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 77 ­ 개미털기 (77/243)

〈 77화 〉 77 ­ 개미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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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선, 과유불급.

오래된 격언이라도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모든'이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진리겠지. 결국 경우에 따라 적절한 격언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많은 게 좋은지, 적당한 게 좋은지.

이 경우에 내 대답은 확고했다. 적당한 게 낫다. 사실 나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랬다. 그런 걸 보면 사람마다 선호하는 바가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일정 선을 넘어가면 문제 투성이다. 대부분의 경우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감당할 수 없게끔 변했다. 항아리나 그릇 따위로 생각하면 될까. 일정량 이상을 초과하면 아무리 물을 들이부어도 수용하지 못하고 넘쳐 흐르기 마련이다. 적당한 수준으로 줄이는 게 옳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덜어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채팅창의 작은 불만 정도는 무시해야 된다고.

[]

[이건 또 뭔데요 ㅅㅂ]

[선생님... 제발 레파토리를 넓혀가지 마십쇼]

[나이트폴 언제킴?]

[???]

[캠켜주세요]

[아ㅋㅋ 이런다고 내가 털릴줄알고?]

[보통 센세가 이기던데]

[꼬우면 나가~ 미개한 개미새끼들아]

재즈 풍의 음악. 비교적 간단한 멜로디 라인이라 떨어지는 노트도 가벼웠다. 원래 시작은 이렇게 간단한 게 좋다.

새로운 난이도가 해금됐다. 이제야 별 세개. 꽤나 개방이 까다로운 게임이다. 그래도 노래를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맛이 쏠쏠했다. 죄다 처음 듣는 음악인 것도 신선한 맛이 있는 거 같고. 세월이 잔뜩 쌓여서 추억 섞인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괜찮았지만, 온통 새로운 것들만 가득한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법이지.

역시 리듬 게임은 음악이 중요하지. 다른 건 다 부차적인 문제였다.

[노선생 리게이였어?]

[이딴겜할거면 손캠이라도 켜주세요]

[개미털기 방역중입니다. 다 꺼지세요.]

[낚시에 리듬게임... 이 여자 '진짜'다]

[뭔 끔찍한 혼종이냐]

얼추 예상한 반응이 흘러나왔다. 손등으로 무언가가 타고 흐르는 게 간지러웠다. 손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흘끗 시청자 수를 바라본다. 역시 이전에 비하면 과할 정도로 많았다. 방송을 켜자마자 소통도 없이 바로 리듬 게임을 시작했는데도.

하기야, 방문 유저가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저스틴 커뮤니티에도 상주하는 시청자가 두 배 이상 뛰어버린 상황이다. 그래도 어그로가 줄어들었다던 주연의 말이 기쁘게 와닿지 않았다. 어그로 중 일부가 고정 시청자로 변한 게 아닌지. 아니, 출신 따져가며 유입을 배척할 생각은 없었지만.

물꼬가 트여도 너무 트였다. 이 정도면 논에 물이 원활히 들어오는 수준이 아니라 잠기게 생겼다고. 적당선을 넘어선 관심은 온갖 분탕과 논란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이미 한 번 느껴본 적이 있지 않나. 넘친다고 억지로 논을 넓히기 보다는 물을 덜어내는 편이 부작용이 적겠지.

그래서 선택한 게임이­ 리듬 게임이었다.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의 대표 주자. 그런 주제에 집중력을 요구하니 멘트를 치기도 힘들었다. 노래 하나가 대강 3분에서 5분 정도의 런타임으로 진행된다. 멜로디에 맞춰 뚱가 뚱가 떨어지는 노트를 치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가는 것이다.

방송을 켜기 전, 저스틴을 둘러본 결과 카테고리도 없었다. 조금 오래된 게임이긴 했지. 그보다 방송용 게임이 아니었다. 그게 좋았다.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뿌리는 듯한 게임.

또 한 곡 완주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방송시작한지가 언젠데 이제 첫멘트???]

[안녕하세요]

[나이트폴 켜라]

[차라리 낚시를 해주세요]

[리듬매니아가 뭔데 씹덕년아]

"어제 생각해봤는데요. 여러분들이 낚시를 너무 싫어하셔서... 시청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다른 게임을 찾아왔습니다."

[?]

[지 듣고 싶은것만 쳐듣네]

[언제부터 시청자 말을 들었다고?]

[나이트폴을 키라고 ㅅㅂ 무슨 리듬겜을 가져와]

[됐고 캠이나 켜주세요 뭔겜하든 캠만 켜주면 상관없으니까]

[와씹 이거 나 초딩때 하던건데]

[만명이 개굴개굴 개나리 노래 들어야겠냐?]

[이거 저작권 머시기머시기 위반으로 신고합니다]

불타는 채팅창. 그래도 어제에 비하면 모닥불처럼 따뜻한 맛이 있었다. 휴방을 할 때는 이게 그렇게 보고 싶었다니. 멀리 있을 때는 그립고 가까워지면 지겨워지는 꼴이 권태기나 다를 바 없었다.

표면에 물기가 맺힌 컵을 들어올렸다. 얼음이 다 녹았나. 묽게 탄 아이스 커피가 이제는 맹물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커피라기보다 커피향을 첨가한 얼음물에 가까운 것 같은데. 냉동실의 얼음 틀이 너무 작은 게 문제였다. 작은 얼음은 너무 빨리 녹는다. 그렇다고 진하게 타기는 또 싫고... 어려운 고민이야.

<스벅뒤통수가격하는노르드 님이="" 10,000원="" 후원!=""/>

­게임으로 쥐흔 안할테니까 손캠만 켜주세요 선생님.

짜르릉, 하고 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들어도 참 직관적인 사운드다. 뒤 따라 생소한 TTS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쇳소리가 가득 섞인, 할아버지 목소리. 별 게 다있네.

"스벅뒤통수가격하는... 님, 후원 감사합니다."

최근 느끼는 일이지만 악질적인 닉네임이 많아졌다.

딸깍­

"켜드렸습니다."

딸깍­

[???]

[씨,,발 장난해?]

[나는 봤음ㅋㅋ]

[단가 맞추라잖아]

[만원에 일초...? 노가다 뛰러갑니다]

"후원은 정말 감사합니다. 칼고... 어쩌구님. 제가 캠을 켜면 공황 발작이 일어나서요."

[제발]

[어제 이만명데리고 드리블치시던데 공황발작이요?]

[발작을 하는거 같긴해]

다음 곡. 목록을 내리자 이어폰을 타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리듬 게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자 음악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듣는 게 분명한데도 곡의 전개가 예상되는 느낌이다.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노트가 엄청 떨어지겠는데.

노래 자체는 취향이 아니었지만 게임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많이 떨어지면 치는 맛이 있거든.

<노르드발닦개 님이="" 1,000원="" 후원!=""/>

­이 줫망겜은 언제까지 하시나요?

개미가 털릴 때까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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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하~]

[오늘 일찍 오셨네용]

[오늘 뭔겜하시지]

[와꾸살아있네 역시 남캠 ㄷㄷ]

칼고, 성현의 손이 마우스를 툭 건드렸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시작한 방송이다. 정규 방송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시청자가 빨리 들어왔다. 이럴 때마다 새삼스럽게 규모가 커졌다고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그 원인인 노르드가 함께 떠올랐다.

어제 나눴던, 대화와 함께.

"오늘은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종겜 방송을 할 겁니다. 킹도 찍었으니까 잠깐 여유 좀 부려야죠. 어제 게임 몇 개 받아놨거든요? 세 개 정도 되는데 시간 좀 걸릴 것 같아서 일찍 왔습니다."

채팅창의 반응은 역시 호의적이었다. 나이트폴을 주력 컨텐츠로 삼는 칼고였지만, 종합 게임을 겸업으로 시작한지도 꽤 됐다. 매번 나이트폴 랭크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가끔씩 환기를 위해 진행하는 다른 게임들은 그의 시청자들도 반기는 컨텐츠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게임을 막힘 없이 풀어나가는 칼고의 타고난 게임 센스도 거기에 한 몫 하고 있겠지. 아무튼,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이 숨막히는 플레이보다는 시원시원한 플레이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이른바 종겜데이. 보통 킹을 달성하고 시즌이 거의 끝나기 직전에 추천받은 게임들을 한 번에 플레이하곤 했는데, 이번 시즌은 날이 빠르게 잡힌 셈이다.

노르드라는 악랄한 인간의 채찍질이 그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만들었다. 먼저 킹을 찍고 도망가버린 이후로 랭크 게임에 몇 시간을 갈아넣었던가. 처절한 연승으로 그의 점수는 이미 천 점이 넘은 상태였다. 이것도 이례적이라면 이례적인 일이다.

그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아무리 칼고라고 해도 그 짧은 기간에 그렇게나 많은 랭크 게임을 플레이하면 지치는 법이다.

그래, 힐링이다. 힐링. 그걸 기준으로 선정한 게임이다. 추천한 사람이 영 신뢰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아무튼 선물받은 게임도 있었고.

칼고는 망설임 없이 게임을 실행했다. 아직 화면 전환은 하지 않은 채였다. 무슨 게임을 골라왔는지도 공개하지 않았으니 시청자들은 기대감에 차 있을 게 뻔했다.

채팅창을 훑어보면 게임에 대한 온갖 추측들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팬카페의 게임 추천 게시판에서 언급되었던 게임들이 자주 튀어나왔다. 매번 낚시 게임으로 시청자들을 낚아대던 노르드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그걸 닮으면 안 되지.

그리고, 타이틀이 뜨는 순간이다.

[????]

[아 그 낚첩련이 독을 풀었네...]

[피셔맨ㅋㅋㅋㅋㅋㅋ]

[노르드 이년!!!]

[뭔겜인데 반응이 이래용??]

[있음 저스틴에서 한명만하는겜]

[나 어지러워]

인간을 낚아올리는 쾌감이란 확실히 중독될만한...

표정 관리를 해.

방송을 의식해서 얼굴을 쓸어내린 칼고가 다시 마우스를 붙잡았다. 이 게임은 흔한 오프닝도 없었다. 게임을 실행하고 잠깐의 로딩이 끝나면 나오는 메인 화면, 잔잔한 물소리가 귀에 익었다. 노르드의 방송에서 꽤나 자주 접할 수 있는 소리였으니 익숙할 수밖에.

처음 보는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는 시청자와 이미 낚시라면 진저리치는 시청자들이 섞여들어 채팅창이 시끌벅적했다. 내색하지 않고 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검은 화면에 물이 번지는 로딩 화면이 제법 인상적이다. 어떤 인간이 그리도 열심히 영업하던 게임이 아닌가.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내심 기대감이 생겼다.

인디 게임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 게임은 시작부터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다. 그 흔한 툴팁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남성과 대화 몇 마디를 나누더니, 낡은 낚싯대 하나를 넘겨주고는 바로 길가로 내던져졌다. 낚시 게임을 왜 또 쓸데없이 일인칭으로 만든 건지. 세상에 덩그러니 버려진 기분이다.

상황 파악이 먼저였다. 한글 패치가 있을 턱이 있나. 그리 훌륭하지 못한 영어 솜씨로 대화 몇 마디를 번역해서 맥락을 파악할 뿐이었다. 하나라고 있는 NPC는 똑같은 말만 내뱉었다. 대충, 저 방향에 하천이 있다는 내용. 다르게 할 일도 없으니 정해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걸로 대회를 연다고? 정신 나간 년.

칼고는 걸었다. 아니, 뛰었다. 별로 공들여 만든 것 같지도 않은 길이 생각보다 길었다. 보통 튜토리얼로 가는 길은 30초면 도착하는 법 아닌가. 상식을 철저히 박살내는 훌륭한 게임이다.

스태미나가 있다는 사실은 코미디였다. 낚시... 낚시를 할 때 필요한 모양인데. 뛰는 것까지 구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제 슬슬 이 게임에 멀티 플레이가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지경이다.

"진짜 노르드 같은 게임이네..."

중얼거린 멘트에 부정하는 채팅이 없었다.

한참을 걸려 도착한 하천은 나름 그럴싸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빈말로도 훌륭한 그래픽이라 말할 수 없지만, 느낌을 잘 살렸다고 해야 할까.

허리춤까지 자라난 풀들을 헤치고 나가 하천과 마주하는 순간. 따스한 햇살이 물에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이다.

곧장 낚시를 하려고 자리를 잡았다. 역시 친절한 기능 따위는 바라기 힘든 게임이다. 꽤 넓은 하천에서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낚시 지식이 전무한 칼고로써는 그냥 물가에 가까이 붙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 설마 위치 때문에 고기가 안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불명확한 인터페이스를 보고 낚싯대를 꺼내들었을 때였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 일인칭 시점에는 덩그러니 손에 들린 낚싯대만 보일 뿐이었다. 낚시를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뭐지.

아, 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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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개미털기 멈춰]

[선생님... 방송키고 한시간동안 리듬게임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전장으로 돌아와주세요]

[보다보니까 재밌는것같기도함]

시청자가 아직도 많았다. 지독하게도 리듬 게임을 시청하면서까지 내 방송에 남아있는 것이다. 대체 얼마나 나이트폴을 기대하고 있는 건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채팅창은 여전했다. 뭔가 감화된 것처럼 리듬 게임을 옹호하는 사람이 한두 명씩 늘어나는 모습이다. 피셔맨을 할 때와 비슷한데.

그래도, 게임 하나만 줄창하면 나도 질리니까.

"이거 막판 할게요."

환호성을 내지르는 반응들이 재밌었다.

치던 곡을 완주하고 게임을 종료했다. 차례대로 클리어하다 보니 진도를 많이 빼지는 못했다. 당분간 방송의 오프닝은 저 게임이 될 것 같은데. 회전이 빠른 특성 상 중간 중간에 끼워 넣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이트폴을 연호하는 도배가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전장이 당신을 기다린다'라. 감명 받을 정도로 멋있는 문구네.

다음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방송 카테고리부터 변경했다. 바꾸지 않으면 규정 위반 사유가 되니까, 항상 먼저 신경쓰는 게 좋지.

Category:임진왜란 ~ 조선의 역습

이게 왜 저스틴에 등록되어 있는지는 나도 몰라.

갈고리로 도배되는 채팅창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이게 옳게 된 채팅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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