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 71 ­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71/243)

〈 71화 〉 71 ­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 * *

[587]

제곧내

장난이구요.

킹도 찍었겠다, 신규 컨텐츠로 나이트폴 교육 방송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생각했던 컨텐츠네요. 스벅님 가르쳐드렸을 때 느꼈던건데, 제가 좀 교육자의 자질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근데 정작 가르칠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청자분들 중 학생을 한 분 모시려고 합니다.

신청조건은 별거 없구요. 그냥 민증이 나온 나이면 그걸로 됐습니다. 미성년자는 안 받습니다.

이유는, 그냥요. 제가 받기 싫어서.

랭크는 룩5 이하만 받겠습니다. 더 높으면 교육 방송이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요.

베타코드로 진행할 예정이니까 준비물은 마이크 정도만 있으면 되겠네요.

희망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나이트폴 닉네임을 남겨주세요. 제가 룰렛으로 선정해서 뽑을 겁니다. 아마 다음 방송 켰을 때 바로 돌릴 것 같아요. 기간을 따지면 그때까지로.

이상입니다.

ps.오늘은 방송이 없습니다. 다음 방송은 내일 오후 4시~8시 사이에 켜질 것 같습니다. 아마도.

###

"안녕하세요. 채팅창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몇 시부터 있던 거에요?"

[노하. 4시부터요]

[방송 공지를 누가 랜덤 타임으로 하냐고 ㅅㅂ]

[방송켰음 됐어]

[주말에 방송을 안켜?]

[0군들 방송도 안켰는데 대기를 타고있네ㅋㅋ]

[선생님.. 저를 가르쳐주세요]

[저컴공지진짜야? 룰렛 바로돌리는거?]

[제발 6974 제발 6974 제발 6974]

[어떻게 닉네임이 6974;]

"룰렛을 돌릴건데... 제가 또 준비성이 철저하잖아요. 프로그램을 준비해왔습니다."

[?]

[뭐가 철저?]

[근데 갑자기 뭔 교육방송임? 존나 안어울리네]

[어허 선생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채팅창이 물음표로 가득 차는 가운데, 마우스가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송을 킨 직후였다. 방송 알람에 딜레이가 있는지 아직은 시청자가 많지 않았다. 알람도 없이 방송에 들어온 건, 방송이 켜지기도 전에 노르드의 채널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분탕들이 모여들기 전이라 그런 걸까. 도배가 없는 채팅창이 평소보다 깔끔했다.

공허한 우주. 전처럼 음악이 얕게 흘러나왔다. 준비 화면을 틀어놓고 뭔가 준비하던 노르드가 화면을 전환했다.

테두리가 구식적인 창 화면이다. 그림판으로 그려넣은 것 같은 둥그런 초록색 동산과 성의 없는 구름이 돋보였다. 가운데에는 버튼이 달린 노란색 대포가 위치했다. 대충 만든 원기둥 형태가 굴뚝을 연상시켰다. 숫자를 입력하라는, 하얀 입력창이 중앙에 떠올랐다.

'대포 룰렛'. 프로그램 이름마저 성의가 없었다.

[시1발 초딩이냐?]

[저거 나 급식때 보던건데]

[응애 나 초딩 저수]

[선생님 선생님하니까 ㅅㅂ 진짜]

[준비성이 정말 철저하시네요 허허]

노르드는 채팅창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숫자를 입력했다.

587. 공지 글에 달린 댓글과 정확히 일치하는 숫자였다.

[ㄹㅇ 원시적이네]

[어허 선생님이 열심히 준비해오셨는데 애새끼들이 불만이 많아]

[근데 댓글에 개소리도 많던데 저렇게 돌려도 됨?]

[아 알아서 하겠지]

"자. 이제 룰렛 돌릴게요. 뽑히신 분 사이트로 전적 확인할 건데, 너무 고승률이면 넘기고 다시 하겠습니다. 부캐일 수도 있잖아요."

펑, 하는 미적지근한 효과음과 함께 대포가 발사됐다. 어떤 극적인 효과도 없이 바로 화면에 숫자가 튀어나왔다.

175번.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추첨이었다.

추첨 결과를 보고 채팅창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런 식의 추첨을 예상한 사람이 없는 탓이다. 당장 결과가 나왔음에도, 닉네임이 표시되는 게 아니니 누가 당첨됐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방송을 진행하는 스트리머도 말이 없었다. 잠깐의 공백을 참지 못하고 일부의 시청자들이 직접 공지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길 잠시. 조용했던 노르드가 입을 열었다.

"당첨자는 '내어깨에담배빵' 님이네요."

[??? 어떻게 찾았는데]

[아니 찾는걸 우리한테 보여줘야지 뭐해]

[내어담 ㅅㅂㅋㅋㅋㅋㅋㅋ]

[선생님 저 눈물날거같아요]

[어떻게 사람이름이 내어깨에담배빵]

[걸려도 저딴 새끼가...]

"지금 방송에 계시나? 어... 여기 있으시네. 잘 보이게 관리자 달아드려야겠다. 귓말로 베타코드 태그 보내주세요. 제가 친추 드릴게요."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채팅창 닉네임 하나에 검 모양의 배지가 달렸다. 채널의 매니저를 상징하는 표시였다. 밋밋한 채팅창의 닉네임들 사이로 배지가 유독 두드러졌다.

지금까지 무주공산이었던 채팅창에 느닷없이 권력자가 등장했다. 도배도 없이 나름 얌전했던 채팅창이 순식간에 광기로 물들었다.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사람 차별하는거야? 나 이대론 못살아 관리자 못잃어 노르드 못잃어]

[와ㅅㅂ 관리자뽑는 룰렛인줄 알았으면 부캐동원해서 댓글달았지]

"화력이 대단하네요. 응... 차별, 차별이라구요? 아니에요, 여러분. 세상은 원래 불공평합니다. 그리고 관리자는 좋은 게 아니에요. 무보수로 일하는 관리직이라구요. 멋있는 검 한 자루 달았다고 부러워하실 게 아니라­"

온갖 이모티콘과 문장으로 채팅창이 가득 찼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불타는 이모티콘이었다. 진화를 위해 말을 이어가던 노르드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마 자신의 말이 화재를 진압하기는커녕 불길을 더 거세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모양이다.

외면하기로 결정했을까. 베타코드로 들어간 노르드가 화제를 바꿨다.

"친추 드렸어요. 아, 바로 받으셨네. 지금 바로 시작할까요? 시간 되면 말씀해주세요. 혹시 바쁘시면 억지로 괜찮다고 안 하셔도 돼요. 저 피셔맨하러 가면 됩니다."

내쇄골에담배빵:저 괜찮아요!!! 오히려 지금 당장이 좋습니다. 선생님!

대답이 즉각적이다.

잔잔히 흘러나오던 배경음이 뚝하고 꺼졌다. 어느새 방송 화면에 베타코드가 잡혔다. 친구 추가를 마친 노르드가 베타코드로 연결을 시도했다. 화면 중단에 연결 상대의 닉네임이 표시됐다.

'내쇄골에담배빵'

[닉네임 진짜 어지럽네]

[담배빵에 왜케 집착해;]

[무친련일 가능성 농후]

[저딴새끼가왜관리자냐고나는첫날부터후원도했는데하꼬일때부터봤는데나는특별한데]

[으 씨,발럼들이 채팅창 혼자쓰냐?]

[관리자땜에 더 곱창나는데 이거 맞어?]

띠링, 하는 베타코드의 효과음과 함께 마이크를 타고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남성치고는 꽤 높은 음성이다.

저렴한 마이크를 쓰는지 음질이 좋지 않았다. 목소리 사이 사이로 지직거리는 기묘한 잡음이 섞여들었다.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에서 떨림이 묻어나왔다.

[? 잼민이니?]

[방장!!!! 나이제한 쳐내!!!!]

[민증까라해봐]

[어우 마이크 수준봐라]

[여자 나올때까지 룰렛 ㄱ]

[개찐따 목소린데]

"저, 저 성인이에요! 대학생인데, ­는 것도 아니고..."

난리가 난 채팅창을 보고 있던 모양이다. 황급히 변명을 내뱉는 목소리에 조급함이 담겼다. 툴툴대는 말투였다. 갈수록 소리가 줄어들어 종래에는 웅얼거리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마이크가 잡아내지 못한 음성이 잡음에 먹혀 스러졌다.

"담배빵님."

"네? 아니... 담배빵님은 좀."

"채팅창 끄세요. 계속 보면 집중도 안 될 거예요. 비하 발언 있으면 제가 다시보기 확인해서 다 차단해드릴게요."

"아... 네, 네."

방송에서 채팅창을 크게 키운 노르드가 하나 둘 검열을 시작했다. 노르드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낯선 일이었다. 애초에, 이 스트리머가 채팅창을 관리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폭주하던 채팅창이 잠깐이나마 잠잠해졌다. 시청자를 몇 명 차단한 노르드가 입을 열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저, 저 스물이요."

"저는 담배빵님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담배빵님은 좀 이상하­"

"티어가 나이트3 맞으시죠?"

"그, 맞는데요. 제가 이번 시즌에는 게임을 많이 못해서 그래요. 원래 비숍 정도는 되는 실력이거든요, 제가."

대답하지 않고 금새 전적 사이트를 펼쳤다.

'내어깨에담배빵' 이라는 나이트폴 계정의 전적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패배가 붉게 표기되는 정보 사이트에서 화면의 절반이 빨갛게 물들었다. 패자의 상징. 화끈하게 꼬라박은 연패였다.

시즌 게임, 231게임.

훌륭한 나이트3 현지인이었다.

"티어는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아니 그게 아니구요. 제가 팀운이 너무 없어서..."

"괜찮아요. 학생은 다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배우기 위해 이거 신청하신 거잖아요? 나이트면 나아질 일만 남았어요."

[팀운탓하는 전형적인 똥말ㅋㅋㅋㅋ]

[배빵아 울지마라... 전세계 300만 나이트가 너를 이해한다]

[저걸 가르칠수는 있냐?]

[스벅 생각하면 안될것도 없음ㅇㅇ]

[ ㅜㅑ 학생달래는 노르드센세...]

[저번시즌 비숍이긴하네]

[200판 나딱이면 가망이 없지]

[센세 이친구 넘기고 다음 룰렛이나 돌리죠]

잠깐 스크롤을 내리던 노르드가 곧장 나이트폴을 실행했다. 축소된 채팅창이 방송 화면의 우측 하단에 자리 잡았다.

"바로 들어갈까요?"

"아, 네. 그, 친구 추가 해도 되나요?"

"네. 제가 걸게요."

[관리자에 베타코드친추에 나이트폴친추? 씨,발 룰렛 당첨이 복권이었네]

[나도해줘 나도해줘 나도해줘 나도해줘 나도해줘]

[저 10련 나이트에서 만나면 죽여버린다]

[담배빵으로 다시태어나게해주세요]

###

스승과 제자라는 건, 참으로 오묘한 관계였다.

분명 위계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수직적이지는 않았다. 이건 관료제적인 상하 관계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교육은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었으니까.

왜, 가르치는 사람도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걸 배워간다는 말도 있지 않나. 교육의 핵심은 쌍방향적인 소통이다. 주입식 교육은 강압적이고 뒤떨어진 방식이지.

나는 그래서 교육을 좋아했다.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는 게 더 재밌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쩌면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는 과시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뭔가를 설명할 때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다시 환기되는 그 과정이 재밌었다. 기억의 되새김질. 그럴 때면 평소보다 의사소통이 더 수월하게 진행되고는 했다. 정말 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

그래, 소통. 소통이 중요하다. 소통을 위해 필요한 태도는 무엇인가.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는...

염병을 떠네.

"우리 학생은, 혹시 키보드에 쉬프트 키가 없을까요?"

"...있습니다."

"왜 있는 거죠? 있으면 안 돼. 그럼 방금 그걸 못 막은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게 아니라 선생님이 칼이 아니라 캐릭터를 보라고 하셔서... 이게 아까 발차기를 맞고 너무 다리 쪽을 의식하다 보니까... 칼을..."

학생은 대갈통이 없나?

꾹 눌러담은 덕에 입 밖으로 토해내지 않은 말이 속에서 쌓였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