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81 학생이 모여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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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드가 교육 방송을 시작하고 두 시간이 넘게 흘렀다.
방송 하루 전에 공지가 올라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이번 주 내내 잡다한 게임들로 방송 시간을 가득 채우다, 가뭄에 단비처럼 나이트폴을 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이전처럼 진득하니 달리는 랭크 방송이 아니어도 좋았다.
대체 뭘 보라는 건지도 모르겠는 리듬 게임, 한물간 걸 넘어서 쉰내가 나는 고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비교 대상들을 떠올리면 이게 어딘가.
교육의 내용이 꽤나 알찼다는 점도 만족할만한 일이었다. 평소 노르드가 방송에서 말하는 모양새를 떠올리면 상상하기 힘들었으나, 노르드의 교육 방송은 매번 호평 일색이었다.
그건 확실한 반전이다. 눈높이 교육은 고사하고, 범재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처럼 '이걸 왜 못해?'하는 식의 가르침아닌 가르침이 계속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몇 번 부딪힌 것 만으로 플레이어의 심리를 파악하고 문제점을 찾아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교육을 받고 있는 담배빵처럼 시청자 대부분의 랭크도 나이트와 비숍을 오락가락하는 수준이었다. 담배빵에게 쏟아지는 지적과 회초리가 방송을 보는 나이트폴 유저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됐다.
노르드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나뒹구는 모습에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거기에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는. 교육 방송이라고 당당히 내걸은 방송 타이틀에 걸맞는 모습이다. 노르드의 방송은 놀랍게도 정말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슬슬 교육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교육 시간 따위를 정해두지는 않았으나, 무언가를 가르친다고 스펀지처럼 전부 흡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습 모드에서 학생을 두들기던 노르드가 숙제를 끼얹었다. 다음 주까지 비숍을 달성해보라는 과제. 담배빵에게는 꽤나 어려운 과제였다.
하루 종일 두들겨 맞은 기억을 되새기며, 노르드에 비하면 비숍 정도야 양반이라 생각하던 담배빵이 고개를 주억거릴 무렵.
채팅창에 '스벅님이'로 시작되는 의문의 도배가 가득올라온 건 그쯤이었다.
"어렵지는 않을 거에요. 비숍 저랭크야 나이트랑 다를 것도 없고"
이어지던 노르드의 멘트가 끊겼다. 나이트폴이라는 안정제를 주입했기 때문일까, 시청자 수를 고려하면 꽤나 얌전했던 채팅창이 갑작스레 들끓었다. 베타코드를 확인하라는 알 수 없는 도배문. 영문을 모르는 다른 시청자들은 방송의 흐름을 끊는 채팅에 잔뜩 화가 난듯 보였다.
뭔가 확인하는지 잠시 말이 없던 노르드가 입을 열었다.
"...아. 메세지 확인했어요. 스벅님 지금 제 방에 있어요?
없어? 없으면 여기서 도배하지 말고 가서 전해주세요. 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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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선생님! 갑자기 제안한건데 바로 답해주시고. 감사합니다.
그, 혹시 방해가 됐나요? 제 방 시청자들이 몰려갔다는데."
"충신들이 많으시네요."
...날이 서있나?
간만에 듣는 목소리가 이전보다 선명했다. 방송으로 듣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자신과 방송 시간이 자주 겹치는 터라 생방송을 시청하기는 힘들었으나, 스벅은 노르드의 방송을 다시보기로 챙겨보는 애청자였다. 베타코드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마이크가 바뀐 것을 실감할 정도로.
아무튼, 목소리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사실 오늘이 처음으로 팀 연습하는 날이었거든요. 근데 망할년이 파토를 내버려서... 하하. 솔랭이나 돌릴까 했는데, 솔랭은 대회 준비에 별 의미가 없잖아요?
그러다 선생님 교육방송이 떠오르는 게 아닙니까! 제가 또 선생님 덕에 룩을 찍었잖아요."
<스벅뒤통수가격하는노르드 님이="" 1,000원="" 후원!=""/>
입발린말 ㅈㄴ 하네 지실력으로 룩 올라갔다고 자랑한거 다 기억하는데 ㅋㅋ
"그 대회는 언제 하는 거예요?"
"다다음주 토요일이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발등에 불 떨어졌거든요? 선생님이 코칭 거절하셨으면 울면서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
"스벅님은 불속성이라 괜찮지 않나요?"
"...네?"
[ㅋㅋㅋㅋㅋ 불붙이고 다니는거보면 불속성맞지]
[센세 여전하시네]
[눈나가 이새끼버리고 대신 방송해주세요]
[방송하고있어 ㅂㅅ아;]
[또 센세한테 두들겨맞는거야? 쓰벅 마조였음?]
종종 베타코드로 메세지를 보낸 보람이 있는 걸까. 이전보다 훨씬 거리감이 가깝게 느껴졌다. 시청자들은 채팅창에서 신나게 돌을 던지는 중이었다. 저것들은 스트리머를 샌드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스벅은 들리지 않게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노르드에게 코칭을 부탁하긴 했지만, 이렇게 즉답이 돌아오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일면식도 없던 첫만남에 가르침을 구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와 달리 서로 알만한 건 다 아는 구도가 아닌가.
팀 게임의 코치라는 건 패배의 리스크를 어느 정도 공유하고 가는 위치였다. 모든 직책에는 그에 걸맞는 짐짝이 붙어있는 법이다. 연습 과정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대회가 있는 당일 날 승부의 결과에 따라 노르드에게 불똥이 튀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말해 무엇할까. 이쪽은 아직 팀이 모여 합을 맞춰 보지도 않은 것이다. 상대는 무슨 전프로 코치를 구했다느니 말이 많던데. 무슨 생각으로 수락했든 노르드의 지원은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런 건 실제 코칭 능력보다 뒤에 달린 타이틀이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르드는 최적이었다. 노르여성 킹에, 저결 우승자. 따라 붙는 타이틀이나 관심사가 확실하지 않은가.
일단 한 건 했다. 스벅의 마음에서 다가오는 대회에 대한 초조함이 끓어오름과 동시에, 한편에서는 될대로 되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래, 져봤자 뭐 별게 있겠냐고. 한 주정도 휴방을 박아버리고 이른 여름 휴가에 나서면 그만이지.
그런 스벅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르드는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대회의 룰을 어떻고, 참가자들의 랭크는 어떠하며, 빌드나 조합 따위는 맞춰봤는지. 생각보다 본격적인 질문이다.
"선생님. 말씀드렸지만 저희 아직 팀 맞춰 본 적도 없어요."
"네. 알아요. 랭크들 보면... 예능 느낌의 대회인가요? 바보들은 서로 몸짓만 봐도 즐겁다, 같은."
"예? 아뇨아뇨. 지면 아주 절단이 나는 진지빡겜... 아니 그래도 룩 랭크만 세 명이잖아요? 바보들이라뇨."
"아, 죄송해요. 비유적 표현입니다."
[플랫폼대전 바보들의 축제행ㅋㅋㅋㅋㅋㅋ]
[킹이보면 퀸 밑으로는 다 바보들이라구 아ㅋㅋ]
[말투보면 다 진심이야]
[바보는 쳐맞아야지]
"스벅님은 하던대로 검방 쓰실거죠?"
"이게 여기서 그걸 말해버리면 전력 누출이 되니까... 제가 올웨폰 유저잖아요. 대회 전까지 빌드를 숨겨야 전략적 가치가 올라가지 않을까요?"
"장난감 세트를 왜 대비해요."
여전히 혀가 날카롭다.
"스벅님이 다양한 빌드 쓴다고 변칙 전략이 먹히진 않을 거예요. 저랭크 팀 게임인데 역할군 늘린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냥 맡은 역할 하나 충실히 수행한다고 마음 먹는 게 편하고 좋습니다."
"...그래도 쌍검 정도는"
"팀원들 배려해서 범인되려고 하시는 구나."
싹을 잘라버리는 한마디였다.
주인공 병이라고 할까. 플랫폼 대전이라는 큰 이벤트 매치에 참가한 이상 승패와는 상관없이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관심을 먹고 사는 스트리머라면 그건 당연하겠지.
시즌 말 랭크를 올리겠다고 검방을 고수하긴 했으나, 스벅의 마음 한 켠에서는 언제나 쌍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이트폴 많은 유저가 그렇듯 그에게도 쌍검은 로망 무기였으니까.
당연히 팀 게임에서 범인으로 몰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정도 규모가 되면 범인은 아마 목이 매달릴리겠지. 그러나 포기하기는 너무 아쉬웠다.
매치 스코어 2 대 2, 결정적인 순간 빌드를 변경하는 스트리머 스벅 위기의 순간 쌍검을 휘두르며 영웅처럼 등장해서 캐리하는 장면.
흔한 씹덕 망상이 머릿속에서 불타올랐다. 임팩트있는 장면 하나를 남기면 승패를 떠나 스트리머 개인으로써는 성공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시청자들이 놀리듯 부르는, '웨폰마스터'라는 별명을 진실로 굳힐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러지 말고요, 선생님. 저 쌍검 좀 가르쳐주시면 안될까요? 아니면 그, 광전사 빌드라던가."
[아 진짜 ㅈㄹ좀 하지마셈]
[이새끼 저번대회 뽕맛보고 영웅심리 못버림]
[응 우리 스벅이 주인공이야! 쌍검들어~ 쯔바이들어~ 하고 싶은 거 다해~]
[해바라ㅋㅋ 개똥싸면 각오하고]
[쌤 코웃음치는거 나만 들었냐?]
[존나 가소롭긴해...]
대답이 늦었다.
그 정도로 가망이 없는 걸까. 괜스레 무안해지는 마음에 채팅창을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실행해둔 나이트폴의 메인 화면에서 새로운 메세지를 알리는 창이 반짝거리며 나타났다. 노르드가 보낸 메세지였다.
"그럼 쌍검 한판 하시죠."
"네? 이거... 저번처럼 두드려 맞는 거 아니죠? 저 트라우마 있다구요. 선생님 무기만 봐도 PTSD 와서 역효과일지도 몰라요."
"저도 쌍검 할 거예요. 느낌이라도 한 번 볼게요. 가능성 보이면 진지하게 빌드 깎아보죠."
"어, 선생님 쌍검도 쓸 줄 아세요?"
무심코 튀어나온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한번 보세요."
노르드가 보낸 초대 창이, 스벅을 재촉하듯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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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쇠야 왜 팀겜 연습 안하고 있냐 오늘 한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도화창한 님, 후원 감사합니다. 그... 내일로 밀렸습니다. 여섯 명 일정 맞추기가 쉬운 게 아니더라구요. 그래도 내일은 확실히 할 거 같아요."
[안봐도 똘주때문인건 알겠네]
[팀원들 오열ㅋㅋㅋ]
[그럼 오늘 뭐함?]
"아니, 딱히 누구 때문인 건 아니고... 아! 오늘은 나이트폴 솔로 랭크 방송 예정입니다. 시즌 말에 대회도 있으니까 폼 좀 올려놔야죠."
[나이트폴 강점기 시작인가]
[돌쇠님은 코치안받음? 스벅은 개인코치 구했던데]
[망치맨 ㄱㄱ]
"어, 코치요? 제가 그런 쪽으론 인맥이 없어서... 스벅님은 혹시 누가 봐주시나요?"
[노르드]
[노르드님이 지금 펑고해주는듯?]
[아까 보니까 개쳐맞고 있던데요]
[노황]
"진짜 노르드님이요?"
눈이 번쩍 뜨이는 채팅이다.
그가 아는 노르드는 한 명밖에 없었다. 저결 대회 우승자. 최근엔 방송을 보는 시청자도 많아서 항상 저스틴 방송 목록 상단을 차지하는 유명한 스트리머 아닌가. 스벅의 엘튜브에 올라온 영상은 그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었다. 개인 코칭을 받을 정도면 정말 친한가 싶었다.
플랫폼 대전. 신작 게임 공략에 집중한 터라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던 일이다. 팀 게임 연습이 잡히니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서서히 느껴지는 압박감에 당분간은 나이트폴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스벅은 벌써 개인 코치까지 구한 모양이다.
[도방가쉴?]
[빌붙어보자 어차피 쓰벅 쳐맞기만하던데]
[같이 배우면 좋지]
[솔랭보단 좋을듯?]
박찬석, '돌쇠야'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스트리머가 황급히 마우스를 잡고 저스틴에 들어갔다. 시청자들의 의견에 혹한 탓이다.
주로 싱글 플레이 게임의 공략을 컨텐츠로 삼는 그의 방송 특성상, 나이트폴에서 뭔가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맥은 전무한 상태였다. 대회를 준비한다고 솔로 랭크를 돌리겠다는 것도 막막함이 담긴 선택이었다. 그걸 제외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도 저결 대회를 시청한 한 명의 시청자였던 것이다. 프로 선수와의 결전에서 승리하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런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겠지.
혹시 참가할 수 있다면.
찬석의 마음이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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