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65 내 동료가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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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d11 최강전사이무식
Nord11 도붕이
Nord11 678K
무자비하게 킬 로그가 올라간다.
연속 킬이 이어질수록, 영웅의 탄생을 축하하듯 웅장한 효과음이 더 크게 울려퍼졌다.
아군 전열은 말 그대로 갈려나가는 중이었다.
저 미친년한테.
칼고는 그 모습을 흑백 화면으로 관전하고 있었다.
채팅창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피를 머금은 대검이 한층 더 빠르게 움직였다. 병사들이 가득한 적진 한복판인데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다. 미처 막아내지 못한 쇠붙이에 하나 둘 상처가 늘어났으나, 기세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이 더 번뜩이는 것처럼 보였다.
저 끔찍한 괴물이 아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게 느껴지겠지. 앞장서는 광전사의 뒤로 적 플레이어가 따라 붙었다. 간신히 대검을 받아치던 아군 유저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칼고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저 대검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위태롭던 전열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성문을 지키던 플레이어가 전멸했다. 남은 수비 병력들이 지휘관을 잃고 방황했다. 속절 없이 라인이 밀려나고, 곧 붉은 옷을 입은 병사들이 공성병기를 끌고 성문으로 다가왔다.
빨리도 패배를 직감한 팀원들이 채팅에서 아우성치고.
정신줄을 놓은 칼고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어냈다.
아홉 번째 패배였다.
칼고:혹시 제가 뭐 잘못한거있어요?
Nord11:^^? 무슨 소리세요.
칼고:저를 살려주세요
Nord11:신성한 랭크에서 살려달라뇨. 어뷰징은 영구정지 사유입니다.
칼고:저격도 영정 아닌가요?
Nord11:저격이라니,, 금시초문이네요. ㅡㅠㅡ
[둘이 뭐하세욬ㅋㅋㅋ]
[ㅁㅇㅁㅇ]
[저,,,저 텐련,,, 모르는척,, 하는거,,,보소,,]
[캠좀 다시 켜주세요ㅠㅠ]
[바로 죽은게 너무 큰거같은데]
[상대 포커싱이 너무 잘됨... 킬먹은 노르드 너무 무섭다]
[너같으면 9연패박고 캠키겠냐?]
[10연패 박고 캠키는걸로ㅋㅋ]
[너 노르드 팬이지]
표정 관리도 안될 만큼 반쯤 멘탈이 나간 상태였다.
방송으로 단련된 강한 정신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랭크 게임 9연패는 나름 강하다고 자부하는 멘탈도 산산조각낼 정도로 강렬했다.
이딴 쓰레기 게임을 왜 하고 있는 걸까.
칼고는 개인방송을 진행하는 스트리머임과 동시에 게이머였다. 그것도 게임 실력에 대한 자부심, 소위 말하는 겜부심이 엄청난. 사실 그걸 뭐라고 그럴 사람도 없었다. 시즌마다 킹 랭크를 꼬박꼬박 달성하는 그의 나이트폴 실력을 생각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였으니.
그런 만큼, 9연패라는 처참한 전적은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를 남긴 것이다.
올웨폰이라는 쓸데없는 짓거리를 한 게 문제였을까. 어쩌면 그러는 동안 감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도 사라질 지경이었다. 칼고의 내면은 이미 나이트폴에 진심으로 임하지 않았던 지난 날을 후회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때쯤 노르드가 채팅을 쳤다.
Nord11:전적이 파멸적이시네요.
Nord11:8_8
Nord11:혹시 룩으로 가는 컨텐츠 중인가요?
2연패를 추가한 게 누군데, 빌어먹을 년.
칼고:***이 **마세요.
Nord11:헉;; 말이 험하시네.
이젠 필터링도 없었다.
방송을 시작하고 줄였던 욕설이 최근 다시 입에 붙었다. 대부분이 한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시청자들의 시선 같은 건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절반 정도는 노르드 시청자로 피폭이 끝나버리지 않았나. 스트리머를 닮아서인지 대부분이 악질인 저 놈들은 자신이 욕을 하면 할수록 좋아할 것들이었다. 이제 눈치를 볼 사람도 없었다.
한 문장을 더 갈기려던 칼고의 손이 멈췄다.
노르드가 덧붙인 채팅 때문이었다.
Nord11:듀오나 하실래요? 저 광전사로 돌릴게요.
이제 와서 저런 권유를 해온다. 가장 절실한 순간에 가장 절실한 무언가를 권유해오는 꼬락서니를 보라. 메혹적인 권유였다. 칼고의 눈에는 그게 뭔가 악마가 뻗어온 손처럼 보였으나.
연패의 수렁에서 저걸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망설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마주잡게 되는 것이다.
이전처럼, 예정 없이 성사된 듀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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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탑 입구 백업 좀 봐주세요."
"인원 체크 좀."
"활쟁이랑 방패. 지원와도 아마 한 명만 붙을거에요."
짧은 의사소통이 오고 갔다.
부연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외성을 돌파하면서 적군의 조합을 완전히 파악한 상태였다. 전열의 발이 상당히 무거운 조합이다. 대신 라인을 정비할 시간만 주어지면 그만큼의 견고함을 보일 터. 칼고는 성문을 돌파하자마자 적의 궁병을 끊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빌드의 빠른 기동성을 활용한 선택이었다. 다시 채비를 갖추기 위해 움직이는 적을 확인하고, 기회가 된다면 교전까지 끌고 가서 상대를 뒤흔드는 일종의 정찰병이다. 칼고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칼고를 발견한 적 플레이어가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방패를 붙잡고 입구로 움직인다. 내성 방어의 전초가 되는 구간이었다. 상대는 정문이 빠르게 돌파된 상황이다. 시간을 끌기 위해 여기서 최대한 오래 버티고 싶겠지.
이대로 들이박을 수는 없었다. 큰 방패를 든 거북이와의 상성도 상성이거니와, 방패병이 틀어막은 내성의 탑 위쪽에서 스치듯 지나간 그림자를 포착했다. 제 안위는 끔찍히도 생각하는 궁병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였다. 안일하게 달려들었다간 방패에 막힐 것이다. 그렇게 대치하는 사이 화살에 꿰뚫려 흑백 화면을 마주할 게 뻔했다.
여기선 잠시 숨을 고르는 게 좋겠지.
광전사가 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터였다.
"거의 다 왔어요. 오는 길에 뭐 없는 거 보니까 탑으로 더 붙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베타코드로 울려퍼지는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칼고의 후방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새삼스럽지만 참 안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매칭이 안되는 것이다. 전판 자신을 포함한 수비 라인의 전열을 박살내던 그 광전사가, 저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게.
뭐, 됐다. 이번엔 아군이었으니까.
마우스를 돌려 광전사의 접근을 확인했다. 이미 한 차례 전투를 마친 모습이다. 갑옷 흉부와 대검 곳곳에 붉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을 것이다. 칼고의 머릿속에도 저 인간 믹서기가 돌아가는 장면이 선명했으므로.
적의 지원이 더 붙는다는 사실이 우려되지 않았다. 첫 번째 교전을 압도적으로 승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게 지금은 내 편이기 때문일까. 패배로 떨어졌던 자신감이 그새 회복된 느낌이다. 간만에 잡은 압도적인 승기였다. 오늘 하루 내내 무거웠던 손도 왠지 가벼웠다.
"궁병은 저 위에. 그냥 빠르게 뚫죠."
세부 내용도 없는 간략한 돌파 계획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광전사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쾅!
쇳덩이가 들이박히는 소리다.
달려가는 기세를 실어 거대한 방패에 대검을 때려박은 노르드가 대검을 치켜 들었다. 다시 한 번 대검을 휘두르려는 움직임이다. 뒤로 한발 물러나 다음 공격에 대비한 적 방패병이 몸을 움츠렸다. 방패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각오했던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부터 궁병을 낚기 위한 미끼 동작이었다. 광전사는 방패가 올라가는 즉시 공격을 취소하고 뒤로 물러섰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온 화살이 광전사가 있던 자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숙련된 궁병은 강한 일격을 준비하는 상대를 노리기 마련이다. 보다 쉽게 급소를 노리기 위함이었다.
목표했던 표적을 지나 성벽에 박히는 화살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스나이핑. 연사를 포기하고 단발의 위력을 높이는 궁병의 특수기였다. 그럼 다음 시위가 당겨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그거면 충분했다.
칼고의 검이 번뜩였다. 방패로 시야가 가로막힌 방패병이 확인하지 못한 사각이었다. 미처 가리지 못한 다리 각반의 이음새로 날카로운 검이 쇄도한다. 칼고는 간결한 동작으로 공격을 마치고 바로 몸을 틀었다. 뒤늦게 휘두른 철퇴가 허공을 두드렸다.
자연스럽게, 마치 배턴을 주고받듯.
칼고가 물러난 자리로 노르드가 다시 달려들었다. 다리에 생긴 부상 때문에 방패병이 비틀거렸다. 불안정한 방패 위로 대검이 내리꽂혔다. 푸른 휘장이 새겨진 방패가 크게 흔들렸다. 한걸음 뒤로 물러선 노르드가 곧장 방패를 향해 몸을 들이받았다. 균형 잃은 몸을 수습하지 못한 방패병이 그대로 무너졌다.
자비 없이, 날카로운 한 쌍의 검이 쓰러진 적의 목을 베어내고.
푸른 탑에 붉은 기가 펄럭였다.
처형 모션을 마치고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칼고가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승리가, 참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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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여기까지 한다구요?"
"네. 저 낚시하러 가야 돼서."
"아니 낚시하다 온 거 아니에요? 몇 판 했다고 벌써 가."
"이런 잔인한 게임은 조금씩 하는 게 좋아요. 칼고님도 적당히 하세요. 전적보니까 많이 힘드실 거 같은데."
"...ㅈ세요."
"네? 마이크가 끊겼나. 잘 안 들려요."
"...달라구요."
"베코 서버가 이상한가보네. 제가 재접할까요?"
"씨발, 듀오 좀 더 해달라고!"
"어... 이제 좀 잘 들리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내가 눈물이나지]
[듀오 좀 해주라!]
[진짜 악마같은련,,,]
[아 진짜 안들리긴했다고 ㅋㅋ]
[어쩌다 칼고가 저렇게...]
[뭔 낚시야 ㅅㅂ 제발]
[칼고가 저렇게까지하는데 진짜 낚시하러가는거 아니지??? 나 진짜 미쳐버릴거같아]
[칼고를 응원하게되네...]
[원래 피해자한테 감정몰입되긴해]
승리가 많이 고프셨던 모양이다.
칼고의 외침이 스피커를 뚫고 나왔다. 칼고 정도면 듀오 정도야 쉽게 구할 수 있을 텐데. 방송 컨텐츠를 생각하나 싶었다.
하지만 어쩌나. 저렇게 절실하게 부탁해오면 뭔가 콕콕 찔러 보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을. 그냥 들어줄수도 있는 가벼운 권유인데도 괜히 장난기가 샘솟았다. 기브 앤 테이크라고, 듀오는 듀오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원할 때 듀오 해드릴게요."
"진짜 악마같은 년이네..."
"네? 자꾸 마이크가 끊기는데 이거."
"아니, 뭔 부탁인지 말씀해보세요."
"저랑 낚시 좀 같이 해주세요."
"...네?"
"저 배스 낚시 대회 열건데 참가 좀 해달라구요."
동료를 구했다.
낚시 친구는 귀한 법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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