차 죄가 되는 모양이다. 아무런 맥락 없이 혜진이 되어버린 나는 규칙도 모르는 관계에 힘겹게 적응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혜진이 혜민의 용돈을 들고 튄 적이라도 있나?



"몸 관리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없을  그냥 아무것도 안 먹고 게임만 하는 거 아니야? 혈색이 너무 안 좋잖아."
"밥은 챙겨먹지. 그냥 오늘 그...날이라 그래."

전혀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이건 그냥 생리현상이니까.

그런데 왜 머뭇거리게 되는지. 나도  모르겠다.

 말을 들은 혜민의 얼굴이 조금은 풀어진 것처럼 보였다. 원래 공감할 수 있는 고통에는 다들 누그러지는 법이다. 몸 관리고 나발이고, 이건 노력으로 피할 수 있는  아니었으니까.

나를 심문하려는 마음이 사라졌나 보다. 혜민은  쪽으로 다가와 내 가슴쪽 까지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럼 우리 신경쓰지말고 한숨 자. 새벽까지 안 자고 영상 올린 거 아니야?"
"응. 그건 맞는데... 혹시 그것까지 봤어?"
"어제 언니 방송까지 다 보고 온거야. 엘튜브는 나중에 확인했는데 업로드된 영상이 있어서... 언니 그럼 영상만 올리고 바로 잔거야?"
"누가 볼 줄은 몰랐어."

정말로 몰랐다. 간혹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게 동생이  줄은 몰랐지.

스트리머 스벅은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나이트폴 인터넷 방송이 꽤나 대중적이라거나.

 대답을 들은 혜민은 잠시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잠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그리 쉽게 잠들 수는 없었다. 다같이 자는 상황이면 모를까, 두 명이 멀쩡하게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신경줄이 두껍지는 않았다.

이불을 덮고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컴퓨터 책상  의자에 앉아있던 주호가 나와 혜민이 있는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누나 그럼 지금 상황도 모르겠네?"

지금 상황?
처음 만난 동생과 두 번 만난 동생에게 포위되어 있는 상황아닌가.

주호는 다른  없이 누워있는 내게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엘튜브. 아, 내가 업로드한 영상이다. 어플로 보니까 조금 신선한 걸.



댓글... 263개?

조회수가 아니라 댓글인데.

나는 홀린 듯이 댓글을 클릭했다. 자동 밝기조절을 켜놨는지 갑작스레 빛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눈이 부셨다.

무슨 매크로같은 게 아니라 진짜 댓글인가 보다. 하나 하나가 모두... 감정을 한껏 쑤셔박은 것 같은 문장들이더라.

혜진씨, 인기가 대단하네.


"...누나 댓글 처음 본 거 같은데?"
"그러네. 눈동자 흔들리는 거 봐."
"뒷감당은 생각하고 방종을 하셨어야 되지 않을까요, 노르드님?"

주호도 방송을 본 것 같다.

나이트폴을 한다고 했나. 그럼 애초에 스벅의 방송을  건 주호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방송을 시작한 이래로 자기객관화를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무엇 하나 예상대로 흘러가는 일이 없다.

이토록 일찍 유명세를 얻었으니, 걱정거리는 날려버리고 일단 좋아해야할까?

나는 내가 그렇게 긍정적인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근본 없이 높게만 세워진 건축물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지금 내게 쏠린 인기는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그리 쉽게 무너질거면 애초에 쌓이지 않는 편이 좋은데.

디딤돌을 딛듯이, 차근차근 성장하는  안정적인 법이다. 이건 과하게 높았다. 뛰어내리기 위한 번지점프대로밖에 안 보인다.

개미털기, 개미털기가 필요해.


"언니, 언니?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역시 댓글들이..."
"댓글 수준이 좀 그렇긴 해. 엘튜브에 댓글 차단하는 기능 있지 않았나? 그거 하는 게 좋을  같은데."

어두운 내 표정이 댓글의 내용에서 비롯되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혜민과 주호는 댓글을 차단하는 방법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용? 내용은 별로 문제될  없었던  같은데... 그냥 흔한 시청자들 아니었나.

"아냐. 괜찮아. 그냥 좀 생각보다 댓글이 많이 달려서 그래. 아무도 안 볼 줄 알았거든."

"뭐?  맞다. 나도 물어볼  엄청 많은데. 나이트폴은 언제부터 한 거야? 왜 그렇게 잘해.  어제 혜민이가 알려줄 때까지 몰랐다니까?"

지금까지 분위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던 모양이다. 이야기가 나이트폴로 흘러가자, 주호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제 호기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이트폴. 10년 전부터 했지.

"자취하고 재밌어보여서 시작했지..."

세상에는 숨겨야만 하는 비밀이 존재하는 법이다. 졸지에 10년에 달하는 나의 나이트폴 경력은 백지로 초기화됐다.


나이트폴 플레이 경력 몇  만에 퀸 달성이라.

 무슨 희대의 재능충인가.

월드 시리즈 우승을  먹듯이 했다던 프로 선수의 전설적인 과거처럼 얘기해도 믿을까 말까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혜진의 나이트폴 경력은 명백히 그 정도 시간에 불과했다. 혜진(태진)이라니, 그런 건 아무도 못 알아본다.

주호는 신났는지 나이트폴 이야기를 한참동안 떠들었다.

어떻게 바로 퀸을 찍은건지, 빌드는 어디서 그렇게 연구했는지, 본인 티어가 비숍인데 룩 까지 올리고 싶다든지, 스벅과는 친한 사이인지.

정말 궁금한 게 많기도 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기막혀하는 혜민의 표정이 일품이었다. 저번에 혜민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고려하면 원래 서먹한 사이임이 분명할 텐데.

주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이해가 갔다. 자기 피붙이가 자신이 하는 국민 게임의 초고수, 그것도 유명인과 아는 사이라니.

고등학생 때면 한창 게임에 많은 걸 불태우고 있을 때가 아닌가. 그 시기면 본인이 하는 게임의 랭커가 연예인이 되는 법이다.

...동생에게 게임을 알려주면서 친목을 도모한다라. 태진이라면 절대 못할 일이긴 했다.

"...같이 한 판 할까?"

내 말에 누군가 저토록 기뻐한다는 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눈에 띄게 밝아진 주호의 얼굴이 보였다. 다소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진 혜민과 나와는 달리, 환하게 웃는 주호의 주변에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듯 했다.

나도 잠시 미소를 지을 정도로.




툭.

 옆에 앉아있던 혜민이 이불에 가려진 내 손을 붙잡았다. 살며시, 손 전체를 감싸온다.

"나랑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다.

"혜민이 너는 나이트폴을 안 하잖아..."
"언니가 나랑 해주면 바로 시작할게."

혜민은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차분한 분위기를 지키다가도 어느샌가 급격히 가라앉고는 한다.

보이지 않는 발작 버튼이라도 있어서, 눈치 없는 내가 자꾸 밟아버리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정도다.

무서운 년...

대화의 흐름과는 별개로, 지금 당장 셋이 게임을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게서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어낸 혜민은 어서 눈을 붙이라고 성화였다. 내가 잠이 오지 않는다고 뜸을 들이자 아예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누워 버렸다.

본인도  방송을 보느라 잠을 못 잤다나. 언니가  자겠으면 자기가 같이 도와주겠다는... 그게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직도 밝은 표정으로 헤실대고 있는 주호에게는 그냥 나이트폴이나 하고 있으라고 컴퓨터를 맡겼다.  중 둘이 자고 있으면 심심할  아닌가.

오랜만에 사람의 방문으로 떠들석했던 원룸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간간히 주호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평화, 평화인가.

베개가 없다며 혜민이 몸을 기댄 탓에 조금 답답했다. 대화가 끊겨 조금 차분해진 머리가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를 해석하느라 바쁘게 돌아갔다.

아침에, 동생들이 방문해서, 여동생은 같이 잠을 자고, 남동생은 게임을 하고 있는-.


무슨 해석인가, 염병할.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제발 잠들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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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잠들어버렸다. 그것도 꽤나 깊게.

눈을 떴을 때 해는 이미 퇴근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직 찌뿌둥한 느낌이 남아있었으나 아침과 비교하면 훨씬 좋았다.

내 옆에서 자던 혜민은 먼저 일어났는지 침대 끝자리에 앉아있었다. 주호는 아직 컴퓨터를 하는 중인가. 아마 주호가 하는 게임을 지켜보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언니 일어났어? 몸은 좀 어때."
"아까보다 훨씬 나아. 자기를 잘했네."

혜민이 다가오더니  이마로 손을 뻗었다.

"응... 열도 가라앉은 것 같네. 조금 있으면 저녁시간이야. 아까 죽 남은 거 데워 먹자."
"너희는? 내가 뭐라도 시켜줄게."
"주호랑 피자 시키기로 했어. 다 못 먹을 테니까 남으면 나중에 언니 먹어."

고개를 끄덕이고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후 다섯시. 오늘 밤에는 잠이 올까 의문이다.

기지개를 켜고 나니 다시 몸에서 힘이  빠졌다. 많이 나아졌다지만 정상적인 컨디션은 아니었다.

몸살이 같이 왔나. 망가진 신체 리듬에 수면 시간까지 줄이다보니 반동이 조금 강하게 온 모양이다

주호가  하고 있나 궁금해서 모니터를 쳐다봤다.

아, 스벅의 엘튜브 채널이다. 이제는 익숙한 스벅의 얼굴이 한껏 찌그러지고 있었다. 뭔데 저렇게 고통받고 있는지.


...나였다.

어제의 교육을 벌써 편집해서 올린 모양이다. 스벅은 내게 패링을 당할 때마다 한껏 얼굴을 찡그리더니 점점 울상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저렇게 힘들었나. 죽이지도 않았는데.

"그건 왜 보고 있어?"

주호가 고개를 돌렸다. 손이 키보드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뭔가 타이핑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메모장인가.

"아, 나 이것 좀 가르쳐 줘. 공격권 잡았을 때 완급조절은 어떻게 하는 거야? 누나는 스벅이 공격하는 거 다 쳐내잖아."

강의를 보고 있었나 보다.

"응. 그건 말인데..."

주호는 학구열이 넘쳐나는 학생이었다. 열의가 있는 학생은 환영할만하지. 게임 이야기는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어 하는 대화 소재였다. 그래, 이거다. 평소에도 게임에 대해서만 말했으면 좋겠다.

"맞다. 누나 이 영상 댓글 봐봐."


댓글. 뭔가 불안한데.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호는 거침없이 마우스 스크롤을 내렸다.


[ltube.com/channel/Uld7SHk9IrH44dcx 노르드 채널 많이 사랑해주세요~]
-오 선생님 방송 시작하셨나요?
-본인등판
-아니 짭이잖아 ㅅㅂ
-채널은 진짜임ㅋㅋㅋㅋㅋ

[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노르드방송켜]
-왜 여기서 난리에요?
-소통할데가 없잖아
-근데  스벅채널에서 지랄이냐고 쓰벌
-'그냥'

[저,,,저,,, 악질련 스벅 룩 찍자마자 방종하고 튀는거 보소,,, 철창에 가둬놓고 방송만 시켜야됨,,,]
-센스있게 승급축하하면서 자리 비워준건데;;
-ㅈㄹ마 씹련아ㅋㅋ 축하? 우리는 따스한 보금자리를 잃어버렸어
-말하는거보소

[화재 전문 스트리머? 그 스승에 그 제자]
-선생님이  존나게 질러놓고 가셨네
-활활타오르는건 스벅네 집이었고
-걱정마셈 센세 채널도 잘 타는중
-센세가 신경이나 쓰겠냐고ㅋㅋㅋㅋㅋ

[여러분 스벅님이 룩으로 복귀하신  고귀한 영상에서 다들 뭐하시는거죠? 분탕치지들 마시고 Nord11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드리프트 수준;;  혹시 두부차 운전함?
-신고했습니다^^
-뭘  빠개 뒤질라고

[스벅 노르드 재합방할때까지 숨 참는다 흡]
-이미뒤진시체입니다
-저기 네크로맨서 전문 방송인은 노르드님이거든요? 그쪽 찾아가세요
-거기는 시체들밖에 없어서 좀 무서움
-네다시(네 다음 시체새끼라는 뜻~ㅎ)

[채널 잘못들어온줄알았네;]

[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

[댓글들 정신 나갈거같네 씹ㅋㅋㅋㅋ]


아.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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