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 67 ­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어 (67/243)

〈 67화 〉 67 ­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어

* * *

"응. 아니야. 이제 킹 찍어서 오래 안 할거야. 응, 응? 이번... 이번 주말? 응... 괜찮지. 하루 자고 간다고? 응. 옷만 가지고 와. 알았어. 챙겨 먹는다니까."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심란했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많아서. 아니, 동생의 전화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이제 익숙해진 문제는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내겐 그 이전부터 산재한 문제가 많았다.

그래. 따지고 보면 보다 깊은 문제지. 인생과 관련된.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기대한대로 세상이 흘러가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걸 세상이 좋아하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걸 세상이­ 그만두자.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놓고 이게 무슨 어리광인지. 누군가는 성숙해지기도 전에 깨닫는 사실이다. 굳이 세상을 탓하며 투정 부려봤자 돌아오는 것도 없을 텐데.

그러니까 나도 이 현실을 직시해야 된다는 소리였다.

피셔맨 영상, 업로드 2일 전. 조회수 4만.

나이트폴 영상, 업로드... 하루 전. 조회수 15만.

이게 현대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을 보여주는 단상 같은 게 아닐까.

엘튜브의 잔혹한 시스템을 보라. 여기선 조회수가 조회수를 벌었다. 사람들은 한 명이 본 영상보다 열 명이 본 영상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이게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는 했다.

그러다 보면 열 명이 본 영상을 천 명, 만 명이 보는 사이, 한 명이 본 영상은 그제야 두세 명이 기웃거렸다. 이 간극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마련이다. 위에 있는 것들은 올라가고­.

...또 투정을 부리고 있다. 그만 현실을 인정하자. 결론은 피셔맨은 인기가 없고, 조회수가 안 나오고. 그래서 돈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낚시 게임은 패배했다. 어딘가 다른 지구에서는 피셔맨이 주류 게임인 세상이 있겠지. 그거면 된 거야.

사실 굳이 결과를 보기 전에도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다.

내가 엘튜브 채널을 운영할 수 있는 원동력이 어디서 나왔던가. 대회를 우승하고 나이트폴 방송을 진행하며 쌓인 인지도가 만들어낸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만으로 구독자가 저만치 늘어난 것도 기적 같은 일인데. 나이트폴을 보러 찾아온 시청자에게 낚시 게임 시청을 기대하는 건 너무 양심 없는 바람이겠지.

4만. 생각해보면 이것도 엄청나게 큰 숫자였다. 처음 채널을 개설했을 때를 떠올리면 말도 안 되게 성장한 수치다. 비교 대상들이 너무 클 뿐이다. 인간의 욕망은 충족될 줄을 모르는 것이다.

처음엔 구독자 한 명에 감탄을 하던 내가 어느새 조회수 만을 우습게 생각한다. 이런 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별로 긍정적인 변화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채널의 성장을 의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익 창출도 그렇지만 기왕 영상을 올린 거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싶었다. 인간은 관심을 먹고 사는 생물이니까. 방송 시청자가 많으면 의욕이 살아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주연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엘튜브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명확한 방향성을 잡는 것이라 그랬나. 꾸준히 영상을 올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 컨텐츠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었지.

영상 하나를 히트시키면 관련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게 핵심이라는 설명이었다. 확실히 이해가 갔다. 동일 컨텐츠는 추천 영상이나 관련 영상 따위로 묶이기 마련이니, 흥한 영상의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확산시킬 수 있겠지. 따지고 보면 내 채널의 구독자가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였다. 스벅의 채널을 보다가 관련 영상으로 타고 온 사람이 많을 테니까.

결국 피셔맨 영상은 채널 성장에 방해만된다는 소리였다. 내 채널에서 자연스럽게 흥하기 힘든 컨텐츠였으니. 스벅이나 대회 영상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낚시 영상만 가득한 채널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는 뻔했다. 그야 바로 떠나가겠지.

피셔맨의 좌절과는 별개로, 채널의 성장세는 무지한 내가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최근 업로드된 대회 영상의 평균 조회수가 특히 높았다. 멘트도 없는 개인 화면인데.

뛰어난 편집 때문인지, 아니면 칼고의 영향력 때문인지. 신규 구독자 유입에는 저 영상들의 공이 크지 않을까. 주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엘튜브는 라이브 방송과 달리 영상 하나로 큰 임팩트을 줄 수 있는 컨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창의력을 짜내봐. 뭔가 부장에게 쪼인트를 까이며 없는 아이디어를 쥐어짜던 과거가 떠올라 머리가 아팠다. 지금은 나를 갈굴 부장도 없건만. 오히려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수평적 관계의 동업자가 있었음에도 쫒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구석에 모는 건 나 자신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성가시기 짝이 없는 성격이다.

띠링­

Nord Love:노르드님

Nord Love:칼고님이랑 듀오하신거 컷편집 중인데 이 부분만 확인해주세요.

편집자의 메세지가 상념을 멈췄다.

저 닉네임. 그냥 냥냥코로를 사용하면 되지 않냐는 내 말에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던 주연이 새로 만든 계정이었다. 저런 오글거리는 닉네임은... 끔찍하다고. 처음봤을 때에 비하면 익숙해진 편인데도, 아직 부담스러웠다.

그냥 냥냥코로로 밀고 나가지. 그럼 바로 게시판 관리자 권한을 넘겨줬을 텐데. 진정한 호감 고닉이 탄생하는 것이다.

갑작스레 관리자로 나타난 익숙한 닉네임을 보면 게시판에서 뭔가 재밌는 반응이 나타날 것 같아 기대했었다. 그걸 보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다.

편집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번 주는 아마 정신 없이 바빴으리라. 팬튜브에 있던 인기 영상들을 이전하랴, 대회 개인 화면 영상을 편집하랴. 일거리가 넘쳐났다. 거기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게 뭐가 있겠나. 난 계속 칼고랑 듀오를 하며 랭크나 올렸지.

생각해보면 내가 방송을 하면 할수록 편집자의 일거리는 많아지는 것이다. 빨래를 하고 있는 사람 옆에서 빨랫감을 계속 던져주는 기분이다.

그래도 영상 소스가 없어서 일이 사라지는 것보단 낫겠지. 채널 성장이 탄력을 받은 덕분에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할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대입해보면 현실에 만족할 수 있다. 안주하게 된다는 단점도 있긴 했지만.

연락이 온 김에, 컨텐츠 관련 논의나 해볼까.

Nord:집자님.

Nord:킹 달성했는데 다음 영상 어떡하죠.

Nord:컨텐츠 뭐가 좋을까요.

Nord Love:노르드님 하고 싶은거 다 하세요. :)

그럼 진짜 피셔맨만 한다고. 주연은 항상 저렇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내가 줄창 피셔맨만 플레이하다 방송 영상을 건내줘도 불만을 내뱉지 않을 거다. 그걸 가지고도 불평 없이 편집을 이어나가겠지. 그럼 결과물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매번 콩나물만 건내주면 아무리 요리사의 솜씨가 훌륭해도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피셔맨을 콩나물로 비유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눈물이 나는데.

Nord:아무거나 말고

Nord:집자님 생각에 괜찮은 컨텐츠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Nord:듀오 영상도 조회수 잘 나올 것 같은데 어때용

Nord Love:듀오는 더 하시면 안돼요.

Nord:왜요?

편집 하느라 바쁜걸까. 방금 메세지에는 바로 답장을 했으면서, 이번엔 반응이 늦었다. 한동안 답변이 없던 주연이 뒤늦게 메세지를 보내왔다.

Nord Love님이 메세지를 입력하고 있어요...

Nord Love:이번에 듀오로 킹 달성하신거 방송 타임이 길어서요. 편집하면 영상 2~3개 정도 나올텐데 아마 식상해하는 사람이 많을 거에요.

과연.

컨텐츠가 흥해서 조회수가 잘 찍히더라도 비슷한 영상을 무한 복제하면 안 되겠지. 같은 맛에 질린 구독자들이 금방 떠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엘튜브는 생각하면 할수록 더 어려웠다.

Nord Love:노르드님 피셔맨 하고 싶지 않으세요?

고민에 빠진 내게 저렇게 뻔히 아는 사실을 말해온다. 하고 싶은 것만 해서는 안된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 아닌가.

Nord:조회수가 안나오잖아요.

Nord Love:아직 사람들이 노르드님 매력을 몰라서 그래요.

Nord Love:아니면 방송하실 때 저스트채팅 시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저 낯부끄러운 칭찬은 적응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저스트 채팅. 말 그대로 특별한 방송 컨텐츠 없이 시청자와 대화를 나눌 때 걸어두는 방송 카테고리였다. 칼고나 스벅의 방송을 보면서 몇 번인가 봤던 경험이 있다.

조금은 의아한 추천이었다. 저건 적어도 얼굴을 깐 방송인들이 사용하는 카테고리 같은데. 나 같은 인간이 바탕화면을 켜놓고 주절주절 떠들면 그걸 누가 좋아할까.

아, 어쩌면.

Nord:그건 캠방하는 사람들이 하는거아닌가

Nord:아 캠방 시작하라는 뜻인가요?

Nord Love:ㄴㄴㄴㄴ

Nord Love:ㄴㄴㄴㄴㄴㄴㄴ

Nord Love:절대ㅐ아님진짜ㅏ아니에료

저건 뭔 호들갑이야.

격하게 반응하던 주연이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Nord Love:노캠 방송하는 사람들도 저챗 많이 해요. 너무 길어지지만 않으면 시청자들도 오히려 좋아하고

Nord Love:저번에 말한것처럼 종합게임 하시려면, 저챗으로 소통 시간 만드는 게 중요해요. 나이트폴을 하는 노르드가 아니라 노르드라는 스트리머 자체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무슨 게임을 해도 시청자가 유지되는거라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정론이다.

나도 이름을 알고 있는 유명한 종합 게임 방송인들이 떠올랐다. 그런 사람들은 게임의 장르나 완성도를 가리지 않고, 플레이를 했다 하면 일정한 시청자가 모여들었다. 그건 게임과는 전혀 관계 없이 전적으로 방송인의 역량이다. 무슨 게임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게임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겠지.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내 채널에 있는 피셔맨 조회수가 낮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내가 부족하다는 말이었으니까.

단순히 잡담을 떠드는 것만으로 시청자를 불러 모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도 머뭇거리던 방송 초기와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말주변이 있는 편이 아니었다. 뭔가 잘 아는 주제가 주어지지 않으면 말이 이어지지 않을 텐데. 그래도 카테고리를 달 정도면 적어도 삼십분 정도는 뭐라 떠들어야 할 게 분명했다. 생각만해도 어지러웠다.

Nord:제가 말을 함부로 못해서

Nord:겜 없이 채팅창보면 얼어붙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대답은 조금 늦게 돌아왔다.

Nord Love:????

Nord Love:아 ㅋㅋㅋㅋ 농담인줄 몰랐네요 재밌어요

뭔 소리야.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