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82 두 손 꽉 잡아라
* * *
무기에 휘둘린다.
판타지나 무협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이 말은, 놀랍게도 나이트폴에서 꽤나 적절하게 사용되고는 했다. 자신이 선택한 무기의 특성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플레이어가 수두룩한 탓이다. 그저 외관을 보고 고른 장병기를 휘두르다, 무게 때문에 앞으로 쏠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러다 훨씬 짧은 검에 빈번히 꿰뚫리는 것이다. 나이트폴 초보들이 게임을 때려치는 전형적인 레퍼토리였다.
때문에 여러 공략이나 팁 글에서는 보통 입문자들에게 밸런스가 잘 잡힌 무기나 빌드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공격과 방어의 균형이 잘 잡힌 소드 앤 버클러가 있겠지. 장병기 입문에는 창이 자주 언급되었다. 파고들수록 거리 조절이라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조작 자체는 간단했기 때문이다.
입문자들은 비교적 단순한 무기에서 시작해 점차 이해도를 높여가는 식으로 나이트폴에 적응했다. 그러고는 다루고 싶은 무기나 빌드로 뻗어나간다. 기초를 익히면 대부분의 빌드는 그저 숙달의 문제였으니까. 처음에야 어렵지만 금방 익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도 예외는 존재했으니.
쌍검. 나이트폴 트롤링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였다.
###
"형편없네요."
"...아니, 어떻게 백스탭 밟으면서 카운터를 쳐요?"
"제가 공격한게 아니라 스벅님이 와서 찔린 거예요. 자석인 줄 알았네."
확실히 무리한 대쉬 공격을 시도하다가 칼에 찔리기는 했다.
복기해보면, 노르드가 내뱉은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그게 스벅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신랄한 말들을 종합하면 결국 자신의 쌍검 소질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뜻 아닌가.
특별히 강조해서 말한 것도 아닌데. 평소와 같은 조용한 말투가 일말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지만 칼 같은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노르드와 처음 만난 순간 그가 들고 있던 무기도 쌍검이었다. 그 때도 광전사의 앞에서 발버둥도 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나. 노르드의 실력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쌍검이 아니라 검방이었다면 적어도 작은 상처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쌍검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커뮤니티에서 우스갯소리로 떠드는 소리긴 하지만, 나이트폴 쌍검은 숙련도가 필요한 게 아니라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다른 무기보다 배는 복잡한 조작, 그러면서도 가드가 빈약해 찰나의 상황판단을 요구하는 무기 특성.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반사신경까지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능력들이 있다면 무슨 빌드를 사용하든 잘할 수밖에 없겠지. 요구 조건부터 까다로운 것이다. 상위 랭크에서도 쌍검을 잘 다루는 유저가 드문 이유는 명확했다.
그럼에도 추구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하나다.
멋있으니까.
"아! 그냥 소질같은 거 신경쓰지말고 가르쳐주세요. 제가 진짜 캐리합니다. 그래도 비숍들은 쌍검으로 제끼고 다녔다구요. 이 악물고 연습하면 플랫폼 대전 정도야 비빌 수 있잖아요?"
거의 투정부리듯 쏟아낸 말에 채팅창이 먼저 반응했다.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애새끼를 보는 듯한 혐오감이 채팅에서 묻어나왔다. 아, 어쩌라고. 스벅은 주인공병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스트리머란 주목 받는 존재이며, 주목 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어지간한 관종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그걸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습관처럼 키보드를 누르는 걸까. 검 하나를 들고 한 손으로 쓸어내리던 노르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요. 하고 싶은 거 하셔야죠."
예상치 못한 대답이다.
"정말요? 저 그럼 진짜 팀 게임할 때 노르드님 이름 대고 쌍검 들어버립니다?"
"그럼요. 마음대로 하셔야죠."
...뭐야, 이건.
갑자기 왜 예스맨이 되어버린 건지, 하염없이 긍정의 의사만 보내온다. 신랄한 비판 뒤에 저 모습이다. 스벅에겐 그게 긍정이 아니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몇 번인가 안 된다고 말하면 안심이 될텐데.
"그럼 쌍검 가르쳐드려야겠죠?"
"아, 예. 그럼 너무 좋죠. 쌍검은 빌드도 종류가 많잖아요? 추천할만한 빌드라던가..."
"일단 검을 들어보세요."
"네?"
노르드가 검을 뽑았다.
양손에 하나씩, 검을 꼬나쥐고 이쪽을 바라본다. 거칠고 투박하게 생긴 노르드의 캐릭터는 눈초리마저 흉흉했다. 스벅의 머릿속에서 기시감이 스치듯 지나갔다. 어라, 이거 어디서 봤던 장면인데.
그래. 첫 교육을 받았을 때였다. 기초부터 잘못되었다며 그 커다란 대검으로 얼마나 많이 죽었던가. 리스폰 시간에도 어떻게 죽었는지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었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제가 아는 쌍검 연계가 좀 있거든요? 지금 전부 보여드릴게요."
"...네? 아니, 아니요. 저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선생님. 먼저 조작부터 억!"
갑작스런 쇄도에, 간신히 반응해 검을 교차하듯 막아낸 스벅이다. 눈동자를 마주할만큼 가까운 대치 상태에서 노르드가 말을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억할 때까지 박아드릴 테니까."
색다른 사형선고였다.
###
챙!
눈이 어지럽다.
양손에 쥔 검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받아칠 겨를이 없었다. 왼손이 흔들려서 그쪽을 경계하면, 곧장 우측에서 날이 번뜩였다. 타이밍이 늦어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탓에 상처가 늘었다. 시야 한쪽이 옅은 분홍색으로 번쩍였다.
얕았다. 스벅도 자신이 치명적인 빈틈을 드러냈음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난자하는 검은 매번 살가죽을 얕게 찢고는 돌아갔다. 봐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오른손과 왼손이 따로 움직인다. 쌍검을 해본답시고 키보드 키 설정까지 따로 건드려본 스벅이기에 잘 알았다. 저건 미친짓이었다. 저 동작에 얼마나 복잡한 조작이 필요한지, 몇 번인가 시도하고는 혀를 내두르며 설정을 초기화 했었는데.
격이 다른 것이다. 저 인간은.
또 다시. 측면을 향해 들어올린 스벅의 검을 무시하고 칼날이 비집고 들어왔다. 공격의 연계가 쉬지 않고 들어온다. 저렇게 움직이면 스태미나가 남아나질 않을텐데, 스벅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흡을 어디서 가다듬는지도 가늠이 안 됐다. 치명상을 입지 않는 선에서 막아내다가 카운터를 노리려던 계획은 이미 박살났다. 우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반격에 나서야했다. 가만히 있다간 출혈로 죽을 게 뻔했다.
공격을 한 번 받아낸 직후. 그 때를 노려야 한다.
챙!
제대로 막았다.
처음으로 공격을 읽어내는데 성공했다. 왼손의 검으로 측면을 노리는 척하다가, 오른쪽 검으로 흉부를 찔러오는 일격. 끌어올린 집중력이 흔들리는 오른손을 파악한 덕분이다. 다시 올지 장담하기 힘든 절호의 기회였다. 반격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 공격으로 연계를 이어 끝장을 보려는 의도였다.
야심차게 휘두른 검이 허공을 베어냈다.
...거기서 백스탭? 한 번도 빼지 않고 두들겨 패놓고 어떻게 이 시점에 완급 조절을
허탈한 심정으로 올려다본 노르드는, 자신을 비웃듯 왼손에 든 검을 가볍게 앞으로 찔러넣었다.
날카로운 검이 목울대를 찢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한 차례 새빨갛게 물든 스벅의 모니터가 금새 흑백으로 반전됐다.
"...보고 뺀 거예요?"
"선입력인데요."
"아니, 연계기 그렇게 박아 넣다가 갑자기 백스탭을 친다구요? 반격 타이밍 어떻게 알고요?"
"막으라고 일부러 보여준 거잖아요. 그렇게 두들겨 맞다가 가드 성공하면 당연히 공격하고 싶겠죠. 그래서 선입력으로 백스탭 눌러둔 거예요."
전부 다 읽혔다는 말 아닌가. 이게 체스도 아니고, 어떻게 몇 수 앞을 읽고 판을 짜냐고.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몰아치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번 전투를 끝낼 수 있었으면서, 굳이 저런 식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이 악랄하기 그지 없었다. 체력의 극한까지 난도질 당한 제 캐릭터가 안쓰러워질 지경이었다. 그걸 감내하면서 반격을 설계한 자기자신과 함께.
"리스폰 되셨죠?"
또 하자고? 그만해. 내 라이프는 이미 제로야.
"그... 다른 좋은 방법이..."
"리스폰 되셨죠?"
리스폰 됐다. 랭크 게임에선 짜증나기 그지 없는 그 흑백 화면이 지금은 그립게 느껴졌다. 저번처럼 단번에 목숨을 끊어오지는 않았지만, 극한의 집중을 강요하는 스파링은 한 판 한 판 스벅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한 번이라도 당해달라고. 이 사람의 교육은 실력이 느는건지 아닌건지 도통 감을 잡기 힘들었다.
스벅의 베타코드가 깜빡인 건 그쯤이었다.
돌쇠야:형님. 괜찮으시면 저도 불러주실 수 있나요? 코치 부탁드릴 분이 없어서...ㅠㅠ 노르드님이 불편하다고 하시면 바로 물러나겠습니다.
아주 괜찮았다. 적어도 노르드와의 일대일 지옥 스파링을 그만둘 수 있었으니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조심스럽게 끌어내린 스벅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대회 같은 팀으로 출전하는 친구가 들어와도 되냐는 데요. 괜찮으실까요?"
"네. 그냥 초대하세요."
"흐흐, 역시 배포가 크십니다요. 그럼 바로 초대... 네. 금방 음성도 들어올거예요. 일단 저희는"
"리스폰 되셨네."
평원 한 쪽 끝, 임의로 설정된 리스폰 지역에 가만히 서 있던 스벅의 앞으로 끔찍한 광전사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왼손에 든 검에서 싱싱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자신의 피였다.
"오기 전까지 한 판 하시죠."
###
"아, 아. 안녕하세요. 돌쇠야라고 합니다. 간단히 돌쇠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노르드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노르드입니다."
[오 돌쇠]
[저사람 공포겜 장인아닌가]
[선생님 스벅 개작살내놓고 격식차리는 거 너무 무섭네요;]
[칼에서 피 떨어지는거봐 인간 백정련,,,,]
[쌍검 ㅈㄴ 잘쓰네 씹ㅋㅋㅋㅋ]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팀 게임은 솔로 랭크와 궤를 달리하는 법이다. 갑작스런 코치 권유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연습 모드로 스벅을 두드리는 건 재밌었다.
쌍검, 쌍검이라. 새로운 빌드는 언제나 게임에 극적인 양념을 추가했다.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면 더욱 더 그렇겠지. 신규 스트리머였나. 교육을 받기 위해 들어왔다던 새로운 방송인의 등장도 꽤나 적절했다. 새 피를 수혈하는 일이다. 그제야 플랫폼 대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나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막연하게만 보였는데.
거대한 덩치가 나와 스벅이 머물던 커스텀 게임에 등장했다. 양손에는 거대한 양손 둔기가 들린 채였다. 자주 사용하던 빌드로 들어왔겠지. 묵직한 인상이 닉네임과 적절하게 어울렸다. 대놓고 전열을 구성하는 일원으로 보였다. 팀 게임에선 되도 않는 스벅의 쌍검과 더불어 앞 라인을 형성할까.
자연스레 첫 번째 충돌에서 박살나는 스벅의 모습이 그려졌다. 가망이 없는 것 같아.
"돌쇠 왔냐. 노르드님 좀 대신 상대하고 있어봐."
무슨 짐덩이 떠넘기듯 말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스벅을 위해 리스폰 지역까지 올라온 참이다. 방금 죽고 살아나 말끔한 모습으로 리스폰되는 모습이다. 방송 채팅창을 확인하는지, 나이트폴 화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조금 불만이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가 아닌 것이다. 형편 없는 쌍검을 궤도에 올리려면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신경을 써도 모자랄 텐데.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단계가 아니었다.
잠시간 뭔가 확인하는 듯 보였던 스벅이 뒤늦게 말을 이었다.
"...어? 저희 팀원들 한 명 빼고 다 모인다는데요? 이거 팀 연습 할 수도 있겠네."
내겐,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쌍검이나 더 패고 싶은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