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38 - 낚시가 아니라 낚시야 (38/243)



〈 38화 〉38 - 낚시가 아니라 낚시야

하루를 쉬고, 이틀 째는 편하게 보냈다. 사흘 째, 나흘 째는 그보다 조금  편했다.

그런 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사실 방송을 쉰다는 사실에 내가 뭔가 정신적 압박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개뿔.

일하지 않는 몸은 참 빠르게 휴식에 적응하더라.

짧은 기간 방송과 편집에 시달리던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나는 아무래도 그걸 꽤나 고달프게 느꼈던 모양이다. 해야  일이 없다는 것 만으로도 내 정신은 너무나 가벼웠다.



방송을 그만두고 싶어서 안 켰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환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날 방으로 들어간 어머니는 내가 떠날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혜진이 쌓아올린 관계였다. 나는 짐작도 하기 힘든.

집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 좁은 세계를 조금씩 넒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좁디 좁은 세계에 박혀서 우물을 파는  아니라.

그래야, 혜진의 과거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방송을 키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을 켰다간 또 다시 일방적인 굴레에 빠져들게 뻔했으니까. 방송과 편집만으로 하루를 다 보내는, 참으로 규칙적인 일상이다.

거기서 나름의 재미를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내겐 작은 원룸에서 벗어날 각오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를 이전의 혜진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써 봐줄 사람을 찾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친구 말이다. 친구.

근데 친구를 어떻게 만드는 거더라.

친구는 인터넷 친구가 있어요.

너무 한심하게 쳐다보지 말아줬으면 한다. 생각해봐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만나는 친구의 대부분은 학창시절의 추억을 함께한 이들이 아닌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친구를 사귀는  다 청소년 시절이라는 이야기지.

일주일 동안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나는 패배의 고배를 마신 것이었다.

...물론 그 시간을 고대로 쓰레기통에 집어 넣은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건강한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조깅을 한다든가. 식단을 조금은 건강하고 풍요롭게 바꾼다든가 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그런 것들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혜진이 되고 난 이후로 새롭게 만든 인간관계란  참 보잘 것 없었다. 굳이 말할다면 스벅 정도가 아닐까. 근데 이것도 간혹 메세지만 주고 받는 얕은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친구...를 만들고 싶은데, 떠오르는 게 인터넷 밖에 없다니. 나는 어느새 완전한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렸다. 혜진이랑 다를 게 뭔지 의문이다.

인간 관계를 확장한다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닫고 나니 결국 생각이 돌아오는 건 방송이었다.

따지고 보면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것도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아니냐는, 눈물나는 자기 변호와 함께였다.

방송에 대한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는 게 컨텐츠를 만드는 정도였다. 시간이 많고 쫓기질 않으니 나름대로 머리가 열린 느낌이 들긴 하더라.

재밌을 것 같은 방송 컨텐츠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물론 대부분이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긴 했지만, 원래 아이디어라는 건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일이니.

당연히 나이트폴에 대한 것들이 가장 많이 떠올랐다. 스벅이 하는 것처럼 새로운 빌드나 무기를 보여준다거나, 컨셉을 잡고 플레이하면 어떨까.


그렇게 뻗어나간 생각이 신청해둔 대회까지 이어졌다. 거기서 아차 싶었다.

아. 그런 것도 있었지, 하고.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나.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프로 지망생도 나온다는 대회의 규모나 수준을 고려하면 우승을 바라보기는 힘든 대회였다. 그래서 조금 준비를 도외시한 경향이 있었는데.

사실 이제와 연습을 시작한다고 결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며칠 연습한다고 이기지 못할 상대방을 이길  있게 되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결국  대회 준비는 빌드 수정에서 시작되어 빌드 수정으로 끝났다. 나름 상당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대부분 뇌내 시뮬레이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실전을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어떤 적과 마주할 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그래서인지 대회 전까지는 방송에서 나이트폴을 보여주기 싫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랭크의 유저들이 내 방송을 본 다는  확인하지 않았나. 대회를 위해 건드린 빌드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지가 않았다.

우승은 못하더라도 예선전은 통과하고 싶었다. 무기력하게 떨어지기엔 나이트폴 10년 경력이 우습잖아.

그래서, 사실 대회 전까지 방송을 하지 않는 것도 고려했던 것이다.

내 생각을 바꾼건 간만에 들어간  저컴 게시판이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해야 할지.

...무슨 기우제를 지내고 있었지. 솔직히 이렇게 기다릴 줄은 몰랐다. 방송을 며칠이나 했다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을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의구심이 앞선다. 저렇게까지 정성스럽게 게시판을 채워 넣는 모습을 외면할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새로운 게임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나이트폴을 하지 않는 내 방송을 누가 기대할까도 싶었지만, 적어도 게시판에서 매일 출석체크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생존신고라도 해야될 것 같았다.


바로 게임 발굴에 나섰다.

하고 싶은 게임은 널리고 널렸다. 나이트폴 때문에 미뤄두었던 모르는 게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스트리머인 이상 나도 방송각이라는 걸 생각해야 했다. 무슨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보는 맛 없는 리듬게임 같은  고려하기는 힘들었다.

무겁지 않으면서 직관적인, 그러면서 재미도 있는... 조건을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게임의 가짓수가 뭉텅뭉텅 썰려나간다.

게임을 고르는 것 부터가 일이구나 싶었다. 단순히 흥미 본위로 고를 수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턱이 굉장히 높아진 기분이다. 나이트폴 이외의  게임이라 그런가.

사실 남들이 다 하는 검증된 게임을 하면 되는데, 그런 게임에는 손이  갔다. 그런  국민 게임이 되어버린 나이트폴로 족했다.

턱을 괴고, 머리를 비운 상태로 유명한 게임 플랫폼에서 목록을 내리길 얼마간.

나는 드디어 발견해버리고 만 것이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훌륭한 게임을.



그래서, 지금이다.

[이 게임 뭐임?]
[낚시?? 이 방송이 낚시라는걸 암시하는건가??]
[밤낚시 감성 뒤지네]
[무친련,,일주일만에 돌아와서 시청자들 낚는 무친련,,,]
[나이트폴켜라]
[뭔 근본없는 게임임?]

붙잡은 낚싯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비 때문인가. 게임에 대한 정보도 없이 뛰어든 지라 이유도 몰랐다. 사실 원래 이렇게 느긋한 분위기를 원했으니까, 별로 불만이 생기지는 않았다.

작고 조용한 강이다. 적막을 채우는 자연의 소리가 공허한 침묵을 대신했다.

신기한 일이다. 도심지의 소음과 달리, 자연의 소리는 더 없이 평온하게 느껴지니. 어쩌면 자연의 느긋함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선한 게임은 더 피셔맨 The fisherman이다.

직역하면 어부 내지는 낚시꾼이 될까. 한글화도 되지 않은 게임이었다. 출시된지는 얼마 안 됐는데, 화제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애초에 인디 게임이라 홍보를 하지도 못했겠지.

게임을 찾은 건 순전히 우연에 가까웠다. 게임 플랫폼에 새로 만든 혜진의 계정에는 당연히 소유한 게임도 없었다. 그러니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게임도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다. 온갖 장르의 게임이 다 튀어나왔다.

내친 김에 모든 장르를 선호한다고 설정하고 무슨 게임을 추천하는지 한참을 둘러봤다.


리뷰가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게임들도 종종 튀어나오는 게 꽤나 재밌더라. 심해탐사를 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간략한 소개 영상과 글귀 하나로 어떻게 평가를 할 수 있겠냐마는, 이 방법은 의외로  먹혀든다. 숨은 명작은 찾아낼 수 없었지만 쓰레기는  눈에 티가 나거든. 옛날에도 심심할  종종 써먹었던 방법이다

그러기를 몇 시간. 게임을 추천해주는 인공지능도 지쳤을까.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테마를 넘어서 매니아틱한 게임을 추천해오기 시작했다.

굉장히 음습한 게임들. 예컨대 말대가리 탈을 쓴 좀비들이 뛰쳐나오는 B급... 아니, C급 슈팅게임 같은 것들 말이다.

피셔맨이 등장한 건 그쯤이었다.

페이지를 클릭함과 동시에 소개 영상이 자동재생됐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심해의 추천 게임이라는 걸 감안하면 꽤나 봐줄 만한 그래픽이었다.

어둠이 자욱히 내린 작은 강에 달과 별이 노니는, 낭만이 있는 풍경. 물고기가 아니라 별이 잡힐 것 같은 강이다. 말 없는 남자는 그곳에서 조용히 낚시를 시작한다.

 티저 영상을 보고, 어떻게 구매를 망설일 수가 있겠나.

난 낭만에 취해 고민도 없이 바로 게임을 결정한 것이다.

감성있는 시청자라면 이 아름다운 광경에 절로 빠져들게 될 터.


그럴 터... 였는데.


[어이 노씨~ 뒤1지기 싫으면 나이트폴이나 키라고]
[낚시대를 기울인지 10분째... 단 한마리의 생선도 낚이지 않습니다. 낚시에 재능이 없는 건가요?]
[인간 백정이 무슨 낚시ㅋㅋㅋㅋ 생산직하고 존나 안어울리죠?]
[이게 개장수들 보면 개가 도망친다는 그거냐??]
[보다 보니까 재밌네ㅇㅇ 몸이 노곤해지는ㄱ]
[저새끼 자네]

왜지.

보고 또 봐도 운치있는 광경이 아닌가. 뭐가 그리 지루하다고 난리들인지. 하여튼 요즘 것들은 항상 자극적인 것만을 찾아다니니 문제다.

어쩌겠는가. 스트리머인 나는 시청자들을 만족시켜줘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을.


"그만 화내시고 여기 낚싯대를 보세요."

[미동도 없습니다 선생님.]
[일단 이사람 낚시 존내 못함]
[미끼를 안 꼽는데 뭐가 낚이겠냐고ㅋㅋㅋ]
[대체 뭘보라는건가요...]

"나무로 만든 낚싯대잖아요."

[그럼 쇠로 만들었겠냐ㅅㅂ]
[저는 가끔 선생님의 뇌가 궁금해집니다]
[어쩌라고]
[그냥 그런갑다해]
[저희는 애새끼가 아닙니다]

"운치가... 느껴지지 않나요?"

[?]
[혹시 운치가 뭔지 모르시나요?]
[이새끼들 낭만이 없네,,,쯧 밤낚시의 낭만을 몰라]
[암요암요 운치가 죽여줍니다요^^7]


아, 드물지만  감성과 일치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래. 모든 사람과 공감대를 만들 수는 없는 법이지. 천 명의 시청자 중  명만 나와 같은 감동을 느낄  있다면 나는 그걸로 됐어.

의견 차이로 투닥거리는 채팅창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낚싯대를 붙잡은 손이 슬쩍 흔들리더니, 막대 형태의 찌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


번뜩, 대번에 낚시대를 바로 잡는다.

드디어 물고기가 낚시바늘을 물었다. 기다림의 보람이다. 과하게 힘을 주어 당기지 않고, 마치 이길 필요가 없는 줄다리기를 하듯 힘을 조절하며 낚싯대를 붙들었다.

반항하는 힘이 강하지 않다. 이대로라면 금방 힘이 빠질 터.

작은 물살과 함께, 수면 위로 사냥감의 아가미가 드러나고.

드디어 생선 한 마리가 내 손안으로 들어왔다.


...내 처음은, 피래미였다.

시청자들의 비웃음이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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