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 93 ­ 누구나 승리를 바래 (93/243)

〈 93화 〉 93 ­ 누구나 승리를 바래

* * *

"씨발, 저게 뭔 빌드야?"

"킷따! 메이지고로시! 모 오와리다."

"너 그 좆같은 말투 계속 쓸래?"

"쉬는 날 직장 상사한테 끌려와서 무보수 노동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아, 씁. 밥 사준다고 했잖아."

"밥 한끼 얻어먹고 휴일 날 직장 상사 도와주기 대 밥 안 먹고 집에서 인방 보면서 뒹굴거리기. 백 명한테 물어보면 백 명이 다 후자 고르겠죠?"

"...직장 상사가 아니라 친한 형 동생 사이로 하지?"

"원래 사회에선 직급이 우선시 되잖아요. 팀장님."

상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카데미에서 인터넷 방송에 가장 빠삭한 놈을 데리고 왔더니, 벌써 며칠 째 직장 상사의 월권이라며 투덜거리는 모습이다.

어차피 쉰다고 해봤자 제 말대로 인터넷 방송이나 볼 게 뻔한데 뭐가 불만인지. 지금 하는 일과 별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누워서 볼 수 없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이겠지.

그러면서 맡은 일은 제대로 처리하고 있으니, 사실 그로써는 더 할 말이 없기는 했다. 따지고 보면 민주 저 놈의 말마따나 사적인 영역에서 후배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을의 입장에 가까운 것이다. 밥 한 끼로 무마하기는 부족할 지도 모르겠다.

상민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쪼망이라는 사람이었지. 메이지 원빌드에 나이트폴 경력도 짧은 편이라 그다지 경계하지 않았던 상대였다. 아마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안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성에 메이지 유저면, 대개 메이지 확장팩으로 유입되어 나이트폴에 입문한 전형적인 유형일 가능성이 높았다. 메이지 원빌드에, 다른 빌드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이런 플레이어는 타고난 센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끽해야 비숍 정도에서 정체되기 마련이다. 나우플 팀만 해도 그런 유저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인지.

자연스레 적 진형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적 메이지에게 화살을 꽂아 넣는 모습을 지켜보던 상민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서 꺼림칙한 기색이 묻어나왔다.

"야, 저거 무슨 빌드라고? 뭉댕이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인데."

"마죽! 메죽! 메살! 킹르드! 대르드! 황르드! 갓르­"

"씨발아, 진짜."

"아 거 성격 참 급하시네. 형 요즘 트렌드 너무 뒤쳐지신 거 아니에요? 랭크 좀 돌리세요. 노황이 개발한 빌드 아닙니까, 저거."

"...저게 유명하다고? 나 시즌 킹으로 마무리한 거 몰라? 몇백 판 박으면서 저런 빌드 한번도 못 봤는데."

"당연하죠. 상위 랭크에서 저렇게 기형적인 빌드를 누가 씁니까? 저도 노르드님 밖에 못 봤어요."

"진짜 너 나 빡돌게 할라고 그러지?"

"저거 커뮤니티에서 한번 떠들썩했을걸요? 왜 노르드 처음 등장했을 때 있잖아요. 랭크 등반하는데 광전사 빌드만 하다가 갑자기 이상한 빌드가 껴 있으니까, 나갤 애들이 바로 분석 들어갔죠."

"그래서 결론이 뭔데."

"랭크에선 완전 예능 빌드로 결론났죠, 뭐. 역할군으로 분류하면 시즌3 때 한창 유행했던 암살자 빌드랑 비슷한데, 그것보다 훨씬 제한적이에요. 주무기 단검에 보조무장 석궁이라 딜이 너무 약해서 진짜 메이지밖에 못 잡아요. 무기 바꾸면 기동성이 확 죽어서 빌드 자체가 나가리되고... 그런거죠."

상민이 얼굴을 찌푸렸다.

변수가 늘어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나우플의 팀 전력이 저스틴 측을 상회하는 상황이었다. 평균적인 랭크도 웃돌았으며, 무엇보다 메인 오더를 맡은 적색별이 상당한 수준의 게임 이해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백 퍼센트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기습적인 전략이나 변수를 두지 않고 정석 대 정석으로 붙는다면 높은 확률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저런 걸 고려하지 않는다면.

메이지를 저격해서 지워버리는 걸 목적으로 하는 빌드.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초견살이다. 개별 빌드를 대비해야 되는 것 자체가 골치아픈 일이나 다를 바 없었다. 5전 3선승의 다전제의 모든 경기에서 저 그림자를 의식하며 전략을 구성해야 한다는 게, 팀의 코칭을 맡은 입장에서 얼마나 귀찮은 일이란 말인가.

"저걸 따로 대비를 해야 돼? 우리 메이지가 유연하게 대처하길 바라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하는데. 씹... 머리 아프네, 진짜."

"솔직히 걍 메이지 쪽에 한명 붙여두면 되잖아요. 전열에서 하나 빠진다고 게임 뒤집힐 정도인가? 암만 봐도 나우플 전력이 더 쎄 보이는데요."

"그런 걸 고려해야 되는 거 부터가 문제야. 막말로 그렇게 배치 강제해놓고 여섯 명이 같이 푸쉬하면 어떡해? 존나 불리한 가위바위보라고. 무난하게 정석전으로 끌고 가는 게 제일 좋은데, 뭐 저딴 기묘한 빌드를 들고 왔어."

"얼씨구. 상대도 전력 딸리는 거 뻔히 알고 있겠죠, 당연히. 그리고 뭐 프로씬도 아닌데 운영 싸움으로 가겠어요? 저 같아도 날빌 몇 개 준비해서 연습시킵니다. 정 걱정되면 아주님한테 옵저빙부터 쓰는 택틱 알려주시든가. 정찰이라도 되면 적색별님이 알아서 대처하겠죠."

"너 너무 남 일 처럼 얘기한다?"

"제 일 아닌데요? 제가 뭐 누구처럼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니고, 플랫폼 대전 이긴다고 뭐 큰 거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저는 솔직히 져도 상관없죠. 그리고 팀원들 없어서 하는 말인데, 저스틴 팀이 더 호감이에요. 와, 노르드! 나도 노르드님 하고 같이 코칭하고 싶다. 목소리 개쩔지 않아요? 저 목소리로 asmr 엘튜버 해도 잘 나갈 거 같은데."

"...씨발, 이것도 코치라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여기서 승리에 집착하는 건 상민 자신 뿐인 듯했다. 노르드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며 게임에는 집중도 하지 않는 민주와는 달리, 그는 플랫폼 대전을 성공적으로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아무튼 힘들게 얻은 기회였으니까.

은퇴한 전프로가 개인 방송으로 성공한다는 것도 이젠 옛말에 불과하다. 전프로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는 되는 게 없었다. 하물며 프로일 적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수많은 팬층을 확보한 것도 아닌 이상에야, 난립하는 방송인들 사이에서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리그 우승 경험까지 가지고 있는 상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우플에서 개인 방송을 시작한지 약 두 달째. 방송 초기에는 제법 많은 화제가 되며 시청자가 유입되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약발이 떨어진지 오래였다. 나름대로 말주변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기는 했으나 시청자를 늘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제성, 화제성이 중요한 것이다. 이 동네에선 어지간히 자극적인 맛이 아닌 이상에야 사건 하나로 시청자를 유입시키긴 힘들었다.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이벤트를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수많은 방송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플랫폼 대전의 코칭을 맡은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인방 플랫폼 따위에 소속감을 느끼는 걸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과몰입하는 시청자가 많다는 건 무시할 수 없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과몰입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는 하니까.

대회에 관심을 가지고 모여드는 시청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만큼, 그걸 승리로 이끌었을 때에 받게 될 관심도 엄청 날 것이 분명했다. 주된 관심은 대회 참가자들에게 향하겠지만 그게 어딘가. 스포트라이트의 환한 조명 빛이 조금씩 옆으로 새어나오기만 해도 큰 이득이었다. 운이 좋다면, 다른 이벤트 매치에 초대 받을 수도 있겠지.

그에겐 이 이벤트전의 승패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상민은 절실하게 승리를 바랬다. 소싯적 리그에서 뛸 때 만큼의 간절한 심정으로.

가라앉은 눈동자가 다시금 모니터로 향했다. 멀티뷰로 켜놓은 저스틴 방송이 그의 새까만 동공 속에서 점멸했다.

###

<플랫폼대전 언제임?=""/>

비시즌이라 볼거 ㅈㄴ없네

나우플 애들 연습하는거 그래도 팀겜느낌 살아있어서 볼만한듯 코치로 망갈 붙었다길래 보러간건데 꽤 잼씀 ㅋㅋ

그래서 본겜 언제하냐? 빡연습하는거보면 얼마 안남은거같긴한데

ㅇㅇ:이번주말

­ㅇㅇ:주말언제??

­ㅇㅇ:너는 손가락이 없냐?

애기뭉*:망갈? 망갈이 왜 좆방충 코치를 봄?

­ㅇㅇ:나붕아...망갈 인방시작한거 아직도 모르고 있었냐...

­애기뭉*:아니ㅋㅋ 존나 안어울리잖아 프로때 온갖 무게 다 잡던 인간인데

­ㅇㅇ:처음 방송켰을때 갤에서 그런 반응 많았음ㅋ

<근데 이거="" 밸붕이잖아=""/>

나우플쪽이 훨씬 쎈거같은데? 적색별 저 사람 저번 시즌에 퀸까지 찍음. 룩 하위티어랑 비교하면 개바르지않나.. 어중간하게 랭크 맞춘다고 나와서 ㅈ망한거같음ㅋㅋ

저번처럼 아예 최고랭크들끼리 붙으면 안됐나 원사이드로 끝나면 개노잼이야ㅏㅏㅏ

신빡이*:둘다 비슷한거같은데? 나우플 여자 두명은 그냥 ai병사 수준으로 봐야됨 ㄹㅇ 존나 못해서

­ㅇㅇ:비숍2면 그래도 사람구실하지않나

­신빡이*:절대 그 실력아님. 걍 누구한테 대주고 버스받아서 올라간 년들이야ㅋㅋ 나우플 여캠인데 겜방 겸하는 년들 태반은 버스나 여왕벌임. 개인화면 잠깐만 봐도 바로 견적나온다ㅇ

ㅇㅇ:오더차이가 지림ㅋ 적색별 팀겜 경험 많아서 오더 잘하는 걸로 유명함.

아메바13*:양쪽 게임 다봤는데 서로 할만한듯. 저스틴 팀 연습과정이 더 스무스한 느낌임. 메인오더 능력은 떨어지는데 전체적인 게임 이해도가 나우플보다 좋은 것처럼 보임. 나우플은 저랭크들 자아를 완전히 죽여버렸던데, 게임 좀 말려서 메인오더 힘이 떨어지면 다같이 무너지는 느낌. 그래도 기본 체급은 더 높은 편이라... 결국 비등비등할거같아.

­ㅇㅇ:초반 힘싸움할때 밀릴 정도는 아닌가봄? 일대일 구도 만들어지면 다 발릴거같던데

­아메바13*:그 정도 차이는 아니야. 그리고 스벅이 이미지보다 훨씬 잘해.

­ㅇㅇ:지랄

<코치진끼리 붙는="" 이벤트전은="" 안하냐?=""/>

망갈하고 노르드 붙는거 보고 싶은데... 망갈도 프로때 결전으로 유명했잖아

진영선택권 걸고 결전 한번 안하나?? 노르드 결전하는거 다시 보고싶어. 이년 요즘 방송도 잘 안한단말이야...

ㅇㅇ:ㄹㅇ 개같은년 코칭하는데 방송을 안킴ㅋㅋ

ㅇㅇ:안할듯? 그런 말 없었음. 그냥 코인토스할거같아

나랑달*:방송 잘 안켜서 엘튜브 무한으로 돌려보는중... 저결 개인화면은 봐도봐도 안질려

­ㅇㅇ:아니 근데 왜 안켜는거야? 플랫폼대전이면 시청자 유입도 많을거아니야

­나랑달*:내가 그 무친련 생각을 어케알아

###

"또 이겼다! 저 이러다 진짜 대회 전에 룩 갈지도?"

[연승 미쳤다 ㄷㄷ]

[요즘 왜케 잘하냐]

[대회 앞두고 폼 최고네ㅋㅋ]

[노르드님이 하늘에서 보고 기뻐하실거예요.]

[무지성 시즈모드 멈추니까 점수 오르는거보소]

[스벅 모가지 딸 날이 얼마 남지않았다]

승리를 자축하듯, 흔들리는 깃발. 연승을 이어나간 덕분인지 점수가 증가하는 폭도 눈에 띄게 올라간 모습이다. 채팅창에는 그녀를 칭찬하는 말이 가득했다.

결국 더는 웃음기를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가 광대까지 치솟았다. 자신이 생각하더라도, 이번 판의 플레이에는 지적할 만한 부분이 없었던 것이다. 만족스러운 승리였다.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플랫폼 대전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팀원들 모두가 스케줄을 수정해, 근래에는 팀 연습을 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바쁜 일정에도 팀의 분위기는 점점 좋아졌다. 패배보다 승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리만큼 달달한 보약이 있을까. 그녀는 지금 나이트폴의 참 재미를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팀 게임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그 기세를 몰아 랭크 게임을 돌린다. 캠 앞에서 방송을 하는 정신적 소모를 지워버릴 만큼 커다란 엔돌핀이 돌았다.

요 일주일을 생각하면, 쪼망의 방송 시간은 이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났다. 그게 플랫폼 대전으로 유입된 시청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승리하는 방법을 깨우친 그녀는 그저 나이트폴이 재밌게 느껴졌다.

생각을 하고 게임을 하는 법. 다른 것들도 많았지만, 그녀가 노르드에게서 배운 걸 종합하면 결국 그것이었다. 관성적으로 하던 식의 플레이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모든 플레이에 이유를 찾는 것이다. 왠지 메이지에 대한 이유모를 혐오감을 자주 내비치는 스승이었으나 노르드의 조언은 그녀에게 최적의 가르침이나 다를 바 없었다.

메이지가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나가야 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모습에, 쪼망은 내심 노르드가 플레이하는 메이지를 보고 싶었다. 조금 더 친해지면 그런 걸 부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회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가까워질 필요가 있겠다.

곧장 다음 게임의 매칭을 시작했다. 오늘은 매칭되는 팀 운도 나쁘지 않았다. 플랫폼 대전 당일이 되기 전 룩을 달성하는 게 지금 쪼망의 첫 번째 목표였다. 한번도 도달해보지 못한, 상위 랭크. 그녀에겐 나이트폴 고수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구간이다.

방송을 시작하고 여덟 시간 째. 그렇게나 많이 했다는 게 이상했다. 피로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것도 참된 나이트폴 유저로 성장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우스운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녀의 머리는 이미 대회 당일 룩 랭크를 상징하는 체스 말을 앞세우고 당당히 등장할 자신의 모습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노르드님도 그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칭찬해 주시겠지. 벌써부터 뿌듯함이 피어오르는 기분이다.

매칭이 잡힘과 동시에, 쪼망은 뻐근한 목을 풀며 기지개를 폈다.

룩이 머지않았다.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