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57 - 나도 한 대만 (57/243)



〈 57화 〉57 - 나도 한 대만

얌체 같은 놈.

물론, 저 놈에게는 극찬이겠지.

어느 시점을 바탕으로 플레이 스타일이 반전했다. 연계기를 통해 빠른 결판을 노리던 것이, 딜레이 캐치 위주의 히트  런으로.

자만하고 굽히지 않았다면 2세트까지 쉽게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방향을 선회하는 게 한순간이더라.

빌드를 바꾼 것도 아니다. 인 게임 내에서 전략을 수정하고 실행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기야 이런  누가 평소에 겪어보겠나. 대회라서 느낄  있는 전략적 플레이라고 생각하면, 새삼스레 다전제 게임의 변수가 무서워지는 것이다.

과연 프로라고 해야 할까.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휘두른 대검은 아쉽게도 닿지 않았다.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면 얼마 남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한끗 차이가 실력의 간극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럼- 승리 플랜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1세트의 기억을 되새기는 게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쉬운 일이다. 지근거리에서의 수 싸움에선 절대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비슷한 패턴을 유도하려고 일부러 당해주는 척 하기에는 상대방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다. 파생 동작으로 연계하는 와중에도 자세를 몇 번이나 바꿔오더라. 유효타를 허용하면 아마 바로 죽었겠지.

운이 좋으면 두 번 정도는 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지만. 역시 녹록치 않았다.

아마 상대는 승리를 가져온 패턴을 그대로 유지할 터. 나는  짧은 시간 동안 그걸 파훼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대기 시간은 길지 않았다.
마우스를 잡은  끝이 조금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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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졸렬하네 씨1발ㅋㅋㅋㅋ>
프로라는 새,끼가 좀 깔짝거리다 안되니까 쨉쨉이로 바꾸는 거 실화냐??? 진짜 개쩌는 연계 심리전 기대하고 봤는데 무상 실망이다...

노르드는 마지막까지 쌍남자답게 정면으로 맞붙었는데ㅋㅋ 꼬추 떼서 노르드한테 넘겨라 ㅇㅇ

Asap_Crack*:노갈년 졸렬 ㅇㅈㄹ ㅋㅋ 대회에서 이기면 그만이지 야비하다고 지랄하는  그냥 애새끼인거야 ㅎ
-ㅇㅇ:응~ 다음 무상빠는 개밥충~

ㅇㅇ:그냥 무상이 잘했음. 딜캐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지. 노르드도 빈틈 안만들려고 페이크 엄청 섞었는데 그거 다 읽고 갉아먹은거임 ㅋㅋ
-ㅇㅇ:미친놈들인게 둘다 거의 안속더라. 저정도면 그냥 보고 반응하는거 아님?
-ㅁㄴㅇ:반응하는거 맞음. 본선 다른 경기들만 봐도 그건 확실하지


<1세트보고 게임끝났다고 ㅈㄹ하던 노갈들사망>
무상이 대검한테 대놓고 정면으로 대준건데ㅋㅋ 그거 개뽀록으로 이긴거보고 다음 경기 안봐도 뻔하다고 설치는 수준ㅋㅋ

실상은 무상이 노르드 플레이 파악하고 패턴 바꾸는 순간 끝났죠? 노르드 빠는 새끼들  빼고 나가라.
프로가 개.좆으로 보이냐? ㅋㅋ

ㅇㅇ:이런새끼들특)다음 경기보고 또 태세전환함
-한량*:난 처음부터 무상이 우승한다고 올렸음ㅋㅋ
-ㅇㅇ:개밥새끼들 진짜 역겹네

이민식*:나 이민식이 볼 때 우승은 노르드가 한다.
-ㅇㅇ:나갤 호감고닉  민 식!
-ㅇㅇ:민식이가 고른걸보니 노르드는 좆됐다. 3:1예정됨.

<이거 빌드 안건드리면 노답인거같은데>
1세트보고 노르드가 준비 진짜 잘해온거같았는데 무상이 그걸 너무 빨리 잡아버림. 계속 저런식으로 갉아먹기 싸움하면 막을 방법이 없어보이는데??

2세트 후반보니까 빈사 계열 몰빵 투자해도 뒤질 때까지 뚫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ㅋㅋ 실수도 거의 안나오고.
이거 노르드가 이길 수가 있냐?

아메바13*:확실히 힘들어보임. 최정상급으로 가니까 결전에서 노르드 세팅의 한계가 나오는 것 같음. 서로 어지간한 페이크 심리에 안낚인다고하면, 동작이 빠르고 간결한 무상 쪽이 저런식으로 플레이하면 잡을 방법이 없어보인다.
럭키 펀치가 나와야 될 것 같은데 2세트 반응속도보면 둘다 날이 서있어서.
-ㅇㅇ:원래 랭겜에선 비슷한 상성아니냐?
-서윗각설*:결전은 랭겜하고 전혀다름. 변수 넘쳐흐르는 팀전하고 비교불가.
-아메바13*:노르드빌드는 원래 난전을 해야 폭발력이 나오는 빌드임. 일반 병사나 다른 유저로 킬 카운트 올릴 수록 부스팅이 되니까. 트리거 키려면 빈사밖에 없는 결전하고는 그냥 차원이 다른 성능이 나오지.

냥냥코로*:그래도 노르드가 이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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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림수는 최후에 던져야 한다.

처음부터 비수를 꺼내면,  눈치 빠른 프로가 쉽사리 대응책을 찾아낼 테니.

나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철저히 거북이가 되어야만 했다.

왼쪽. 여전히 기분 나쁜 스탭을 밟으며 아밍소드를 손에  무상이 접근한다. 왼발을 연달아  번,  번씩 내딛는 변칙적인 스탭이다. 간격에 혼동을 주는 움직임이다.

대검을  탓에 둔한 움직임은 공격을 할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난 언제나 상대보다  발짝 느렸다. 빈틈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방어를 굳건히 해도, 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빈틈을 뚫고 칼날이 들어왔다.

까다로운 상대. 껍질을 박살내지 않고 거북이를 사냥하는 성가신 녀석이다.

가볍게 내지른 검이 갑옷의 이음새를 찌르고 들어왔다. 세 번의 전진 스탭, 두 번의 변칙적인 백스탭 이후에 들어온 일격이다. 공격 타이밍을 조절하며 패링을 경계하는 움직임이었다.

촐싹대는 꼴이 역겨웠으나 흔들려선  됐다. 동요하지 마라. 당장은 치명적인 공격을 쳐내는 데에만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챙-

작은 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나갔다. 패링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대검의 위치를 보고 무기가 닿음과 동시에 공격을 취소한 것이다. 곧장 다음 공격이 이어지겠지.
예상대로, 자연스럽게 꺾인 검이 대검을 쥔 왼쪽 팔꿈치 쪽을 노리고 들어왔다. 막아내기엔 늦었다. 나는 바로 회피를 시도했다.

시야 끝자락에 붉은 빛이 맴돌았다. 회피가 늦었다. 얕지만 분명 유효한 상처였다. 또 한 번, 피를 보는데 성공한 얌생이가 크게 뒤로 물러섰다. 대검의 간격에서 벗어나고는 검을 휘둘어 핏방울을 털어냈다.

동요하지 마라. 화를 가라앉혀라.

역시 전투 구도를 쉽게 읽어온다. 내가 방어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자마자, 짧은 연계기를 시도하며 본인의 손으로 틈을 만들어냈다. 판단이 빠르고 정확했다. 사냥에 익숙한 솜씨.

사냥감이 되는 기분을 얼마만에 느껴보는지.

끓어오르는 감정을 갈무리하는 게 중요했다.
아직 비수를 꺼내기는 이르다.





하늘에서 내려다  평원에서  전사의 움직임은 극명히 대비됐다.

대검을 든 광전사는 땅에 다리를 박은  한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제자리에  채로 상체를 회전시키며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를 때마다 그 사이를 뚫고 짧은 검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핏방울이 떨어져 곳곳을 붉게 물들였다.

광전사를 공격하는 무상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대검을 피해 멀리 벗어났다 하면, 잠깐 숨을 돌리고는 바로 다시 돌진했다. 대검에 비해 짧은 검은 검사의 양손을 오가며 바쁘게 적을 도려낸다. 간간히 대검과 맞닿을 때마다 몸을 뒤틀며 무거운 대검을 부드럽게 빗겨냈다.

전투의 승기를 잡은 게 어느 쪽인지는 명확해 보였다.

땅에 떨어지는 피의 대부분이 광전사의 것이었다. 몸을 타고 흐르는 피가 점점 늘어났다. 그럴수록, 무상은 더 신중히 움직였다. 사냥감의 마지막 발악을 기다리며.

호흡을 가다듬은 무상이 검을 바로잡고 다시 돌진했다. 단번에 접근하지 않는다. 광전사의 주위를 돌면서도 발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양손은 번갈아가며 검을 바꿔 잡았다.

불과  호흡이면 닿을 거리에서 적의 긴장을 유도하는 중이었다. 집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있을지. 명백히, 전투의 주도권을 잡은 것은 무상이었다.

무상은 광전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방어를 위해 대검을 들어올렸던 광전사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칼 끝이 슬쩍, 땅을 향해 내려갔다.

틈을 발견한 즉시 무상이 달려들었다. 짧게 내리친 검이 적의 다리를 스쳐 지나가고, 온전히 막아내지 못한 광전사가 피를 흘렸다. 광전사의 몸에 몇 개 째인지 모를 상흔을 남겼다.

그 순간이다.

광전사의 눈가에 핏발이 섰다.

칼 끝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광전사의 대검이 함께 움직였다.

전투가 시작한 이래 무상의 검을 막기에 급급했던 대검이 처음으로 날을 번뜩였다. 날카로운 검이 다리를 베어내는 와중에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무상의 왼쪽 허리춤을 향한 횡베기였다.

즉각적으로 반응해 몸을 빼냈음에도.
육중한 대검은 기어코 무상의 옆구리를 도려냈다.

퍼억-

살을 가른다기 보다, 뜯어내는 것에 가까운 흉악한 소리가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불과 한 호흡. 이전처럼 짐승의 몸에 상처를 남기기 바빴던 사냥꾼이 돌연 사냥감으로 돌변했다. 전황을 바꾼   한 번의 카운터였다. 자신이 폭주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노린.

강한 충격으로 귓가에 이명이 울리는 가운데. 무상의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붉었던 세상이 기이한 문양을 그리며 뒤집어졌다. 제 멋대로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바로 잡았을 무렵이다.

드디어 시야가 선명함을 되찾았다. 간만에 먹은 피에 흥분한 대검이 불쑥, 무상의 눈에 강조되듯 나타났다.



대검은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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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씨발. 저걸 노리고 해?"

정적을 깬 한마디였다.

찬혁은 굳이 화자를 찾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로써도, 방금 목격한 장면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GB게이밍의 연습실에 포함된 휴게실이었다. 평소 쉬는 시간이면 한두 명만 지나다닐 공간이 대여섯 명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커다란 모니터 하나를 둘러싸고 앉은 모습이었다. 막내 무상의 결승전을 구경하기 위해 팀원들이 모여든 것이다.

경기가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저런 잡담으로 시끄럽던 공간이, 때아닌 정적을 맞이했다.

모니터로 송출되는 대회 공식 방송은 츠바이핸더에 가슴을 꿰뚫린 무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에겐 꽤나 익숙한 장면이었다. 대검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유독 선호하는, 당했을 때 기분이 더러운 처형 모션.

 막내가 저기 꽂혀있는 건지.




승패가 결정됐다. 흥분한 채로 말하는 해설들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승부를 뒤집은 결정적인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빈틈을 노려 약공을 욱여넣는 무상의 플레이.
예리한  끝이 노르드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대검도 동시에 움직였다.

칼이 베고 지나갔음에도 조금의 경직도 없다. 아마, 모션이 시작될 때 공격 저항을 획득하는- 굳건한 의지 특성이 분명했다. 대검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종종 활용하는 특성이었다. 노르드의 빌드로도 선택이 가능했지.

상처를 무시하고 휘두른 카운터에 무상이 반응했다. 찬혁이 보기에도 훌륭한 반응이었다. 완전히 피해내기는 무리더라도 상처를 얕게 만드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노르드가 빈사 상태만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완벽한 카운터였던 공격이다. 아무리 반응이 빠르더라도, 가속한 광전사의 대검을 피하기는 무리겠지.

상황파악을 마친 팀원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거 설계하고 한 거냐?"

"백퍼지. 카운터 노리고 빌드 수정했는데 저 때까지 안 보여줬잖아. 정확히 트리거 터진  우연이라도 큰 그림은 노린 거지."

"우리 막내 어쩌냐~. 시이벌, 잘한다 잘한다 하더니 진짜 잘하네. 저거 여자 맞아? 우리 여자 프로팀 애들보다 잘하는 거 같은데?"

"형 그거 수민이가 들으면 지랄발광을  걸요?"

"하라 그래. 저거 그대로 보여주면 그대로  닥칠 듯."

"걔가요? 특기가 옘병지랄인데 보여준다고 잘도 납득하겠다."

"...니가  위험할 거 같은데?"

찬혁은 뒷담아닌 뒷담을 한 귀로 흘리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서, 아직도 승부의 여운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채팅창은 방금 노르드가 보여준 플레이에 대해 흥분 섞인 찬사로 가득했다.

흘끗, 무상이 경기를 진행 중인 연습실을 쳐다봤다.

호언장담하며 감독과 코치진에게 홀로 대회를 준비하겠다고 단언했던 무상이다. 우승에 대한 확고한 자신을 표하던 팀의 막내가, 과연 저 극적인 역전승을 당하고도 멘탈을 추스릴 수 있을지.


찬혁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그는 천진난만한 막내가 괴로워하는 꼴을 보는 것이 내심 즐거웠으므로.

몰래, 노르드를 응원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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