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 92 ­ 잘 될거야, 아마도 (92/243)

〈 92화 〉 92 ­ 잘 될거야,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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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파악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건 실패의 원인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철저히 통제된 실험 환경에서조차 온갖 변수가 난립하는데,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실 상황에서 어떻게 원인 하나를 짚어내겠는가. 그게 쉬웠다면 한번의 성공을 위해 수십 번의 실패를 반복하면서 발버둥칠 일은 없었겠지.

해빙기는 첫 번째 팀 연습을 떠올렸다.

그거야말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성과도, 보람도 없는 연패. 인정하기 싫은 결과였다. 이런 연습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싶었다.

패배를 한다면 무엇이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인가를 이해하고 분석해서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상식에선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연패의 수렁에선 그런 당연한 절차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장부터 커다란 벽에 틀어 막혔다. 문제를 찾는 것보다, 문제가 아닌 점을 찾는 게 더 쉬울 것 같은 총체적 난국.

패배한 게임의 리플레이까지 돌려보며 분석한 결과 그가 도출해낸 결론은 하나였다. 이 팀은 답이 없다. 이번 대회는 미련을 버린 채 순리대로 흘려보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체념한 상태로 준비한 두 번째 연습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의 체념과는 달리... 문제점을 찾고 보완하려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었던 모양이다.

"저 마법 준비됐어요! 성문 쪽으로 빠지면 바로 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쪼망이 셋을 외치기 전, 커다란 방패로 적을 강하게 밀쳐낸 해빙기가 뒤로 몸을 뺐다. 여러 차례 거듭된 신호로 이미 성문 외벽 가까이 붙은 상황이었다. 몇 걸음 물러나지 않았음에도 캐릭터가 금방 벽에 막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방패를 정면에 세운 채, 슬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불덩이가 하늘을 날았다.

쾅­!

붉은 물결의 한 가운데로 떨어진 불덩이가 구덩이를 만들었다. 얕게 패인 지면 위로 물을 대신해 불길이 흘렀다. 폭발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은 병사 일부가 불길에 닿아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아군에겐 승전보로 들리는 소리였다.

똑같은 비명일진대, 왜 아군과 적군의 괴리감이 이렇게 커다란지. 해빙기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병사가 불타는 모습을 허망한듯 바라보던 적 플레이어가 다시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와 무기를 맞대던 적수였다. 거대한 도끼를 맹렬히 휘두르던, 저돌적인 기세는 어딘가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자꾸만 고개를 돌리는 것이 망설임이 가득 담긴 모습이었다.

마법이 떨어지는 걸 보고 전의를 잃었나. 이해는 갔다. 아군 병사가 몽땅 타죽은 상태로 돌진해봤자 개죽음에 불과하리라. 아마 다음 웨이브를 기약하며 체력을 회복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겠지.

해빙기의 생각대로, 야만성 가득한 전사는 곧장 몸을 돌렸다. 후퇴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덤벼들던 것 치고는 허무한 마무리였다. 터벅 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허탈하게 느껴졌다. 영락없는 패자의 뒷모습이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음성 채널을 통해 팀원들의 브리핑이 들려왔다. 각자 마크하고 있던 적 플레이어가 모두 후퇴했다는 보고였다. 아군 전사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완벽한 수비라고 말해도 지적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우, 쪼망님 마법 지원 왜케 빨라요? 노르드님이 마법도 알려주셨나?"

"헤헤, 택틱 여러 개 배워왔어요. 옵저빙으로 적 조합 파악하고 상황 맞춰 쓰라고 하셔서... 이번에 엄청 빨랐죠? 아예 외성에다 진 깔았거든요."

오고 가는 대화에 활기가 가득했다. 이전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패배가 분위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만큼, 승리는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고조시켰다.

이 게임을 승리로 마무리한다면 벌써 4연승이었다. 이미 팀원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깃들어있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것처럼. 이것도 연승의 효과일까.

승리의 일등 공신은 역시... 발칙한 빌드를 가져온 팀의 메이지였다.

첫 번째 게임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마법사죽이기라고 했나. 팀이 결성된 후 첫 번째 소개에서부터 메이지 원빌드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새롭게 준비한 빌드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름이었다.

나름 나이트폴 경력이 오래 됐다고 자부하는 해빙기도 들어본 적 없는 빌드였다. 확실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면, 방송을 재밌게 하기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르드가 만든 빌드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오로지 메이지를 암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괴짜라는 말밖에 붙일 수 없는 기묘한 빌드. 뒤늦게 빌드 세팅을 확인했을 때에 느꼈던 충격이 대단했다. 아무튼, 올라운더로 이런저런 빌드를 많이 사용해봤지만 저런 특성을 사용하는 빌드는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나이트폴에 은신 관련 특성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결국 암살에 성공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지적할만한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닌 것 같긴 했으나 실효성을 증명한 것이다. 저 기묘한 빌드를 가지고.

아니 사실, 빌드 같은 것 보다는 쪼망을 먼저 칭찬하는 게 맞겠다. 분명 여섯 명의 팀원 중에서 지난 삼일 간 가장 많이 변화한 사람은 쪼망임이 분명했다.

누구라도 놀랄만한 오더 능력을 보여준 건 아니다. 많이 긴장했는지 중간 중간 말을 더듬는 모습이나, 밀려오는 브리핑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초보자의 그것이었다.

번뜩이는 오더나 순간적인 재치도 보기 힘들었다. 오더의 내용이라고는, 곧 웨이브가 밀려오니 공격을 집중하자는 아주 기초적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말이 줄어들지 않았다. 몇 번인가 불리한 구도로 게임을 시작했을 때도, 관측 마법을 활용하며 꾸준히 적팀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다. 게임 내내 큰 그림을 보려는 시도였다.

그거면 족했다. 세부적인 라인 조율은 스벅이나 자신이 맡으면 됐으니까. 중심 오더를 잡아주는 것. 아마 그게 즐비한 문제들 중 가장 커다란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것만으로도 게임의 구도가 크게 뒤바뀌었다.

이게 바로 코치의 힘일까. 아니,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배움을 흡수하는 정도는 배우는 사람에게 달려있을 것이다. 돌주가 삼일동안 교육을 받는다고 저렇게 발전할 리는 없을 테니까. 쪼망은 생각보다 잠재력이 높은 플레이어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해빙기가 체념했던 것을 반성할 정도로.

"곧 다음 웨이브예요. 이번엔 상대 메이지도 준비됐을 테니까, 진형 다시 잡고 준비하죠."

그래, 저런 거.

무참한 연패 이후 파멸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는 연승 가도. 이 엄청난 간극에 기쁨을 느끼지 않을 나이트폴 유저는 없겠지. 해빙기는 미니맵을 보고 대열을 다시 갖췄다.

네 번째 승리가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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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지점에 진 박고 파볼? 완전 날로 먹는 택틱이구만. 저런 건 또 어디서 주워 왔어요?"

"솔랭에서 마죽 돌리다가 만났어요. 최적화 루트로 달렸는데 준비가 엄청 빠르더라고요. 라인 조금만 밀려도 망하는 전략이라 랭크에서 써먹기는 좀 그런데, 팀겜이면 꽤 효용성이 있을 것 같아서."

"다전제에 써먹으면 어지럽긴 하겠네. 웨이브 하나만 지워도 본전인가? 지금 상대처럼 당황해서 뒤로 빠지면 잡아먹은 거고."

"그렇죠."

"메이지 싫다고 아주 염병을 떨었으면서 빌드 연구까지 하셨네요?"

"죽이려면 알아야 되니까."

그야 그렇겠지.

게임은 이미 결판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웨이브와 함께 밀어붙인 공세가 성문을 돌파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적 메이지의 판단이 패착이었다. 어설프게 아군 병사를 지키기 위해 움직일 것이 아니라, 차라리 맞불을 놓는 식으로 공격을 퍼부었으면 좋았을 텐데. 첫 공격이 허무하게 무산된 탓인지 위축된 모습이다. 이 정도면 아군 메이지가 전략에서 완전히 먹고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저게 말 끝마다 메이지 혐오가 묻어나오는 인간한테서 나온 택틱이라니.

따지고 보면 그랬다. 지성 따위는 우주로 날려버린 것 같은 빌드와 커마를 가지고, 실상은 어지간한 유저들보다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플레이하던 인간이 아닌가.

마법사죽이기라는 이름부터 노골적인 빌드를 만들면서 메이지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했을 리는 없는 것이다. 비록 본인이 플레이하지는 않더라도, 보다 확실히 죽이기 위해선 알아야만 할 테니까.

첫 판에 곧바로 튀어나온 그 사특한 빌드를 보고 곧장 잔소리를 박은 건 섣부른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후회는 되지 않았다. 당연하다. 정작 잔소리의 대상이었던 인간은 마이크 소리를 줄여놓고 듣지 않았으니까. 칼고가 그걸 눈치챈 건 게임이 끝나고 피드백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정말, 빌어먹을 년.

문득 칼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이 연습 과정을 타 플랫폼의 누군가는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염탐꾼에 대한 생각이다. 한두 명쯤은 분명 보고 있을 게 뻔했다.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정찰병을 보내는 건 상식과도 같은 일 아닌가. 전프로니 뭐니 이름 날리는 네임드가 코치로 붙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들려왔으니, 그 중 한명은 저스틴 팀의 게임을 분석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누구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쯤 두통을 호소하고 있지 않을까. 첫 번째 경기만 봐도 정상적인 구도의 게임은 물 건너 간 셈이다. 저건 의식하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빌드였다. 어떤 식으로든 대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터. 설령 그걸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항상 의식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노르드가 거기까지 생각했을지. 칼고는 그게 궁금했다.

승리를 확신했는지 칼고가 켜둔 스벅의 방송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멘트들이 이어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확인하고, 자신의 채팅창을 바라보던 칼고가 돌연 미간을 찌푸렸다. 채팅을 가득 채운 불순한 무리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저기요. 근데 방송 안 켜요? 당신 시청자들 지금 전부 내 방송에 몰려왔거든? 내 방송이 무슨 수용소도 아니고."

"저 지금 송출 컴퓨터가 고장나서 방송을 못 켜요."

"너 원컴이잖아요."

정적.

소리를 줄인 탓에 스벅의 방송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팀원들이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득함이 느껴지는 소리는 방송의 오디오를 온전히 채우지 못했다. 조용한 방송과는 반대로, 칼고의 채팅창은 더욱 더 빨라졌다.

저 새끼들은 왜 내 방송에 불을 지르고 있는 거야.

"그렇네요."

돌아온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칼고는 굳이 뭐라고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제 입만 아플게 뻔했으므로.

플랫폼 대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연습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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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d Love:노르드님

Nord Love:엘튜브 댓글에 임진왜란 엔딩 언제 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네요.

Nord Love:빨리 카테고리 하나 완결짓고 가는게 좋지 않을까요?

Nord:아하

Nord:엔딩 이미 봤다고 전해주세요.

Nord Love님이 메세지를 입력하고 있어요...

Nord Love: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Nord:브금 좋더라구요 엔딩 크레딧

Nord Love:????

Nord Love:

Nord:조선의 평화는 지켜졌습니다.

Nord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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