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94 저는 이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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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방송 안 켜요? 그러다 진짜 폭동 일어난다."
"팀원들 전부 방송 킬 텐데, 굳이 거기에 저까지 켜야 될까요?"
"...그게 스트리머 입에서 나올 말이야? 마인드 셋 정말 놀랍다, 놀라워."
"음. 켜야겠네요. 편집자님이 부탁하셔서."
"시청자들 부탁은 다 어디로 가고 편집자가 부탁하니까 켜요?"
"저 어제도 방송 했어요.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저 이번주 방송 시간만 쳐도 꽤 나옵니다."
"아니 나이트폴을 안 하잖아. 코칭할 때 방송 켜놓고 하면 좀 좋아? 그쪽 게시판 보니까 제발 그렇게라도 해달라고 애원을 하더만. 갠방할 때는 무슨 별의별 쓰레기 게임들만 가져와서..."
"잔소리는 그만둬, 칼고에몽."
"...너는 제발 칼고에몽 소리 좀 그만둬요. 요즘 시청자들도 나 그렇게 부른다니까?"
"별명이 느는 건 좋은 거잖아요. 방송적으로."
"그래... 퀸고 보다는 낫다."
요즘 따라 툴툴거리는 빈도가 늘어난 것 같다.
칼고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방송 설정을 만지작거렸다. 대회를 중계하기 위함이다. 본래 중계를 허가받기 위해선 이것저것 귀찮은 신청 절차가 필요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
초대받은 베타코드 채널에서 한 문장의 메세지를 보낸 것 만으로 흔쾌히 허가가 떨어졌다. 이벤트 전이라 그런걸까. 전체적인 규정이 빡빡하지 않은 느낌이다.
중계를 할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저스틴 팀에서 맡은 일은 이미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감독이 아니라 코치였으니까.
방송인들을 위한 이벤트전이라 그런지, 플랫폼 대전에서 코치진의 인게임 간섭은 불가능했다. 여느 프로 리그처럼 게임 내적인 플레이에 관련된 조언이나 게임 후의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코치진이 간섭할 수 있는 건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게임이 시작되고 나서는 모든 변수를 팀원들이 협의해서 풀어나가야 했다.
내겐, 꽤나 반갑게 느껴지는 룰이었다. 책임이나 부담 따위를 덜었다. 한걸음 물러나 바라본다는 느낌이 쾌적하기 그지 없다.
방송 카테고리를 나이트폴로 바꿨다. 최근 저스틴의 게임 카테고리에 없는 게임만을 골라서 하다보니 간만에 선택한 나이트폴이 제법 어색하게 다가왔다.
방송을 켠 상태로 코칭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무리들이 귀찮게 달려드는 것이다. 기습적으로 리듬게임을 실행하면, 어그로를 끌기 위해 모여든 무리가 진저리를 치며 나가 떨어져서 좋았다.
대회 시작까지는... 악 10분 정도가 남았나. 팀원들의 방송은 모두 켜져있는 모습이다. 대충 훑어봤을 뿐인데도 시청자 수가 늘어난 게 눈에 확 들어왔다. 관심이 집중되기는 했나. 멀티뷰 기능을 통해 팀원들의 방송을 전부 띄워놨다. 피드백을 위한 게 아니라, 순전히 캠으로 나타나는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게임 양상에 따라 급변하는 얼굴이 상당히 재밌더라고.
전략 회의는 어제와 오늘 질리도록 나눈 뒤였다. 이제와 응원을 한답시고 들어가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조용히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화면은, 너무 복잡하지 않게 공식 중계 화면 하나로 잡아야겠지.
[??? 이걸 중계방송을 켜준다고??]
[선생님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무친련,, 이제 공지도 안해 ㅅㅂ,,]
[왜 리듬게임 안함??? 왜 지뢰찾기 안함??? 왜 피셔맨 안함??? 왜 중계함???]
[나우플 응원 방송입니다. 저스틴 팬들은 다 꺼져주세요]
[나이트폴... 나 눈물이나요]
[조교된 새끼들밖에 없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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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 긴장 좀 되는데요? 심장 쪼그라드네."
"너도 긴장이란 걸 하냐? 처음 알았네. 대회할 때마다 평소보다 잘해서 대회 체질인 줄 알았지."
"에이, 형님. 사람이 어떻게 긴장을 안 하겠습니까. 오히려 적당히 긴장을 하니까 더 잘하는 거 아닐까요? 왜, 지면 채팅창 어떻게 될지 떠올리면 사지에 힘 빡 드러가잖아요. 그거 의식하면서 하면 게임 잘 됩니다. 한번 해보세요."
"내 시청자들은 져도 뭐라 안 그래. 힘내라고 응원해주면 모를까."
"...여기서 빈부격차를 느끼네요, 형님."
스벅의 말이 끝나자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회를 앞두고 무거웠던 음성 채널이, 웃음으로 조금은 부드러워진듯했다.
대회 진행을 확인하기 위해 틀어둔 공식 방송에서 해설의 소개 문구가 쏟아졌다.
《"네, 먼저 나우플 팀입니다! 다들 인상적인 프로필 사진을 가져오셨네요. 랭크순으로 나열된 모습입니다. 첫 번째는 역시, 적색별 선수죠. 무려 룩1. 이번 대회 참가자들 중 가장 높은 랭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우플 시청자분들 한테는 여러모로 친숙한 참가자가 아닐까요? 여러 이벤트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던 선수입니다. 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한편, 근접 빌드에 대해서도 높은 이해도를"》
"아직 선수 소개 중이네요. 적색별님 나오고 있는데요?"
"솔직히 저 사람 나온 거 오바라니까? 옘병, 퀸까지 찍어본 사람이 룩이 맞긴 하냐고. 나 염탐 몇 번 했는데 오더도 겁나 잘해."
"애초에 스벅님이 멤버 보고 오케이 하신거 아니에요? 밸런스 따지기엔 너무 늦은 거 같은데."
"나야 흔쾌히 받았지. 그런 사람 개바르면 멋있잖아."
"오빠가 개발려서 징징댈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너는 미리 울어놔라. 나중에 똘주 빗나간 화살 모음집 짤방으로 돌아다니면 악플러들 테러올 거 아니야. 응? 선즙 짜면 좀 덜 놀리겠지, 그치?"
스벅과 돌주의 대화가 오가는 중이었다. 마지막 빌드 점검을 마치고, 손목을 풀던 돌쇠가 대기실에 들어온 플레이어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닉네임 아래 작은 체스 말과 함께 랭크를 나타내는 글귀가 도드라졌다.
"쪼망님. 룩 찍으셨네요."
"뭐, 진짜로? 와 진짜 룩이네. 쪼망님 왜 말 안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이게 재능충인가. 봤냐 똘주야? 이제 너와 쪼망님은 정확히 비숍과 룩의 간격만큼 벌어진 거야. 너같은 버러지는 이제 쪼망님과 어울릴 수 없어. 이제 그만 놓아드려."
"헤헤, 놀래켜 드릴라고 일부러 말 안 했어요. 사실 오늘 아침에 달았거든요. 어제 밤에 찍고 자려고 했는데, 연패로 점수 날려버려서."
"장난 아닌데요? 나이트폴은 랭크 지상주의니까, 이제 똘주랑 댈런이 노예로 부리셔도 됩니다. 빡 오더 해주세요. 버러지들 의견은 알아서 걸러 들으시고."
"...씨발, 나도 곧 룩 찍을 거야!"
"채팅창 비웃음으로 도배될 타이밍이죠? 딜레이 있다는 게 좀 아쉬운 점이구요. 니가 룩을 찍어? 그것 보단 내가 퀸 다는 게 더 빠를 듯."
주고 받는 대화가 서서히 긴장감을 풀어냈다. 쪼망은 작게 쉼호흡을 반복했다. 대회를 위해 딜레이를 걸어둔 탓인지 채팅창과의 소통이 불가능했다. 아마, 시청자들은 지금 3분 전의 모습을 보고 있겠지.
대회를 앞두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채팅창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시간 차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용을 통해 유추해 보면, 아마 참가자 소개 영상이 시작되었을 무렵일까.
대기실을 차지한 자신의 닉네임 밑, 당당히 표기된 '룩' 랭크를 보면 조금은 침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목표로 했던 랭크를 달성한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이 차 올랐다. 하던대로만 플레이 할 수 있다면, 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 이전에는 가져본 적이 없는 게임에 대한 자신감이다.
쪼망은 대회 전 개인 메세지로 받은 노르드의 격려를 몇 번이고 되새겼다. 선생님이 지켜보고 계셔. 선생님이 지켜보고 계셔. 선생님이...
띠링
관전자 목록에서 게임을 설정하던, 주최측의 메세지가 올라왔다.
준비가 완료됐으면 게임을 시작하라는 안내문.
쪼망의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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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작하나 본데요? 3분 딜레이 생각하면 빌드부터 까고 들어가겠네."
"첫 세트 잡는 팀이 이길 거예요."
"그럴 확률이 높긴 하죠. 근데 뭐 그리 확신하고 말합니까? 그러다 첫 세트 지면 어떡해요?"
"안타깝겠죠."
"...아, 예."
[그치...안타깝겠지..]
[저스틴 응원방 아닙니다~ 다 꺼져주세요^^]
[설마 첫판 마죽나오냐??]
[빌드공개 ㄷㄱㄷㄱㄷㄱㄷㄱ]
[이 텐련 코치맞냐? 뭐 긴장감이 하나도없네;;]
[코치가 팀을 응원해야한다는건 '편견'아닐까요?]
[전략 같이 짰으면 방장 다 알거아냐]
[킹색별 캐리간다ㅋㅋㅋㅋ]
[이 사람이 전략회의를 했을리가]
이런저런 축전 영상이 재생되는가 싶더니, 어느덧 경기 준비가 완료된 모양이다. 대회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함인지 뭔가 사전 영상이 많았다. 플랫폼 대전엔 나도 모르는 여러 스토리가 담겨 있던 것 같았다.
저번 대전에 참가한 스트리머니, BJ니 하는 사람들이 등장해 응원의 메세지를 남기는 게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사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서 다른 짓을 하느라 바빴다. 나는 긴장한 팀원들의 표정을 보는 게 더 재밌었으니까.
아, 저 해설. 저결 대회에서도 봤던 사람 같은데. 이어폰으로 흘러 들어오는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프로 리그의 해설을 맡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라더니, 이벤트 매치에도 활발히 초청받는 모양이다. 확실히 또렷한 발성과 발음 때문에 전달력이 좋았다. 양 팀의 빌드를 확인하고 해설하는 내용이 귀에 박히듯 들려왔다.
흘러나오는 정보를 요약하면 나우플 쪽의 특별한 변수는 없었다. 몇 번이나 연습을 하던 대로의 빌드 조합. 프로 리그에서도 흔히 만나볼 수 있을 법한, 그야말로 정석적인 형태의 조합.
정석이 괜히 정석이라 이름이 붙여진 게 아니다. 공수 밸런스가 잘 잡혀 있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응이 가능한 구성이다. 팀원들이 조합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다면 어떤 상대를 만나든 승리를 노려볼만한 탄탄한 형태. 연습 내내 하나의 조합만 파고든 것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반면, 저스틴 팀의 경우는
"12명 중에 쌍검밖에 안 보이는데?"
쌍검.
"전 빌드는 맡겼어요. 전적으로 팀원 분들한테."
[웨폰마스터 쌍검 왔다!!!]
[5252... '듀얼블레이드' 스벅이 출격한다고.]
[암요암요 그러시겠지요]
[아 쪼망 메이지네 ㄴㅈ ㅡㅡ]
[헉헉 쓰벅방에 쌍검도네 올리면서 조리돌림할 생각하면 벌써 흥분댐]
[칼고한테 사사한 쓰벅의 쌍검ㅋㅋㅋㅋ 킷따킷따]
[스벅코인 풀매수 가즈아ㅏㅏㅏㅏㅏ]
반응이 심상치 않다. 내 채팅창은 물론, 공식 중계방에서도 죄다 스벅의 빌드로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저렇게까지 주목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1세트의 빌드 라인업이 생각보다 평이하게 나왔기 때문일까.
대부분 기대감으로 가득찬 모습이었다. 활약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폭망해서 놀림거리가 되어주길 원하는 쪽으로.
"애초에 칼고님이 가르친 거잖아요. 스벅님하고 운명을 같이 하시겠죠."
"아니, 봐봐. 조합보면 쌍검이 딱 적합하지 않아요? 해빙기님 방패 들었으니까 좀 활개칠 수 있는 거 필요하잖아. 그리고 같이 연습 봤잖아요. 은근 친다니까, 저 사람. 캐리할지도 몰라."
그럴지도.
변수가 가득한 게임이었다. 일대일로 진행되는 결전만 해도 변수가 얼마나 많은가. 팀 게임은 그게 더했다. 압도적인 기량 차이가 나는 경우라면 모를까, 지금같이 얼추 밸런스가 맞는 상황이라면 게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터였다.
탑랭크가 퀸이라는 나우플의 궁병 플레이어가 전장을 휘어잡으며 게임을 주도할지, 이쪽에서 랭크가 가장 높은 돌쇠가 적 전열을 더 빨리 무너뜨릴지. 아니면 대회의 긴장감에 휩쌓여, 평소답지 않은 실력으로 자멸하는 사람이 나올지.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스벅의 쌍검이 의외의 활약을 보여주며 게임을 집도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재밌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 몰입했던 옛날이 생각나,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칼고님, 저랑 내기 하실래요?"
"내기요?"
"네. 세트 하나씩, 승패 맞추기로."
"미친. 어떤 정신나간 코치가 자기가 코칭한 팀 가지고 승부 내기를 해요?"
"뭐 어때요. 금품 오가는 것도 아닌데."
"...아니, 둘다 저스틴 쪽에 걸 거 아니야. 내기가 성립이 안 되잖아."
"저 이번 판 나우플 쪽에 걸 건데요?"
정적이 머물렀다. 원래 스포츠는 뭐라도 걸고 보는 게 제맛인데, 뭘 망설이는 건지.
유난을 떠는 채팅창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맥주 생각이 절실해져서.
나는 냉장고 쪽으로 발을 옮겼다.
아직 게임이 시작하지는 않았으니까.