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74 일단 다 닥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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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방송. 그건 개인 방송인으로써 자리 잡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법이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이 방송 저 방송을 오가는 시청자들을 단번에 붙잡아 두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규칙적인 방송 시간으로 그중 일부라도 붙잡아두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인식을 심어두는 정도로 족했다. '아, 얘는 늘 이 시간에 방송을 하는 구나.'라는 작은 인식. 그걸로 물꼬가 트이면 그 때부터 하나 둘 시청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종래에는 습관처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정해진 시간만 되면 자연스레 그 방송을 시청하게 되는, 일상 생활 속으로 스며든 습관.
물론, 단순히 방송시간만 규칙적으로 유지한다고 많은 시청자가 모여드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다. 인터넷 개인 방송에 그보다 중요한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가.
방송인의 컨텐츠, 매력, 개성, 재능... 너무 많아 나열하기 힘든 것들을 전부 합쳐 결론 지으면 결국 방송의 재미였다. 시간이고 나발이고 재밌고 매력적인 방송이어야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그게 선행되고 나서야 규칙적인 방송시간이 의미를 갖는다. 재밌는 방송이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반복되면 정말 그 시간만을 기다리는 시청자가 생길 수도 있겠지.
그런데 어디에나 그렇듯이 예외가 존재한다.
규칙적인 방송 따위는 하지 않고도, 그냥 시청자들을 기다리게 만드는 방송인. 규칙적이기는 커녕 방송을 키지 않는 날이 더 많은 수준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러고도 방송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는 팬들이 존재했다.
도대체 얼마나 매력적이고 재밌길래. 극히 드문 유형이지만 방송을 키지 않아도 점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쯤되면 마치 명품 브랜드처럼, 줄어든 방송 횟수가 일종의 프리미엄을 만들지 않았나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노르드는 지금 자신의 방송에 프리미엄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방송을 키지 않은 지, 5일 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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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채팅="" 10창나는="" 이유="" 찾아왔다="">[186]
<게시판 관리자입니다.="">[97]
안녕하세요. 새로 노르드님 게시판 관리자로 임명된 Nord Love입니다. 노르드님 엘튜브 편집자 맞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최근 게시판 내 유저들 간의 갈등 및 다툼이 심화되는 양상이 자주 목격되어 이에 대한 규제를 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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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탕들 좀="" 꺼져="" 무슨="" 가면무도회냐?="">[72]
<노르드 관련="" 의혹="">삭제된 게시글입니다.
<이 텐련은="" 대체="" 방송을="" 왜안킴="">[79]
<그갤새끼들 다꺼져="">삭제된 게시글입니다.
<시1발 소방하러="" 등판해야될="" 주인이="" 불타는="" 집="" 방치하고="" 앉았네ㅋㅋㅋㅋㅋ="">[65]
<게시판 불타는거="" 보면서="" 술="" 한잔하고="" 있을듯="">[57]
<니들이 게시판="" 10창내두니까="" 방장이="" 방송을="" 안="" 켜는="" 거잖아="" ㅅㅂ="">[45]
<떡밥 진짜="" 사실인거="" 아님?="">삭제된 게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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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고:님
칼고:오늘도 방송 안해요? 방송 접었어요?
칼고:님 시청자들이 저한테 성화예요. 제발 데려가라고
Nord:ㅡㅠㅡ
Nord:안켜요.
칼고:아니 도대체 뭔데
칼고:진짜 방송 접어요?
칼고:뭔 사고쳤어요?
Nord:절 그런 사람으로 보지 마세요.
Nord:저는 결백합니다.
칼고:나 킹찍을때 고생한거 생각하면 당신 이미 죄인이야
칼고:답답하게 하지말고 말해보라고
Nord:지금 방송키면 시청자가 좀 줄어들까요?
칼고:???
칼고:존나 보겠죠
Nord:???
Nord:왜죠. 그동안 안켰는데
칼고:??? 그동안 안켰으니까 더 많이보겠지
Nord:아니 보통 떨어져나가지 않나요. 개미털기
칼고님이 메세지를 입력하고 있어요...
칼고:어이가 없네ㅋㅋㅋ 몸에 꿀 잔뜩 발라놨는데 며칠 숨었다고 개미들 떨어지겠냐?
Nord:뭔 꿀을 발라놔요.
칼고:님한테 붙은 타이틀을 생각해보라고
칼고:저결 우승자에 여성 킹 유저인데... 방송 좀 안킨다고 그게 어디 가겠어요?
칼고:뭔 지랄인지 모르겠는데 어차피 개미 안털리니까 걍 방송키세요.
Nord:ㅡㅠㅡ
Nord:님 저랑 낚시해야 되는 거 잊지마세요.
칼고:응 피셔맨 좆노잼이라 물려서 안할거야~
Nord:그럼 현실낚시하면 됨 ㅋ
칼고:??
칼고: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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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송킵니다="">New
지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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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조용했다.
평일 저녁 일곱 시. 하루 일과를 끝낸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몸에 쌓인 피로를 녹여내고 맞이하는 달콤한 휴식이다. 업무를 집어 던지고 여가를 시작하는, 하루가 저무는 시간.
반대로 인터넷 방송은 시청자가 늘어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노르드는 그 시간에 방송을 시작했다.
애초에 방송 시간이 제멋대로인 스트리머였다. 어떤 날에는 새벽, 다른 날에는 저녁, 심지어 아침에 켜는 경우도 있었다. 대회가 끝나고 방송을 재개한 이후로는 늘상 그랬다.
이 제각각인 방송 시간에 불만을 표한 시청자는 의외로 적었다. 그게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칼고와의 듀오를 시작하고 나서 방송시간이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방송을 하는 것보다, 언제든 방송을 켜서 오래하는 게 좋은 법이다.
킹으로 올라가기 위해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달렸던 방송이다. 길게는 열 세시간 연속으로 이어진 방송. 괜히 방송 시간을 가지고 불만을 표하는 시청자는 없었다.
그 기세를 살려, 교육 방송이라는 나이트폴 유저들이 환장할만한 컨텐츠를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시즌 킹 랭크를 당당히 달성한 여성 유저가 가르쳐주는 나이트폴 교육 방송이라니. 실제로 생방송이 진행될 당시의 반응도 좋았다.
일부 나이트폴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추첨에 당첨된 시청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다음 번엔 자신도 신청하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흥행으로 따지면 성공적인 컨텐츠가 된 셈이다. 누구나 지금이 노를 저어야 할 타이밍인 걸 알 수 있을 텐데.
다음 날 당연하다는 듯 방송은 켜지지 않았다. 환장하는 시청자들만 저컴 게시판에서 울부짖었다.
하루. 하루는 그럴 수 있다. 그 길었던 대회 기간의 공백을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니다. 게시판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들며 방송을 기다리던 시청자들이 다음 날을 기약하며 잠들었다. 애초에 성실과는 거리가 멀었던 스트리머이니 방송이 없는 것에도 그러려니 했다. 내일, 내일이면 켜겠지. 오늘은 엘튜브나 보다가 자야지 하고.
이틀째와 사흘째. 다음 룰렛을 고대하며 자신의 당첨을 상상하던 게시판이 점점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이쯤부터 게시판에 소위 분탕질이라 말하는, 근거 없는 이야기로 논쟁거리를 만드는 인간들이 대거 늘어나기 시작했다. 병신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사람과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나뉘어 게시판이 개판이 되어버렸다.
종래에는 관리자가 개입해 논란을 만드는 글을 밀어버리는 것으로 사태는 종결됐다. 그 와중에도 방송은 켜지지 않았다. 자정이 되어서는 다투던 시청자들이 대동단결해 방송을 키지 않는 게시판의 주인을 욕하기 시작했다. 말리던 관리자는 어느 시점부터 나서지 않았다.
나흘째. 이제는 분탕이 문제가 아니라 방송이 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분탕을 치기 위해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원래 방송을 시청하던 시청자들 사이에서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이상한 떡밥들 때문에 상심해서 방송을 키지 않는 것이다, 저 악질은 불타는 게시판을 보면서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냥 귀찮아서 안 키는 것이다... 개중에는 논란으로 제기되었던 요상한 떡밥이 정말 사실인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금방 다른 팬들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방송이 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안에 떠는 시청자가 점점 늘어났다. 아무튼 노르드가 방송 경력이 오래된 스트리머는 아니었으니까. 이러다가 사라져도 찾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닷새째. 게시판에선 다들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개소리를 늘어놓는 중이었다. 컨셉을 어떻게 잡았는지, 과거의 이야기를 생중계하듯이 떠들어대는 사람도 보였다. 마치 저결 대회가 진행중인 것처럼 중계를 달리는 모습이다. 몇몇 시청자가 글을 올리자 다같이 호응했다. 시간을 계속 거슬러 오르다 노르드가 방송을 처음 시작한 그 날까지 끄집어 올 즈음에,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관리자의 계정이 아니었다.
'Nord11'. 오늘 방송이 있다는 내용의 공지.
올라온 시간은 6시 57분.
방송이 켜지기 불과 삼분 전, 참 빨리도 올라온 공지였다.
쪼르륵
어두운 준비화면. 평소 노르드가 저스트 채팅을 할 때 사용하던 우주가 아니었다. 이전으로 돌아간듯, 특별한 설정이 없는 단순한 검은 화면이다. 마이크가 켜져있는지 액체를 따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병을 내려놓는 소리. 꿀꺽하는 소리까지 전부. 이전 방송과는 달리 꽤나 선명한 음질이었다.
채팅창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실시간 시청자를 표시하는 수치가 갱신될 때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5일 만에 방송을 켰다는 사실이 오히려 화젯거리가 되었나. 평소 방송을 할 때보다 더 급격히 늘어나는 모양새였다. 그걸 신경쓰지도 않는지, 방금 방송을 킨 노르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쪼르륵
다시, 무언가를 따르는 소리.
마이크가 노르드가 움직이는 궤적을 전부 포착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부스럭거렸다. 방송이 시작하자마자 들어온 시청자들과 새로 들어온 시청자들이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눈물을 흘리는 표정과 불꽃 이모티콘, 간간히 해명하라는 내용을 가득 담은 도배 문구가 채팅창 가속에 일조했다.
너무 빠른 탓에 종종 동작을 멈추는 모습이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한 줄짜리 채팅은 읽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때. 어두웠던 화면이 그제야 전환되었다.
저스틴 방송 설정을 변경하는 브라우저 창 화면. 갑작스런 화면 변화에 채팅창의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우스 포인터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멈춘 위치는 방송 제목을 변경하는 구간이었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하는 경쾌한 소리. 제목 변경을 클릭한 스트리머는 곧장 키보드로 손을 옮겼다. 기계식 키보드를 두들기는 타자음이 방송을 통해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King Nord, 손캠'
타자 치는 소리가 사라지고 적막이 남았다.
과부화를 일으킨 채팅창이 잠깐 기능을 멈춘 탓에.
반응이 돌아온 건 잠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