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63 왕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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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의 진수는 세월을 낚는 기다림에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막연한 기다림.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것을 기다리는 건 초조함이 아니다. 다가오는 언젠가를 보채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라고 말해야 옳겠지.
그러나 진정한 낚시꾼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 탓에.
간혹, 여유를 가질 줄 모르는 무뢰한들이 튀어나오고는 하는 것이다.
<노르드낚싯대부러뜨린스벅 님이="" 1,000원="" 후원!=""/>
또 낚시야? 진짜 독하다 독해... 청개구리가 인간으로 변하면 이 사람이 아닐까요?
[저도 이겜 사서 해봤는데 10분하고 환불했습니다 ^^]
[ㄹㅇ 이쯤되면 억낚임]
[센세니까 보는데 이겜 존나노잼이에요...]
[씁 나첩년들 또 신성한 낚시터에서 지랄이네]
[대회보고 온 유입들 쳐내는 중입니다 다 나가세요]
[닉 어지럽네ㅋㅋ]
피셔맨을 향한 악성 비난이 끊이질 않는다.
백 명의 시청자가 있을 때 백 명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완벽한 의견 합치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송인은 시청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 주관을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지. 어설프게 의견을 수렴한다고 어물쩡거렸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방송이 산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해, 내 줏대를 확고히 해야 한다.
"제가 피셔맨 배스 낚시 대회를 준비 중이에요. 여러분."
[또스대회 ㅅㅂ]
[선생님 오늘 그 얘기만 세번째입니다]
[참가자가 없는데 뭔 대회냐고ㅋㅋ]
[데자뷰임? 이거 어디서 들었는데]
[아 안사요;]
<노르드대검에반한칼고 님이="" 1,000원="" 후원!=""/>
대회가 혼자서도 성립이 되는 건가요? 노르드님 또 우승하시겠네 ㅎ
사방에서 돌이 날아온다.
주연에게 처음 말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저리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요약하자면 그랬다. 하는 유저가 없으니 애초에 대회라는 게 성립될 수가 없다나.
분명 번뜩이는 컨텐츠 아이디어였는데, 실현이 불가능하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창조적인 생각들이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는 거겠지. 조금의 관심으로도 살려낼 수 있는 것을.
그래서 방송에서 대회 홍보를 하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응, 루어 낚시로 서로 잡은 배스의 크기를 재는 거야. 얼마나 재밌겠냐고.
웅얼거리며 낚시 대회의 재미 포인트를 열심히 설명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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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개소리마십쇼 선생님
반박이 너무 빠르다.
흘끗 바라본 채팅창은 저 매정한 후원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무자비한 비난 사이 사이로 소심하게 내 말에 동조하는 불쌍한 소수 세력이 숨어있었다. 자기 주장도 제대로 못하고 움츠러든 모습이다.
눈물이 나는 상황이다. 피셔맨과 나이트폴을 두고 투표를 돌리면 만장일치는 아니더라도 결과는 정해진 셈이다. 여기가 민주정이었으면 피셔맨은 탄핵 당할 꼴이었다.
하지만 두고 봐라. 내 방송은 독재정이다. 누가 뭐라해도 결국 내 뜻대로, 내 맘대로 방송을 할 수 있다는
두둥
<가자전장으로 님이="" 100,000원="" 후원!=""/>
나이트폴 ㄱ
난 조용히 피셔맨을 종료했다.
그 전에 여긴 자본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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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나이트폴에서 킹이 가지는 상징성은 대단했다. 랭크의 끝. 정점. 그 많은 나이트폴 유저들 중에서도 300명에게만 허용된 왕좌였다.
나이트폴의 랭킹 시스템을 생각하면 오래 유지하기도 힘든 자리였다. 퀸 랭크를 달성한 유저들 중에서 점수가 가장 높은 상위 300명을 추려내는 방식이다. 패배로 점수가 깎이거나, 다른 누군가가 밑에서부터 연승을 통해 더 높은 점수를 취득하면 곧장 퀸으로 격하된다.
왕좌는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대회에 참가하는 프로게이머가 아니더라도, 몇 시즌 동안 연달아 킹 랭크를 유지한 유저는 자연스레 이름이 알려졌다. 이른바 네임드 유저가 되는 것이다. 굳이 자신의 유명세를 알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랬다.
그 정도의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게임 내에서 그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니까. 네임드 유저의 랭크전 관전을 주력 컨텐츠로 삼는 엘튜브 채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나이트폴을 주력으로 삼는 개인 방송에서 킹 랭크가 가지는 위상이 얼마나 큰지는 설명이 필요 없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그만한 실력을 가지는 사람도 별로 없었으므로.
방송 제목에 당당히 킹을 적어 넣는다. 그러고 있는 것만 해도 훌륭한 홍보 효과를 발휘한다.
실력파를 자칭하는 나이트폴 방송인이라면 모두 킹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걸 목표로 삼는 것이다.
칼고도 다르지 않았다.
시즌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지금 랭크 올리기에 한창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급하게 올리지 않으면 킹으로 시즌을 마감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퀸 578위.
킹의 문턱까지는, 약 300점 차이.
지난 노르드와의 합방으로 연승을 하며 기세를 탔던 것의 반동이 찾아온걸까. 그게 업보로 작용했는지 연이어 돌린 매칭에서 줄줄이 패배를 기록했다. 무슨 이유인지 팀운이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왜 상대 팀에는 킹 랭크 유저들이 잡히면서, 우리 팀에는 퀸만 잡아주는가.
더러운 매칭을 보며 칼고는 노르드를 탓했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책임전가였으나, 최근 그의 머릿속에서 노르드는 악의 원흉이며 골칫덩어리였으니까. 안 좋은 일은 대부분 노르드의 책임인 것이다.
아무튼, 소위 킹 랭크로 가는 막차를 타기 위해 칼고는 오늘도 킹 등반 방송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패배'
그 과정이 처참하다고 할 지라도.
"...또 졌네요."
[왜케 말리는거야ㅠㅠ]
[2대1 드리블해줬는데 팀원수준 실화냐?]
[칼고님 mmr 높으셔서 그런가 프로가 자주 잡히네용]
[이번판은 근데 너무 아깝다..]
[노르드였음이겼다]
연패의 수렁에 제대로 빠졌다.
실력있는 스트리머로 유명한 칼고라도 쉽게 300위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주무기인 쌍검을 사용할 때의 승률이 꽤나 높은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한계는 존재했다.
그도 퀸과 킹을 오가는 수준 높은 유저들 사이에서 상성을 무시하고 승리할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았다. 아니, 그건 프로라도 힘든 일이겠지. 프로도 종종 미끄러지는 것이 바로 이 구간이다.
원래 계속 패배를 박으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날에는 게임을 오래하면 안 됐는데. 패배가 쌓이며 교묘하게 살살 긁어오는 채팅에 분개한 탓이다.
최악의 악순환이었다. 채팅에 자극을 받아 매칭을 돌리고, 채팅 때문에 멘탈이 흔들려 게임에 패배하는.
이 정도로 패배를 박으면 한 번쯤 괜찮은 팀을 붙여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빌어먹을.
애써 얼굴을 편 칼고가 다음 매칭을 돌렸다. 이대로가면 오늘도 편히 잠들기는 글렀다. 적어도 이 연패의 흐름은 끊고 가야지.
매칭이 잡히고, 아군 팀원들의 닉네임이 쭉 나열되기 시작했다. 칼고는 어울리지 않게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우리 팀에 프로나 네임드가 있기를.
'Nord11'
칼고의 마음 속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 노르드 찐이에요?]
[어ㅋㅋ 노르드님이다ㅋㅋㅋ]
[저사람 낚시꾼아니었음?]
[방송중인데 진짜네욬ㅋㅋ 카테고리 나이트폴로 바꾸심]
[이게 노칼듀오가 된다고?]
[와 노칼듀오 미쳤다ㄷㄷ 이번판 필승이네]
우선 기뻐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저 미친, 아니 좀 성격이 괴상한 스트리머는 칼고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자였다. 그와 함께 듀오를 돌렸을 때도 높은 승률을 보여주지 않았나. 칼고가 '마법사죽이기'라는 말도 안 되는 빌드를 강요당한 상태로도 연승을 이어나갔다. 그 요상한 빌드로 적군 메이지를 묶어두기만 하면, 노르드가 위치한 전열에서 승전보가 울려 퍼졌다. 아군으로 함께한 노르드는 이보다 듬직할 수 없는 훌륭한 전사였다.
연패를 끊을 수 있겠다. 칼고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채팅창은 갑작스레 성사된 듀오에 대한 화제로 시끄러웠다. 둘다 방송 중인 상태였으니, 양쪽 스트리머의 반응을 열심히 전달하는 모습이었다. 원래 다른 스트리머 언급을 철저히 금지한 방송이었건만. 무려 대회 공식 방송에서의 언급 이후 노르드의 언급이 자연스러워졌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로딩이 끝났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장비와 빌드 점검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마우스를 돌리며 아군의 빌드를 확인하던 칼고가 노르드를 클릭하고는 멈춰섰다.
장비가 주무기 단검에 보조무기 석궁.
'마법사죽이기'.
"이런 씨발."
[???]
[와따 욕설 찰진거보소]
[18ㄷㄷㄷ]
[세팅봐라 진짜 미친년ㅋㅋㅋㅋㅋㅋ]
[저게 뭐냐 트롤러 신고좀]
[노가년 칼고죽이기 on]
[아니무슨ㅋㅋ칼고님 이렇게 찰지게 욕하는거 첨봐옄ㅋㅋㅋ]
[연패를 끊어? 어림도 없지 바로 '칼고죽이기']
Nord11:ㅎㅇㅇ
이 미친 악마 같은 년.
칼고:님 세팅 뭐에요
Nord11:갓법사킹이기
칼고:피가 거꾸로 솟아요
칼고:저 저격함?
Nord11:?
Nord11:방금 켜서 바로 돌린 거에요.
Nord11:음해 ㄴ
칼고:왜 광전사 안하고 그런거 하냐구요
Nord11:마법사가 거기에 있으니까
MazeMage:???
고기구워주세요:좆목 ㄴ
인게임 채팅창도 아주 개판이었다.
마우스 포인트가 노르드의 정보창 위에서 방황했다. 지금이라도 매칭을 다시 잡아야 할까. 준비 시간에 접속을 강제로 종료하면 게임을 취소할 수는 있으나, 점수가 깎이는 패널티가 주어졌다. 조금의 점수가 아쉬운 지금 패널티를 감수하기는 너무 아까웠다.
누가 나 대신 안 나가주나.
이런 생각을 하면 보통 게임은 정상적으로 시작되기 마련이다.
전투 시작을 알리는 나팔음을 들으며, 칼고는 어쩔 수 없이 키보드와 마우스로 손을 옮겼다.
아무리 그래도 질 거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대놓고 마법사를 저격한 세팅인 만큼 상대 마법사의 존재를 지워주기는 하겠지. 그럼 게임은 사실상 5 대 5 구도로 만들어질 것이다.
인원이 줄어들었으니 자신의 활약 여부에 따라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다. 내가 잘하면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칼고는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Nord11:법사님
Nord11:마력탐지로 적 마법사 위치좀 찍어주세요
MazeMage:ㅇㅇ
MazeMage:상대 법사 없음 안잡힘
Nord11:???
Nord11:이게 없네 ㅋㅋ;
칼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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