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29 - 태울 게 없으면 불도 꺼진다
난 분명 눈 앞의 작은 모닥불인줄 알았는데.
옮겨 붙는 꼴을 보니 그건 산불이더라.
댓글의 내용이야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는 중대한 문제였다.
우리 집 마당에서 때운 불이 옆집까지 번지면 그건 범죄가 되버리는 일 아닌가.
댓글만 보면 스벅의 채널인지 내 채널인지도 모르겠다. 나랑 같이 방송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방송 시청자들이 이쪽으로 모여든 건가.
댓글 창을 어지럽히는 도배 댓글의 주된 내용은 노르드에게 방송을 키라는 성화였다.
이해가 잘 안 되더라.
나이트폴 방송 같이 카테고리가 정해져 있는 분야는 굳이 한 사람에게 집착할 필요가 없지 않나.
내가 방송을 하지 않더라도 수백에서 수천 명의 방송인이 나이트폴을 플레이하고 있을 터였다. 그들 중 하나 둘 정도는 자기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을텐데, 왜 스벅의 채널까지 와서 나를 찾고 있냐는 말이다.
순전히 악의적인 테러라고 보기에는... 그 수가 많은 게 문제였다.
스벅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불 타는게 일상인 사람이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스벅이 잘못한 일도 아니니 더 크게 번질 일도 아니었고.
그러나 어찌됐든, 이건 나로 인해 발생한 화재였다.
원인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뻔히 내 닉네임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책임의 소지가 나에게 있다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마냥 눈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해결해야만 하겠지.
최신 댓글을 보니 도배 댓글은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일단 방송이라도 키면 어그로가 내 쪽으로 붙지 않을까. 가만히 있어도 진화될 불이라면 참 좋을 텐데, 나는 그걸 확신할 수가 없었다.
방송... 방송을 켜야할 것 같은데.
뒤에 있는 탓에 내게 댓글을 보여준 주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의도로 보여준걸까.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꽤나 재밌는 상황일 것 같기는 했다.
원래 불구경만큼 재밌는 것도 찾기 힘드니까.
"누나 인기 장난아니네."
실 없는 소리나 하고 앉았다.
그래도 마냥 재밌지만은 않은 듯 했다. 내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있지 않았다.
인기라는 건 그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이렇게나 몰리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정확히 말하면 괜찮은지 물어봐야 되는 쪽은 스벅이었다. 내가 스벅의 입장이었다면 짜증이 솟구쳤을 것 같은데.
동생들을 뒤에 두고 방송을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무슨 새로운 방식의 고문이란 말인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지금 키는 건 곤란했다.
저녁까지 먹고 갈 거 같은데. 지금 내쫓을 수도 없고... 방송은 밤이 깊어질 즈음에야 간신히 킬 수 있을 것 같다.
"언니 오늘도 방송 켜야 하는 거 아니야?"
뒤에서 피자를 시키던 혜민이 말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모양이다.
그니까 니들이 문제라고.
"아니야. 너희들 가고 나중에 하면 돼. 방송으로 너네 목소리 나왔다가 친구들이 알아보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
"마이크 끄고 게임만 하면 되잖아. 어차피 방송 키기만하면 저 사람들 다 몰려올 거 같은데."
"...그럴까?"
이건 좀 혹했다.
뭔가 더 불탈 것 같다는 불안이 들기도 했지만.
아니다. 실력 방송을 표방할 거라면, 이 정도의 시련은 게임 퍼포먼스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 방송을 키면 뭐라도 해결되지 않겠냐는 생각부터, 어설프게 했다간 불만만 더 키울 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슬슬 커져가는 것 같은 두통에 고개를 드니 주호의 기대감 충만한 눈동자가 보였다.
...방송 하는 걸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 어차피 급격히 불어난 시청자 때문에 부담감이 커지지 않았나. 빨리 털어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노 마이크 실력 방송이라면 거품처럼 낀 인기도 덜고 방송 컨셉도 굳힐 수 있지 않을까.
내 경험상 이럴 때 가만히 고민하다 보면 해결책은 커녕 머리만 더 복잡해지는 경우가 태반이었으니.
지금은, 실천을 하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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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에는 팔로우 기능이 있다.
엘튜브의 구독과 흡사하게, 좋아하는 스트리머에게 팔로우를 함으로써 방송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저스틴에 거의 거주하다시피 하는 저수들은 팔로우 목록도 수십 명에 달했다.
그리고 방금. 여느 때처럼 저스틴을 시청하던 몇몇 저수들에게 또 다른 알람이 울렸다.
방송 시작 이틀에 빛나는 신입 스트리머. 'Nord11'의 방송이었다.
불과 경력 이틀에 불과한 초짜 중의 초짜에게 얼마나 많은 팔로우가 붙었겠냐마는.
세상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일도 빈번히 발생하고는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틀차 신입 스트리머의 방송 알람에 수백 명의 시청자가 일제히 돌입한다던가, 하는.
[방장 문열어!!!!!]
[숨 참느라 죽을뻔했다ㅋㅋ]
[테에엥ㅠㅠ맘마 나 기다렸어ㅠㅠㅠ]
[노르드펀치!노르드펀치!노르드펀치!노르드펀치!]
[불붙여! 다음은 청와대로간다]
[눈나ㅏㅏㅏㅏ나죽어ㅓㅓㅓㅓ]
[스벅엘튜브 불태우니까 노르드가 튀어나오네ㄷㄷ 자주 태워야겠다]
[커뮤니티 올라온거 보셨나요?]
방송 시작과 동시에 들어온 시청자들이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속도였다. 성난 황소 떼가 지나가듯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간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황한 티를 내보일 법도 한데, 스트리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무런 설정도 없는 방송 준비 화면이었다. 우측 상단에 작게 표시된 'on air'가 아니었다면 방송이 켜진 사실도 모를 것 같았다.
그러길 잠시. 캄캄했던 화면이 갑작스레 웅장한 성채로 가득찬다.
귀를 가득 채우는 웅장한 나팔 소리와 함께.
[????]
[고성맵 준비화면인데?]
[선생님 말씀좀해주세요]
채팅창이 의문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게임 소리가 스트리머를 대신해 방송을 채웠다. 여전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아무런 전조도 없이 화면 상단부에 커다란 자막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설정을 잘못했는지 과하게 큰 자막이 금새 화면의 절반을 가려버렸다.
'노마이크 빡겜. 킹으로 갑니다'
불씨에다 장작을 더하고 기름을 끼얹는 것 같은 행위였다.
채팅창은 삽시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문자를 활용한 도배는 약과였다. 불타는 이모티콘과 AA(아스키 아트. 텍스트를 활용해 그림 따위를 흉내내는 것)를 활용한 채팅 폭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그 난리에도 방장은 입을 열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조용히 자막만 수정됐다. 그제서야 화면의 절반 가량을 가리던 거대한 자막이 정상적인 크기로 줄어들었다.
채팅창을 배제한 방송화면은 정적이기 그지 없었다. 아직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무장과 특성을 점검하는 정비시간이었기 때문이리라. 광전사는 그저 자신의 대검을 다시 한 번 살펴볼 뿐이었다.
곧 다가올 전쟁을 알리는 나팔 소리만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침착하게 대검을 치켜올린 광전사와, 무서운 속도로 폭주하는 채팅창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채팅창에는 시선도 주지 않는 제 누이을 바라보며, 쌍둥이는 일종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아, 이 사람이 제정신은 아니구나-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은 그 덤이었다.
[와 ㅆ1발 존나잘해]
[이제 힘들다...그냥 게임이나 볼란다]
[도배충들 다 어디감? 근성이 썩어빠졌네ㅋㅋ]
[그들도 관심을 먹고 산답니다. 제발 관심을 주세요]
[소통부족으로 문제가생겨? 그럼 소통을 끊어버리면 돼]
[소통은 범죄다 낄낄]
[엄마한테 관심을 못받은 어린이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데요]
[아 그래서 니가 ㅎ:]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덧 채팅창도 잠잠해졌다. 도배로 유명한 악질 시청자들도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분탕을 치기는 힘든 모양이다.
노르드는 자막으로도 모잘라 아예 방송 제목란을 '노마이크 빡겜'으로 바꿔버렸다. 그러고는 정말 아무 말 없이 나이트폴 랭크 게임을 진행했다.
채팅창이 얼마나 불타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채팅창이 도배로 가득차던 와중에는 방송에 전혀 관심이 없던 시청자들도 하나 둘 플레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말 없는 방송에 시청자가 모여들 수는 없는 법이다. 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분탕들이 떠나버리자 노르드의 방송은 꽤나 조용했다.
남은 시청자들은, 그래도 언젠가 마이크를 키지 않겠냐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 기다리는 몇몇과 순수하게 나이트폴 플레이에 집중하는 일부 뿐이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혜진의 의도대로 결과가 흘러간 셈이다.
또 한 명. 무심한 광전사는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쓰러뜨리는데 성공한다.
일반적인 유저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퀸 랭크다. 그 치열한 전장에서 광전사가 쓰러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광전사는 목숨이 다 하는 순간까지 기어코 적 한 명을 더 데려간다.
그러고는 결국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승률 레전드긴 해]
[무지성으로 갖다박는데 결국 이기네ㅋㅋㅋㅋ]
[님도 무지성으로 세 명씩 조져보셈 좀]
[어라...? 이게 나이트폴 방송?]
[머야 진짜 킹 가냐???]
또 한 번 게임이 끝났다. 그러나 이번은 종료와 동시에 바로 다음 매칭을 돌리던 이전과는 달랐다. 유저들에게 친숙한 메인 로비의 방패문양이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갑자기 화면 한 가운데 흰색 도화지 같은 메모장이 켜졌다. 커서의 깜박임과 함께, 큼직한 글자가 흰색 바탕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소통하겠읍니다. 채팅으로 질문해주세요.'
[???]
[와!!!! 3일차 스트리머 첫 소통! 근데 메모장!]
[마이크를 끄고 소통을 시작하는 미1친련이 있다??]
[선생님...마이크좀 켜주실수있나요]
[이 사람은 그... 없나? 마이크가]
'오늘은 마이크 키기 힘듭니다. 다음 방송부터는 키겠읍니다.'
[읍니다 제발좀;;]
[왜못킴??? 집에 남친옴???]
[사생활 묻지마 ㅅㅂ련아]
[선생님 본캐티어가 어디신가요?]
'이게 본캐입니다... 경력 한달 뉴비입니다.'
[소통(거짓말)]
[응~ 사실을 말한다고는 안했어~]
[쫌 제대로 된 질문좀해바]
<육수전문판육수 님이 1,000원 후원!>
-선생님 나이가??? 남자친구는 있나요??? 마지막 키스는 언제??? 가슴 사이즈가???
[닉값,,, 지럴하지말고 여캠으로]
[육수새끼 쳐내]
[아 솔직히 니들도 궁금하잖아ㅋㅋㅋ]
'나이는 서른 둘이고 남자친구는 여섯 명 정도 있네요. 마지막 키스는 삼 년 정도...'
[지랄좀마십쇼 선생님]
[와 농염한 어장관리 미시녀 ㄷㄷㄷㄷ]
[진짜 어지럽네]
[남친이 여섯인데 마지막 키스는 삼년 ㅆㅂㅋㅋㅋㅋㅋㅋ]
<냥냥코로 님이 10,000원 후원!>
-언니제발저컴에게시판좀만들어줘아니면방송을24시간계속해주던가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저컴이 뭔가요?'
[키보드에는 스페이스바라는게 있어요]
[이사람 아는게뭐임??]
[아는거? '나이트폴']
[씹간지ㄷㄷㄷㄷ]
[저스틴커뮤니티라고 스트리머들 공지올리고 소통하는 곳이에요 선생님... 신청하시면 게시판 만들어줄겁니다]
[노르드게시판? 바로 랭킹1등 찍어준다]
[정보)저컴 게시판 1등은 대부분 분탕충들때문에 찍히는거임]
'몰랐네요. 오늘 방송끝나고 신청해보겠습니다.'
[ㄹㅇ 얘기할데가없어서 엘튜브 댓글에서 떠든다고]
[댓글씹1창낸 새끼가 너구나]
[노르드 게시판 첫글은 나 이민식이 먹는다]
[드디어 소통이되겄네]
[혹시 배너같은거 만들어드리면 쓰실래용?]
[쌤 교육방송 더 안하십니까]
소통에 목말라있던 시청자들이다. 비록 소통 방식이 메모장에 적히는 텍스트에 불과했으나, 이 생소한 스트리머에 대한 호기심에 시청자들도 한껏 달아올랐다.
채팅창이 무수한 질문들로 빠르게 올라간다. 나이트폴과 관련된 질문은 물론이요 사생활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중간 중간 선을 넘지말라는 의견도 올라왔으나 금새 다른 질문에 묻혀 사라졌다.
갑작스레 늘어난 질문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리는 걸까.
메모장은 커서만 깜박일 뿐 조용했다.
그 침묵에 채팅창이 더더욱 빨라지기 시작할 때쯤, 그제서야 적막을 뚫고 흰색 메모장이 검은 텍스트로 채워졌다.
'저 커뮤니티 신청하러 가볼게요. 오늘 방송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모장과 방송이 꺼지는 게 거의 동시에 일어났기에.
채팅창의 반응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