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48 - 개야, 짖지 마라 (48/243)



〈 48화 〉48 - 개야, 짖지 마라

왈! 왈! 왈!

개 짖는 소리  안 나게 해라.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내가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개새끼의 앙칼진 외침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눈치라는 게 있었다면 처음부터 짖지도 않았겠지.

"아이고, 저희 집 애가 성격이 좀 그래서... 죄송합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목줄을 살살 당기는 주인 양반이 안쓰러워질 지경이었다. 일방적인 피해자인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가.

이게 다 벤치에 앉은 나를 보더니 갑자기 짖기 시작한 개새끼 때문이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강아지였다.말티즈, 저게 말티즈가 맞던가.


나는 소형견보다 대형견을 좋아했다. 소형견은 성격이 지랄맞은 경우가 많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취향이었다.

저리 가서 똥이나 싸질러라. 빌어먹을 축생아.


목줄을 움켜쥔 주인이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개를 생각하는 마음과, 이 곤란한 상황을 타개해야 겠다는 마음 중에서 후자가 승리한 모양이다. 개가 한껏 목청을 돋우는 와중에도 목줄을 쎄게 잡아당기진 않더니만.

이제는 거의 끌고 가듯 나와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저런 개를 키우는 것도 고생이라는 생각에 별로 탓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주인에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뒤를 돌아보는 개새끼는 쉽게 입을 닥치지 않았다. 주둥아리를 탁 쳐줘야 되는데.

기분 전환을 위한 아침 운동에, 이게 무슨 꼴인가.

가는 팔뚝에 따사롭게 와닿는 햇살에도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16강. 김오방과의 경기는 3  0으로 결판났다. 일방적인 스코어와는 달리 경기 내용은 치열했다.

나이트폴을 접한 적이 없는 사람이 본다면 불합리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초반부터 득점에 성공하며 주도권을 쥐고 가는  같았던 방패 기사가, 적의 대검 한방에 모든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패배하는 그림이었으니. 서로가 특성을 바꾸고 전략을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큰 구도는 바뀌지 않았다.

스코어는 압도적으로 보이지만, 정작 게임 내에서 역전승을 거두는 건 내 쪽이었다. 시종일관 불리했던 게임을 한방에 뒤집는 구도.

단계를 무시한 것처럼 보이는 결과는 때때로 지탄받기 마련이다.

내 입장에서는, 글쎄. 무수한 심리전과 깔아두기 끝에 얻어낸 일격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입히는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승리를 위한 빌드업은 고달팠다고 자부한다. 같은 고충을 경험한 나이트폴 유저들이라면 나를 이해해주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힘겨운 승리였다. 수싸움이라는 건 원래가 그런 법이다. 첫 경기를 가져가지 못했다면, 역으로 3  0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다전제에서 첫 세트를 먹는다는 건 심리전의 우위와도 연결되었으니까.

유리함을 붙잡은 검방 플레이어가 어떤 플레이를 시도할지 볼  없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아무튼 힘겹게 얻어낸 승리였다. 달콤한 휴식이라는 건 그런거겠지. 내일 경기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꽤나 기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던 것이다. 아무튼 대회의 부담감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승리 끝에 기분 좋게 맞았어야 할 아침이다.

그러나, 밤에 최적화된 내 몸뚱아리에 있어 '기분 좋은 아침'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역설이었나 보다.

무거운 머리와, 축 늘어진 사지. 개새끼가 짖는 바람에 더러워진 기분은 그 덤이었다. 굳이 성격 더러운 개와 마주하지 않았어도  아침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괜한 객기를 부리며 산책을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내 기분은 저 땅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사실 조깅을 한다고 헛짓거리를 시도할 때마다 나타나는 결과이긴 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억지로 반복하는 것이다. 습관으로 만들어버리면 나름 견딜만한 루틴이 될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서.

대회 준비 중에는 하지 못했으니, 대강 일주일 만에 나선 아침 산책인 셈이다.

계획한 대로라면 구보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런데 어쩌나. 집 밖을 나와 굽이진 골목길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판이다. 큰 결심을 하고 나온 첫날부터  계획은 어그러졌다.

지금에 와서는, 광합성이나 하자는 마음만 남았지.

벤치에 앉은 채로 올려다본 하늘이 푸르렀다. 산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집 근처의 작은 언덕에 불과했지만, 이것도 자연이라고 공기가 썩 맑게 느껴졌다.

봄이라고 꽤나 무성하게 이파리를 둘러맨 나무들이 보였다. 일을 열심히 하는 모양이다.

8강은 다음 주에 시작한다.

주제도 모르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버렸다.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충 준비해서 나가야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 많은 시청자들이  게임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순간부터, 그런 평온함은 없었다.

기분 전환 같은 건 사실 불가능했다.  앞에 닥칠 무언가가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 그걸 못 본척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적어도 내 성격은 그랬다.

집에 들어가면, 다음 주까지 대회를 준비한다고 골머리를 앓겠지.

내리쬐는 따스한 태양과,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나는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는 것이다.

 보고 짖는 개새끼가 얼추 이해가 가기는 했다.

...술이나 한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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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고:혹시 노르드님한테 물어봐주실 수 있나요? 대회 관련해서 부탁드릴게 있어서... 부탁드립니다.

스벅:넵. 근데 제가 노르드님 연락처는 있는데 친분이 깊은 건 아니라서 ㅎㅎ;; 일단 말씀은 드려볼게요.

칼고:감사합니다.

칼고는 베타코드 창을 닫았다.

베일에 쌓인 것 같은 상대였다. SNS는 커녕 베타코드나 나이트폴 친구로 등록된 사람을 찾기도 힘들다니.

대회를 마치고 바로 친구 요청을 보냈으나, 그마저도 차단을 해둔 것인지 응답이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두꺼운 벽을 치고 있는 것인지.


그가 대회에서 광탈한지도 어느새 며칠이 흘렀다.

그간 이벤트 대회을 포함한 여러 대회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칼고였다. 본선 1차전에서 탈락하는 정도야 충격받을 일도 아니었다.

그도 사람인지라 은근슬쩍 쏘아지는 악의 담긴 메세지에 상처 받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를 대비해 철저히 관리해온 채팅창이었다. 자신의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고작 그 정도의 사건으로 그에게 악플을 남기지는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얻은 게 더 많은 대회이기도 했으니.

칼고는 자신의 엘튜브 채널에 들어갔다.

최근 큰 변동이 없던 구독자 성장 추세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었다. 근래에 올린 한 영상의 여파였다. 그를 탈락시킨 상대와 맞붙는 자신의 개인화면이었다.

어떤   없는 알고리즘에 얻어걸린 것인지, 아니면 이번 결전 대회의 주목도가 그렇게 높은 것인지. 영상은 업로드를 하고 몇 시간만에 관심 동영상에 오르며 많은 조회수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일찍 대회에서 탈락한 것이 오히려 득으로 작용한 셈이다.
적어도 게이머 칼고가 느낀 패배감을 희석시킬 정도의 성과였다.

바로 탈락한 탓에 소스가 없다며 그에게 불평을 쏟아내던 편집자도 금새 태세를 전환하지 않았나.

...그게 어찌나 열이 받던지. 근처에 살았다면 찾아가서 꿀밤이라도 쥐어박았을 텐데.

영상이 크게 성공하기는 했는지, 방송 기획에도 곧잘 참가하는 편집자의 요청이 날이 갈수록 매서워졌다.

뭐, 대충 요약하자면 노르드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이니 제발 접점을 만들라는 이야기였다. 최소한 자신과 맞붙은 대회의 개인 화면 정도는 받아달라나.

그로써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엘튜브 활동을 하면서 흐름을 타는 게 중요하다는 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 자신의 채널에 흘러온 거대한 물결이 바로 노르드와의 결전 대회였다. 이 기세를 제대로 탈 수만 있으면 그의 구독자가 대체 얼마나 늘어나겠는가.

그래서, 자존심을 굽히고서라도 이렇게 부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이벤트 대회를 겪으며 스벅과 작은 친분을 만들어둔 게 참 다행인 일이었다. 노르드와 연락하기 위해 찾고 찾아 발견한 것이 스벅이다. 아마 그 많은 저스틴 스트리머들 중에서 노르드와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스벅 뿐이지 않을까.

칼고의 눈이 엘튜브 채널의 메인 영상으로 향했다.

아직도 대회의 마지막 순간이 눈에 훤하다. 영상 업로드를 위해 자신의 개인 화면을 돌려보기 전에도 그랬다.

저항할  없을 만큼 큰 치명상을 입고, 생기를 잃은 캐릭터의 힘 없는 손짓. 일인칭 시점으로 광전사가 대검을 내리찍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복수하고 싶었다. 누가 이기든 좋으니 당장 저결대회가 끝나고, 다음 대회가 시작했으면. 결전이 아니어도 좋다. 불타오르는 승부욕을 꺼트릴 어떤 기회라도 찾아오면 좋으련만.

그는 자신이 꽤나 집착이 강한 성격임을 알았다. 탈락한 이후에도 방송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를 킹 랭크까지 끌어올린 강렬한 승부욕은 노르드와의 재전을 바라고 있는 상태였다.

영상이고 나발이고 그냥 한판 붙자고 해볼까.

칼고는 한숨을 내쉬고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일단, 연락이 되기를 기도해야겠지.


칼고:안녕하세요.

Nord:^^&

칼고:8강 진출 축하드립니다ㅎㅎ 결승까지 꼭 응원할게요.

Nord:^^@

칼고:;;
칼고:다름이 아니고, 제가 저결 엘튜브 편집 영상을 제작 중입니다. 일인칭 화면을 교차 편집하는 식으로 제작해보려 하는데요. 혹시 노르드님 시점으로 녹화된 영상을 사용할  있을까 해서요. 필요하시다면  영상도 드리겠습니다. 아무렇게나 편집해서 사용하셔도 됩니다.

Nord:^^7

칼고:;;
칼고:허락해주시는 건가요?

Nord:넴

칼고:아 ㅎㅎ; 정말 감사합니다.
칼고:괜찮으시면 다음에 같이 컨텐츠라도 해보죠 ㅎㅎ 제 시청자분들도 노르드님하고 합방하는  기대하시더라구요.

Nord:지금 하실ㄹ이애ㅛ?

칼고:네?

Nord:듀오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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