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 79 ­ 너를 보는 다른 눈 (79/243)

〈 79화 〉 79 ­ 너를 보는 다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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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 이번주에="" 교육="" 방송="" 해주겠지?=""/>

담배빵 재교육한다고 약속했잖아...

오늘은 교육 방송도 하고 룰렛도 다시 돌리고 랭크 게임도 하겠지?? 나는 믿고 있다구

smatafuc:또속냐? 믿을걸 믿어라.

­나랑달:어제 방종 전에 손캠 나이트폴 해주는거 보고 대가리깨짐ㅇㅇ 나는 우리 센세 믿어

노칼영원해:저번에 스벅이 센세한테 다시 배운다고 하던데?? 하면 시즌 끝나기 전일 테니까 이번주나 다음주에 한다는거 아니냐

­검방커신:아니 그새끼 플랫폼대전 참가아님? 팀겜 연습이나 하지 뭘 개인교습을 잡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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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미나는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쫙 펼쳤다. 팔 다리의 관절부에서 뚜둑 거리는,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세 시.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 일어나면 아무리 잠을 오래 자도 노곤함이 남고는 하는 것이다.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강조한다고 하는데도 몰려오는 피로를 막지는 못했다. 찝찝함을 덜어내고자 누운 상태로 몸을 비틀자 한 치수 큰 잠옷이 어깨춤으로 흘러내렸다.

그래도 새벽까지 방송을 한 것치고는 정신을 차리는 게 빠른 편이었다.

집은 고요했다. 같이 방을 구한 친구는 아마 직장에서 한창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을 터였다. 방송 시간을 변경한 뒤로는 친구가 출근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그걸 해와 달에 비유하면 너무 낭만적일까. 무슨 연인도 아니고. 시답잖은 생각에 픽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래서야 자취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에게 달라붙은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날을 잡아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지. 아니면 고양이라도 키우자고 해보는 게 좋을지도.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친구니 조금만 설득해도 충분히 넘어올 텐데.

일어나기 싫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우유, 우유가 오는 날이다. 흘러내리는 잠옷을 다시 올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현관으로 옮겼다.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둔 가방에 우유 한 병이 들어있었다.

응, 요구르트가 두 개. 구독을 하고 반년이 지난 뒤로는 가끔씩 이런 서비스가 추가되고는 했다. 아직 차가움이 남아있는 작은 요구르트 두 개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소확행은 이런 곳에 적절한 표현이겠지.

우유를 냉장고에 넣고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세안을 시작했다. 몸이 피로를 호소할 때면 그게 반드시 피부로 이어지고는 했으니까. 제때 관리를 안 해두면 쌓이고 쌓인 여파가 한 번에 몰려왔다. 화장과 조명으로 커버할 수 있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저번에 커뮤니티에서 봤던 인기글의 문장 하나가 여전히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얼굴이 흘러내린다는 표현이었나.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었음에도 기억에 선명한 것이다. 그 말이 방향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관리, 관리는 꾸준해야지.

세안을 하고 나와 식사 대용으로 미숫가루를 타 먹었을 때, 시계는 벌써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슬슬 방송을 준비할 시작이다.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는. 그러나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는 휴방 날이었다.

운동이라도 할까. 머릿속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은 헬스장 회원권이 번쩍거리며 등장했다. 샤워까지 하기는 너무 귀찮은데. 허리춤을 쓸어올려 잡히는 살이 있나 확인한다. 매끄러웠다. 축복받은 체질은 운동 따위가 없이도 부드러운 굴곡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운동은 다음에 해야지.

잠시 무엇을 할지 몰라 컴퓨터를 키고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괜히 검색창에 커서를 가져다둔다. 엘튜브나, 저스틴... 방송에 대한 생각만 떠올랐다. 쉬는 날에도 업무가 생각난다던 친구의 말이 이런 걸까.

일주일만에 마주하는 휴일은 반갑기보다는 어색했다. 돌아가던 톱니가 구르지 않을 때. 휴식을 얻은 톱니는 기쁘다기 보다 공허함을 느끼는가 보다. 평소엔 휴일에 뭘 했더라. 분명 잠들기 전에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머리를 굴려도 붙잡히는 게 없었다.

지난주는 고단했다. 괜한 경쟁심에 점수를 올리겠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랭크 게임에 임한 탓이다. 방송을 켰을 때는 파트너를 찾아 듀오를 돌리고, 방송이 꺼지고는 홀로 랭크를 돌리는. 목적의식을 가진 순간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자신의 천성이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들이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악을 쓰고 달려들어도 얻어낼 수 없는 것들이 존재했다.

그녀가 그토록 희망하던 킹 랭크가 그랬다. 아니, 킹이라기 보다 그걸 달성해서 받을 찬사나 관심 따위를 원했을지도.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미나에게 그건 똑같은 하나의 목표였으니까.

517등. 일주일을 통째로 나이트폴에 갈아넣은 결과였다. 승패승패승패... 시간이 지날수록 승률은 절반으로 수렴해갔다. 큰 벽이 느껴졌다. 실력자를 자부하는 그녀가 좌절감을 느낄 정도로.

서성이던 마우스가 즐겨찾기 목록으로 향했다. 자연스레 자신의 채널로 이어지는 북마크를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다시 마우스를 옮겨 시크릿 탭을 실행한다.

방송을 하는 자신의 계정으로 저스틴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계정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청자도 있었으니까.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는 그 느낌은 방송 경력이 오래 된 그녀로써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저번처럼 현실에서 손을 뻗쳐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지만.

시크릿 모드로 로그인. 아무도 모른다고 자부할 수 있는, 그녀의 저스틴 부계정이다. 본 계정과의 접점을 없애기 위해 꽤나 공들여 만든 계정이다. 그녀가 몰래 방송을 볼 때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활동하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방송을 하다 보면 언제나 익명 속에 가려진 시청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고는 했으니까.

시청자 순으로 방송들이 정렬되어 나타났다. 남들 몰래 즐겨보는 몇몇 채널은 아직 방송을 켜지 않은 모양이다. 팔로우된 채널이 나열된 목록이 회색빛으로 캄캄했다.

무엇을 볼까, 반쯤 작동을 정지했는지 머리가 멍했다. 대충 목록을 훑던 눈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아이디다.

Nord11.

방송 카테고리가... 임진왜란? 저게 뭐야.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게임이다. 노르드하면 떠오르는 건 나이트폴이 아닌가. 간혹 이상한 낚시 게임이 영상 도네이션으로 날아오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화려한 나이트폴 플레이가 담긴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고 환호하는 시청자들을 보며 질투가 끓어오르는 한편 그녀도 많은 자극을 받았다. 미나도 결국 나이트폴을 즐기는 유저 중 하나였으니까. 어쩌면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열등감이 끌어올랐을지도 모른다. 후원 영상은 감추고 싶은 감정을 계속 들쑤셨다. 그만 네가 부족하다고 인정하라는 듯.

최근 노르드에 관한 논란을 보았을 때는... 모르겠다. 그때 느꼈던 게 기쁨인지 슬픔인지. 이상하게도 마냥 기쁘지가 않았다. 감정이란 미묘한 것이다. 단어 한두 개로 명확하게 서술하지 못할 만큼. 언뜻 배신감을 느꼈던 것도 같았다. 미나는 자신이 왜 노르드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화젯거리로 불타올랐던 손캠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본 건 그래서였을까.

마우스가 노르드의 방송 위에서 머뭇거렸다. 지긋지긋하게 쏟아지는 후원 영상들을 보고 넘길 때는 내심 쳐다도 보지 않으리라 다짐 했건만. 그날의 방송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손이 가는 것이다.

이만 명의 시청자들이 광기에 휩쌓인 채 돌을 던지는데, 태연히도 술 한잔을 들이키던. 캠을 켜는게 제 맘이라고 선언하고는 낚시를 시작하는 장면에선 그녀의 입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가볍게 수행하는 사람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때 미나가 느낀 것은 확실히 경탄에 가까웠다. 노르드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저 사람을 질투했구나, 하고. 자신과 완전히 결이 다른 사람이란 걸 알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는 오히려 끌리는 것이다. 더는 참지 못하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궁병으로 카이팅하면 됩니다. 전열은 대충 농부로 메꾸면 돼요. 금새 녹아버리긴 하지만."》

[??? 농부들 지키려고 전쟁하는거아니냐?]

[사람보다는 나라가 먼저지 ㅇㅇ]

[자는 또 낳으면 되는 데스웅]

[비정하기가 짐승새끼가 따로 없네요 선생님]

처음 보는 게임이었다.

스트리머긴 하지만 게임이라곤 나이트폴을 포함해 국민 게임 몇몇만 경험해본 그녀였다. 어지럽게 전환되는 화면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옛날 게임임을 상기시키는 듯 뭉개진 그래픽은 가시성을 더욱 떨어뜨렸다.

이걸, 지금 육천 명에 가까운 시청자가 보고 있다는 건 컬쳐 쇼크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달리 할 것도 없어 머리를 비우고 시청을 계속했다. 병력 따위를 생산해 적군과 교전하는 게임인 것 같았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화면 속에서, 노르드의 마우스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키보드를 치는 소리를 듣고는 손캠 화면이 떠올랐다. 틀어주면 좋겠는데.

간간히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듣기 좋았다. 잦은 방송으로 목소리가 점점 탁해지는 미나가 부러워한 미성이다. 방송이 늘어나면, 이 목소리도 점점 쉬어가겠지. 음습한 마음이 그녀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시청자들은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채팅창은 딴 소리를 하지 않고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지금은 전투 전열에 농민을 앞세우고 전진하는 노르드의 잔혹함에 대한 성토가 주된 화제였다.

의외였다. 나이트폴을 기다리는 사람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이런 고전 게임을 해도 집중해서 봐주는 시청자가 있구나. 시청자 수 때문에 나이트폴만 고집하는 그녀에게는 색다른 광경이었다.

화면 속에서 선두로 나선 농민들이 적군의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역시 눈은 금방 적응을 하는지, 이젠 그 뭉개진 그래픽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할 수가 있었다. 노르드는 쓰러지는 농민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궁병을 조작했다.

묘한 심술이 솟아났다.

'농민들... 죽어가는게... 이 줫망겜에 쳐내지는... 시청자들 보는거같네...'

탁.

엔터키를 누르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 사이로 그녀가 써낸 채팅이 섞여들었다. 그녀와 의견을 공유하는 시청자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게 채팅을 계속 치게끔 유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밌었다. 군중 속에서 몰래 돌을 던지는 것 같아서.

그 행위에 재미를 느낀 그녀가, 서서히 노르드의 방송에 빠져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스트리머 우나밍의 휴방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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