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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 91 ­ 제가 키웠어요 (91/243)

〈 91화 〉 91 ­ 제가 키웠어요

* * *

칼고:님

Nord:네.

칼고:이상한거 가르치지말고 오더나 제대로 가르치시죠?

칼고:무슨 거의 세뇌 교육을 시켜놨던데

Nord:금시초문이네요.

Nord:저 자료까지 만들어가면서 오더 가르쳐드렸는데

Nord:음해ㄴ

칼고:그 쓰레기 빌드는 왜 시켰는데요

Nord:??? 그런 거 알려드린 적 없는데요.

Nord:숨겨진 꿀 빌드는 알려드렸는데

칼고:너무 숨어있는데

칼고:애초에 메이지 원빌드한테 그런거 알려주는게 말이 되나. 근접빌드 이해시키려고 하는거면 범용적인걸 가르쳐줘야죠. 그건 너말고 쓰는 사람도 없잖아요;

Nord:있어요.

칼고님이 메세지를 입력하고 있어요...

Nord:그거 무식이도 쓰는데

칼고:.

칼고: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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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다.

현실은 뒤집힌 모래시계처럼, 멈추는 일 없이 흘러갔다.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플랫폼 대전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참가자들이 매일같이 모여 연습을 하지는 않았다. 각자 다른 시간대에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들이다. 합방을 위해선 누군가 정규 방송 시간을 비틀어가며 참가할 필요가 있었다. 하물며 코치들까지 고려하면, 주 단위로 약속을 잡는 게 더 빠를 지경이다.

결국 저스틴 플랫폼 대표팀은 팀 연습을 삼일 뒤로 미뤘다. 마음 한 켠에 초조함이 자리 잡았다. 연패를 거듭하다 최악의 분위기로 해산한 저번 연습이 머리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승리를 맛보았다면 그걸 위안으로 삼으련만, 떠오르는 건 처참했던 연패의 기억밖에 없었다.

스트리머들에게 삼일의 공백은 연습이 없는 휴일 날이 아니었다. 모두 각자의 방송에서 나이트폴 개인 연습에 들어갔다. 쪼망이나 스벅처럼, 따로 코치를 구해 교육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종합 게임을 주 컨텐츠로 하는 해빙기조차 삼일이라는 시간 전부를 나이트폴에 때려 박았다. 누군가는 질색을 할만한 나이트폴 강점기가 찾아왔다. 팀원들 대다수가 방송을 켤 때마다 기다란 방송 목록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스트리머들이다. 하나 둘, 커뮤니티에서 플랫폼 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기 시작할 무렵.

여섯 명의 스트리머가 다시 모였다.

"히사시부리! ...뭐야. 내 마이크 안 들리나? 켜져 있잖아. 다들 인사 좀 받아줘."

"...아, 안녕하세­" "너무 맥락이 없잖아. 그리고 스벅 오빠 목소리로 그러니까 존나 씹덕같아."

"내 목소리가 어때서?"

"비계 껴있어."

예정된 시간에 늦은 사람은 없었다. 전날 아침부터 스벅이 몇 차례나 당부한 덕일지도 몰랐다. 약속 시간을 반드시 준수하라는 공지 메세지를 열 번도 넘게 올렸다. 늦으면 온갖 벌칙이 부여될 거라는 경고문과 함께였다.

대부분의 스트리머가 합방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메세지가 누구를 겨냥했는지는 명확했다. 팀의 게으른 궁병을 향한 것이겠지.

"다들 연습 좀 했나?"

"옙. 물론이죠, 형님. 그렇게 꼬라박았는데 연습 안했으면 그게 사람이게요? 저 칼고님한테 쌍검 배워왔습니다. 진짜 칼고님도 보면서 감탄을 참지 못하셨거든요. 금방 보여드릴게요."

"...칼고님 지금 안 계시다고 너무 아무 말이나 하는 거 아니에요? 그분 기준점 높아서 어지간하면 통과 못했을 거 같은데."

"어허. 내가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왜 하겠냐. 시청자들이 그 증거야. 봐봐. 열렬히 동의해주고 있잖아."

"겁나게 불타네요. 뜨겁다, 뜨거워."

댈런이 불타는 이모티콘으로 가득찬 스벅의 채팅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팀 연습을 한다고 그룹으로 설정해둔 방송 카테고리에 팀원들의 방송이 모두 켜졌다.

연습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시청자 수가 심상치 않았다. 치솟은 관심이 그대로 투영된 모습이다. 누군가에겐 기대치로, 다른 누군가에겐 부담감으로 느껴질 관심이다. 그는 전자에 해당됐다.

실시간으로 시청자가 늘어날수록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는 것 같았다. 걱정이 아니라 기대감으로 두근대는 박동이다.

킬 로그를 연속으로 띄우고, 멀티 킬을 기록하며, 적의 에이스를 기습적으로 끊어내는... 슈퍼 플레이를 보고 저 많은 시청자가 자신의 닉네임을 외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미 지난 연습 때의 처절한 죽음은 댈런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삼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연습을 위해 모인 스트리머 중 나이트폴 경력이 가장 짧은 사람은 쪼망이었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스트리머들은, 주력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나이트폴을 꽤나 오랜 시간 플레이해왔다.

경력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습관과 버릇은 쉽사리 고쳐지는 것들이 아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크고 작은 습관들. 그걸 하루 이틀만에 고칠 수 있다면 누구나 킹을 바라볼 수 있었겠지.

제 삼자가 옆에서 지켜보고 지적한다고 해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비숍 따리에 불과한 유저가 불현듯 깨달음을 얻어 룩으로 올라가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댈런은 스벅이 으스대는 모습을 방송 컨셉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쌍검으로 유명한 칼고에게 배웠다 한들, 그 부족한 실력이 삼일만에 발전할 수 있을지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처음으로 오더를 잡은 쪼망에게 더 크게 적용됐다.

"쪼망님?"

"네?"

"노르드님한테 오더 배우셨죠? 오늘 기대하겠습니다."

"네, 네! 열심히 해볼게요!"

"야, 진짜 존내게 부담주네. 쪼망님, 그냥 편하게 하세요. 어차피 망해도 저번만큼 망하진 않을 거예요. 저희도 입 다물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혹시 힘들면 말씀하세요. 제가 대신 오더 할 테니까."

"똘주야. 너는 그냥 닥치고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댈런은 쪼망의 오더를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처음 노르드가 오더를 바꾼다고 했을 때도 그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아무리 후열이 오더에 유리하다곤 하지만, 나이트폴을 일 년도 안 한 사람에게 그런 중요한 임무를 맡기다니.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한 이상 오더는 금방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연습이 시작되면 첫 판부터 부족한 밑천이 드러날 게 뻔했다. 그럼 팀은 오더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게 되겠지.

노르드가 나이트폴 초고수라고는 하지만, 그것과 팀을 코칭하는 능력은 엄연히 별개의 것이었다. 이번 팀 연습은 저번보다도 부족한 성적으로 마무리하게 될 지도 몰랐다.

그는 내심 그걸 바랬다. 아무튼, 암울한 상황에서 개인의 활약은 더 빛이 나는 법이니까. 댈런은 코치가 극찬을 받는 것 보다는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향하는 걸 선호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시간 됐네요. 지각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 희망적이네. 이제 매칭 돌릴까요?"

"일단 한판 돌리고 피드백하는 식으로 가죠. 인게임에는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아, 쪼망님."

"네?"

"빌드 그거 쓰시죠."

"아... 네!"

그거? 그게 뭔데.

금새 잡혀버린 매칭 탓에, 그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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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아, 아. 뭐야, 벌써 시작했어? 정각에 맞춰서 온 건데."

"오늘 최대한 많이 돌린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다들 빨리 온 거 같아요."

"음... 됐다. 관전으로 들어갔어요? 난 스벅님 방송으로 보려고 하는데. 개인 화면으로 실수하는 거나 잡아주려고."

"관전은 피드백 때 쓰려고 켜두기만 했어요. 게임은 저도 쪼망님 화면으로 봐야죠. 보이스를 들어야되니까."

"그건 그렇지. 근데 삼일 가지고 오더가 되나. 가르치는 거 살짝 봤는데, 아예 기초부터 가르치더만. 그 다음엔 되도 않는 쓰레기 빌드나 가르쳐주고."

"쓰레기 빌드 아닌데."

"그 시간에 게임이나 보여주는게 낫겠어. 그건 따지고 보면 근접 빌드도 아니지. 운영도 극단적이잖아. 그거 한다고 백병전하는 전열들 입장이 이해가 가겠어? 애초에 상식적으로, 그런 빌드 쓰면서 오더를 어떻게 해? 자기 발소리 줄이는데 온 신경을 다 쓰더만. 그냥 메이지 고정시키고 오더를 손 봤어야죠. 어디 또라이 아니랄까 봐..."

"쓰레기 빌드 아니에요."

쓰레기 빌드 아닌데.

이어폰의 음질이 선명한 탓에 칼고가 툴툴대는 소리가 마치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뚜렷하게 들려왔다. 기분이 나빴다. 내가 얼마나 머리를 굴려가며 힘들게 만들어낸 빌드인데, 쓰레기 취급을 받는지. 내 생각에 마법사죽이기는 뚜렷한 목적성을 가진 잘 만든 빌드였다.

더 이상 들어주기 싫어서 칼고의 음성을 희미할 정도로 줄여버렸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가 종래에는 모기가 앵앵대는 것만큼 하찮아졌다. 자고 있을 때 들으면 성가신, 그 정도의 소음. 딱 좋았다. 내심 만족하며 쪼망의 방송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법사죽이기. 이제야 쪼망의 빌드를 확인했는지, 팀원들의 의문섞인 목소리가 쪼망에게로 향했다. 몇몇은 그게 무슨 빌드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 방송을 봤나.

다섯 명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음에도 쪼망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좋은 태도였다. 선구자적인 빌드를 사용할 때는, 의심의 눈초리를 불식시키기 위해 당당히 자신감을 표하는 게 중요했다. 일반인들은 익숙지 않은 선진문물을 보고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구자의 숙명이었다.

쪼망이 사용하는 건 조금 수정된 형태의 빌드였다. 근접전 능력을 아예 제로에 가깝게 줄여버리고, 은신과 원거리 견제 능력에 치중한. 굳이 따지면 극단적으로 기동성에 올인한 궁병 빌드와 비교할만했다.

칼고의 말마따나 오더에 적합한 빌드는 아니었다. 마법사죽이기라는 빌드의 근본이 그랬다. 메이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빌드지, 안정성을 추구하거나 후열에 가만히 박혀 있는 빌드가 아니었다.

보통 아군 진영의 안전한 곳에서 진을 치는 메이지의 특성상, 그걸 암살하기 위해선 당연히 몸을 숨기고 적 진영 깊숙한 곳으로 침투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다. 눈 앞에서 적과 마주하는 전열 정도는 아니어도, 오더를 내릴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암살자란 태생이 그런 존재인 법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변칙적인 빌드이기도 했다. 메이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활용하기에 적합한.

사실, 오더를 이제 막 배운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구도는... 전장을 서로의 오더가 무용한 혼란 상태로 빠뜨리는 것이다. 치밀하게 서로의 수를 읽는 전략 싸움이 아니라.

어찌보면 전장의 본질과 가장 잘 어울리는 환경.

난전을 유도하는 일이다.

《"진짜 대치만 해도 돼요? 우리가 블루도 아니고..."

"네! 안 죽고 웨이브만 지키는 식으로 기다려주세요."

"그러다 실패하면 어떡해?"

"그럼 한판 내주면 돼요!"

"...쪼망님, 성격이 좀 바뀐 거 같은­"》

말을 하면서도 쪼망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적 메이지의 위치는 특정된지 오래였다. 적군의 위치 파악이 중요한 팀 게임에선 대번에 관측 마법을 시전하는 메이지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럼 적이 지키는 정문 쪽에 아군의 위치를 대놓고 노출시키고, 일반적인 힘싸움을 하는 척 시간을 끌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메이지를 추격해 죽이는 게 유일한 강점인 빌드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흔들림이 없는 모습에 흡족함이 차올랐다. 내가 주의깊게 보는 건 나이트폴 화면이 아니라 쪼망의 캠 화면이었다. 방송으로 송출되는 쪼망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내가 처음 그녀를 도와줄 때만 해도 얼마나 시선이 흔들렸던가. 미니맵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게임 중에 채팅창을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눈이 돌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런 건 게임이 끝났을 때나 보면 되는 것이다. 나이트폴 같이 집중이 필요한 게임을 할 때는 채팅창 따위를 신경쓸 이유가 없었다. 온전히 게임에만 신경을 기울이는 게 중요했다.

이젠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 게임이 진행중인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모습이다. 가르침을 잘 흡수하는 학생을 보고, 제대로 된 스승이라면 당연히 기쁨을 느끼겠지.

망설임 없이 나아간 쪼망은 어느새 목표를 달성하기 직전이었다. 적팀에 침입에 성공한 암살자를 막을 존재는 없었다. 그림자처럼 적 진영에 스며들어, 거침없이 메이지를 향해 나아간다. 이윽고 마법진을 준비하는 적 메이지의 머리통에 화살을 박아넣는 것까지.

훌륭한 마무리였다.

《"적 메이지 잘랐어요! 다음 웨이브 타이밍에 한번에 들어갈게요. 병사들 좀 남아있나요?"

"어, 어어. 꽤 지켰어요. 상대 메이지 없으면 무조건 뚫을 수 있어요, 이 정도면."

"아니, 어케 짤랐어?"》

쪼망을 가르치기 위한 자료를 만들면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메이지의 존재였다. 성가신 마법사들.

병사들의 웨이브에 따라 공수를 조율하는, 내게 익숙한 나이트폴의 전투 구도에 마법사라는 근본 없는 폭격기가 떨어진 것이다. 플레이어의 목숨까지 털어가며 힘들게 지킨 병사들을 마법 한방으로 전소시키는, 변수의 덩어리. 메이지의 존재를 끼워 넣으면 점령전의 전투 구도가 무궁무진하게 늘어났다.

그때만큼은 내가 원주민으로 변했다. 신문물을 처음보고, 제 상식 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존재에 당황한 원주민. 새로 접한 나이트폴에서 가장 처음 만든 빌드가 마법사죽이기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튼, 머리로는 이해하고 받아들여도 가슴으론 수용하기 싫었다. 검을 들고 싸우라고. 불덩이나 쏴대는 게 아니라.

《"뚫었다! 적 전열 다 갈았어요. 이대로 밀고 나가죠. 돌쇠야, 내 쪽으로 붙어봐."

"네. 거북이만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상황 좋은데? 이거 내성까지 직행해도 되겠어."》

돌파가 성공적으로 끝났나. 본분을 마치고 정찰병 역할을 수행하는 쪼망의 시야에, 정문을 뚫고 들어오는 붉은 물결이 포착됐다. 아직 게임은 초반부에 불과했다. 수성측이 성을 지켜야 할 시간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는 걸 감안하면 승기가 완전히 기울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는지, 게임 내내 화면에 집중하던 쪼망이 시선을 돌리며 활짝 웃었다. 아마 드디어 채팅창을 확인한 모양이다.

잘못된 길에서 벗어난 제자를 바라보는 기분에, 나도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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