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45 - 나를 충전해 줘 (45/243)



〈 45화 〉45 - 나를 충전해 줘

지쳤다.

본선전의 다른 게임도 분명 확인해야 할 텐데.

그놈의 집중이 뭔지, 정신적인 탈력감은 육체에도 달라붙어  모든 의욕을 상실시키는 중이었다.

그냥 잠이나 잘까.

나이트폴을 종료함과 동시에 몰려오는 피로감에 몸이 무거웠다. 머리가 땡기고 배가 고프다. 제자리에 앉아  시간 동안 게임을 해도 이런 일은 드문데.

확실히 어지간히 몰입을 하긴 했던 모양이다.

슬쩍 들어간 대회 공식방은 다음 경기 준비에 들어간 모양이다. 그 잠깐 사이에 편집을 한 건지 나와 칼고가 맞붙은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나오고 있었다.

시청자가... 정말 많더라. 과연 저스틴의 정기 행사 같은 느낌이구나.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엄두를 내기 힘들 만큼 많은 시청자가 모여들었다. 이쯤되면 부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2세트의 하이라이트가 나오고 있었다. 내 대검을 스치듯 피한 상대가 쌍검을 휘두르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된다. 단순한 효과인데도 매우 극적으로 보이는 영상이었다. 나중에 몰아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제 3자의 시선에서 본 경기는 이랬구나. 문득 시청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져서 바라본 채팅창은  이모티콘만 가득하게 도배되고 있었다. 개구리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 어떤 남자가 환호하고 있는 모습...  괴상한 게 다 있다.

이모티콘 전용 채팅방. 분명 처음엔 이렇지 않았다.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시간이라 제한을 걸어둔건가.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 나도 어지간히 시청자들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이모티콘이 수도 없이 도배되는 채팅창을 바라보다, 인터넷 창을 꺼버렸다.




본선 2차전은 바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32강은 내일까지 진행된다. 이어지는 1차전을 모두 치르고, 2차전은 모레... 아니, 글피였나. 많은 시간이라 말하긴 힘들지만 최소한의 여유는 생긴 셈이다.

어제 밤을 새다시피 했던 반동이 이제야 몰려오는 모양이다. 경기 전에 찾아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아무래도 수면욕이 식욕을 앞서는  같았다. 배가 호소하는 허기보다 졸음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일단 자자.

지금 자면 또 수면 패턴이 망가질 것 같은데... 아, 모르겠다.

난 쓰러지듯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겼다. 부드럽게 몸에 감겨오는 토끼 잠옷에 기분이 좋았다. 잠들기는 쉬울 것 같았다.


###



<노칼대전분석글.info>
오늘 최고의 경기였던 노르드vs칼고 매치임.

사실 1세트부터 4세트까지 띵경기가 아닌 게 없지만 전부 분석하면 분량이 길어질테니 마지막 세트만 분석하기로 하겠음. 어차피 다른 세트도 분석글 존나 나올 것도 뻔하고.

참고로 본인은 나폴 짬 7년차 퀸 하위티어 유저라는 걸 밝힘.  밝히면 말똥이랑 삐숍 새끼들이 하도 지랄을 떨어서.

우선 기본 전제

앞선 경기에서, 게임의 핵심이 되었던  노르드가 만든 간격이었음. 투핸디드에서도 긴 편인 츠바이로 선을 긋다시피해서 칼고가 못들어오게  게 포인트임.

이걸 1세트에서 흘려내기로 파훼하려했던 칼고가 노르드한테 역으로 낚인 다음엔, 주도권은 노르드 쪽으로 넘어갔다고 본다.
시도는 칼고 쪽에서 하는데 대부분 턱도 없이 부족한 상황이 계속 나왔음. 이걸 칼고는 위험성 높은 도박수로 해결하려했지. 그게 먹힌 2세트는 이겼고, 실패한 3세트는 패배함.

내용이 길어졌는데 4세트 이전 게임의 핵심이 저 간격에 있다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ㅇㅇ

이제 4세트로 들어가서

초중반까지의 흐름을 보면, 칼고가 전략을 수정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시도해서 빈틈을 뚫는게 아니라 본인도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스탠스로 전환한거임. 사실 이쪽이 훨씬 안정성이 높거든.

저렇게까지 거리를 벌려버리면 사거리가 긴 대검 쪽이 먼저 공격을 해와도 피하기가 쉬우니까.

사실상 대방패랑 대방패가 만났을 때처럼, 개좆같은 대치구도가 만들어질수도 있던 거임.
왜? 먼저 움직이는 쪽이 불리하니까.

둘다 너무 공격에 몰빵한 세팅이다보니까 오히려 수비에 몰빵한 거북이새끼들 같은 그림이 나온거지.

근데 여기서 노르드가 달려드는 선택을 해버림.

왜? 나도 몰라.

이게 가만히 서있는 상태에서 대검이 닿는 거리면 유리한게 맞는데, 대쉬하거나 움직여야되면 그게 아니거든. 상대가 반응해서 맞대쉬해버리면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가 훨씬 좁혀져서 좆망하는 경우가 많음.

실제로 칼고도 그렇게 했음. 노르드가 움직이는  보자마자 앞대쉬로 파고들기.

쌍검한테 거리를 준 이상 피해를 안보기가 더 힘듬. 이때다 싶어서 칼고가 연계기 쑤셔넣고 노르드는 아마 확실한 출혈 상태가 됨.

여기서 다시 거리 벌려봤자 끝난 게임임. 출혈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본인 손해니까. 안그래도 힐특 안찍어서 회복 안되는데 그냥 망한 상황이지.

그래서 노르드의 선택은 공격밖에 없었음. 갤에서 보니까 칼고가 여기서 아예 빼면서 플레이했으면 이겼을 거라 보는 놈들이 많던데

여기서 노르드의 빌드선택을 볼 필요가 있다.

3세트까지는 동일한 빌드.
제출한 빌드에서 바뀐게 신속한 정비 하나임. 이건 후딜 줄이는 거라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선택인데

근데 4세트는 여기서 특성 3개를 바꿔버림.
생사의 갈림길, 사자의 춤, 폭주.

이건 누가봐도 개싸움들어가겠다는 빌드임ㅇㅇ
이렇게 극단적인 빌드선택 본 적있냐?

전부 랭크에서 빈사상태 발악기로 쓰이는 특성인데, 보통 저기서  개만 찍고 생명력 회복 특성을 찍는단 말이야.
저렇게 찍어버리면 체력 떨어지는 순간 피는 안차고 출혈 더 심해져서 금방 뒤진다.

굳이 장점을 찾아보면 죽어갈수록 말도 안되게 빨라진다는 건데

여기까지 보면 갑자기 공세로 돌변한 노르드좌의 선택을 납득할 수 있다. 걍 안뒤지는 선에서 맞은 담에 딸피 만들어서 특성으로 이기겠다고 설계하고 시작한거임. 4세트 시작할때부터.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흘러갔음. 오늘 하이라이트만  번 넘게나왔던 마지막 개싸움도 그렇게 나온거고.

핵심은 특성 세 개 바꾸는 걸로 빌드 방향성을 완전 바꿔버리고, 그걸 실전에서 의도한대로 보여준 노르드좌의 미친 판단과 실행력에 있다ㅇㅇ

이쯤되면 무-황이랑 비빌만한 우승후보는 노르드좌 아님?

ㅇㅇ:분석추. 4세트 빌드 바꾼건 처음봤네. 해설진이 이거 언급했냐?
-ATKP*:간략하게 했는데 생갈 정도만 짚고 넘어감. 4세트 준비가 빨리된 편이라 금방넘어간듯?
-ㅇㅇ:ㄹㅇ? 둘다 4셋 전까진 빌드를 안건드려서 그런가 존나 중요한거같은데
-ㅁㄴㅇ:전프로 출신 해설아니면 빌드보고 인게임 변화까지 읽지는 못하지ㅋㅋ 드립으로 해설하는 놈들인데

거북선인*:그냥 미친 경기였음 칼대칼 결전의 정수를 본듯... 이게 왜 32강이지
-ㅇㅇ:쌍검든 칼고가 32강 탈락ㅋㅋㅋ 올웨폰하느라 퀸에서 빌빌댄다고 욕먹어도 쌍검들면 귀신같이 폼회복하는 양반인데... 예상하기 힘들긴했지
-거북선인*:솔직히 센세가 이길줄 몰랐음ㅋㅋ;

냥냥코로*:언니나죽어
-ㅇㅇ:얘 댓글 왜케 짧아짐?
-ㅇㅇ:싸러 갔나봄ㅋ

ㅇㅇ:세줄 요약 ㅇㄷ?
-ㅇㅇ:1. 느 2. 금 3. 마
-ATKP*:마지막에 '핵심은'부터 봐라.

아메바13*:글 잘봤음. 폭주 기반 특성 중복적용되면 효율 곱절로 떨어져서 노르드가 특성 잘못 든줄 알았는데ㅎ;
 칼고 쌍검 빌드랑 비슷한 템포까지 속도 따라잡는거 보고 놀랐음. 이거 연구한 사람이 있었나? 노르드가 틀딱 고인물이라는 가설이 점점 더 그럴싸해지는데
-ATKP*:예능빌드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건드려볼법한데 난 본적없음. 특정 빌드 저격해서 노린  같지는 않고.. 속도 따라잡은 건 걍 우연아닐까

나랑야스하자*:이게 섹스가 아니면 뭐임???

<앞으로 나갤 갤주는 황르드다>
갤주를 욕하면 단톡방 전사들이 너희를 용서치 않으리라.

ㅇㅇ:제발 노르드좌 엿먹이지말고 꺼져 씹련들아

또라이몽*:차단

ㅇㅇ:똥마갤로 ^^

<노르드 빌드 랭겜에서 따라해봤다>
비5 강등당해서 나딱이됨 ㅎ

노르드 책임져!!!!!!!!

마나도롱뇽*:님은 백병전에 적성이 없는  같은데ㅎ 법사 하쉴?
-ㅇㅇ:내가 손가락이 뿌러져도 법게이는 안한다
-마나도롱뇽*:평생 말똥드시면서 사셈ㅋㅋ

ㅇㅇ:그건니가

쉰들*:근데 진짜 따라하지마셈... 속도빨라지는 타이밍 잘못잡으면 걍 벌레처럼 뒤지는 빌드야
-ㅇㅇ:그래서 로망인건데;


###


자는 게 아니었다.

 몸은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캄캄한 원룸의 침대 속에서 스마트폰을 붙잡았다.

...새벽 세 시. 금방 또랑또랑 맑아지는 눈을 보니 더 자기도 글렀다. 그렇다고 이대로 아침을 맞이하면 또 피곤해지겠지.

몇 시에 자든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난 너무나 무능했다. 불편함을 억지로 지우고 이불을 걷어냈다.

찬 공기가 손등에 와닿았다. 아직 새벽은 지난 계절의 쌀쌀함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밤새 보일러를 틀어놓기는 아깝고,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면 너무나 추운.

주문한 전기장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일어난 김에 할 일이 있나.

따뜻한 침대를 벗어나기가 싫어 다시 침대로 기어들었다. 부드러운 이불과 잠옷이 주는 안락함에 몸이 노곤해졌다. 잠들  있으면 좋을텐데. 의식은 이미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고 생각하는지, 더욱더 선명해졌다. 더 자기는 글렀다.

침대에 누워서 할  있는 일이란 대게 인간을 나태함으로 몰고 가는 것들이 많았다.

이불이라는 껍질로 몸을 감싼, 인간 번데기. 벌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성장하지 못한다는 점이겠지.

그걸 알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손이 간다.

어둠을 밝히는 빛에 금방 적응했는지 눈부심이 덜했다. 시간을 표시하는 잠금화면 위로, 읽지 않은 메세지가 표시된다. 또 혜민이가 문자를 남겼나. 제때 답장을 보내지 않은 탓에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몰랐다.

잠금을 풀고 들어가니 문자를 보낸 게 혜민이만은 아니었다. 주호와, 베타코드로 메세지를 보낸 스벅까지 있다. 지난 밤에 세 명한테서나 문자를 받다니. 이게 인싸의 삶인가.

먼저 동생들부터 확인했다.

한두 개가 아니다. 평소처럼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시작한 혜민의 문자는, 어느 시점부터 점점 내용이 변화했다.

대회를 본 것 같았다.

주호와 함께 본 걸까.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주호와 시간대가 겹쳤다. 내용에서 흥분이 묻어나온다.

아무래도 대회 옵저버에 잡힌  플레이가 꽤나 그럴싸해 보인 모양이다. 감탄과 칭찬과 흥분이 뒤섞여 만들어진 문자에 기분이 좋았다. 어떻게 보면 나의 가장 가까운 시청자들이었으니.

스벅이 보낸 메세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용을 다듬은 것인지, 동생들의 문자보다는 훨씬 정리된 느낌이 든다.

승리에 대한 축하의 말이다. 얄팍한 연으로 맺어진 관계에 이리도 신경을  주는 걸 보면 방송 이미지와는 달리 인성이 훌륭한 양반이다.

답장을 보내기엔, 조금 늦었나. 아무래도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아마  눈으로 맞이할테니.

메세지 창을 닫으니  일을 잃어버린 손가락이 허공을 방황했다. 최근 유행한다는 모바일 게임이라도 깔아둘까. 뒹굴거리며 할 게 없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뭐, 볼 거라도 없나.


아.

방황하던 손가락이 인터넷 창으로 향했다. 곧바로 저스틴 커뮤니티를 찾아 들어간다. 내 커뮤니티 게시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대회 때문에 방송을 키지 않는 탓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스트리머의 게시판에서 내 닉네임을 찾는다. 한글부터 정렬된 탓에 꽤나 내려가야 했던 기억이 있다.

스크롤을 내리기 전, 화면 상단부에는 지금 가장 활성화된 게시판의 목록이 일순위부터 표시되고 있었다. 핫한 게시판.
Nord11...

뭐야.

내 이름이 왜 저기에 있지.

바로 닉네임을 클릭했다. Nord11의 게시판. 다시 봐도 정확히 나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핫하다고? 누가 또 불이라도 질렀나.

최신 게시글이 불과 몇 초전에 올라왔다. 게시판을 쭉 내려도, 짧은 시간 내에 무수히도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게시글을 올린 닉네임이 모두 다르다. 이상한 조작이나 도배글은 아닌 것 같았다.

대회의 영향력이 이렇게도 큰 건가.

아무런 글이나 클릭해서 들어갔다.

<방장 방송안키고 뭐하냐ㄹㅇ>
지금 방송해서 대충 대회 하이라이트 같이 보면서 몇마디 찍찍 내뱉으면 도네 쏟아질게 뻔한데

방송인이라는 인간이 이 각을 못봐...? 이건 절호의 기회라고 씨이ㅣㅣㅣㅣㅣ발

그니까 제발 방송켜ㅓㅓㅓㅓ 노르드ㅡㅡㅡㅡㅡ

smatafuc:ㄹㅇㅋㅋ 낚시라도 좋으니까 방송이나 키라고 제발



대개, 그런 내용의 글이었다.

대회에 대한 이야기와 방송을 키라는 성화가 지배적이었다. 내가 게시글 하나를 확인하는 와중에도 다른 글이 작성되는 중이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뭔가... 방송을 켜서 여기 있는 시청자들을 불러모은 다음, 아무 말도 안하다가 방송을 종료하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



충동을 참는 게 힘들더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