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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화 〉 70 ­ 타격감 있는 게 좋아 (70/243)

〈 70화 〉 70 ­ 타격감 있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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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이제 막 독립을 시작한 친구의 자취방으로 놀러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인간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심적으로도 위축되고는 하는 것이다.

대학 시절. 사춘기를 진작에 벗어난 나이인데 독립은 하지 못했으니. 그 시절 가만히 집에 있다보면 묘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러면 집은 더이상 안락함을 주는 장소가 아니다. 괜스레 눈치를 보다 집 밖으로 나오면, 가장 먼저 발길이 향하는 곳은 친구놈의 자취방이었다.

20대 초반 학생 신분으로 얼마나 큰 방을 얻을 수 있겠나. 두세 명만 들어가도 누울 공간을 찾기 힘든 좁아터진 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우린 일체의 제약과 속박을 벗어던졌다.

그게 내 자취방인 것도 아닌데, 거기서 뒹굴다보면 집에서 느꼈던 그 숨막히는 압박감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었다. 즐거웠다.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버린 기억이다.

그러니까 비슷한 맥락으로­ 틈만 나면 제 언니의 자취방으로 찾아오려 하는 동생의 간절한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글쎄, 동생과의 거리감이라는 게 이렇게 가까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는 했으나.

인간 관계라는 건 인간의 수만큼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나는 이제 타협하기로 마음 먹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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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응."

"내 말 듣고 있어?"

"응. 주호 축구하고 온다고 했잖아."

대답을 듣고나서야 혜민이의 얼굴이 풀렸다. 똑같이 무표정한 얼굴인데도, 미묘하게 치켜 올라간 눈꼬리나 미간이 찌푸려진 정도로 인상이 확 변하는 것이다. 혜민이는 그게 유독 심했다.

컴퓨터를 두고 나란히 앉은 혜민의 모습이 이젠 익숙했다. 생기가 감도는 매끈한 피부.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평온함이 묻어 나왔다. 지금은 저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가 있었다. 이것도 일종의 적응일까.

주호는 지난 번의 방문 이후로 처음이었으나­ 혜민이는 내 자취방에 꽤나 자주 찾아왔다. 주말엔 집에 있는 게 더 편하지 않냐, 굳이 찾아와서 신경 써줄 필요는 없다... 그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 평온한 얼굴을 보면 혜민이는 집보다 내 자취방을 편하게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내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닌지라. 이젠 주말에 찾아오겠다는 혜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실 요즘은 나도 혜민이 집에 있다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여전히 숨겨야 하는 것들이 많았음에도.

아마 그걸 헤집어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혜민이는 유독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둘이 있을 때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이 방송과 관련돼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나에 대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흔적들만 살펴보더라도 혜진의 과거가 썩 기분 좋은 추억인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 덕분에 나는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억지로 포장하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혜민이를 밀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내게 보내는 걱정과 우려에서 진심이 뚝뚝 묻어나왔다. 그걸 받고도 매정하게 대응하기는 힘든 일이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건 생각보다 커다란 것이다. 버팀목은 그렇게 생겼다.

그런 것들이 전혀 없는 삶도 있을 테니까.

"오늘은 방송 안 킬거야?"

"어? 그치. 주호 나이트폴 봐달라고 오는 거잖아. 이번엔 제대로 봐줘야지."

왜 아쉬운 눈초리로 보는 거야.

"저번에 뒤에서 방송 보는 거 재밌었는데..."

"마이크도 안 썼는데 그게 뭐가 재밌어."

"언니 플레이보고 채팅창이 반응하는 게 재밌어."

채팅창.

혜민과 주호가 내 방송을 챙겨본다면, 그건 항상 채팅창을 본다는 말과도 같았다. 잠시 내 방송 채팅창을 채웠던 수많은 도배문구가 떠올랐다. 혜민이 더러운 무언가에 오염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건 왜일까. 고등학생이면 알아서 뇌에 필터가 돌아가겠다만.

이전에는 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시청자도 지금보다 적었고, 채팅창도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으니.

최근 들어 수위가 올라간 탓이다. 시청자가 늘어나다 보면 자연스레 분탕이 늘어난다는 건 뻔히 알고 있었다. 나야 별 생각이 없었지만, 동생들이 본다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채팅창은 인터넷 방송의 아주 중요한 요소니까... 그걸 보지 말라고 하는 것도 웃기고.

역시, 관리자를 구해야 할까.

"그, 혹시 어제 방송도 봤어?"

"나 언니 방송 안 놓친다니까. 사실 구독도 해놨어."

뭐?

"뭐? 너 닉네임이 뭔데."

"안 알려줄거야. 언니도 방송 처음 킬 때 나한테 숨겼으니까."

"그게 아니라... 혹시 채팅도 치니?"

"응, 많이. 근데 언니 채팅창 관리해야 돼. 쓰레기들이 너무 많아."

쓰레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난 그것보다 채팅을 많이 친다는 네 닉네임이 궁금하다고.

계속된 추궁에도 혜민이는 대답이 없었다. 날 마주한 상태로 의미심장하게 웃는 꼴이 뭔가... 뭔가 거슬렸다.

현실의 나를 아는 사람이 내 방송을 본다는 것. 그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서 매우 신경쓰이는 일이다. 내가 방송에서 지껄였던 개소리가 떠올랐다.

이를 테면 나이 32세에 3대 500을 치는 피지컬을 보유했다는 등의 잡소리들. 이런 건 웃기기 위한 드립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내 진짜 일상 생활이 문제였다.

저번 소통 방송 때에도 술을 자주 마신다는 사실을 말하려다 황급이 말을 돌렸던 적이 있었다. 혜민이가 방송을 볼 수도 있었으니까. 걱정 받는 것과 잔소리를 듣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노르드라는 가면을 쓰고 했던 말들이, 혜진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건... 꽤나 철렁거리는 일이기도 하고.

방송을 보지 말라고 해봤자 통할 리가.

"생방송은 좀 이상하지 않아? 엘튜브 편집 영상으로 보는 게 재밌을 텐데."

"언니."

"응?"

"편집자랑 술 마신 건 언젠데?"

아.

그 표정이다.

진짜 다 봤나 보네.

"뭔 술을 마셔..."

"방송에서 말 돌리는 거 다 봤어. 편집자는 언제 만난거야? 만나기 전에 제대로 확인한 건 맞아? 무슨 생각으로 언니 혼자 나간거야."

"아니, 나는 다 큰 성인이잖아..."

"언니 방송하는 사람이잖아. 그것도 인기도 많고. 저컴 게시판만 해도 언니 얼굴 궁금하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게시판은 되도록이면 안 봤으면 좋겠는데. 아니. 기왕이면 내 방송도.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면서 떠올리는 것이다.

업적 달성: 32살 쳐먹고 고딩 여동생한테 잔소리 듣기.

이건 몇 점짜리 업적일까. 획득 난이도를 생각할 때 꽤나 높은 점수가 분명했다. 보상도 줄 법한데.

아, 눈이 마주쳤다.

"언니!"

혜민이의 잔소리는 주호가 올 때까지 이어졌다.

걱정해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잔소리를 견디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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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하고 왔다는 주호는 오자마자 컴퓨터로 향했다.

문자로 이것저것 물어오더니, 나이트폴이 온통 머리를 잠식한 모양이다. 현 랭크는 비숍1. 이전과 비교하면 두 단계나 올랐다.

승급하기 직전이었다. 이런 상황이면 그렇게 안달이 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 번도 올라가본 적 없는 랭크로 올라갈 때, 게임은 가장 재밌는 법이니까.

어중간한 타이밍에 끊겨버린 교육에서 뭔가 배운 게 있었을지. 랭크가 올라간 걸 보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는 한 모양이다. 나이트폴을 실행하고 빠르게 로그인을 시도하는 뒷모습이 뭔가 재밌었다. 촐싹대는 거 같기도 하고.

동생에게 게임을 가르쳐준다는 건, 여전히 현실감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누나 말대로 검방 계속 하고 있는데. 근데 나도 노르드 빌드 가르쳐주면 안 돼?"

"안 돼. 고깃덩어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너무 커."

"...말을 좀."

"응? 핏덩이가 좋아?"

"그냥 검방할게."

주호의 허접한 플레이를 보면, 나이트폴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 방송만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훈수충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무진장 재밌거든.

게임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시야가 다른 법이다. 멀리서 보면 당연히 보이는 것들도 눈 앞의 적에 집중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대놓고 활 시위를 당기는 궁병의 화살이 몸뚱이를 꿰뚫고 지나가도 모르는 거지.

지금처럼.

"악!"

화살을 맞고 경직된 사이 대치 중이던 적이 도끼를 내리쳤다. 쓸쓸히 뒤져버린 주호의 캐릭터가 내지른 비명이 주호의 단말마와 절묘하게 일치했다.

흑백 화면. 내가 마주할 때는 한 없이 짜증나는 화면도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재밌는 희극이었다.

단점이라는 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시야가 좁다고 몇 번 지적받은 정도로 그게 고쳐지면, 개나소나 퀸이나 킹을 달고 있겠지.

눈높이 교육이라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게임을 가르칠 때, 저랭크 유저들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는 게 없을 가능성이 컸다. 퀸 랭크쯤 되면 상식이라고 여기는 당연한 팁들을 모를 수도 있고.

관점을 바꿔서 바라보지 않으면 잡아내기 힘든 것들이 많다. 그리고 역지사지란 언제나 난이도가 높았지. 10년차 고인물이 뉴비의 관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건, 대체 몇 년을 거슬러가는 일인가. 기억도 안 날 가능성이 높았다. 나도 어려웠으니까.

"자, 이걸 눌러봐 주호야. 이건 가드라는 건데, 방패를 들고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거든."

"누나...나 그래도 비숍이라고."

"폰이랑 비숍은 뭐가 다른걸까. 나이트폴 희대의 난제야."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이는 모습이 재밌었다.

주호는 이해력이 나쁘지 않은 학생이다. 죽고 나서 복기하는 걸 보면, 본인이 왜 죽었는지를 곧장 파악했다. 그러니 굳이 그걸 알려주기보다는 조금씩 긁어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재밌기도 했고.

자극을 받았는지 전투 상황마다 주변을 체크하는 모습이다. 간간히 나오는 실수를 지적하며 훈수를 던지고 있을 때, 옆에서 지켜보던 혜민이 말을 걸어왔다.

"이거 엘튜브에 올려도 재밌겠다."

"응? 주호 갈구는 거?"

"뭐라고?"

"아니, 나이트폴 가르쳐주는 거. 저번에 언니가 스벅님한테 강의한 것도 조회수 잘 나왔던데."

그야 생각은 해봤다.

주연과 컨텐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언급되었던 컨텐트 중 하나였다.

나이트폴 교육 컨텐츠.

혜민의 말마따나 조회수가 잘 나왔다. 방송 초창기에 스벅과 합방했던 때의 영상이었다. 스벅의 영향력도 분명 컸겠지만, 교육이라는 소재도 꽤나 주요했으리라.

강사가 퀸이면 뭔가 떨어지는 느낌이라, 킹 랭크 등반을 우선시했던 거였는데.

음.

"응. 생각은 해봤는데... 누굴 가르칠지가 제일 문제야."

"나나 제대로 관리해 줘."

"너는 집중이나 해. 저기 궁병 지나간다."

"어? 어느 쪽."

"거짓말이야."

"..."

툭툭 치는 맛이 있는, 비숍 정도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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