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8 조금씩 스며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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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방송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시청자와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요는 채팅창이다. 방송인의 멘트나 행동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시청자들. 그걸 보고 멘트를 이어나가며 마치 대화하듯 진행되는 방송. 그건 방송인의 재미임과 동시에 시청자의 재미였다.
그간 내 게임 방송은 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청자들이 내 플레이를 보고 반응을 하기는 했다. 내가 그걸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을 뿐이지. 이걸 소통이라고 말하기는 부족함이 있지 않나. 멘트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게임 플레이에 집중하다 보면 채팅까지 신경 쓰기는 힘든 일이었다.
특히 최근 나이트폴 방송의 경우 그게 유난히 심했는데, 랭크전 수준이 올라간 만큼 게임에 더 집중해야 했다. 칼고와 듀오를 돌릴 때는 매칭을 잡는 시간과 준비 시간 외에는 전부 게임에만 몰입했던 것 같다. 채팅을 거의 안 봤다. 실력 방송에서 제일 우선시되는 건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주는 거니까.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내가 소통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겠지.
그러니까 순전히 소통만으로 진행하는 방송은 아직도 내게 낯선 영역이라는 말이다.
저챗 방송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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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하]
[기습방종 해 명 해]
[센세 ㅎㅇㅇ]
[뭘 해명해 한두번보냐?]
[왜케 방송 시간이 지멋대로인가요 선생님]
[킹 찍었는데 낚시 ㄱ?]
[300등 언저리인데 뭔개솔ㅋㅋ 안정권까지 올려야지]
검은 화면이다. 노르드의 방송 알람이 울리자마자 찾아온 애청자들에겐 익숙한 화면이기도 했다. 원래 게임이 송출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노르드의 방송 화면은 항상 이런 상태였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검은 화면. 그러다 갑작스레 게임 화면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어쩔 때는 게임이 이미 시작한 상태로 방송이 켜지는 경우도 있었다. 정착된 문화였다.
오늘은 유독 화면 전환이 느렸다. 공허한 방송이었다. 마이크는 켜져 있는지, 뭔가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쯤에서 배경음처럼 흘러나와야 할 게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웅장한 나이트폴의 나팔소리도, 잔잔한 피셔맨의 물소리도.
개인 방송을 즐겨보는 대부분의 시청자가 그렇겠지만, 노르드의 시청자들도 방송의 적막함을 싫어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조용할 때면 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게임이 피셔맨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으므로.
어두운 방송에 채팅창만 활발히 올라가기를 잠시. 뒤늦게 화면이 전환되었다. 게임이 아니었다. 온통 공허한 검은 화면 속, 우측 귀퉁이에 푸른 구형의 무언가가 작게 비친다. 표면에 불규칙적인 크레이터가 가득한 지면이 화면 하단부를 채워넣고 있었다.
달. 푸른 구체는 지구였다. 생소한 방송 화면에 어리둥절한 시청자들이 물음표로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화면 좌측의 빈 공간에서 시청자들의 채팅이 그대로 출력되기 시작했다. 방송 화면에 채팅창이 담겼다.
방송 카테고리, 저스트 채팅.
놀랍게도 노르드가 방송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선택한 카테고리였다.
[????]
[머임]
[나이트폴 ㅇㄷ? 피셔맨 ㅇㄷ? 우리 센세는 ㅇㄷ..?]
[방송 카테고리 실화냐]
[근데 왜 우주]
[오 방송준비화면인가]
[방장이 세팅을 해왔다고??]
[너 누구야]
"여섯 시에요. 여러분."
[보면 알아요]
[어쩌라고]
[방송 화면 뭔가요 선생님]
[오늘겜머함?]
[칼고 클립 보셨나요]
"방송 화면은 제가 구한 거에요. 우주가 좀 이뻐서... 잘 보면 여기. 여기 움직입니다. 지구 돌아가는 거 보이시나요?"
마우스 포인터가 우측 상단의 지구를 가리켰다. 화면 귀퉁이에 쳐박히듯 작게 위치한 탓에 대부분의 시청자가 움직임을 확인할 수 없었다. 스트리머가 채팅창의 반응을 확인하는지 이어지는 멘트가 없었다. 방송은 잠깐동안 침묵에 빠졌다.
정적인 화면과 고요한 방송. 뭘 강조하고 싶은 건지 둥근 지구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우스만 열심히 움직였다.
[??? 뭐가 움직인다는겨]
[지구 왜케 작아]
[사진 선정 좆구려요 선생님]
[별도 없는 사진가져와서 우주가 이뻐? 옘병ㄴ]
[그냥 공감해 10련들아]
[님들 이사람 지금 뭐함]
시청자가 모여들었다. 저녁 여섯 시. 노르드가 방송을 키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저결 대회가 끝난 날처럼, 느닷없이 새벽에 방송을 켜는가 하면 어느 날은 점심에. 또 어느 날은 저녁에 시작됐다.
공지 따위가 없는 방송이었음에도 시청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대회 우승과 더불어 킹 랭크를 달성하면서 방송에 유입된 시청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팔로워의 숫자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렇게 유입된 시청자들에게도 지금 방송 화면은 낯설었다. 최근 노르드의 방송은 들어오자마자 선혈이 낭자한, 쉬는 시간도 없이 달리는 나이트폴 랭크였으므로. 그건 스트리머의 멘트 유무와 상관 없이 어지러운 화면이었다. 지금의 고요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지속되는 정적에 채팅창이 의문으로 가득 찰 때쯤, 잔잔한 피아노 건반 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렸다. 작은 소리였다. 그 상태로 노르드가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은 열두 시에 일어났어요."
[브금 먼데]
[피아노소리?? 피아노 시뮬레이션을 암시하는것인가???]
[ㅇㅉㄹㄱ]
[센세의 일기...? 이거 귀하네요]
[일찍 일어나셨네요]
[나이트폴 켜라]
[카테고리 저챗 뭐임 이 사람 노가리도 깠음?]
[MS 평균에 못미치는 기상시간]
"어... 제가 너무 소통을 안 한 것 같아서요. 이제 방송 키고 잠깐씩은 여러분하고 소통도 하고 그러려구... 제가 어제 시간을 써서 예쁜 대기 화면도 세팅해왔어요."
[당신 누구야]
[예쁜...? 미적감각 수준이?]
[센세가 소통wwwww 스게wwww 와타시 눈물ww]
[브금이 참 교양있네요]
[왜 인간 백정이 교양있는척함]
[어허 선생님 음해하지마라]
<노르드발닦개 님이="" 1,000원="" 후원!=""/>
웬일로 소통을 다... 그럼 선생님 인생 썰좀 들려주세요.
어눌한 TTS(Text to Speech) 음성이 울려퍼졌다. 채팅창이 어수선했다. 이례적인 소통 방송에 의아함을 표하는 모습이었다.
노르드라는 이름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진 것과는 별개로, 사람들이 노르드에 대해 아는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나이, 본명, 직업... 심지어는 나이트폴 본 계정 닉네임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방송인 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보가 극히 드물었으니 그럴 수밖에. 매번 공지도 없이 방송을 키고는 기습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현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소통이 적었던 탓이다.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스트리머는 보통 시청자와의 거리감이 가깝기 마련이다. 채팅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심리적인 거리가 좁혀졌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풀어낸 이야기가 계속 쌓이면 인생의 윤곽도 드러나는 것이다. 캠을 키는 등 얼굴을 공개했다면 더욱 그랬다. 실제로는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으면서 마치 친한 사이가 된 것처럼 과몰입하는 시청자가 빈번히 나타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노르드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방송을 시작하고 한 달이 넘었다. 그럼에도 아직 베일에 쌓인 정보가 너무 많았다. 킹을 쉽게 달성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나이트폴 유저. 여성 스트리머. 이렇게 신기한 조합이 또 어디있는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후원에 대한 감사를 표한 노르드가 채팅창을 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인생, 인생... 너무 어렵네요. 여러분들이 제 인생을 알 필요가 있을까요?"
[ㅡㅡ 텐련,,, 선 긋는거 보게,,,]
[아 됐고 그냥 궁금하다고!!!!]
[꺼라위키에 32세 미시 어장관리녀라 나와있는데 사실인가요? 해명 부탁드립니다]
[ㅈㄹ마셈 노르드님 군필여고생임]
[선생님... 실망입니다. 저희 친구아니었나요?]
[사생활공개하라고 지럴이네ㅋㅋㅋ 어우 육수새끼들 진짜 너무 역겹다]
[응 나 육수할거야~ 존나 궁금해~]
[핸드폰번호 정도만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겜방송에서 게임만 보면 됐지 뭔;; 노르드님 병.신들 무시하고 겜이나 하죠]
[씨,,벌련이 군필여고생이 게임을 하냐 50세 아줌마가 게임을 하냐는 중대한 문제지]
잠궈왔던 물꼬가 풀린 걸까. 어쩌면 그동안 노르드가 소통하지 않은 탓에 쌓이고 쌓인 호기심이 지금 터져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덧 모여든 시청자들이 채팅창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노르드의 어조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평소처럼 속삭이듯 조용하게 말을 내뱉었다.
"음, 오늘은 볶음밥을 해서 먹었어요. 어제 먹다 남은 참치가 있어서요."
[이딴게... 인생썰?]
[ㄴㅁㅂ? 그런거 말고 재밌는거요]
[캬 참치 볶음밥은 인생이지]
[섹1스다 섹1스]
[센세 자취함?]
"네. 자취하는 중입니다. 자취 경력은... 얼마 안 됐어요. 요즘은 아침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네요."
[나이, 키, 몸무게, 가슴. 나이, 키, 몸무게, 가슴. 나이, 키, 몸무게, 가슴. 나이, 키 , 몸무게, 가슴. 나이, 키, 몸무게, 가슴. 나이, 키, 몸무게, 가슴. ]
[우욱 씹;; 관리자 뭐하냐 도배 새끼들좀 밴해]
[유입이네ㅋ 이 방 관리자 없음ㅋㅋㅋ]
[아침 운동이요? 열두시 기상이라면서...]
[누군가에겐 열두시도 이른 아침입니다. 당신의 선입견때문에 상처받는 엠,생들이 있습니다.]
[아침운동 같은 거 신경쓸거면 제발 방송시간이나 고정시켜 ㅅㅂ]
"방송시간은, 음. 지금이 좋지 않나요? 고정 시간이 없으면 알람 울릴 때 설레는 마음이 있잖아요. 기대도 안 했던 게 짜잔하고."
[???]
[입만 열면 개소리를 하시는데 혹시 개인가요?]
[제....발 공지라도 써]
[이 쉽,련 방종도 저런 느낌으로 하는거네]
[사고방식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와 나 머리가 띵했어]
"으음. 아니라는 의견이 많네요. 그럼 앞으로 방송키기 전에 저컴 게시판에 공지라도 올려볼게요."
[이걸 소통한다고? 당신 누구야 진짜]
[정보)지금껏 이 인간이 저컴게시판에 올린 공지는 단 두 개뿐이다.]
[이지럴하고 방송키기 몇분전에 올릴것같은데]
[와 머야 ㄹㅇ소통하네]
[방송 시간도 좀 늘려주셈]
[그래도 칼고랑 듀오할땐 오래 했잖아]
[아무리 해도 부족해]
"방송 시간은, 당장 늘리지는 못할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어서..."
[병약속성 ㄷㄷ]
[건강챙기세요 선생님]
[13시간 랭크런은 힘든거 ㅇㅈ]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방종을 하셨군요]
[비꼬지마라 ㅡㅡ]
노르드의 말이 이어지면서 채팅창을 가득 채웠던 도배가 점점 줄어들었다. 정말 소통을 위한 시간임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동안 쌓였던 호기심을 쏟아내듯, 무수한 질문들이 도배를 대신했다.
조금씩 스며들어 가는 것이다. 나이트폴의 광전사를 플레이 하는 Nord가 아니라, 방송을 하는 노르드에게.
첫 번째 저챗 방송은 꽤나 원활하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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