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32 - 멈춰야 할 때도 있어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나는 그걸 길드원들과 참가한 첫 번째 대회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팀 게임 매칭을 잡는 족족 연승을 이어나갔으니까.
나중에는 연승 점수가 너무 쌓인 나머지 매칭 시간이 30분이 넘게 소모된 적도 있었다.
그 기세를 예선전까지 무난하게 끌고갔는데.
우리 길드는 본선 1차전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
벽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나와 길드 멤버들이 그 '벽' 역할을 수행했던 게 틀림없다.
일반인과 프로를 나누는 벽이었다.
무슨 절망감 따위를 느끼지는 않았다.
우리 중 누군가는 느꼈을지도 모르지. 프로 지망생이 꿈이었던 길드의 막내였었나. 패배의 순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다른 길드원들은, 글쎄.
허탈함 정도는 느꼈을까.
어쩌면 그 마음가짐의 차이에서 결과는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식 프로리그는 아니었으나 등용문 정도는 되는 대회였다. 본선까지 진출한 팀에는 프로를 지망하는 유저들이 꽤나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습이야 우리도 한다고 했으나, 인생을 건 친구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것이다.
승부란 그런 것이다. 냉혹한 경쟁의 세계. 대개 많은 걸 쏟아 붓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그리고 대회란 더욱 그렇다. 어찌보면 대회야말로 경쟁의 극한이지 않은가.
보상이 눈 앞에 내걸린 경주에서, 인간은 얼마나 절실하게 달리는지.
그러나 그만큼 과실을 쟁취했을 때의 쾌감은 얼마나 크겠냐는 말이다.
저컴 게시판에 시청자가 올린 결전 대회의 안내문을 봤을 때였다.
간질간질한 이 기분은 뭘까. 기대감? 흥분감?
나는 입 밖으로는 경쟁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막상 트랙에 오르면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는 고약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내가 괴짜로 분류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내게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거라는 묘한 확신이 있다.
결전 대회라는 타이틀은 특히나 나를 자극하는 요소였다.
팀전과는 달랐다. 팀전과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남에게 기대지 않아도 좋았다.
반대로 팀원의 부족한 부분을 억지로 채우기 위해 힘쓸 필요도 없었다.
결전. 남자의 결투.
오로지 자신의 플레이에만 책임을 지고 승부에 임하면 된다. 정말 책임감 없이 달려들기 딱 좋은 대회가 아닌가.
때문에 내게는 망설임이 없었다. 나에겐 이점만 있는 대회로 보일 지경이다.
고수들만 참가하는 결전 토너먼트에, 높이 올라가면 상금까지 준다고? 이건 게이머 노르드가 환장하는 부분이었다.
방송인 참가 가능에 실시간 스트리밍 허용. 이건 방송인 노르드가 환장하는 부분이고.
결국 내가 메일로 참가 신청을 넣기 까지는 별다른 고민도 없었다는 소리다.
지이잉-
진동 소리. 시계를 안 보고도 지금이 몇 시인지 추측할 수 있다. 오후 다섯 시쯤 됐겠지. 이제는 뭔가 알람처럼 들리는 진동소리다. 이 시간이 되면 매일 문자가 날아온다.
내가 문자를 받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혜민>
언니 어제도 밤 새면서 영상 편집한 거 아니지? 왜 업로드 시간이 또 새벽이야.
혜민이는... 뭔가 내 생활 패턴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엘튜브 업로드 시간을 매번 체크한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매번 밤을 지새우는 건 내 미천한 편집 실력 때문이었고.
정작 게임에 열심히인 주호는 정말 나이트폴을 가르쳐주는거냐는 확답을 받고는 연락이 없었는데.
혜민이를 통해 내 채널을 챙겨본다는 소리는 들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것도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지만, 어쩌겠는가.
채널의 주인인 나보다 여동생의 관심이 더 높아 보였다. 정작 나는 방송이 종료된 후부터 새벽까지 영상을 붙들고 쩔쩔매는 게 전부였다.
댓글에 무슨 요구사항이 달린다고 그걸 추가할 능력은 없었다. 대강 잘라내고 붙여 넣는 편집이 끝나면 새벽인지라.
업로드 예약을 걸어두고 침대에 나자빠지는 신세였다. 아마 나보다 댓글을 더 많이 확인하는 건 동생들이지 않을까.
내게 있어 형제자매란 원래 가까운 듯 멀게 느껴지는 관계였건만. 여동생의 거리감은 여전히 너무 어려웠다.
'아니야. 자동 업로드를 그 시간에 해놔서 그래... 걱정하지마'
하얀 거짓말이다.
그리고 아마 쉽게 들통날 거짓말. 비슷한 패턴으로 변명을 한 게 이미 여러 차례다. 내 창의력이 부족한지 다른 레퍼토리가 떠오르지 않더라.
저번에 비슷한 변명을 했을 땐, 마음 같아선 매일 찾아가 내 다크서클의 길이라도 재고 싶다는 답장을 해왔다.
그건 조금 충격이었다.
아, 저 사람이 진심이구나 싶어서.
<혜민>
됐어. 금요일 약속 절대 잊지마. 오후 5시 영인고 앞.
저 토끼가 빨간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모티콘, 그만 써주면 좋겠는데. 진짜 뭔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는다.
금요일에는 저번에 혜민이 방문했을 때 내게 확답을 받아둔 약속이 있었다. 출가한 지 한 달이 넘었으니, 집에 와서 얼굴이라도 비추라는 그런 약속.
언젠가 한 번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아버지가 출장으로 없으니 안심하고 오라는 혜민의 설득에 바로 넘어가 버렸다.
가족하고 전부 마주하는 건 너무 부담감이 크지 않나.
한 명이라도 적을 때 갔다 오는 게 낫겠지, 라는 생각.
혜민은 나도 모르는 새 세부적인 일정까지 만들어둔 모양이다. 졸지에 동생이 다니는 학교 앞까지 에스코트를 나서게 생겼다.
굳이 거기서 만나자는 걸 보니, 집에 들르기 전 저녁이라도 먹을 생각인가. 이번에도 손을 잡고 걸어다니는 건 아니겠지.
아마 집에 가서는 주호의 나이트폴 과외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 무슨 촉박한 일정인가.
분위기에 밀려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지 뒷일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생각부터 너무 버거운 일이 아닌가 하는, 모순적인 생각이 동시에 들더라.
그 정도 외출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이 몸뚱아리를 내려다보면 뭔가 큰 일라도 난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화장을 할 필요는 없겠지? 무슨 계집애도 아니고.
아니, 계집애는 맞지...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밖에 나가기가 싫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머무는 게 꺼림칙했다.
자의식 과잉도 아니고 사춘기는 진작에 지났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러나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게 너무 의식되는 탓에 무시하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최근에는 후드티를 애용하고 있었다. 모자 부분이 커서 얼굴이 모두 들어가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내 눈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도 안다. 무슨 짐승새끼도 아니고. 참 일차원적인 생각이긴 했다.
사람이 많다고 공황증세를 일으킨다거나, 극도의 불안함이 찾아온다거나 하는 심각한 증상은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생리적인 불쾌감이다.
여기에 무슨 이유를 붙일 수 있을까.
갑작스레 신체에 극적인 변화가 찾아오면 이런 정신질환이 생기나. 내가 처한 상황이 없던 정신병도 생길만한 상황이기는 했다. 여유가 생긴 뒤에나 자각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내가 무슨 자가진단을 하는 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건 내게 이런 증상이 있다는 사실 파악 뿐이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밖에 나갈 일을 줄이게 되는 것이다. 장을 볼 때도 한 번에. 보관이 편한 라면이나 즉석식품 따위를 잔뜩 챙긴다.
집으로 가는 길에 골목이 많은 게 좋았다. 저번엔 마트에서 대로변을 빠져나온 뒤에는 사람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소소하게나마 기록을 달성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는데.
주위에 돌이 떨어지자 지레 겁먹고 등딱지로 숨어버린 거북이가 된 느낌이다.
이게 익숙해지기라도 하면 나중에는 정말 집 밖으로 나가는 일에 불안함이 밀려오지 않을까.
점점 내 세계가 이 원룸으로 좁아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데.
극약처방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금요일, 금요일. 이것마저 미루지는 말자. 어딘가로 숨으려고 하지말자.
언제가 됐든 알에서만 머물 수는 없는 법이다.
저스틴 결전대회의 예선전이 시작되는 날 까지는 이 주 정도가 남아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나도 대회를 준비해야 할 터.
단기간에 일대일 능력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것보다는 다른 걸 고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대회다 보니까 주요 메타라는 것이 중요할까.
어떤 빌드가 가장 많이 나올지는 나로써도 의문이었다.
지난 대회의 영상을 보면서 세부적인 빌드를 수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대회 룰에 따르면 제출한 빌드에서 수정할 수 있는 한계치가 정해져 있었다. 매판 상대방에게 맞춰 빌드를 대폭 건드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최대한 유연한 방향으로 빌드를 구성하는 게 좋겠지.
일대일에 특화된 빌드나 무기를 연습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광전사 고정인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지만.
대회에 지원했다는 사실은 굳이 밝히지 않기로 했다.
댓글을 남기는 바람에 추궁해올 시청자들이 많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용히 있으면 금방 지나갈 것이다.
대회 예선전은 따로 방송하는 일 없이 나중에 하이라이트만 공개한다고 들었다.
유명한 대회라면 예선전부터 참가자들의 이름이 언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먼저 앞서서 관심을 끄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러다 예선 탈락이라도 해봐라. 그건 무슨 개망신인가.
아직도 내 인지도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난 적어도 내 시청자들의 패악질을 믿었다.
내가 떨어지든 올라가든 어떤 형태로든 커뮤니티에서 난리를 치겠지. 언젠가 밝혀질 일이라도 그걸 재촉할 이유는 없다.
될 수 있으면 본선에서 짜잔, 하고 등장하고 싶은데.
그게 방송 각이 이쁘게 살지 않나.
대회에서 방송 각이라니. 방송을 하다보니 모든 것들이 방송과 결부되어 보이기 시작했나 보다.
특히나 영상 편집의 영향이 컸다. 엘튜브에 업로드할 영상을 짜집기하다 보면, 어떤 장면이 재밌고 흥할 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사실 나이트폴 플레이를 제외하면 아직도 '방송각'이라는 게 난해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스벅을 보면 게임 컨텐츠 외에도 자연스러운 멘트로 엘튜브 영상을 뽑아내던데. 대부분이 일상에서 겪은 사건을 재밌게 풀어내는 방식이었다.
내겐 쥐약인 부분이었다.
안 그래도 외출이 극단적으로 적은 편인 나였다.
일상 생활에 대해 말할 거리가 뭐가 있겠나.
아, 오늘은 샤워를 하다가 샴푸가 눈에 들어가 따가웠어요, 같은 걸 말할 수도 없고...
방송에서 멘트의 소재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나는 심지어 비장의 무기인 인생 썰도 풀기 힘들었다. 내 인생은 저 멀리 두고 왔으니까.
그걸 굳이 각색 하면서 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꼬투리를 잡힐 지도 모르고.
그나마 실력 게임 방송이라는 게 참 다행이었다.
랭크전에서 적을 죽이다보면 억지로 멘트를 짜낼 필요가 없지. 괜찮은 플레이가 나오면 그게 바로 방송각이 되고는 했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나도 다른 방식으로 방송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방송을 공부한답시고 다른 방송을 두리번거렸던 게 컸다.
다른 스트리머들은 본격적인 방송에 앞서 시청자와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던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많은 시청자들을 모두 친구처럼 대하고는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친구, 친구라.
-Nord11 님이 방송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일찍켰네]
[노하~]
[선생님 안녕하세요]
[웬일로 대기화면임?]
[오 게임중이 아니네]
"여러분."
[노하]
[말을 하세요 말을]
[뭔데 겜화면아니냐??]
[게시판에 댓글남긴거 봤어요@@@ 대회 나오시나용?]
[센세라면 불참할게 뻔히보임]
"제가 오늘 머리를 감다가 샴푸가 눈에 들어갔거든요."
[??]
[어쩌라고]
[센세의 샤워장면...ㅗㅜㅑ]
[진짜 맥락 좆도없네]
[어이 노씨 당장 겜이나 켜]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어딜감히]
[말 존내게 끊네]
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역시 너무 어렵더라.
눈이 따가웠어. 그냥 눈이 따가워서 좀 아팠다고.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너희들에게 말해봤어.
나는 그냥 게임이나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