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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50 - 기름 같은 걸 끼얹나 (50/243)



〈 50화 〉50 - 기름 같은 걸 끼얹나

칼고는  괜찮은 파트너였다.


"마법사 찾았습니다. 벙커 안 만들고 팀한테 수비 맡겼나 보네요. 내성 안쪽으로 와보실래요?"

좋은 대마법사 레이더.

"네에. 은신하고 계시면 제가 신호드릴게요."

마법사 탐지기. 탐지견. 나침반?


내가 플레이할 때는 몰랐는데. 죽이지 못해도 위치가 특정되니 편했다. 오랜만의 듀오라 그런걸까.
말이 통하는 상대가 있으니 좋아. 마법사를 죽여주니  좋아.

이제 내성에 진입할 차례다.

물을 떠오고 싶었다. 물 없이 술을 마시면 속에 안 좋으니까. 이럴거면 공성 단계에서 한번 정도는 죽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정문으로 함께한 거북이가 잘해서, 죽어도 라인이 밀리진 않았을 텐데.

내성 안쪽. 아마 깊은 곳에 있을 거다. 주제를 모르고 벙커링을 포기한 마법사라니. 건방진 녀석이다. 몸에 칼침을 맞아도 할 말이 없겠지.

정문을 뚫으면서 부상을 입은 덕에 속도가 빨랐다. 익숙한 고성의 풍경이 흐릿하게 보인다. 조금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스태는 조금만 남겨두면 된다. 성문을 이렇게나 빨리 뚫었으니까. 마법사라는 변수만 없애면 게임을 뒤집을 힘은 없는 거나 다름 없다. 빠르게 도착해 신경을 분산시키면, 탐지견이 알아서 마무리하겠지.

난 계속 달렸다. 빨리 끝내고 물을 떠와야 해.

"지그음, 바로 들어갈게요오."
"네? 백업 안 기다리구요?"

대쉬.

철퇴를  거북이가 하나. 법사. 법사가 배치해놨을 잡졸들이 몇몇... 이게 전부일리는 없으니 아마 한 명쯤 더 매복해 있을 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높은 확률로 궁병.
높은 곳을 좋아하는 놈들이니, 왼쪽만 주의하자.

거북이가 움직였다. 대치 상황이 만들어질 게 뻔했다. 빈틈을 만들어보겠다고 휘적거리다 보면 화살이나 마법이 날아오겠지.

그러면 됐다. 마법사는 바로 죽을 테니까.

강공격을 할 여유도 없다. 공격 한두 번이면 바닥날 스태미나를 가지고 최대한 주의를 끌어야 할 터.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건한 방패에다 대검을 휘둘렀다.

캉, 하는 소리가 났다.

커다란 방패는 미동도 없다. 이래서 거북이가 싫어. 맥아리 없이 튕겨나온 대검으로 철퇴를 받아냈다. 방금 그걸로 이제 한번 정도. 물러나야  때다.

그러기 전, 한마리만 더 낚고.

강공격을 하는 듯 대검을 높이 쳐들고.
등딱지에 숨어버린 거북이를 확인하고는, 바로 백스탭을 밟으면 된다.

물러난 자리를 향해 휙 하고 화살 하나가 지나갔다. 스태미나가  떨어져 허우적대는 내게, 뒤늦게 전투에 합류한 병졸들이 창을 들고 다가온다.

스태미나를 채워서 대응해봤자 늦었다. 거북이와 궁병이 제차 공격하면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마법사를 잡았으니 아무래도 좋아.

"아, 쫌! 기다렸다가 안전하게 가면 좀 좋아요? 뭐 그렇게 급하게 합니까 진짜."

눈 앞에 들이닥친 방패 때문에 반쯤 가려진 시야 너머로, 목에 화살이 꽂힌 마법사가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리저리 툴툴대는 것 같으면서도 일처리가 확실했다. 훌륭하네. 뒤진 마법사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자니 쇠꼬챙이가 내 몸에 푹푹 잘도 꽂혔다. 목적을 이룬 터라 이 삶에 미련은 없었다.

그나저나, 말이 많긴 정말 많다. 방송하는 사람들은  이러나.


"다같이 가면 상대도 백업 오잖아요."

"어차피 정면에서 붙어도 우리가 유리한데,  일부러 위험하게 하냐구요. 외성 빨리 잡아서 천천히 해도 되는데."

"마법 잘못 떨어지면 변수가 있으니까..."

"그게 혼자 돌격해서 생기는 리스크보다 커요?"

"잘 풀렸는데... 째째하게..."

"네?"

"자네는 메이지 슬레이어가  자격이 없네."

"...뭔,"


올웨폰 유저라더니. 모든 빌드는 만들어진 목적을 충실히 이행했을 때 빛이 나는 법이다. 마법사 죽이기를 플레이한다면 모든 행동이 마법사 척살과 직결되게끔 해야 하는 건데.

게임  했다는 양반이 이런 것도 모르나.

왼쪽 모니터에 켜둔 칼고의 방송에서 채팅창이 활발하게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시청자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알고 봤는데, 너무 빨리 올라가서 보고 있자니 어지러움만 더해졌다. 뭐라는 거야. 내 방송 채팅이 아니라서 그런가. 낚시를 할   채팅창은 잔잔하게 올라가는데.


낚시, 낚시가 하고 싶어졌다. 소주 한잔하면서 낚시를 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회를 먹은 지도 오래됐다.  접시 시키면 뚝딱일 텐데. 굳이 잡아온 생선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매운탕 끓였을 때 맛있는 생선이 좋아. 우럭. 우럭 매운탕이 먹고 싶다.


"칼고님, 낚시 같이 하실래요~?"

"뭐요?"

"요즈음 같은 날씨가 낚시하기에 정말 좋그든요."

"하... 쓰읍. 낚시 게임 말하시는 거죠? 엘튜브 채널에 올리셨던."

"이게 봄이면요. 날이 따뜻해서 물고기들도 위로 올라오거든요. 유명한 데가 아니라 아는 사람만 아는 작은 하천 같은 곳으로 가는 게~ 포인트에요. 낚싯대 붙들고 있으면 팔뚝에 봄 햇살이 싸악 깔리면서, 포근하게 올라오는데 그게 되게 기분 좋아요."

"...되게 실감나네요. 실제로도 낚시 자주 다니시나봐요? 여성분들 중에는 낚시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던데."

"...에? 아뇨, 게임 얘기죠. 게임."

"아니, 그게 어떻게 게임 묘사-"

"저 물좀 떠올게요."

쪼르륵-

옛날 생각이 나버렸어.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됐는데.

냉장고에서 꺼낸 물은 차가웠다. 급하게 마시느라 목을 타고 물 한방울이 흘러내렸다. 차가워.

지이잉-

 와중에도 진동이 계속 울려서, 너무 시끄러웠다. 그냥 핸드폰을 꺼둘까.

...진동?

<혜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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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칼합방 후기> [31]

<유입새끼들 꺼져라> [45]

<방장 술마신거 맞지?> [36]

<센세 정신상태 킹리적갓심> [18]

<뭐? 우결? 미친씨1발련들이 뒤질라고> [57]

<응 육수짓 할거야~ 척화비 세울거야~ 유입들 다 꺼져~ 커플링 만드는 새1끼들  죽일거야~> [26]

머리 아파.

추천을 많이 받은 인기 게시글 목록이다. 오늘 올라온 글만 따져도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전체로 따지면 대체 얼마나 많은 글이 올라온걸까.

뭐가 그리 신난 걸까. 지금은 합방이 끝난지 오래인 새벽인데. 아직도 저컴 내에서 핫한 게시판 1, 2위를 다투고 있는 모양이다.

...경쟁 상대는 칼고의 게시판이었다.

나는 조용히 인터넷 브라우저를 닫았다.


뭔가, 뭔가 실수를 했던가?

음주 게임을 하면 잔을 비우는 속도가 빨라지기는 하지만, 내 기억에 누락된 곳은 없었다. 대충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합방을 진행했던 것 같은데.

낚시 생각이 났을 때 과거의 기억이 흘러나온 것을 빼면 실수랄 것도 없었다. 그마저도 별 내용이 없었고.

대화 도중에는 술이 들어가니까 어색함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음주의 효용성에 대한 찬사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혜민이가 부재 중 전화 몇십 통을 보내면서까지 나를 말릴 필요는 없었다는 뜻이다.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동생의 목소리가 얼음보다 차가워서, 취한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낚시 얘기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술 좀 마신  무슨 죄라고 마치 상사의 전화를 받은 것처럼 쩔쩔맸다.

나...나는 멀쩡했다고.


사실 합방을 제안한 것도 술기운 때문이었으나-
술을 마시면 사람이 충동적으로 변하는 건  오랜 천성이었다. 몸이 바뀐 이후로도 그대로인 걸  고칠  없는 거겠지.

그래도 꽤 재밌는 방송을 하지 않았나. 난 칭찬 내지는 재밌었다는 후기가 올라올 줄 알았다.

이런 대화재를 기대하지는 않았었는데.

게시판의 글들은 치고 박고 싸우는 게 대부분이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게시판에 상주하던 원주민들이 칼고의 방에서 유입됐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총칼을 휘두르는 구도였다.

성향 차이에서 비롯된 걸까. 확실히 내 방송 시청자와는 뭔가 분류를 달리 해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자들이 많이 봐서 그런가. 굳이 말하자면 커뮤니티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저럴 수도 있는 거구나.

유난히 우결이란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  눈에 들어온다. 대충 훑어보니 사춘기 애새끼들처럼 남녀가 눈만 맞아도 사랑에 빠졌다 몰아가는 부류의 물타기였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내 방송 시청자들에겐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우결충들 사지 찢어버리기 전에 나가라...라니.'

말이 좀 심한 것 같기도 하고.

 게시판은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차단 당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아, 성인 광고를 올리던 사람은 제외하고.

내 방송에 찾아온 걸로도 모자라 커뮤니티까지 찾아와 관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굳이 내 손으로 쫓아내고 싶지가 않더라.

사실 내게 뭐라 비난을 내뱉으면 알아서 린치 당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그런 것도 있었다. 자경단은 훌륭하다.

어설픈 친목이 시작되는 것만 아니면 내가 나서서 관리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중재라도 해야겠지.

여기서 표현을 잘못했다간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기왕 유입이 생긴 거,  입장에선 다같이 화목하게 지내는게 좋았다. 방송하는 사람 중에 유입을 쳐내서 잘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여기선 신중하게 공지를 써야겠다.

<술 한잔 마셨습니다. 이거 하나만 기억해주십쇼...> [143]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오늘 아침에는 산책을 나섰는데, 지나가던 개 한마리가 저를 보며 열심히 짖었습니다. 정말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날씨가 정말 좋더라구요.
날이 좋아서, 눈부신 햇살이 너무 따사로워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부드러워서 그만.

술 한잔 했습니다.

 나라의 법률 상 음주운전은 금지해도 음주게임은 허용된 줄 알고 있습니다. 심신미약을 주장할 생각도 없습니다. 열심히 게임만 했습니다.

칼고님과는, 게임을 하는 중에 엘튜브 영상 관련해서 연락을 하시길래요.

그냥... 다음에 합방 어떠냐고 제안을 하시니까...
그런 거 미뤄서 뭐하냐는 생각에 듀오 신청을 해버린거죠...

방송은요, 여러분들께 본선 탈락까지는 방송을 안 킬거라고 약속을 드렸으니까요. 저는 시청자분들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좋게 봐주셨는지 게시판에 칼고님 방송을 즐겨보는 시청자분들이 많이 유입된 걸로 압니다. 제게는 전부 소중한 시청자니까, 너무 배척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굳이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방송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제가 기억하고 있으니깐요. ㅎㅎ...

조만간 대회 탈락 예정이니까요...
곧 다시 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제게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7


그날 새벽 내내, 내 게시판은 핫한 게시판 1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어... 불을 끌려고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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