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 75 ­ 내 맘이야 (75/243)

〈 75화 〉 75 ­ 내 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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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캠.

인터넷 방송이나 게임 플레이를 녹화한 영상에서, 카메라를 통해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는 모습을 송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조작이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에서 프로급의 숙련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주고자 할 때 사용했다. 혹은 핵이나 대리와 같은 의혹이 생겼을 때 자신을 증명하는 용도로.

Nord라는 플레이어에 대한 의혹이 어디까지 굴러갔을까.

인터넷에서 루머라는 건 확실한 근거를 가질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흥미였다. 얼마나 대중의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지.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는 불특정 다수가 무슨 이유로 가십거리의 사실 여부를 파악하려 하겠는가. 재밌고 자극적이면 그걸로 족했다. 대중의 흥미를 끌만한 루머는 커뮤니티와 커뮤니티를 오가며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누군가 근거를 찾는 건 시간이 한참 지나 광기가 식어갈 쯤에나 가능한 일이다. 우선 근거 없는 소문이 퍼져나가는 게 먼저였다.

복잡한 정치 경제적 이슈보다 연예인의 스캔들이 훨씬 파급력이 강한 법이다. 그건 이제 상식의 영역이다. 어딘가에서 시작된 노르드에 대한 의혹도, 그와 비슷한 성격이었다.

노르드는 최근 나이트폴 결전 대회에 등장한 것으로 급격히 유명세를 부풀려 나갔다. 나이트폴처럼 고인물이 가득한 게임에 느닷 없이 새로운 유저가 떠오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아마, 노르드가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개성을 여럿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여성 유저, 스트리머, 시즌 킹 달성, 광전사라는 개성이 강한 빌드, 결전 대회 우승­

하나 하나 떼놓고 보면 그리 강렬하지 않은 요소들이다. 그런데 그걸 한 데 뭉쳐두면 이보다 특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여성 유저가 나이트폴 공식 대회에서 이렇게나 돋보인 적이 없던 것이다.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방송인들을 모아 진행한 이벤트 매치에서나 드물게 볼 수 있을까. 그마저도 랭크 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출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대일로 진행되는 고랭크의 결전 대회에서 우승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화제가 될만했다.

대회 우승으로 지펴진 불씨가 방송을 연료로 계속 타올랐다. 시청자는 시청자를 부르고, 때마침 킹 랭크까지 달성한 노르드의 이름은 이미 퍼질대로 퍼져 나갔다.

이렇게 노르드의 인지도는 급격히 불어났다. 이제 나이트폴을 플레이하고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유저라면 노르드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는 보았을 수준에 도달했다. 불과 한두 달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유명세는 온갖 논란의 기초가 되었던 탓에.

'노르드 대리 논란'이라는, 제목부터 자극적인 이 루머는 늦든 빠르든 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기된, 이른바 억지 떡밥이다.

한 번 굴러간 논란은 온갖 추측들을 흡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정작 논란의 당사자인 사람은 방송도 켜지 않고 잠적해버렸음에도.

혜진이 방송을 하지 않았던 5일이라는 시간 동안 논란은 오히려 더 비대해졌다. 그녀로써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별 것도 아닌 루머에 이토록 많은 관심이 쏠린 건, 혜진이 생각한 것보다 그녀가 훨씬 유명해졌기 때문일까.

방송을 계속하지 않고 사라진 걸 보니, 소문이 사실이었구나­라는 추측이 나오기 시작할 때쯤.

그녀의 방송이 켜진 건 그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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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Nord, 손캠.

방송 제목을 정하고 엔터를 치는 순간이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에, 마우스를 딸깍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방송 설정을 만지는 브라우저가 켜져 있는 상태였다. 갑자기 방송의 우측 상단에 작은 화면 하나가 추가되어 나타났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았던 화면이 금새 커졌다. 꽤나 선명한 화질이다. 곤색의 투박한 책상 위로 붉은 빛을 내뿜는 기계식 키보드와 무선 마우스가 자리 잡았다. 의도적으로 위치를 조정한듯, 모니터 위에 설치된 캠코더는 정확히 책상이 끝나는 지점까지 렌즈로 포착하고 있었다.

마우스와 키보드에 올라간 손이 창백할 정도로 하얗다. 화질이 좋은 덕에 창백한 피부 위로 드러난 푸른 핏줄이 눈에 들어왔다. 가늘게 뻗은 손가락이 키보드를 한 번 쓸어내렸다. 왼손 엄지가 괜스레 스페이스바를 두어 번 연타했다.

"잘 나오나요?"

방송을 켠 이후로 내뱉은 첫 번째 멘트였다.

짧은 한마디가 만들어낸 여파가 너무나도 컸다. 일시정지를 연달아 누른 것처럼 채팅창이 멈췄다가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도저히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스트리머가 방송 설정을 건드렸다. 슬로우 모드. 한 번 채팅을 입력한 사람은 정해진 시간 초 동안 다시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설정이다.

그걸로 그나마 잠잠해졌을까. 그럼에도 채팅창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덧 시청자가 만 명을 넘어섰다. 평소보다 시청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머뭇거리는 것처럼 키보드를 계속 쓸어내리던 왼손이 화면 밖으로 움직였다. 꿀걱­ 하고, 무언가를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 제가 캠도 사고 마이크도 바꾸느라... 조금 늦었네요. 잘 들리죠? 이거 꽤 비싼건데. 아, 도네이션 소리 꺼놨으니까 지금 주지마세요. 나중에 한 번에 읽어드리던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슬로우 모드의 효과일까. 갖은 도배와 이모티콘 채팅 사이로 느닷 없는 장기 휴방에 대해 성토하는 채팅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걸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보고도 외면하는 건지. 스트리머는 굳이 변명을 내뱉지 않았다.

어지럽기 그지 없었다. 손캠에 대한 이야기, 밑도 끝도 없이 해명하라 외치는 도배문, 휴방에 대한 성토, 불 모양의 이모티콘... 스트리머는 어떤 채팅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바로 마우스를 움직여 게임 하나를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 애초에 채팅창에 신경을 쓰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바탕화면을 방황하던 마우스 포인터가 도착한 곳은 한 아이콘 앞이었다. 기사 한 명이 검을 들고 서있는, 지금 방송을 보는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익숙할 아이콘.

나이트폴.

마우스를 클릭하는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곧장 게임이 실행됐다.

하얗고 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유려하게 움직였다. 어디 한쪽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키보드 좌측에서 움직이던 손가락이 길게 뻗더니 멀찍이 떨어진 자판을 누르고는 다시 돌아왔다. 빠르게 움직이는데도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연타가 거의 없기 때문일까. 이어지는 동작이 부드러웠다.

그에 따라 화면 속 거대한 대검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비슷한 형태의 대검을 든 적과 마주한 상태였다. 달려드는 기세를 그대로 담아 검을 내리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뒤로 물러서 검을 횡으로 짧게 휘둘렀다.

게임의 우측 상단에 위치한 캠 화면에서 창백한 양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감도가 높은 건지 마우스를 쥔 오른손이 조금만 움직여도 화면이 크게 돌아갔다.

마우스가 우측으로 틀어졌다. 적과 대치하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오른쪽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이미 코앞까지 도달한 칼 끝이 대검의 검신에 닿아 튕겨져 나갔다. 패링에 성공하고 곧장 시점을 되돌린 노르드가 뒤로 물러나며 대검을 받아냈다. 그 짧은 순간에 마치 피아노 건반을 연주하듯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다리를 향해 낮게 깔아 휘두른 대검이 적의 검과 마주했다. 검이 맞닿기 전 공격을 취소하고 검을 회수한 노르드가 좌측으로 스탭을 밟았다. 대치 상황을 노려 맹렬히 돌진하던 다른 플레이어가 팀원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린다. 어느샌가 도착한 아군 궁병이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대치구도에서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오른손이 휙 돌아가며 주변 상황을 읽어냈다. 왼손은 습관적으로 키보드의 컨트롤 키와 't' 키를 동시에 입력했다. 끝에 핏방울을 머금은 대검을 광전사가 천천히 쓸어내렸다.

다시 광전사가 달려들어 적 플레이어를 모두 베어낼 때까지. 두 손은 분주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붉은 평원에 승리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랭크 게임 한 판이 끝난 뒤였다. 데이터가 표시되는 결과창에서 킹을 상징하는 체스말이 나타났다. 표기되는 점수는 이미 천 점을 넘어선 상태였다.

현재 나이트폴 랭크 300등의 점수가 800점이라는 걸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점수였다. 아마 100등에 근접하거나 포함될 정도의 수치였다.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줄곧 어수선했던 채팅창이 다시금 떠들썩해졌다.

"사람이 많네요."

채팅창을 훑어보더니 내뱉는 말이었다.

게임을 하는 내내 줄곧 이상한 소리만 내뱉던 인간이다. 소통은 쥐뿔도 없었다. 애초에 소통이 가능한 채팅창은 아니었으나, 게임이 시작된 이후로는 도배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음에도 그랬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는 채팅창에도 별다른 멘트 없이 진행된 방송이다. 해명을 요구하는 기다란 도배 채팅을 차단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게임을 실행하고 매칭을 잡았다.

스트리머를 두들긴다는 타격감이 없었다. 그쯤되면 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채팅창도 조금은 얌전해지기 마련이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잔뜩 모여든 시청자들이 제각기 다른 마음을 품고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채팅창의 양상을, 극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비난이 환호로 바뀌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적과의 첫 대치 상황. 키보드 위에서 현란하게 춤추는 왼손과 광전사의 움직임을 봤을 때 이미 반전은 완성되었다. 나락에서 극락을 오가는 엄청난 낙차. 그건 차라리 희극에 가까웠다.

실시간으로 채팅창의 분위기가 뒤바뀐 것이다. 비꼬는 문구와 불타는 이모티콘이 환호성으로 변화했다. 장렬한 처형으로 적을 처치하고 난 뒤 웃음소리를 흘리며 카메라에 대고 손을 흔들었을 때에는, 슬로우 모드임에도 불구하고 채팅창이 마비되었을 지경이었다.

단 한 판의 랭크 게임, 단 삼십 분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한마디 멘트에 뜨겁게 반응하는 채팅창이다. 그걸 보고 있는 건지, 잠깐 뜸을 들이던 노르드가 말을 이어나갔다.

"뭐 따로 덧붙이고 싶은 건 없네요. 궁금하신 것도 대부분 해결된 것 같고... 얼굴? 내가 얼굴을 왜 까요. 그냥 영원히 궁금해하세요. 상상 속의 노르드를 그려봐."

안 그래도 많았던 시청자가 게임을 하면서 더 불어난 상태였다. 슬로우 모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채팅창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거 슬로우 시간 더 늘러야 되나. 음... 손 예쁘다구요? 별 소리를 다 듣네요. 아마 상상 속의 노르드도 예쁘겠어. 너무 고마워. 이게 마지막 손캠일수도 있으니까 잘 봐두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들이댔다. 지나치게 렌즈에 가까이 접근한 탓에 캠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왜 마지막이냐구요? 이거 조금 부담스러워요.

응... 그게 아니고­ 이거 어차피 내 맘이잖아. 그냥요. 그냥 안 킬래요. 불 지피지 마세요.

불 지피는 것도 당신들 맘...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열심히 태우세요, 그럼."

채팅창이 불길로 가득 찼다.

게임으로 눈을 돌려 전적을 확인하던 노르드가 돌연 나이트폴을 종료했다. 당연히 다음 매칭이 이어질거라 생각하던 시청자들이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다. 불이 번지던 채팅창이 금새 물음표로 전환되었다. 거기에 아무런 반응도 내비치지 않고, 노르드의 마우스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수의 시청자들이 불안감을 표출한 시점이다.

검게 물든 화면 사이로­ 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

로딩이 끝난 화면에서 새로이 실행한 게임의 타이틀이 표시된다.

The Fisherman

여전히 켜져 있는 손캠 화면에서, 희고 가는 손이 브이 자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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