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61 - 도망치는 고양이에게
"그래서, 편집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슬쩍.
"크흠. 아니, 그 영상 편집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
슬쩍.
이런 시발.
"그, 주연씨?"
"아, 네. 말씀하세요."
"저... 손을 좀."
"아-. 불편하셨나요? 죄송합니다. 손이 너무 이쁘셔서. 제가 주제도 모르-"
"아뇨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제가 좀 스킨십을 싫어해서요."
"아..."
저 눈은 도대체 무엇인가. 동공이 묘하게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가 파충류를 연상시켰다. 무서운 눈이다. 저게 사람 눈인지 뱀 눈인지.
눈을 마주하고 있기가 부담스러웠다. 타인과의 거리감이 기묘한 사람이었다. 내 쪽으로 팔을 뻗어오는 까닭에 탁자를 두고 마주한 자리가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만난지 몇 분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마주한 순간이 떠올랐다.
의자를 거칠게 밀며 일어난 여성은 곧장 창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눈으로 단번에 나를 포착했다. 그러더니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서 내게 다가왔다. 눈은 여전히 내 얼굴에 고정된 상태였다.
확신에 가득찬 모습이었다. 그러니 나도 눈치를 챌 수밖에.
저 사람이 냥냥코로구나.
닉네임, 더럽게 안 어울리는데.
"노르드님?"
여성치고는 낮은 목소리였지.
나보다 먼저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있던 모양이다. 이미 비어버린 컵을 다시 채워서 돌아왔다. 새로 내린 커피에서 진한 향기가 맴돌았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자기소개를 끝마치고.
나는 그제서야 내 편집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됐다.
이름은 김주연. 나이는 스물 일곱.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말한 그녀는 더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하기야. 갑작스레 본인의 신상정보를 풀면 당황하는 쪽은 나였을 것이다. 쓸데없이 말 많은 사람보다는 과묵한 사람이 훨씬 나았다.
나이를 고려하면 취업을 준비하는 중인가. 어쩌면 이미 한두 번 정도 퇴사를 경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최근엔 취직을 해도 오래 일하는 경우가 드물다고들 하니까.
아무튼 이것도 주연의 관점에서는 일종의 취업 활동일 수 있는 것이다.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면 안 되겠지.
-라고 생각한 게,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내 생각은 뒤틀리는 중이었다.
"혹시 팬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라든지... 그런 게 있을까요?"
또.
내가 입을 열 때마다 저 집요한 눈빛이 내 낯짝을 꿰뚫는다. 말을 할 때 신중한 사람인지, 유난히 대답이 느렸다.
질문을 들으면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몇 초 뒤에 입을 여는 것이다. 테가 가는 안경은 렌즈의 도수가 높았다. 가까이서 보면 눈이 왜곡되는 게 그대로 보일 정도였다. 안경을 쓰고 있는게 차라리 다행인가. 날카로운 눈빛을 둥근 안경이 조금이나마 억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는 표정 변화도 많지 않았다. 창백한 피부. 나와 같이 돌아다니면 어디 병원에서 도망나온 환자들인줄 알겠는데.
묘한 침묵을 깨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소장하고 싶어서요."
"아, 하. 제 방송 말이죠?"
"네. 노르드님이요."
도무지 인터뷰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굳이 편집자와 직접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신뢰 관계를 확실히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생각하는 엘튜버와 편집자의 관계는 수평적 동업자에 가까웠기에 그랬다. 동업하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지 판별하는 건 누가 봐도 중요한 일이지 않은가.
그런 건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으니.
그러나 나는 김주연이라는 사람을 직접 마주하고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인간 관계란 이렇게나 난해한 것이다.
"편집하는 건 독학으로 배우신 건가요?"
모르는 걸 파악하기 위해선 없는 질문도 만들어내야 했다. 편집 결과물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이런 질문을 건낸다. 사실 편집 실력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보다 나는 주연이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게시판에서 보여준 단면으로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냥냥코로의 행적은, 좀 이상하기도 하고.
일과 관련된 일이라 그런 걸까. 이번 질문에는 대답이 꽤나 빨리 돌아왔다.
"아뇨. 제가 영상학과를 나와서요."
대학 졸업자. 커리큘럼은 잘 모르겠지만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조금 떨떠름한 마음이 앞선다. 이런 사람이 왜 내 편집자로 일하려고 하는 건지.
수익 배분 외에 임금을 따로 챙겨줘야 하나...?
망설임이 더 커졌다. 대학의 이름까지 듣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취직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일 것 같지는 않았다. 내겐 확신이 없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사업이다. 투자금은 없었으나 투자되는 시간은 있겠지. 엘튜브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면 편집자가 쏟아부은 시간은 모두 낭비되고 말 것이다. 걱정이 될 수밖에.
"지금 하시는 일은 없으신가요? 어, 메일로 간단히 말씀드린 것처럼... 수익 배분을 나누는 형태의 계약을 생각하고 있는데요. 지금 당장은 수익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아요. 솔직히 앞으로 수익이 늘어날거라고 보장드릴 수도-"
"네. 괜찮아요."
왜 확답에도 마음 편히 웃을 수가 없는지. 그렇다고 내가 나를 깎아내리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할 말을 잃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주연이 말을 덧붙였다.
"제가 노르드님을 좋아해서 하는 거예요."
눈 앞에서 팬이라고 말해오는 사람을 어떻게 쳐낼 수 있을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니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됐다. 엘튜브로 발생하는 수익은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기로 결정했다. 칼고와의 논의 끝에 생각한 내 주관적인 기준점이었다.
머릿속에서 논의할 내용을 정리할 때 가장 많은 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직접 만난 상대는 시종일관 내 의견에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칠 뿐이었다. 그러니 나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이번주 안으로 다시 만나 동업계약서를 작성하자는 이야기를 끝마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듯 준비한 내용을 전부 풀어내기만 했다.
좋아요, 괜찮아요, 알겠어요... 돌아오는 대답의 레파토리를 전부 무렵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공기를 짓눌렀다.
나도 그랬지만, 내 편집자가 될 사람도 어지간히 말주변이 없어 보였다. 변함 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어색한 공기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흘러나오는 팝송을 배경음 삼아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에 집중할 때는 괜찮았는데. 침묵 속에서 눈을 마주한다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내겐 견디기 힘든 침묵이었다.
무슨 화제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공통의 화제인 업무 얘기는 모두 끝나버렸다. 나이트폴을 하냐고 물어봐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 여기서 어떻게 드리프트를 해야 자연스럽게 나이트폴 이야기로 끌고 갈 수 있을지-
아니. 뭔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정해져있는데.
"저, 술이라도 한 잔 하실까요?"
오후 세시의 개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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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으래서 첫방송부터 봤다는 거죠오?"
묘하게 높아진 목소리, 늘어진 발음.
살짝 상기된 얼굴에 분홍빛이 돌았다. 올라갔던 눈꼬리에 힘이 풀렸는지 인상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갈색 눈동자가 그녀를 흘기듯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짜릿했다.
설레이던 전날 밤을 기억한다. 들뜬 마음에 잠들기가 힘들어 수면제를 복용했다. 그 짧은 메일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답장을 받은 그 순간에도 기쁨이 물밀듯이 몰려왔던 것이다. 꼼꼼히도 읽어내렸다. 메일 속에 편집자 계약을 위해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걸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던가.
그건 격정이었다.
저컴 게시판에도 나갤에도 노르드의 신상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얼굴은 커녕 본명도 나이도 몰랐다. 그녀도 상상 속에서만 그렸던 것이다. 노르드라는 사람의 형상을.
"주연씨, 주연씨~?"
"아, 네. 말씀하세요."
"또! 또 그러언 눈으로 쳐다보고. 제 말 듣고 있는 거 맞아요~? 저 까페에서도 벽보고 말하는 줄 알았다고요~."
그게 지금 눈 앞 현실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무심했던 얼굴에 풍부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에 불만을 느끼는 걸까. 눈살을 찌푸리고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생머리가 고개를 따라 흐르면서 흰 목덜미를 내비쳤다.
취기가 담긴 몸짓에 나른함이 뒤섞인다. 그게 마치 잠에 취한 요염한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주연은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혜진, 혜진이라고 했지.
팬심이 그려낸 상상 속의 노르드는 참으로 완벽한 모습이었다. 저런 플레이를 하고, 저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허황된 상상은 현실과 마주했을 때 무참히 깨져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연은 노르드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건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직접 만난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들뜬 마음이 알아서 움직였다.
추잡하고 제멋대로인 망상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그걸 잘 알았다. 망상을 부풀리다, 막상 본인을 마주했을 때 만들어진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떻게 반응할 지. 실망 할 게 뻔했다. 이기적인 짓이다. 마음 속의 이상형을 현실에 억지로 대입하는.
그럼에도. 주연은 혜진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조금의 실망감도 없었다. 오히려-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아.
고양이가 화가 난 모양이다.
남아있던 술을 모두 입에 털어놓고는 바로 한 병을 추가했다.
세 병째.
주연에겐 많은 양이 아니었으나 혜진에겐 어떨지. 술이 들어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녀의 마음 한편에서 새까만 흑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저대로 더 마시게 두라고 속삭여온다.
그 생각을 애써 밀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천천히 드세요, 혜진씨."
혜진씨.
자신이 말을 내뱉고는 입 안에서 그 울림을 되새김질한다. 술을 마셨음에도 정신이 더할 나위 없이 뚜렷했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이 소중한 시간을 취기로 날릴 수는 없었으니.
"알아요, 으. 저도 주량은 아니깐... 고기 좀 더 드세요. 다 타요."
말을 하면서 제 쪽으로 고기 몇 점을 더 밀어준다. 정작 자신도 많이 먹지 않았으면서. 주연도 혜진도 입이 짧았다. 고기보다 술이 주는 속도가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이 자리를 최대한 오래 가져가기 위해선, 말 상대를 해줘야겠지.
"크으. 저기요, 주연씨."
"네? 말씀하세요."
"제 방송이요오... 제 방송 왜 보는 거예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이... 재미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스벅...님처럼 컨텐츠를 하는 거또 아니고~. 나이트폴 잘 하는 사람은 찾아보면 널렸잖아요. 그리고 또-"
"매력적이니까요."
"네에?"
"무슨 장점이나 컨텐츠 때문에 보는 게 아니에요. 그냥 혜진씨가, 노르드라는 사람이 매력적이니까 보는 거예요. 게임을 잘한다, 빌드가 새롭다, 목소리가 좋다 같은 건 다 사소한 요소들일 뿐이구요."
정적이 찾아왔다.
어중간한 시간에 찾아온 탓인지 식당은 조용했다. 자리의 정적을 메워줄 소리가 없었다. 주연은 테이블 너머로 혜진을 바라보았다.
창백했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모습을 보며.
주연은 다시 한 번 전율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