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83 믿기 싫으면 내 이름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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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이라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건 금방이었다.
원래 팀 게임이 예정되어 있었다나.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빠지는 바람에 일정에 공백이 생긴 모양이다. 딱히 진행할 컨텐츠가 계획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벅이 코칭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고 한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어리둥절한 이야기였다. 난 스벅을 가르쳐주려고 왔을 뿐이었다. 파격적인 엘튜브 성장세에 스벅이 기여한 바가 컸으니, 나는 조금이나마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스벅의 제안을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인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오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빠질 수 있는 구도가 아니었다. 요약하자면 코칭 소식에 모여든 사람들이 아닌가. 내가 나가버리면 파토날 상황에 처할 게 뻔했다.
스트리머가 다섯 명. 나도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도 있었다. 방송을 다 합치면 몇 명의 시청자가 나올까. 이런 귀찮은 상황이 벌어질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을 마저 깨러 가야 하는데.
"와, 결국 오늘 다 모였네요! 똘주가 없는게 아쉽네. 나이트폴 키셨죠? 제가 귀하신 분 코치로 모신 거니까 다들 처신 잘하셔야 됩니다.
초대 드릴테니까 일단 들어오... 선생님? 제발 그만 찔러요. 저 화면이 새빨갛거든요? 야, 돌쇠 너 뭐해! 선생님이랑 스파링이나 하고 있으라니까."
"...저 이미 죽었어요."
칼이 푹푹 잘도 박혔다. 나이트폴 캐릭터는 물렁한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질겼다. 급소를 피해 찌르면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꽤나 오랫동안 살아서 움직였다.
허벅지 부분. 혹은 살거죽만 찢는 느낌으로 베어내면 된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출혈사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 아. 마이크 들리시나용? 저 송출컴이 조금 이상해서 베타코드 다시 들어왔거든요. 괜찮아요?"
"쪼망님? 잘 들려요. 초대 받으... 아오, 진짜. 그냥 방 다시 팔까요? 이거 방 설정 바꿔야 될 것 같은데."
투덜거리면서 키보드를 건드린 모양이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스벅의 캐릭터가 피를 뿜었다. 저런, 방금 그걸로 수명이 삼 분은 더 줄었다. 생각보다 금방 죽겠는데.
"근데 이거 어떻게 하려고? 노르드님은 혼자 계신데 우리 다 봐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 목소리에서 연륜이 묻어나오는 느낌이다. 저 사람이 해빙기였나. 주연이 종합 게임 스트리머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한 사람이라 알고 있었다. 유명한 신작 게임부터 요상한 인디 게임까지 닥치는 대로 플레이한다고 했나.
그러면서도 고정 시청자를 높게 유지하는, 소위 콘크리트가 두꺼운 스트리머라 그랬던 것 같다. 아이디가 인상적이었지.
"음, 그건 그렇네요."
나를 포함하면 여섯 명인가. 스트리머들이라 그런 건지 오디오가 비지 않았다. 중저음의 목소리들 사이로, 높은 톤의 명량한 목소리가 한 번씩 치고 들어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저 정도면 여자들 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하는 목소리가 아닐런지. 쪼망인가. 저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구분하기 쉽겠다.
다들 일면식이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대화에서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아. 들어오는 사람마다 내게 인사를 건내오는 게 낯설면서도 뭔가 불편했다. 북적대는 꼴이 있어선 안 될 자리에 들어온 기분이다.
사람 한두 명과 말을 나누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렇게 모여들면 괜스레 입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랜선으로 주고 받는 대화라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굳이 내가 입을 열지 않아도 누군가 정적을 채워주니까.
방송을 켜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려니 무안해서 스벅을 푹푹 찔렀다. 드러난 살에 칼이 잘도 박혔다. 대화를 들어보면 코칭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이었다. 나를 불러놓고 다섯 명이나 모였으니, 충분히 나올만한 안건이다. 일대일을 한다고 해도 다섯 번이다. 스벅에게 한 것처럼 개인적인 교습은 불가능하겠지.
그럼 안 하면 되잖아.
"쟁이나 돌릴까요."
이 편이 좋았다. 팀 게임인데. 될 수 있으면 팀 합이나 한 번 더 맞춰보는 게 훨씬 이득이지. 내가 귀찮거나 어색해서 제안하는 건 아니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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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폴의 일반적인 랭크 게임은 듀오가 최대였다. 홀로 매칭을 돌리거나, 아니면 동료 한 명을 구해 둘이서 돌리거나. 그 이상 인원을 추가하는 건 불가능했다. 솔로 랭크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섯 명의 팀원을 구해야 하는 진짜 팀 게임은, 일반 랭크와 구분되어 존재했다. 나이트폴 메인 화면에서도 아예 다른 카테코리로 분리된 상태였다.
투박한 글씨체로 큼지막히 적힌, '전쟁The War'이라는 이름과 함께. 유저들 사이에선 '쟁'이라는 약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반 랭크와 동일하게 랭크가 존재했으나, 여섯 명이 포함된 팀을 만들어야 매칭을 돌릴 수 있었다. 구성원의 랭크와 상관없이 처음 만들어진 팀은 언제나 가장 낮은 랭크인 폰에서 시작했다. 때문에 랭크 게임과는 달리 낮은 구간에서도 심상치않은 실력의 유저들이 자주 출몰하고는 했다. 처음 전쟁 모드를 돌리거나, 기존에 상위 랭크에 도달했던 유저들이 새로운 팀으로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오히려 처음으로 나이트폴에 입문한 유저를 찾기가 더 힘들었다. 일반인들이 친구들을 불러모아 쟁을 돌리면, 솔로 랭크 퀸과 룩이 섞여든 괴물같은 팀을 만날 수도 있는. 진정한 의미의 마경이었다.
노르드가 포함된 스트리머 일행은 지금 새로운 팀을 개설하는 중이었다. 부재 상태인 돌주를 제외하고.
"음... 팀명 뭐로 할까요? 어차피 잠깐 돌리는 거라 중요한 건 아니긴 한데."
"똘주없는 똘주팀 어때용?"
"똘주있어도 우리는 똘주팀아니야."
"그, 똘주님이 섭섭해하실수도..."
"그년은 서운한 취급 좀 받아봐야 돼."
"그럼 제가 대충 정합니다?"
"그래라. 초대나 빨리 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스트리머들이다. 여러 이벤트와 공식 방송, 행사 등을 함께하며 한 번이라도 친분을 쌓은 터라 주고 받는 대화에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외가 있다면 노르드 뿐이었다. 짧은 방송 경력에, 안면을 튼 스트리머는 칼고나 스벅 정도가 전부였다. 꽉 찬 오디오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유난히 말 수가 적었다.
[센세 입 좀 열어보세요 아~하고]
[이 사람 찐따였음?]
[어허 선생님은 진중하셔서 저런 시끄러운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않는거야. 음해하지마라]
[지는 ㅈㄴ비꼬면서 10련이 ㅋㅋㅋㅋ]
[걍 베코나가고 솔플 ㄱ]
줄어든 말 수와는 반대로, 노르드의 채팅창은 신나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 근데 저희 빌드도 서로 맞춰봐야 되는거 아니에요?"
다가오는 플랫폼 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쪼망이 말했다.
"그치. 팀 게임이니까 조합 무조건 봐야 돼. 나랑 스벅이는 맞춰 줄 수 있으니까, 빌드 바꾸기 힘든 사람부터 말해봐. 돌쇠가 원빌드였나? 망치말고 다른 거 못 본 거 같은데."
"예. 방패쓰는 빌드도 못 쓰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숙련도가 좀..."
"똘주도 활 원툴이잖아. 걔는 진짜 다른 거 못해. 저번에 검방하는 거 봤는데 아예 근접전 기본이 안 돼있더라고."
"활쟁이 새끼들이 다 그렇죠, 뭐."
"...너 저번에 그러다가 논란 생긴 적 있지 않냐? 니 게시판 불타던거 기억 안 나?"
"하하. 괜찮아요. 어차피 한두 번도 아닌데요."
조합에 대한 논의가 선호하는 빌드로 이어졌다. 스벅과 해빙기를 제외하면 자신 있게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플레이어마다 가지각색이었지만, 저랭크에서 다양한 빌드를 제대로 활용하는 유저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빌드마다 운영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그걸 온전히 이해하고 플레이하는 사람은 대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마련이다. 즉, 저랭크에서 올웨폰을 주장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에 가까웠다. 얕고 넓은 폭이다. 대회에서 다양한 무기를 활용할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비숍의 올웨폰이라는 멸칭으로 놀림 받던 스벅은 사실 의외의 실력자로 꼽히는 경우가 많았다. 수박 겉핥기 식이긴 했으나 그래도 많은 이벤트전에서 다양한 무기를 실제로 선보인 경험이 있었으니까. 개인 방송에서의 광대짓이 전반적인 이미지를 훼손한 감이 없지 않았다.
"씁, 그럼 똘주 궁병 고정에 돌쇠가 전열 고정. 쪼망님이 메이지 잡으면 되겠네요. 댈런님이 리치 긴 창이나 할버드하실 테니까, 형님이랑 제가 전열로 가면 될 거 같은데요?
아. 지금은 선생님이 앞장 서시겠네. 오늘은 제가 활 들고 갈게요."
팀장 역할을 맡은 스벅이 조합을 정리했다. 팀원들에게 '스벅과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팀 초대장이 날아간 직후였다. 곳곳에서 팀명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날아오는 한편, 말이 없던 노르드가 입을 열었다.
"아뇨. 제가 활 잡을게요. 스벅님은 쌍검 해보세요."
스벅에 대한 비난으로 떠들썩하던 베타코드가 잠깐 정적에 잠겼다.
가장 격렬히 반응한건 노르드의 채팅창이었다.
[???? 활...? 당신 누구야]
[킹법사갓이기 맞죠? 선생님 졸렬하게 뒤에서 활질하시는거아니죠??]
[씨,,,불 상남자 노르드 어디가고 씹게이가 방송하고있냐,,,]
[센세..ㅠㅠ 말없어지더니 왜 거세를 하고 오셨어요]
[방장 원래 여자야 ㅂㅅ들아;]
[활? 팔로우 구독 취소합니다]
[너 구독자 아니잖아]
"...네? 그래도 되나요? 저 선생님 활 쓰는거 한 번도 못본 거 같은데... 아니아니,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요. 억지로 맞춰주실 필요 없어요."
"저는 다 돼요."
평이한 어조에서 단호함이 묻어 나왔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더 반박할 말은 없었다. 사실 연습을 생각하면 최적의 상황이다. 자리를 비운 돌주를 대신한 노르드가 동일한 포지션을 수행해준다는 말이었으니까. 스벅은 내심 흐뭇한 마음까지 올라왔다. 권위있는 코치의 쌍검 허가가 떨어졌다. 합법적으로 쌍검을 사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팀 게임 매칭이 시작됐다.
각자 다른 기대감을 가지고 첫 팀 게임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로딩이 끝나고, 적 팀의 닉네임을 훑은 스벅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익숙한 닉네임이 대강 잡아도 서너 개.
자연스레 떠오르는 기억에 불쾌함이 묻어 나왔다. 하나같이 더러운 기억 뿐이었다. 랭크전에서 저것들을 마주하고 얼마나 기분이 상했던가. 한 번은 분을 못 이기고 곧장 방송을 꺼버린 적도 있었지.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제 시청자들이 서서히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그 기억이 잘못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씨... 저희 닷지하고 다음판 할까요?"
전투 준비 단계였다. 빌드를 재확인하는 중에 들려온 스벅의 말에 팀원들이 의문을 표했다.
"네? 왜용? 솔랭도 아니라 닷지하면 좀 기다려야 할 텐데."
"아니... 죄송한데 상대팀 제 저격들인 거 같아요. 진짜 악질적인 새끼들이거든요, 쟤네가. 방플은 기본이고 랭크도 다 룩 이상일 거예요. 제 구간에서 양학하듯 하는 새끼들이라."
"팀 만들고 바로 돌렸는데 그걸 저격한다고?"
"스벅님 방에 악질들이 많긴 하죠."
서서히 매칭을 취소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통일되는 와중이었다. 내내 침묵하던 노르드가 불쑥 끼어들어왔다.
"근데 닷지를 왜 하죠?"
"네? 저것들하고 게임하면 연습도 안 되고 괜히 기분만 잡쳐요. 방플도 하고"
"스벅님 저격이면 룩이잖아요."
"...예. 아니 근데 룩 상위 티어는 되는 새끼들이라니까요?"
"룩이 방플하는 게 의미가 있나요?"
뭐라 대꾸하려던 스벅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앞 쪽에서 태연히 활시위를 통통 튕기는 꼴이, 어울리지 않게도 순진무구하게 느껴졌다. 저 상남자 커스터마이징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다니. 정말 궁금한 것처럼 물어보는 노르드의 맑은 목소리 때문일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벙어리가 된 스벅에게 노르드가 말했다.
"빨리 끝내고 다음 판 돌리죠. 그게 더 간단할 거예요."
여전히 평이한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와닿았다. 노르드의 캐릭터 위로 떠오른 'Nord11'라는 닉네임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스벅은 홀린 듯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