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55 - 까치도 은혜를 갚는다 (55/243)



〈 55화 〉55 - 까치도 은혜를 갚는다

"결승 진출 축하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노르드가 대답했다. 온라인 상으로 진행되는 승자 인터뷰다.


마이크를 타고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온 수많은 채팅에 의해 과부하된 채팅창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당황한 관리자가 슬로우 모드를 적용할때쯤, 인터뷰 진행을 맡은 해설자가 질문을 시작했다.

"먼저 빌드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네요. 본선전이 시작된 이후로 많은 시청자분들이 궁금해 하셨습니다. 노르드님이 사용하신 광전사 빌드는 보통 난전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결전 대회에서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빌드라서요."


소곤거리듯 튀어나온 한마디 이후로 정적이 찾아왔다. 너무나 짧은 대답이다. 이어지는 말이 있을까 기다리던 해설자가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급히 말을 덧붙였다.

"네! 선호하는 빌드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점이죠.
그, 32강부터 빈사 상태와 관련된 비주류 특성을 종종 사용하셨잖아요? 그런 선택을 하게  배경이나, 노르드님이 생각하는 일대일에서의 장단점을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 준비해온 전략은 아니었구요. 계속 전투가 빠르게 결판나는 구도라, 로우 라이프에서 부스팅을 받는 특성을 쓰면 게임을 뒤집을  있을 것 같아서 바꿨던  같아요.
리스크가 너무 뚜렷한 빌드라... 트리거 발동하고 한번이라도 라이프 관리에 실수하면 죽는다는 단점이 조금 크네요."


[눈나ㅏㅏㅏㅏㅏ 목소리 너무좋아]
[단어 선정이 너무 나틀딱인데?]
[ㅗㅜㅑ 왜케 소곤소곤 말하냐]
[이 누나 근본 유럽섭 유저였네ㅋㅋㅋㅋ]
[저게 뭔소리임?]
[못알아듣는 얼라새끼들은 자러가라 ㅉㅉ]

생각보다 상세한 대답이었다. 첫 번째 답변을 듣고, 힘든 인터뷰가 되리라 짐작했던 해설가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정말 의외의 답변이기는 했다.
빌드와 관련된 인게임 내용을 영칭으로 사용하는 것.
그건 소위 나틀딱이라 불리는, 나이트폴이 공식 한국 서버를 개설하기 이전부터 플레이한 고인물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었다.

분명 프로필에는 22세라 적혀있는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참가자였다.


"그렇군요. 즉흥적인 전략이었다는 게 굉장히 의외네요. 저희들 사이에선 준비된 전략이라는 분석이 많았거든요. 그만큼 게임의 구도를 뒤집어버린 선택이었으니까요.

이번엔 빌드가 아니라 무기에 관한 질문인데요. 사실 빌드뿐 아니라 압도적인 외형을 자랑하는 츠바이핸더에 대한 관심도 컸을 것 같아요. 대검을 무기로 고르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형 모션이 마음에 들었던 게 크네요. 가슴 팍에 칼을 박아넣는 것도 좋아하구요. 약공격 피니시로 몸을 난자하는 것도 괜찮아요. 그,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 적을 처치할 때 나오는 모션인데... 단번에 목을 자르고 대검에 꽂아서 효시하는-"

노르드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해설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갔다.  저런 것만 자세히 묘사를 하고 있는지.

[취향이 좀;]
[나도 누나 대검에 장식처럼 걸어줘]
[일관성이 있으시네]
[학규형 표정관리좀해 ㅋㅋㅋㅋ]
[노르드! 노르드! 노르드! 노르드!]
[무식한 대검충들 평균ㅋㅋㅋ]
[들을수록 쌉근본이네,,,]

"아! 무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돋보이는 답변이었습니다. 여, 역시 츠바이핸더같이 로망 넘치는 무기에는 호쾌함이 있네요. 독특한 무기를 사용하는 유저분들은 다들 무기에 대한 애착을 갖고 계시더라구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대회가 진행될수록 퀸 랭크인 노르드님의 랭크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회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그만큼 대단했으니까요. 커뮤니티에선 도대체 본 티어가 어디냐, 소위 본캐의 닉네임이 뭔지에 대해 논의가 있기도 했습니다. 혹시 여기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높게 평가해주신 건 감사합니다. 본캐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나이트폴 시작한지가 한달 정도 됐습니다. 지금 대회에 참가한 노르드가 제  번째 아이디구요. 대회가 끝나면 킹까지 열심히 달려볼 생각입니다. 어, 될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떻게 구라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뱉음?]
[저렇게까지 숨기는거 보면 본캐 유명한 비매너유저인듯]
[킹랭크 참가자  떨궈놓고 될지 안될지 ㅇㅈㄹ]
[한달만에 대회 결승진출한 씹재능충이였네 ㄷㄷ]
[낯짝 두꺼운거보소ㅋㅋ]




인터뷰가 길어졌다. 노르드의 답변이 길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부터 준비된 질문이 많았던 탓이다.

여느 때보다 주목도가 높아진 대회였다. 참가자의 숫자나 경기력의 수준도 대회 흥행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것은 참가자의 존재감이다.

단순한 이벤트성 대회도 아니고, 최상위권 유저들이 다수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여성 참가자가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도 많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어내면서 달성한 성과다.

때론 한두 명의 플레이어가 대회의 흥행을 책임지는 스타로 떠오르는 법이다.

인기 프로팀 GB게이밍의 소속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전한 무상과 더불어, 노르드는 지금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경기가 모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이 남아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집중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공식 채팅창을 꺼둔 노르드에게 있어서는- 그저 해설자와의 일대일 문답 시간일 뿐이었지만.

"-마지막으로, 결승전 각오와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래도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으니까... 기대를 안하면 실망도 안하잖아요.
지금까지 응원해주신 분들껜 정말 감사합니다. 방송도 안키고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었네요. 방송을 하고 싶어도 약속을 생각해서 꾹 참고 있습니다. 저도 낚시가 하고 싶어요."

"...네? 낚시요? 큼. 네! 노르드님의 각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결승 진출에 성공한 노르드 선수와의 인터뷰-"

"아, 죄송합니다. 혹시 한마디만 더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네. 자유롭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어... 사실 4강전 준비하면서 칼고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인터뷰 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립니다. 칼고님 방송 많이 사랑해주세요. 칼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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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고:아니 저기요
칼고:그렇게 대놓고 언급을 하면 어떡합니까
칼고:안그래도 선생님 시청자들 제 방에 다 몰려있는데 지금
칼고:아오 진짜

Nord:^^???
Nord:피셔맨 하셨나요?

"이런... 씹-"


[해 명 해]
[시청자들 냅두고 노르드와의 은밀한 일대일 과외...?
이거 맞아...? 나 부랄떨리고 눈물 나]
[대화로그 피셔맨 씹ㅋㅋㅋㅋㅋ 집착뭐냐]
[와 ㄷㄷ 칼고님 생방도중 욕설시전..기사나겠네]
[노르드 방송켜라]
[칼고님 그렇게 안봤는데... 시청자들 몰래 노르드님이랑 낚시 데이트를 즐기실 줄은 몰랐네요. 실망입니다.]
[난 노르드방 육수야~ 도배를 할거야~ 난 노르드방 육수야~ 도배를 할거야~ 난 노르드방 육수야~ 도배를 할거야~]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제한한 악성 스트리머 칼고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오랜만에 왔는데 채팅 왜이래요? ㅋㅋ;]


왜 방송을 켜놓고 인터뷰까지 지켜봤을까.

사람은 안하던 짓을 하면 반드시 피를 보기 마련이다.
분명 중간까지는 칼고도 노르드의 인터뷰를 웃으면서 지켜봤다. 말 한마디에 따라 채팅창이 폭발하는 모습이 제법 웃겼으니까.

자신을 언급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시청자가 칠천 명.

분명 노르드가 언급하기 이전에는 사천 명이었던 것 같은데.

실시간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아, 방금 또 천 명이 늘어났다.

시청자가 늘어나는  어떤 스트리머가 꺼리겠냐마는, 칼고는 이리저리 어그로를 끌며 시청자를 불러 모으는 유형의 방송을 싫어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어그로에 모여든 시청자는 어차피 금방 꺼질 거품에 가까웠다. 오히려 기존에  조성해둔 방송의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외래종 내지는 미꾸라지들이 아닌가.

그런 미꾸라지가 지금... 노르드에 의해 대량 방생된 것이다.

불만을 품을 수밖에.


칼고:당장 방송켜서 데려가든가 하세요

Nord:왜죠
Nord:시청자 많으면 좋지 않나요

칼고:좋은거 혼자먹기 아까우니까 좀 나눠가시라고... ㅎ;

Nord:걱정하지마시고 즐방하세요.
Nord:이때를 위해 피셔맨 dlc 선물드렸습니다.
Nord:즐낚! ^^7

칼고:야
칼고:야 미친련아

접속을 종료한 노르드의 아이디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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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면 보람이 따라온다.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건 놓치지 쉽지만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나. 측정 가능한 바로미터도 없으니 평소부터 신경써서 관리하는 것이 좋다.

다소 꼰대의 기질이 보이긴 했으나, 칼고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다. 4강 본선 전날 부탁한 연습 게임이 생각보다 길어진 탓이다.

중간부터는 본인이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장해오기도 했다. 거의, 자정에 가까워질 때까지 빌드를 바꿔가며 연습에 몰두했던 것 같다.

그걸 게임 dlc라는 금전적 요소로 퉁 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은혜를 갚는  받는 쪽에만 이득이 되는  아니다. 마음의 빚을 덜어냈으니 서로에게 플러스겠지.

과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격하게 거절하는 칼고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저렇게 고마워하면 뭔가를 선물하는 보람도  커지는 법이다. 역시 방송을 하려면 저 정도의 리액션은 할 줄 알아야 하는 걸까.


그래서, 이제 결승이다.


아닌 척을 하려고 해도 승리의 짜릿함에 전율하는 걸 감출 수는 없었다. 언제나 승리를 생각하며 게임에 임한다고는 하지만, 역시 대회에서의 승리를 일반 게임과 비교하기는 힘들었다.


한 경기  경기. 어떻게 하면 이길  있을지 머리를 붙잡고 고뇌하다 보니 결승전까지 도달했다. 여기까지 와서 우승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겠지.

프로에게 승리를 논한다는 게 조금은 우습게 보이기도 했으나.

나도 한명의 게이머로써, 시작도 전에 패배를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승부욕이라는 게 끓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실낱같은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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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결 결승 무상vs노르드 preview>
본 분석은 전문성이 전무한 일개 나붕이의 주관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다는  미리 말씀드립니다.
댓글로 다른 의견을 제시해주셔도 좋습니다. 너무 논쟁이 과열되지만 않으면 따로 삭제하거나 차단하지는 않겠습니다.

무상(Musang)
현 GB게이밍 2군에 소속된 선수입니다. 대회가 시작할 당시의 랭크는  50위권, 지금은 21위를 기록하고 있네요. 저번 시즌 팀 팬들 사이에서 1군으로 콜업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번 프리 시즌에 선수 영입이 따로 없었던 걸 보면 꽤 신빙성있는 정보인 것 같습니다.
즉 GB의 잠재적 1군인 프로 선수입니다.

결전 대회에는 단벌의 아밍 소드를 가지고 참가했습니다. 소형의 버클러도 없이 간단한 장비지만, 빌드 선택으로 변수를 더한 세팅이네요. 이미 본선 무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보여준 바가 있습니다. 다양한 자세에서 비롯된 변칙적인 공격이나 연계기 활용은 장비가 단순하다는 인식을 지워버렸죠.

기본적으로 전투 구도를 만드는 데에 특출난 모습입니다. 무상 선수의 경기에서 무기가 맞닿는 충돌음이 거의 들려오지 않는  이제 유명한 이야깁니다. 우월한 기동성으로 상대를 흔들어두고, 빈틈을 파고드는 연계기로 한순간에 결판내는. 결전에 최적화된 전투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퍼드 선수와의 일전에서 이 모습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견고한 소드 앤 버클러 빌드를 단 한번의 연계로 잡아냈죠. 연계가 끝날 때까지 무려 세 번에 걸쳐 자세가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조작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보면, 역시 프로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초근접전에서의 반응속도도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능력이 준수한, 그야말로 프로다운 선수라고  수 있겠네요.

다음은 노르드(Nord) 선수입니다.
현재 랭크는 472위로 퀸 랭크의 선수입니다. 4강 인터뷰를 통해 대회 참가 계정이 주 계정임을 밝혔습니다만,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네요. 본선에서만 네임드 킹 랭크 유저를 여럿 쓰러뜨리고 올라온, 이번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입니다.

결전을 위해 꽤나 변형된 형태의 광전사 빌드를 가지고 참가했습니다. 기본 빌드를 굳건히 밀고 나간 무상 선수와는 달리 주요 국면마다 특성을 변경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가 있습니다. 극단적인 빈사계열 특성 활용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죠.

무기는 이제 노르드 선수의 상징이 된듯한 츠바이핸더입니다. 아시다시피 훌륭한 사거리, 강렬한 한방과 둔한 움직임이라는 명료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무기입니다. 일대일 매치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세팅입니다만, 그걸 모두 불식시킬 만큼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돌적인 광전사의 이미지와 달리 분석을 하면 할수록 합리적인 플레이가 눈에 들어오는 선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승리 플랜을 만들고 실행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있겠네요. 칼고 선수와의 매치에서, 전투 구도를 이해하고 즉각적으로 빌드를 수정한 모습에서 이런 장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둔한 움직임을 역으로 활용하거나, 심어두기를 통한 심리전에도 매우 뛰어난 선수입니다. 장점을 보면 볼수록 나이트폴 경력이 궁금해지는 참가자네요.  가속된 광전사의 폭주 상태를 자연스럽게 컨트롤하는 걸 보면 피지컬 적으로도 나무랄 곳이 없어 보입니다. 과연 결승에 진출한 선수답게, 무상 선수와 비교했을 때도 쉽게 밀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두 선수의 수준이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빌드 상성을 고려하면 무상 선수의  우세가 예상됩니다. 움직임이 둔하고 예측하기 쉬운 무기의 특성  빈틈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한번 접근을 허용했을  츠바이의 한정된 선택지로 무상 선수의 연계를 끊어내고 받아칠 수 있을지가 매치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바쁘게 달려온 저결대회, 대망의 결승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결승전의 승자는 누구인가요?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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