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52 - 줄 건 줘
글레이브를 상대로는 거리를 좁히는 게 중요하다.
날이 있는 장병기인 탓이다. 대부분의 공격이 횡으로, 기다란 선을 그리며 다가온다. 거리를 내주다가 저 선에 걸치기라도 하면 사지가 절단나기 십상이다. 자신도 장병기를 들었다고 같이 거리로 맞대응하다간 상을 치르기 마련이지.
정면으로 쳐부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다만, 당연하게도.
글레이브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거리를 좁히려는 상대를 얼마나 많이 만나봤겠나. 사거리가 더 짧은 대부분의 무기가 모두 비슷한 시도를 했을 게 뻔하다. 그걸 대응하고 받아치는 방법도 질리도록 연습해왔겠지.
그러니 어설프게 약점을 노려봤자 잡아먹힐 뿐이다.
쐐액-
노골적으로 왼쪽을 노려온다.
오른손 파지를 주로 사용하는 내가 막아내기 힘든 위치. 공격을 흘려내며 다가온 대검에 1세트를 내준 탓이겠지.
대검을 측면으로 세워 글레이브를 막아냈다. 철과 철이 맞닿고, 글레이브가 튕겨나가듯 밀려나며 기사의 품으로 돌아갔다. 힘이 실리지 않은 약공격이다. 이것도 카운터를 경계한 건가.
처음부터 연계기를 시도했던 이전과 달리, 최대 사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빈틈이 생길 움직임은 자제하고 있다.
칼고의 쌍검을 상대할 때 내가 활용했던 운영과 흡사했다. 조심성이 극도로 올라온 모습이다. 아마 일부러 틈을 보여주고 공격하게끔 유도해도 섣불리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에 칼고가 제시했던 파훼법은, 리스크를 짊어진 거리 좁히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성공률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5할 미만의 가능성. 그걸 도박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아무튼 칼을 찔러넣기 위해선 거리를 좁혀야 할 터.
팔 하나 정도는 내줄까.
결심을 한 순간이다. 도박수라고 단순히 막무가내로 돌진해서는 가망이 없다. 수를 던지는 건, 최대한 완벽한 타이밍에.
반동이 없는 약공격이어도 좋다. 상대의 움직임을 끌어낸 직후가 적합할 것이다.
지금처럼.
뒤로 당겨진 글레이브를 확인했다. 그 즉시 앞으로 돌진했다. 아마 이전처럼 왼쪽 상체를 베어내려 하겠지. 지레 겁을 먹고 모션을 캔슬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대검으로 막아내기 힘든 왼쪽을 공격했을 테니.
그러니까 팔을 내주는 것이다.
파고드는 게 늦지는 않았다. 날에 베여 팔 한짝이 그대로 잘려나가는 건 면한 모양이다.
묵직한 장대와 부딪혀, 빠각- 하고 무언가 부러지는 사운드가 들려왔다. 동시에 화면 좌측이 빨갛게 물든다. 왼팔이 완벽히 부러졌다. 가드도 없이 맞았으니 정해진 결과였다.
강한 타격을 허용한 탓에, 오른손으로 휘두른 대검도 타점이 흔들렸다. 어깨에 걸친 채 상대의 머리를 쪼개려고 내리쳤는데. 어깨춤의 갑옷을 박살내는데서 그쳤다.
상대가 바로 반응해서 몸을 빼는 바람에 팔을 통째로 베어내지는 못했다. 내 왼팔과 달리 움직이기는 하겠군.
흠.
이번 도박은 실패했다.
무게로 따지면 나이트폴의 모든 무기 중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대검이다. 작살난 왼팔을 고려하면, 내가 택할 수 있는 공격은 크게 제한된다. 어깨로부터 내리치는 강격과 바닥쓸기 정도일까.
노련한 상대가 이걸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다. 안 그래도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손가락으로 셈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요리하기는 간단하겠지.
그럼 남은 게 뭐가 있겠나.
다시, 도박수다.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뇌는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굴러갔다. 어깨 갑옷이 박살난 기사가 물러난 그 순간에, 내 머리는 연이어 도박수를 시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상대가 상황 파악을 마치고 구도를 다시 잡으면 이 게임은 끝이다. 수를 던져야 하는 건 지금 이 순간일 터.
박살난 왼쪽 팔을 무시하고, 재차 앞으로 돌진했다.
무너진 균형 탓에 떨어진 속도는 광전사 빌드의 특성으로 대신한다. 폭주를 시작한 광전사는 제 피를 연료로 가속하는 스포츠카나 다를 바 없었다.
붉게 물든 시야로 황급히 무기를 들어올리는 상대의 모습이 포착됐다. 일단 내 움직임이 적의 예측에서는 벗어난 모양이다. 조금이나마 승산이 생겼나.
공격 모션을 고른다는 사치 따위는 부릴 수 없었다. 땅에 끌다시피하며 들고온 대검을 그대로 다리를 향해 휘둘렀다.
백스탭. 우선 거리를 벌리기로 판단했으리라. 안정적인 운영에 집착하는 상대다. 애초부터 예상한 대로였다.
오른팔 하나로 대검을 억제하고 공격을 이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처음부터, 적이 뒤로 물러날 것으로 가정하고 휘두른 일격이었다.
다리를 앞으로 밀어넣었다. 선입력한 대로 전진한다. 그대로 휘둘러진 대검의 기세에 몸을 맡겼다. 육중한 쇳덩이가 붉은 평야에 거대한 원을 만들었다.
회전하는 힘을 담은 연격이, 기사의 허리춤으로 쇄도한다.
거울로 반사한듯한- 1세트의 그 연계식이 광전사의 손에서 펼쳐지고.
글레이브를 든 기사는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번은 성공인가.
언제나 그렇듯, 목숨을 건 도박은 짜릿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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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방장 떨어졌으면 좋겠는사람들 개추좀>
입벌리고 감탄하면서 구경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저결이고 나발이고 본분은 방송아님???
대체 방송은 언제 키는건데ㅋㅋ
씨,발 쓸데없이 나이트폴은 왜케 잘해서 ㅋㅋ;
좀 적당히 보여주고 돌아오면 되는데 2절 3절 4절까지 쳐하고 있어 무슨 애국가냐???
심지어 플레이도 존나 이악물고함 무슨 팔하나 덜렁거리면서 이긴다고 ㅅㅂ; 근데 왜 진짜 이김 무친련,,
그냥 기권하고 방송이나 켜!!!!
나랑달:근데 여기까지왔는데 기왕이면 트로피 가지고와야ㅋ;
-노르드발닦개:아 됐고 방송이나 켜줘ㅓㅓㅓㅓㅓ
냥냥코로:하지만 대회에서 활약하는 모습도 놓칠 수 없는걸... 방송은 엘튜브로 버틸수있어
-smatafuc:님 대체 노튜브 몇번봄?;
-냥냥코로:세본적없어
-antlr98:좀 무섭네요.
<다들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음>
아무도 대회 중에 방송을 키면 안 된다고 말한 적 없음. 그딴 룰도 없고.
대체 방장은 왜, 탈락 전까지는 방송을 안 킨다는 개1줮같은 약속을 했으며, 그게 뭐라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걸까?
혹시, 이 또한 방송 지식이 전무한 방장을 속여 수탈하려는 악의 축이 꾸민 음모가 아닐까??
그렇다면 순진한 방장을 꼬드겨 방송의 소재로 써먹은 원흉이 있을텐데....
찾았다. 숨지마라, 칼고!!!
칼고오빠사랑해요:허규ㅠㅠㅠ 나 손발이 벌벌떨리고 오줌이 질질 새ㅠㅠㅠ 무서워ㅠㅠㅠ
아이도:논리적으로 한치의 오차도 보이지 않네요. 합리적인 추측입니다.
노칼영원해:칼고 방송에 문의하러간다. 진실은 숨길 수 없지.
-노르드랑칼고랑:222222 저도 동참할게요
또라이몽:악질들 닉부터 벌벌 떨리네
<혼란스러운 노게에 우승후보 무상 sns투척 >
저결대회 만나고 싶은 상대로 센세 지목한 내용임 ㅇ
립서비스인지 뭔지 칭찬일색임.. 우승 경쟁 상대로 꼽아놓고 있었다는 말도 있음.
자세한 내용은 링크참조.
trianglegy.com/musang77
꺆뀨륚띠: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주네요.
화살한방울:프로피셜떴네ㅋㅋㅋㅋ 무상 저양반 킹랭크에 부캐까지 주차하는 사람인데
-검방커신:만나봄?
-화살한방울:전시즌 탑레찍었을때 만나봄ㅋㅋ 아군으로 붙어서 버스받았지
감나라배나라:ㅆ1발이러다 진짜 결승에서 붙는거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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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달 님이 5,000원 후원!>
-혹시 대회 플레이 분석도 해주실 수 있나요?
"아, 나랑달님 오천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분석이라.
한창 하이라이트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칼고는 채팅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청자들은 방금전까지 진행되던 경기를 다시 복기하고 있었다. 대회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스타성있는 플레이어는 사람을 열광시킬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칼고가 방송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단순히 훌륭한 플레이가 아니라, 보는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강렬한 퍼포먼스.
인정하기 싫어도 노르드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었다.
"분석이라... 다음 경기 시작 전에 간략하게 해볼까요?"
굳이 채팅창을 확인하지 않아도 반응은 뻔했다. 합방 이후로 노르드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극도로 올라간 상태였다.
그녀가 활약한 모습을 분석한다고 하면, 두 팔을 들어올려 환호하리라.
괜찮은 컨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칼고의 관점에서 바라본 노르드의 플레이는 과하게 공격적이며, 때론 무모한 것처럼 보였으나- 뜯어보면 전부 납득이 가는 판단이었으니까.
직접 맞붙었을 때 느꼈듯이, 저 인간은 침착한 또라이였다.
분석하는 재미가 있다는 소리다.
"2세트를 잠깐 보죠."
대회를 잠시 종료한 칼고가 다시보기 영상을 재생했다.
"군나르 선수는 거리를 벌려두고 접근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글레이브의 긴 리치를 활용하는 거죠. 음, 제가 노르드님과 맞붙었을 때의 구도와 비슷하네요.
군나르 선수가 1세트처럼 먼저 후딜이 큰 공격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선택을 강요받는 건 사거리가 짧은 쪽입니다.
츠바이도 절대 짧은 무기는 아니지만 간격은 상대적인 거니까요. 여기서 재밌는 건 군나르 선수의 공격 패턴입니다.
여기하고... 여기. 보이시죠? 공격 경로가 거의 노르드님의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요. 그 전의 패배가 기억에 맴도는 거죠."
잠깐의 일시정지. 물을 한번 마신 칼고가 말을 이었다.
"이게 방향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 거예요. 사실 고랭크 유저들도 방패를 든 상대가 아니면 별로 고려하지 않는 부분인데, 1세트에서 이게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거든요. 뭐나면 모션 딜레이에서 차이가 생기는 겁니다.
똑같이 정확한 타이밍에 흘리기를 입력했다고 쳤을 때, 지금 노르드님 같이 오른손 파지로 대검을 들고 있으면 그쪽으로 다가오는 공격에 대한 반응이 더 빠릅니다.
1세트 기억나시나요? 흘리기 판정이 들어가자마자 노르드님 찌르기가 들어갔잖아요. 흘려내는 모션 선딜이랑 후딜이 캔슬되는 것처럼 보였죠. 만약 그때 글레이브가 반대 방향에서 들어왔으면 대검을 휘두르는 모션 때문에 바로 공격을 이어나가지는 못했을 거예요."
나이트폴에 인생을 갈아넣은, 고여도 어지간히 고인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하지 못할 발상.
그러나 적어도 칼고는 그게 노르드의 노림수일 거라고 확신했다.
"군나르 선수도 그걸 아니까 이렇게 대놓고 왼쪽만 공격하는 겁니다. 혹시 이전 세트처럼 흘리기 모션을 이용해서 뭔가 사기를 당할까 싶은 거죠. 그래서인지 노르드님도 적극적인 돌파를 시도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죠."
그래, 그렇게 보였지.
실소에 가까운 헛웃음이 칼고의 입가에 새어나온다.
이어지는 영상이다. 광전사는 당연하다는 듯 왼팔을 내주고, 글레이브의 간격으로 억지로 파고 들었다. 리스크를 감수한 플레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칼고는 대검 유저가 당당히 팔 하나를 내준 저 플레이가, 그렇게 단순한 말로 정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였다.
이긴 게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이건, 뭐... 저는 분석을 해야 되나 싶네요."
<노칼영원해 님이 1,000원 후원!>
-미1친련,,, 제정신 아니긴 해 ㅋㅋ
험한 말을 뱉기 힘든 칼고를 대신해, 시청자가 후원으로 한마디를 거들었다.
닉네임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적절한 표현이었다.
칼고는 드물게도 욕설을 남긴 시청자를 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