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72 털어낼 때를 알아야
* * *
"배빵님."
"그, 배빵이... 네."
"아까 제가 뭐라고 했었죠?"
"먼저 칼 뻗을 생각말고 일단 가드나 올리라고..."
"제가요? 아하. 잠깐 다른 세계에 갔다 오셨구나."
시즌마다 몇 백판을 기록했다는 건, 꽤나 게임을 많이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게임은 많이 할수록 잘하는 법이다. 아주 당연한 상식이다. 반복은 인간 모든 행위 숙달의 기초였으니까.
그 당연한 상식에 기초해서 생각해볼 때, 수백 수천 번 플레이한 나이트 랭크의 유저가 나이트폴을 처음 시작한 생 뉴비보다는 훨씬 가르치기 쉬울 것이다.
그럴 터였는데.
칼을 휘둘렀다. 손에 익은 츠바이가 아니다. 아주 기본적인 형태의 아밍 소드. 페이크를 섞지 않은 횡베기였다. 굳이 방비를 굳히지 않아도 가볍게 쳐낼 수 있는 공격이다. 그러라고 방패를 쥐어준 거니까.
탁
역시. 가볍게 방패로 막아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첫 공격을 막아낸 이후의 움직임. 실시간 전투를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연계 동작에 따른 대응법이나 패턴 따위는 분명 존재했다. 나이트폴에서 방패를 들었다 함은 그 패턴들을 읽어내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내 공격은 한손검으로 뻗어낸 약공격이었다. 이에 대한 올바른 대처는
철퇴를 휘두른다? 가관이구나, 진짜.
첫 일격이 막힌 즉시 이미 선입력한 후속타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휘두른 철퇴가 나를 타격하는 것보다 검이 도달하는 게 더 빨랐다.
또 한 번.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움직임.
"으악."
패는게 재밌는 것도 샌드백의 질이 좋을 때나 해당되는 말이다. 맞을 때마다 모래를 줄줄 흘려서야, 어떻게 재미를 느낄까. 이건 너무 형편 없잖아.
추격타를 넣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죽이고 리스폰을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오늘 내로 교육을 끝마치기 힘들겠지. 오프닝부터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집을 게 많은 정도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방금 뭐가 잘못된 걸까요?"
"으, 카운터 노린 거요...?"
"카운터 노린 게 왜 문제일까요."
"아니... 연계 들어오는 타이밍었는데 조금 느렸으니까..."
[말을 똑바로해 텐련아]
[응애 나 애기 배빵 말 못해]
[아오 씹 꿀밤한대 존나쎄게 때리고싶네ㅋㅋㅋ]
[이게 저수 평균... 눈물이 난다]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까먹는 경이로운 학습능력... 이게 담배빵이다.]
어지러운 채팅창을 훑다가 몇 명을 더 차단했다. 갈수록 주눅이 드는 꼴을 보면, 채팅을 다시 켜둔 게 분명했다. 본인 플레이에 어떤 반응이 나오고 있을지 궁금하기야 하겠지.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평소에 방패 안 쓴다고 했죠?"
"네에."
"주로 쓰는 빌드는요?"
"쌍검이요."
"범죄를 저지르고 계셨구나."
"네?"
[나딱이의 쌍검? 이거 무기징역이네요]
[범죄자쉑ㅋㅋㅋㅋㅋ]
[센세 말투만 들으면 칭찬하는거같네]
[걍 죽이자]
몇 백판에 나이트3. 랭크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는 것이다. 결과가 저런 데에는 다 원인이 있기 마련이지.
게임은 재능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실 나이트폴을 포함해 랭크 시스템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일정 수준의 랭크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도달할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피지컬'과는 상관 없이.
나이트폴로 따지면 비숍... 비숍1 까지는 그냥 가능할 것 같은데. 아무튼 거기까지는 피지컬이고 뭐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필요한 건 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뿐이다. 그래, 이해도.
그게 현저히 부족한 사람들은, 한 시즌에 게임 수백 판을 박아봤자 올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건 공회전이다. 랭크 올리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시간만 땅에 버리는 행위다.
그저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야 전혀 상관이 없었으나, 교육까지 받으러 온 사람이 랭크에 대한 미련이 없을 리가 있을까.
이 사람에겐 이론 교육이 먼저 필요하겠다.
"방패 들라고 시킨 이유가 뭘까요?"
"...어, 가드나 올리고 버티라고?"
"제가 배빵님 패려고 불렀겠어요? 방패들면 읽는 게 용이해져서 그런 거예요."
"읽는 거요?"
말이 많아지니 목이 말랐다. 집어든 컵에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예 페트병을 가져다 두는 게 좋을지도.
"네. 읽는 거요. 나이트폴은 기본적으로 상대 움직임을 읽어내는 거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근데 배빵님은 그걸 도외시하고 있어요. 거의 무지성으로 본인 플레이만 생각하면서 플레이하잖아요. 방금도 그래요. 상대 공격이 오니까 방패로 막았죠? 그럼 막으면서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생각하셔야죠. 본인 철퇴 휘두를 게 아니라."
요는 내 움직임이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이다. 처음에야 적을 보는 데 급급해 공격을 막기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몸이 알아서 대응한다. 그 능숙함의 정도가 랭크를 가른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읽으려는 시도조차 안 한다면, 랭크를 따질 수준이 아니었다. 사실상 폰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한두 번의 수 교환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담배빵의 플레이는 그 정도였다. 게임도 잘하기 위해선 머리를 써야 된다고. 대갈통을 굴리는 습관이 필요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지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멘탈이 물렁한 것 같아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고 했는데, 기가 죽었나.
어쩌면 너무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해 어리벙벙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뭔가 구체적인 해결방법이 없으니 당황에 빠졌다던가.
"우선 방패 계속 쓰면서 고쳐봐요. 공격은 안 해도 되니까 제 움직임 보면서 대응해보세요."
"...네!"
저건 정말 알겠다는 대답일까.
묘하게 들뜬 목소리에 무슨 감정이 담겨있는지 구분히기가 힘들었다. 학생의 심정까지도 읽어내야 한다니, 역시 선생 노릇은 어려운 것이다.
마우스를 놓고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손목을 돌렸다.
오늘 방송은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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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센세 명강의에 눈물을 흘렸어...
근데 왜 나는 개인과외 안해주는거야?
담배빵보다 훨씬 빨리 배울 자신 있는데. 나는 기본기도 탄탄한데. 관리자 받으면 개처럼 일할 자신 있는데.
이거 정기 컨텐츠맞지???
다음 룰렛은 언제돌려? 그때까지 숨 참을거야.
흡
별과달그리고노르드:이미 뒤진 시체입니다.
노르드발닦개:어차피 다음 학생은 나야 ㅎ
qhruw34:줄서라 뒤지기 싫으면
노르드발닦개:줄은 무슨 유입새끼가 ㅡㅡ
난 스벅때 떠올라서 교육 시작하자마자 죽이고 시작할줄알았는데; 뭐임 왜케 멀쩡하게 잘가르침?
ㄹㅇ 유익한 교육방송이잖아... 나 무서워
이러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거 아니야...?
tempfy6:뭐가 폭발함;
나랑달:방장 원래 잘가르침. 스벅때도 보면 핵심이 뭔지 잘 집은 거잖아. 실제로 스벅도 룩으로 다시 올렸고ㅇㅇ 이론 빠삭한거 다 보임
서윗각설:이걸로 10년차 나이트폴 씹고인물 가설이 더 설득력을 얻었음. 단기간으로 쌓일 이론이 절대 아니다.
kapuan:군필여고생 음해 ㄴ
꺆뀨륚띠:그냥 추첨된 시청자 멘탈 약한 거 뻔히 보이니까, 멘트 강도도 낮추신 거 같아요. 멘탈 튼튼한 스벅하고 할때랑은 정반대인거보니까 상대 보면서 맞추시는 듯.
나랑달:방장한테 그렇게 스윗한 면이 있었음? 걍 무친련인줄
냥냥코로:언니는 언제나 착하고 스윗해
센세한테 뚜까맞고 쭈구리돼서 웅얼거리는거 ㅈㄴ 웃기네ㅋㅋㅋㅋ 센세 말듣고 방패올리는 것도 개찐따같음
저런 애들이 타격감 좋아서 학창시절에 일진들 샌드백이란 말이야 ㅋㅋ 닉도 현실반영아니냐??
어라... 왜 눈물이?
검방커신:배빵이 아직 검달고 있는데 님 죽을듯 ㅋ
smatafuc:ㄹㅇ??? 아니 일일교육아니야?
검방커신:센세가 귀찮아서 그냥 냅둔듯
antlr98:너무 뭐라 하지 맙시다. 선생님도 비하발언은 칼 같이 밴했습니다.
smatafuc:동질감느껴서 그래...
배빵이 목소리 좀 그렇긴 했는데 무슨 인신공격을 해; 유입 많아지니까 이상한 데서 몰려오나
센세 중간 중간에 차단 엄청 하더만. 나 그렇게 밴 많이 하는거 처음봤음... 배빵이 관리자 받는 거 보고 나도 피꺼솟하긴 했는데 진짜 관리자 필요할지도?
화살한방울:ㅈㄴ 심함 원래 적당히 줄타면서 돌리는 맛이 있었는데.. 추첨 당첨된 시청자한테 쌍욕박는 새끼들이 있어ㅋㅋ 다 모가지 쳐내야됨
피셔맨87:이게 다 피셔맨을 안하니까 그런거임. 낚싯대 몇번 휘저어주면 병신새끼들 싹다 물갈이되는데
아이도:그건 병신새끼들이 아니라 전부 갈아엎는 해일이에요 이 사람아;
cjqwk77:그갤에서 좌표찍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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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벅:선생님 저한테는 그렇게 모질게 구셨으면서
스벅:이번 학생한테는 왜 그리 친절하신가요?
Nord:스벅님은 멘탈이 튼튼해서 두드릴수록 강해지잖아요. :)
스벅:???
스벅:저도 한 번 더 가르쳐주세요. 룩 하위티어에서 방황중이에요.
Nord:댓글 다세요.
스벅:ㅡ,ㅡ 사람이 정이라는게 있는데... 사제지간의 연이 있지 않습니까
Nord:
Nord:새치기로 논란되고 싶으신가요.
스벅:네.
스벅:어차피 이미 논란 졸래 많아서 한두개 늘어난다고 지장없어요 ㅎㅎ
N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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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자체는 꽤 반응이 괜찮았던 것 같다.
방송에 대한 반응이야 내 게시판을 보기만 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로 자신도 교육을 받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저 정도면 극찬이라고 봐야지.
나도 궁금한 게 많았다. 일주일 뒤, 아니면 한 달 뒤.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배운 저 사람이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 극적인 변화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비숍만 올라가도 그게 어딘가.
담배빵과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반응이 참 대단했다. 뭐가 그리 큰 일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언성을 높이자 찢어지는 마이크에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그래도, 제법 괜찮은 마무리였던 것 같은데.
사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분탕, 악질... 뭐 과장 좀 보태면 역병 내지는 메뚜기떼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아무튼 채팅창을 어지럽히는 종자들이 너무 늘어났다. 그냥 시청자가 많아서라기 보다, 비율 자체가 증가한 느낌이다. 어디서 좌표라도 찍었나.
오늘은 특히 그 정도가 심했다. 소통 방송 이후로 채팅창을 더 의식하게 돼서 그런걸까. 아니, 다시보기로 이전 방송을 볼 때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건 내가 무시하고 안 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시청자들 중 대다수는 채팅을 치면서 방송을 보기 마련이다. 물을 흐리는 종자가 많아지면 강 전체의 생태계가 망가진다고. 그렇게 보면 역병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추첨으로 선정된 시청자에 대한 비난이 문제였다. 말이 어눌하다거나, 목소리가 찌질하다는 둥... 원색적인 비난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저런 말을 듣고 상처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채팅을 보지말라는 말은 교육에 집중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저런 채팅을 보면 멘탈이 나갈 게 뻔하니까. 방송이 끝나고 나눈 대화를 생각하면 멀쩡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난 중간에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도 했다.
이래서야, 정기 컨텐츠고 뭐고 안 하는 게 낫겠는데.
방송이 급속도로 팽창한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건, 이전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어그로라는 건 비단 인터넷 방송 뿐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성공에 따라붙는 징표라고도 볼 수 있겠지.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는 소리였다. 주목 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건, 존재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과 같다. 그냥 내뱉는 말 한마디에도 내가 느끼지 못할 뿐 무게가 실린다. 어디를 가나 굶주린 하이에나 떼의 노림을 받는 덩치만 잔뜩 커진 초식동물.
동전의 양면이다. 관심종자로서 존재 의미가 충족됨과 동시에 늘어난 무게추. 부담감.
배부른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관심을 털어내는 법... 주목을 덜 받는 법...
내일은 방송 안 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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