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 78 ­ 당근을 줄게 (78/243)

〈 78화 〉 78 ­ 당근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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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다시피 나는 게임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당연히 특정 장르를 선호하는 경향은 있었지만, 장르만 보고 게임을 거르는 경우는 없었다는 말이다.

넓디 넓은 게임의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장르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심해의 깊이에는 끝이 없으니까. 계속 밑으로 가다 보면 일반인은 범접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기야 하겠지. 그 정도로 매니악한 장르라면 나라도 먹다 뱉을 수 있겠다.

아무튼 장르를 가리지 않는 특성상 나는 정말 많은 게임에 손을 댔었다. 내 인생에서 플레이한 게임 목록을 나열하면 꽤나 볼만할 것이다. 혀만 가져다 대고 뱉은 게임들도 포함한다면 전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길어질수도 있겠다.

내 나름의 취향은 확고했다고 자부한다. 남들이 극찬하는 게임도 입맛에 맞지 않아 금방 때려치우는가하면, 뭔 듣도 보도 못한 게임에 빠져 몇 날 며칠을 허비하는 일도 있었다.

일일히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기준점이 있는 것이다. 그게 충족되면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파고들고는 했다. 게임을 완주하고 나서 세이브를 삭제하고 다시 시작하는 일도 빈번했지. 그 기준이 뭐냐 물으면 나도 모른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게임이란 건 해보고 재밌으면 그만이지.

방송을 시작하고 하나 걸렸던 건 방송을 위한 게임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게임 방송 타이틀을 달고 있다고 아무런 게임이나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시청자가 있어야 될 테니까.

나이트폴을 가장 먼저 플레이했던 건, 그게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라는 사실도 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인지도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나이트폴로 이름을 알리지 않고 피셔맨 방송부터 시작했다고 상상해보면... 누구나 알만한 결과가 기다렸겠지. 종합 게임 방송이라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게임의 인지도가 부족하다면 방송인의 인지도로 그걸 메꿔야지.

개미털기를 위해 게임을 고르는 과정은 그래서 재밌었다. 인지도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었으니까. 나도 게이머인 이상 보는 맛이 떨어지는 게임이 뭔지는 아는 것이다.

예컨대 턴제 전략시뮬레이션이나 리듬 게임 같은, 소위 하는 사람만 재밌는 게임들. 그러나 이것들을 포기하는 게 얼마나 아쉬운지. 장르마다 숨겨진 명작들이 또 얼마나 많겠는가.

또 내가 모르는 게임들도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이걸 어떻게 참겠냐고. 그래서, 괜히 신이 난 상태로 생각 없이 게임을 고르다 보니... 어느덧 내 보관함에는 분류가 필요할 정도로 많은 양의 게임이 들어차 있었다는 말이다.

뭐, 만족했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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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니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는데요 선생님]

[눈나... 진짜 32세였어??]

[이건 뭔게임이냐ㅋㅋㅋㅋㅋ]

[골때리는련이네 이거]

[와,,, 추억 돋네요 ㅎㅎ]

[타이틀 폰트 실화냐]

[도트그래픽ㅋㅋㅋ 감성보소]

"저도 잘 몰라요. 재밌어보여서 가져온 거라."

[대체 어디가 재밌어보임?]

[임진왜란은 ㅇㅈ이지]

[이걸 모르네 급식련들 ㅉㅉ]

[학식인데 듣도보도 못했는데요;]

[이런걸 어디서본건데... 아니 카테고리는 왜있음?]

[선생님 게임 취향 보면볼수록 아저씨같아요]

왜, 가끔 고전 게임이 생각날 때가 있지 않나.

임진왜란 ~ 조선의 역습.

타이틀부터 진하게 풍기는 묵은 향기가 일품이다. 궁서체의 폰트는 이게 게임이 아니라 사극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쓸데없이 비장한 느낌의 배경음이 그런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반쯤 짓누른 듯한 도트 그래픽이, 타이틀 뒤쪽에서 시선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정말 무슨 게임인지 모른다.

게임의 재미는 미지의 상황에서 극대화되는 것이다. 그건 비단 랜덤 인카운터가 있는 오픈 월드 게임에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게임을 접할 때면, 보통 게임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정면에서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시절에 뭔가 알아보겠다고 인터넷 서핑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략법은 알지도 못하고 맨땅에 박치기하는 게 보통이었지.

시작하자마자 언어 장벽에 막혀 버둥대기도 했다. 일본어 게임이라도 하는 날이면 매번 머리를 부여잡고 진행했던 것이다. 아이템 그래픽이 구현되기도 전이라 그림으로 판별할 수도 없었다. 한자와 읽을 수 없는 일본어로 범벅된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하나 하나 사용해보는 맛이란. 겪어본 사람만 아는 일이다.

나이든 사람 특유의 추억 보정일 수도 있지만, 그 때는 그 모든 과정이 재밌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전 조사를 안 했다. 그런 재미를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게임을 고를 때 간략한 소개 영상만 참고했을 뿐이다. 지금 실행한 건 저 강렬한 제목에 이끌려서 구매한 게임이다. 오래된 게임이라 그런지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지.

"아까 전장을 보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어떤 개같은 새끼야]

[나이트폴 보고싶다는 채팅은 이만개가 넘습니다 선생님]

[이것도 중세 전쟁물이긴해]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 느끼는, 작은 설렘이 감도는 와중이다. 바로 타이틀 밑에 있는 시나리오 플레이를 클릭했다.

추억이 샘솟는 비트음과 함께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

온누리는 평화에 잠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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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해, 안온한 평화에 취한 조정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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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백성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자는 당신 뿐입니다.

~

[와ㄷㄷ 오프닝 개쩔어]

[뭘쩔어 ㅅㅂ 텍스트밖에안나오는데]

[일어나세요 용사여]

[걍 순신이형한테 맡기고 나이트폴로 떠나죠]

최근 게임과는 사뭇 다른,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오프닝이다. 부족한 연출을 비장하고 웅장한 음악으로 대체한 모양이다. 검은 화면에서 텍스트가 지나가는 내내 흘러나오는 배경음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타이틀에 걸맞게 역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사실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은 아니지. 이런 게임에서 스토리는 감초같은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갑자기 전쟁터로 내던지는 것보다 이렇게나마 서사를 부여하는 쪽이 몰입도가 높았으니까.

아주 간단한 서사였다. 왜란 직전의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조선군의 이름 없는 장군 역할이다. 아마 휘하의 병사들을 지휘해 몰려드는 왜적을 막아서는 내용일까.

로딩이 완료되었는지 스크립트 끝으로 작은 창 하나가 나타났다. 그걸 클릭함과 동시에 화면 전체를 구름이 뒤덮었다. 역시나,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배경음. 아무튼 음악 하나는 훌륭한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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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를 따라 활을 든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서른은 될까. 평지와 달리 조금 구겨진 듯한 텍스쳐는 산길을 표현하는 모양이다. 이전에 비하면 궁병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느린 속도로 나아갈수록, 어두웠던 맵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시야 끝자락에 붉은 형체가 포착됐다. 지형의 고저차 때문일까. 저쪽은 아직 궁병의 움직임을 확인하지 못한 모습이다. 미동도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어느 순간 적을 가리킨 마우스 포인터가 검 모양으로 변하고.

붉은 형체의 머리 위로, 화살 세례가 떨어졌다.

화살이 떨어지는 즉시 붉은 형체가 반응했다.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무리였던 모양이다. 화살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부터 쇄도하는 화살을 피해내지는 못하고, 흩어진 개체가 하나 둘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또 다른 무리가 등장했다.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보고 궁병의 위치를 파악했을까. 활을 들어올려 응사했다. 대부분의 화살이 고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이대로면,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두 개의 무리가 몽땅 전멸할 기세였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마쳤는지 붉은 무리가 후퇴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기습으로 대열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쏟아지는 화살비에 추스릴 시간을 벌지도 못하고,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모습이다.

사거리 내에서 모든 형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화살비가 멈췄다.

살아있는 존재는 없었다.

"이게 언덕 탱크거든요."

[상대 셔틀안쓰고 뭐함?]

[무지성 궁병러쉬 무엇]

[창병 뽑으라는 새끼들 다 나와ㅋㅋ 그딴게 뭐가 필요함. 화력으로 밀어버리면 되는데]

[아까 앞라인없어서 사무라이한테 갈린거 기억안남?]

[닥쳐 선생님이 그렇게 멍청할리가 없는데 ㅉㅉ]

[이악물고 궁병만 뽑아서 깨네]

[상남자 노르드는 어디가고 궁병만 뽑는 씹게이가..]

...반응들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런 게임은 유닛을 하나로 통일해서 밀어버리는 게 로망인 법인데.

떼거리로 궁병을 뭉쳐두면 화살이 쏟아지듯 떨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어설프게나마 카이팅도 되고. 물론 시도하다가 적 근접 유닛한테 몇 번 전멸당하기야 했지만, 아무튼 재미는 있었으니까 괜찮았다.

곧장 언덕을 내려와 적 진지를 점령했다. 사용한 화살이 조금씩 충전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정비를 마치고 적군이 후퇴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면 되겠지. 체감상 이번 시나리오도 거의 끝나가는 느낌이었다. 방금 전의 기습이 아주 유효하게 작용한 것 같았다.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장르의 기본적인 포맷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게임이다.

먼저 자원을 채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걸 통해 기반이 되는 건물들을 쌓아올린 다음, 건물에서 유닛을 생산해 적과 교전하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시스템이다.

물론 말로만 간략하지 손과 머리가 바쁜 게임이었다. 자원을 채취하고, 건설하고, 적을 찾아내고, 교전하고... 결국 한 게임에 그 모든 걸 수행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아마 멀티태스킹을 가장 많이 요구하는 장르일 것이다.

그래서 좋았다. 할 게 많으면 보통 재밌거든.

[슬슬...]

[노르드 손캠켜 182트째]

[이거 켠왕임? 대체 몇시간을 쳐하는거야]

[아 조선은 지켜야된다고ㅋㅋ]

[ㅅㅂ 어차피 이순신이 알아서하는데 뭘지킴]

[농부 누를때 나오는 대사좀 그만 듣고 싶은데요]

방송 시간, 8시간 째.

어느새 여덟 시간이다. 리듬 게임을 플레이한 시간을 제외하면 대충 일곱 시간 정도는 달린 셈이다. 전략 시뮬레이션을 할 때면 시간 감각이 사라지는 일이 많았다. 게임에 집중을 해서 그런 건지. 어쩌면 게임이 생각보다 재밌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시청자가 꽤나 많이 줄었다. 새벽이라는 걸 감안하면 아직도 많은 편이지만, 이게 어딘가. 게임에 집중하느라 멘트도 거의 치지 않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내가 무슨 게임을 하더라도 방송을 시청하겠지. 떨어질 개미들은 진작에 떨어져나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감흥이 일었다.

...고마움일까.

딸깍­

"나이트폴이나 한판하고 갈까요?"

[]

[믿고있었다고!!!]

[뭐야 당신 누구야]

[존버는 승리한다]

[저진짜눈물날거같아요선생님]

털어내기만 할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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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고:님

칼고:피셔맨 시작할때 미끼 어디서 얻어요 (18:38)

칼고:아 됐어요 해결했어 (19:04)

Nord:^^@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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